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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다르면 달라지는 마음 상태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한 연구자는 진화론에 관한 사람들의 지식을 측정했고 그들이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지도 알아보았다. 연구자는 진화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진화론을 더 잘 받아들이고, 진화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진화론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을 확인했다(Amanda Montañez(2018), Views of Evolution Shaped by Knowledge, Scientific American 318(5), 24). 진화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의 마음 상태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그것에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또 다른 마음 상태의 차이를 유발했을 것이라는 연구다. 진화론을 잘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 상태.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한 이들이 같은 대상을 다르게 지각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지각이 곧 마음 상태이다.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은 어떤 화음의 어울림(협화) 정도를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과 다르게 지각한다(Peter M. C. Harrison, Marcus T. Pearce(2020), Simultaneous Consonance in Music Perception and Composition, Psychological Review, 127(2), 216~244).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서로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화음에 대해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마음을 낳는다.우리네 마음 중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관점 중에 센 것, 사람들 마음속에서 강경하게 꽤 오랫동안 자리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념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강력한 원인 중 하나이다. 문화 차이로 인한 화음 지각 차이를 연구했던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까지는 하지 않았다.
신념이 다른 이들은 음악을 달리 들을까?
신념이 다른 이들은 음악을 달리 듣는 것 같다응답자들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한국 사회에는 자유의지론자가 결정론자보다 조금 더 많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학력이 높은 이들과 소득이 높은 이들 중에서 자유의지론자의 비중이 컸다. 무학인 응답자가 1명 있었는데, 그는 결정론자였다. 20대 남자를 비롯해 소외된 비주류라고 여길 수 있을 만한 이들에게서 결정론자 비중이 컸다. 설문지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설명하면서 그림들을 제시했는데, 그림들과 함께 결정론에는 다분히 숙명론적인 이미지가 포함됐다. 사실 철학적 신념으로서의 결정론도 숙명론(fatalism)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역사를 보여준다. 자유의지론자들 중 다수는 고학력자와 고소득자들인데, 이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결정론자들 중 다수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었다.필자(의 컴퓨터)는 응답자가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잘 이해하는지, 음악의 객관적 특성을 잘 지각했는지를 측정해 점수를 매겼다. 응답자들의 점수를 분석한 결과, 결정론자들이 자유의지론자보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더 잘 이해했고, 음악의 객관적 특성도 잘 지각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결정론자는 약간 더 똑똑한 소수파인 것 같았다. 자유의지론자 중 저학력자와 저소득자들은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음악의 객관적 특성도 잘 지각하지 못했다.결정론자는 들려준 모든 곡을 결정론적인 것으로 듣는 경향을 보여주었고, 자유의지론자는 들려준 모든 곡이 자유롭게 쓰였다고 듣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귀와 뇌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신념이 음악을 듣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걸까? 한국인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일까? 필자의 연구와 관련해서, 음악적 지각은 인식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은 지각(perception)보다 인식(recognition)이 상위의, 고차원적인 마음 과정일 것이라는 가정이 있다.심리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몇몇 고등영장류가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능력을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한다. 마음 이론에는 수준이 있다. 다른 영장류는 가지고 있지 않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장된 마음 이론(Extended Theory of Mind)’이 있다는 가정이 있다(주의: 이 개념은 ‘Extended Mind’와 다르다). ‘확장된 마음 이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이들의 마음마저 추론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 남긴 흔적에서 범죄자가 꼼꼼한 사람인지 아닌지 등을 읽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이론에 착안해 자신이 듣고 있는 곡의 작곡가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일지를 응답자가 추론하는지 알아보았다. 이 능력은 공감 능력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대체로 더 성능이 좋은 공감 능력을 탑재했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 필자의 연구에서도 같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여성 응답자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작곡가의 마음 상태를 남성보다 더 잘 추론했다. 하지만, 이 질문의 전체적 점수는 낮은 편이었다. 즉, 한국인 응답자 전체의 공감 능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같은 질문을 해 비교한다면, 나라별 음악적 공감 능력의 차이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필자의 설문지 중 일부를 살펴보자. 1-1 질문에서 ①을 택한 분들은 결정론자일 수 있고, ②를 택한 분들은 자유의지론자일 수 있다고 본다. 1-2와 1-3의 질문을 읽고 답변을 선택해 철학적 신념에 관한 자신의 이해도를 측정할 수 있다. 1-2 질문의 정답은 ②이며, 1-3 질문의 정답은 ④이다. 1-2의 ②번 보기는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결정한다고 했는데, 철학적 결정론자들은 사람들의 원하는 바 역시 그들의 의지에서 벗어난 어떤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1-3의 ④번 보기는 범죄자들은 그들의 사회/물리적 환경들을 극복할 수 없고,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철학적 자유의지론자들은 범죄자들 역시 자의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며, 그러므로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한다.
※ 김진호는…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