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음악은 신념으로 듣는다? 

인간은 음악을 무엇으로 들을까? 대부분 귀로 듣는다고 답변할 것이다. 귀는 음악을 경험하는 복잡한 과정의 첫 단계에 관여하는 기관이다. 귀를 거친 무언가는 뇌에 전달되어 처리된다. 뇌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음악을 경험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인간이 음악을 어떻게 듣고 경험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귀와 뇌만 살피면 될까? 살펴야 할 것들이 더 있다.

▎원숭이나 침팬지, 개, 까마귀 등은 자기 종의 다른 개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침팬지나 개 등은 다른 종, 특히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Theory of mind in animals)
귀와 뇌, 그리고 마음 상태

음악 감상과 관련한 뇌의 중요성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런 이들은 음악가들을 귀가 좋은 이들로 여긴다. 전문 음악가들은 귀뿐만 아니라 음악적 뇌도 좋아야 한다. 귀는 눈이나 코, 피부와 같은 여러 감각기관 중 하나이고, 뇌는 여러 감각기관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상위 기관이다. 뇌에서 처리된 무언가가 우리의 감각, 지각, 생각, 신념, 의식, 수면 중의 꿈 등으로 현상된다. 이런 것들을 마음 상태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들의 뇌 상태가 100% 같지는 않다. 뇌 상태가 다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각장애인은 시각피질이 없거나 약화한 뇌 상태에 처해 있다. 청각장애인은 청각피질이 없거나 약화한 뇌 상태에 처해 있다. 우리 뇌는 -듣거나 보거나 냄새 맡거나 하는 등- 전문적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들, 즉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각이 작동되는 이들은 시각장애인과 다른 뇌 상태에 처해 있다. 시각이 작동되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뇌 상태의 차이가 있다. 사람마다 다른 뇌 상태가 사람마다 다른 마음 상태를 낳는 것 같다.

마음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발상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후배선(LIVEWIRED)’이라는 신경과학의 최근 개념은 평생에 걸쳐 바뀔 수 있는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정한다. 뇌가 바뀔 수 있으니 중요한 것은 경험과 주변 환경이다. 어떤 환경 속 어떤 경험은 어떤 뇌를 가진 내가 어떤 마음 상태를 가지도록 하고, 마음 상태는 내 뇌 상태에 영향을 준다. 뇌 상태의 빈번한 변화가 뇌의 구조적 배선도 바꿀 수 있다. 음악 경험 역시 뇌에 흔적을 남긴다.

환경이 다르면 달라지는 마음 상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한 연구자는 진화론에 관한 사람들의 지식을 측정했고 그들이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지도 알아보았다. 연구자는 진화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진화론을 더 잘 받아들이고, 진화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진화론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을 확인했다(Amanda Montañez(2018), Views of Evolution Shaped by Knowledge, Scientific American 318(5), 24). 진화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의 마음 상태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그것에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또 다른 마음 상태의 차이를 유발했을 것이라는 연구다. 진화론을 잘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 상태.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한 이들이 같은 대상을 다르게 지각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지각이 곧 마음 상태이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은 어떤 화음의 어울림(협화) 정도를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과 다르게 지각한다(Peter M. C. Harrison, Marcus T. Pearce(2020), Simultaneous Consonance in Music Perception and Composition, Psychological Review, 127(2), 216~244).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서로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화음에 대해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마음을 낳는다.

우리네 마음 중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관점 중에 센 것, 사람들 마음속에서 강경하게 꽤 오랫동안 자리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념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강력한 원인 중 하나이다. 문화 차이로 인한 화음 지각 차이를 연구했던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까지는 하지 않았다.

신념이 다른 이들은 음악을 달리 들을까?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철학적 신념과 음악을 듣는 방식 간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철학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같은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도 같은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Korean way of perceiving the determinism of French spectral music and concrete music since 1970(2022), Rast Musicology Journal, 10(2), 183~214).

필자는 임의로 선택된 한국인 50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에서 네 곡을 들려주었고, 설문지를 작성케 했다. 설문지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인간세계를 비롯한 이 세계가 인과 연쇄로 작동한다고 보는지, 이 세계는 인과 연쇄로 작동하겠지만 인간은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지고 세계에 관여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필자는 인간세계를 비롯한 이 세계가 인과 연쇄로 작동한다고 보는 이들을 결정론자(determinist)로 여겼고,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세계에 관여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을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로 여겼다. 계속해서 설문지는 사람들에게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설명하는 문장들을 제시하며 그들의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에 관한 이해도를 측정했다. 그 이후에는 결정론적 음악과 자유로운 음악을 들려주어 어느 음악이 결정론적인지, 어느 음악이 자유로운 음악인지, 어느 음악이 결정론자에 의해 작곡되었는지, 어느 음악이 자유로운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러고는 각 음악의 객관적 특성들을 잘 지각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결정론적 음악은 작곡가가 철저하게 정립된 사전계획에 따라 작곡한 결과물이고, 자유로운 음악은 그런 계획이 부재한 상태에서 쓰였다. 필자는 자신의 사전계획을 꼼꼼히 피력한 작곡가가 만든 두 곡과 그런 계획 없이 자유롭게 작곡했다고 진술한 작곡가가 만든 두 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자신의 사전계획을 꼼꼼히 피력한 작곡가가 만든 두 곡에서는 실제로도 모종의 사전계획들이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되었고, 그런 계획 없이 자유롭게 작곡했다고 진술한 작곡가가 만든 두 곡에서는 연구자들이 실제로 그런 계획을 확인할 수 없었다.

신념이 다른 이들은 음악을 달리 듣는 것 같다

응답자들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한국 사회에는 자유의지론자가 결정론자보다 조금 더 많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학력이 높은 이들과 소득이 높은 이들 중에서 자유의지론자의 비중이 컸다. 무학인 응답자가 1명 있었는데, 그는 결정론자였다. 20대 남자를 비롯해 소외된 비주류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이들에게서 결정론자 비중이 컸다. 설문지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설명하면서 그림들을 제시했는데, 그림들과 함께 결정론에는 다분히 숙명론적인 이미지가 포함됐다. 사실 철학적 신념으로서의 결정론도 숙명론(fatalism)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역사를 보여준다. 자유의지론자들 중 다수는 고학력자와 고소득자들인데, 이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결정론자들 중 다수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었다.

필자(의 컴퓨터)는 응답자가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잘 이해하는지, 음악의 객관적 특성을 잘 지각했는지를 측정해 점수를 매겼다. 응답자들의 점수를 분석한 결과, 결정론자들이 자유의지론자보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더 잘 이해했고, 음악의 객관적 특성도 잘 지각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결정론자는 약간 더 똑똑한 소수파인 것 같았다. 자유의지론자 중 저학력자와 저소득자들은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음악의 객관적 특성도 잘 지각하지 못했다.

결정론자는 들려준 모든 곡을 결정론적인 것으로 듣는 경향을 보여주었고, 자유의지론자는 들려준 모든 곡이 자유롭게 쓰였다고 듣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귀와 뇌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신념이 음악을 듣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걸까? 한국인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일까? 필자의 연구와 관련해서, 음악적 지각은 인식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지각(perception)보다 인식(recognition)이 상위의, 고차원적인 마음 과정일 것이라는 가정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몇몇 고등영장류가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능력을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한다. 마음 이론에는 수준이 있다. 다른 영장류는 가지고 있지 않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장된 마음 이론(Extended Theory of Mind)’이 있다는 가정이 있다(주의: 이 개념은 ‘Extended Mind’와 다르다). ‘확장된 마음 이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이들의 마음마저 추론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 남긴 흔적에서 범죄자가 꼼꼼한 사람인지 아닌지 등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이론에 착안해 자신이 듣고 있는 곡의 작곡가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일지를 응답자가 추론하는지 알아보았다. 이 능력은 공감 능력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대체로 더 성능이 좋은 공감 능력을 탑재했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 필자의 연구에서도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여성 응답자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작곡가의 마음 상태를 남성보다 더 잘 추론했다. 하지만, 이 질문의 전체적 점수는 낮은 편이었다. 즉, 한국인 응답자 전체의 공감 능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같은 질문을 해 비교한다면, 나라별 음악적 공감 능력의 차이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설문지 중 일부를 살펴보자. 1-1 질문에서 ①을 택한 분들은 결정론자일 수 있고, ②를 택한 분들은 자유의지론자일 수 있다고 본다. 1-2와 1-3의 질문을 읽고 답변을 선택해 철학적 신념에 관한 자신의 이해도를 측정할 수 있다. 1-2 질문의 정답은 ②이며, 1-3 질문의 정답은 ④이다. 1-2의 ②번 보기는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결정한다고 했는데, 철학적 결정론자들은 사람들의 원하는 바 역시 그들의 의지에서 벗어난 어떤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1-3의 ④번 보기는 범죄자들은 그들의 사회/물리적 환경들을 극복할 수 없고,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철학적 자유의지론자들은 범죄자들 역시 자의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며, 그러므로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 김진호는…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302호 (2023.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