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사가 된 계기가 있나.
이처럼 예술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번호의 꼬리표는 우리나라 관세법상 관세가 없다. 즉, 예술품은 100억원이든 1조원이든 관세가 없다는 말이다. 아울러 부가가치세도 면제된다. 세금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관세법은 비록 차가운 법률 언어로 구성돼 있지만 예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있다. 예술의 가치를 금전으로 환산하여 과세하지 않으니 말이다.반면, 예술품으로 분류되지 않고 단순 사진이나 장식품, 가구 등으로 분류될 경우 관세가 있거나(관세가 없는 경우도 있음) 부가가치세가 부과될 수 있으며 물품 특성에 따라서는 개별소비세, 교육세, 농특세까지 어마어마한 세금이 동시에 부과될 수도 있다.관세법상 예술품의 정의가 궁금하다.결론부터 말하면 관세법상 예술품의 정의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관세법은 예술품에 관심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관세법상 예술품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관세법은 오로지 유형의 물품에만 적용(전기에너지는 제외) 되기 때문에 예술의 범주에 있는 연극, 무용 등은 논외로 하고 우선 예술에 대해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객관적으로 명확한 테두리 안에서 자신 있게 예술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예술은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라도 ‘아름답고 높은 경지’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정의할 수 없는 속성의 것이라는 말이다.따라서 관세법에도 법적인 목적상의 예술품의 정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국회의원의 탓이 아니다. 더욱이 특정한 수출입 물품의 품목을 분류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국내의 독자적인 법률이 아닌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합의하고 적용하는 국제협약에 따르는 것이니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제협약에도 법적인 목적상의 예술품은 없다. (편의나 참조의 목적으로 예술품이라는 단어가 제목에는 있다) 단지, 회화나 오리지널 동판화, 오리지널 조각, 수집품, 골동품 등이 있을 뿐이다.이것이 예술품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답은 ‘아니다’이다. 품목분류상 회화나 조각은 예술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손으로 직접 그렸는지가 중요하고, 모자이크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대량생산된 복제품은 그 예술적 가치와 무관하게 법적인 목적의 예술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또 저명한 예술가가 제작한 판화라 할지라도 기계적 방법이나 사진제판법으로 제작했다면 이 또한 법에서는 예술품으로 보지 않는다. 어차피 예술이라는 것이 추상적인 것이라면 적어도 객관적 지표로 분류 기준을 세우는 것이 법의 정신에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현재 국내법상으로는 본질적인 면보다는 외관상으로만 판단하여 예술품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백남준 작품이 TV로 통관된다거나 댄 플래빈 작품이 형광등으로 통관되는 등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관세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맞다. 구체적인 예로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이 단순히 TV로 분류되거나, 댄 플래빈의 작품이 단순히 형광등으로 분류되어 과세, 통관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나아가 빈티지 예술 가구를 개별소비세법에 따른 사치품에 속하는 고급 가구로 보아 과세당국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예술계에서 큰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다. 2020년 관세청 국정감사에서는 일견 예술적으로 디자인된 가구를 예술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 적도 있다.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추상적인 예술 분야를 객관적이어야 하는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품목분류의 기준은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합의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단순히 편협한 법의 틀을 탓하기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실 궁극적인 책임은 국내외 예술계에 있다.법령 혹은 국제협약은 자연의 진리가 아니라 구성원이 합의해서 제정하고, 개정될 수 있는 규칙일 뿐이다. 이 말은 언제든 그 기준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그 기준을 바꾸기 위해서는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너희는 예술을 몰라’라고 하면서 손가락질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 추상적인 예술품의 범주를 법적인 영역의 객관적인 언어로 기술하고, 예술 작품의 최근 작업 트렌드가 법적 기준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각국 국가기관 혹은 국제기구에 호소하는 등 끊임없이 애를 써야 한다.실제로 이와 유사하게 반도체의 경우 전통적인 반도체의 법적 기준으로 인해 날로 발전된 반도체 물품이 과세 대상(법적인 목적상 반도체에는 0%가 적용된다)이 되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후 업계의 노력으로 발전된 반도체 기술이 법적 기준으로 반영되면서 과세되던 반도체 물품이 0% 물품으로 재분류된 사례도 있다.물론 예술품은 본질상 반도체보다는 객관화 작업이 녹록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참고로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은 단순 TV가 아닌 로봇 형상을 갖춘 예술품 영역의 ‘오리지널 조각과 조상’으로 우리나라 관세청에서 지침을 내린 바 있다.예술 작품을 국제 거래하는 컬렉터들이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반복되는 말이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예술품일지라도 이른바 세금이 없는 법적인 영역의 예술품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특히 예술품은 고가인 경우가 많은데 분류에 따라 세금의 편차가 큰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을 관세 행정당국도 잘 알고 있다. 오로지 법적 기준에 따라 과세해야 하는 관세 행정당국의 입장에서는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예술품의 통관을 주시하고 있다.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의도치 않게 세금을 탈루할 여지가 많거나 반대로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어느 경우라도 납세자 입장에서는 손해이다.우리나라 관세법은 원칙적으로 신고납부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납세자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책임을 지고 수입신고를 하고 관련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말이다.예술품 통관 시에는 관세사나 변호사 등 법적인 영역에서 식견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에게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우선, 입법기관 및 과세 행정당국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앞서 말한 것이 주로 관세법상 예술품 범주의 분류 기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더욱이 논쟁이 되는 것이 개별소비세법에 따른 과세 대상 물품이다. 특히 고급 가구가 그렇다. 사실 예술품의 범주를 법적 영역으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국제협약은 상세하게 그 범주를 설명하거나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오로지 국내 법령인 개별소비세법에 따른 과세 대상 물품에 대해서는 법령상으로 ‘고급 가구’라는 단어만 명시돼 있을 뿐 가구의 범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관세법상 예술품의 범주로 분류되는 물품(주로 오리지널 조각 혹은 조상)이 개별소비세법에 따라 단순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이 발생하곤 한다.물론 이와 관련된 지침이나 질의 회신 자료는 있는데 이마저도 시기에 따라 그 의도가 일관적이지 않다. 이는 납세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도 온당치 않다. 따라서 적어도 가구의 범주에 대해 ‘실용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국제협약처럼 어느 정도 명확한 범위를 구체적인 법령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