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세월의 흔적만큼 축축하고 찐득하게 스며든 위스키 향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품은 아드벡의 섬, ‘아일라’. 그곳을 찾아 떠난 첫 번째 위스키 기행.
▎어디를 둘러봐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아일라섬. |
|
설렘과 생경함, 나의 첫 아일라2016년 늦가을 난생처음 스코틀랜드 서부 연안에 자리한 작은섬 ‘아일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영국도 가본 적 없는 나에게 세상의 끝과 같은 아일라섬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생경한 곳이기도 했다. 아일라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런던에서 글래스고 공항에 도착했다. 늦가을의 영국답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꽤 센 바람을 맞으며, 가장 끝자리에 있는 국내선 게이트에 도착했다. 아무런 안내도 없이, 적당히 시간이 되니 그제서야 모두 활주로로 나오라고 한다. 참고로 아일라행 비행기에는 탑승교 따위는 없다. 대부분 증류소 관계자나 섬 주민으로 보이는 20여 명이 바람을 막기 위해 묵묵히 모자를 눌러쓰거나 스카프를 단단히 동여매고 활주로로 나갔다. 동양인은 우리 부부와 뒷자리의 중국 여자 한 명뿐이었다. 쌍발 Saab 340 기체는 그렇게 하루에 한 번 글래스고와 아일라를 왕복한다. 비행시간은 단 30분. 이미 이 비행기에 올라탄 순간 나는 지구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착한 아일라 공항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한계를 벗어난 모습이었다. 대서양 끝의 폭풍우와 함께 착륙한 아일라 공항은 분명 밤 아닌 늦은 오후 시간임에도 이미 어두웠고, 흐릿한 조명과 이 세상 같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풍광이 나를 맞이했다.
웰컴 투 아일라아일라 공항은 다른 공항에서 늘 보던 컨베이어벨트도 없어 기체에서 내려진 짐들은 각자 묵묵히 알아서 들고 가야 했다. 우리는 공항 대합실에서 픽업하러 오기로 약속한 드라이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공항과 달리 떠들썩한 택시 스탠드도, 관광안내소도 당연히 없었다. 다들 그렇게 폭풍우로 축축해진 옷을 털어내며 택시나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이버 겸 우리가 묵을 B&B의 주인은 짐 맥켈만, 사람 좋게 생긴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젊어서는 고향인 아일라섬을 떠나 영국군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은퇴 후 고향인 아일라에 정착한 60대 초반의 퇴역군인이다. 짐의 차를 타고 다니는 4일 동안, 거기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스코틀랜드 음악이 나중엔 없으면 서운할 정도가 되어, 떠날 무렵엔 우리도 같이 흥얼거리게 되었다. 짐은 벨기에 출신의 왕립 발레단 발레리나와 결혼해 그 나이에도 손자 같은 10살짜리 귀여운 아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근사한 집, 모든 것을 다 가진 상남자였다. 사람 또한 싹싹하고 좋아서 여행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짐의 차를 타니 뜻밖에 히사코라는 일본 아가씨가 한 명 더 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뜨개질에 조예가 깊어 양모로 유명한 북쪽 셰틀랜드제도를 거쳐 이곳까지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한다. 이튿날 히사코가 탄 비행기가 출발할 때까지 우리는 온전히 하루를 함께했다. 같이 차를 페리에 싣고 바로 옆의 주라섬을 방문해서 주라 증류소를 들른 후, 아일라로 돌아와 부나하벤 증류소까지 구경한 후 헤어졌다. 히사코는 지금도 우리 부부의 좋은 친구로,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주고받는다. 도쿄에서 일하는 히사코는 내가 이전에 다녔던 SAP 협력업체의 컨설턴트이기도 하고, 처가가 있는 가나자와 출신이라 좀 더 각별해졌다.
나를 아일라섬으로 이끈 아드벡잠깐 내가 아일라섬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일라섬을 직접 만나기 전 내 머릿속의 그곳은 특유의 알싸한 향내가 나는 위스키로 유명한 섬이고, 내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또 두 아들이 어렸을 때, 승용차가 아닌 SUV를 타고 싶어 중고 자동차 시장을 뒤져 어렵게 찾아낸 빨간색 랜드로버의 필드테스트를 한다는 멋진 오프로드 속 자연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런 나의 상상 속 아일라섬은 실제로는 영국 전역의 많은 탐조가가 철새 탐사를 위해 찾는 섬이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멋진 풍광을 찍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이란 책에 등장하며 일본과 우리나라에 알려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 책은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위스키 붐을 타고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이란 원제를 살려 다시 출간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애호가로 유명하긴 하지만 뜬금없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무렵 사세 확장에 주력한 ‘산토리’가 아일라섬의 유명한 두 위스키인 ‘보모어’와 ‘라프로익’을 인수하기 전 슬쩍 하루키에게 이곳의 기행문을 의뢰하여, 일본식의 티 나지 않고 조용한 간접광고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뭐 그렇다고 해도 워낙 ‘보모어’ 위스키가 훌륭하니 ‘산토리’와 하루키의 애교로 봐줄 만하다. 그렇지만 왜 하필 이 아일라섬을 내 첫 번째 영국 방문지로 선택했는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의 8할은 ‘보모어’나 ‘라프로익’이 아니라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다. 이 섬의 남쪽 끝 해안가에 자리한 증류소에서 만들어지는 짙은 녹색병의 위스키, ‘아드벡’이다. 보자마자 강렬한 외모와 그보다 더 강렬한 향이 나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중세풍 글씨체로 근사하게 ‘아드벡’이라 새겨 놓은 금빛 테두리의 검은 라벨과 짙은 녹색병은 정말 중세의 연금술사나 퇴마사들이 썼을 법한 약병처럼 보여 충분히 혼란스럽고 또 매력적이다.
대망의 아드벡과 조우이튿날, 드디어 대망의 ‘아드벡’을 만나러 갔다. 인근의 ‘라프로익’과 ‘라가불린’도 같이 방문했는데, 다른 무엇보다 아드벡 증류소의 첫 만남에 압도되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엄청난 규모의 증류소로, 입구에 위압적으로 버티고 있는 예전에 사용했던 구리 증류기의 모습만으로도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글로벌 최대 럭셔리 그룹 LVMH에 인수된 후 아드벡은 정말 큰 발전을 했다. 이전의 중소기업에서 벗어나 거대 자본의 힘으로 멋지게 거듭난 것을 보면 거대 자본도 충분히 존재의 이유는 있다. 아드벡 증류소에는 LVMH가 투자하여 만든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다. 위스키의 원재료인 몰트를 건조하는 데 쓰던 건물을 층고가 높은 카페테리어로 바꾸어 아일라 정취를 듬뿍 풍기는 화려한 음식들을 제공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컨디션 난조와 배탈 때문에 불안해하며 만끽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아드벡 증류소에서 일을 한지라, 초등학교도 아드벡 마을에 있는 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드벡 증류소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례식을 할 때 매장이 끝나면 함께 위스키를 마시고 마신 잔과 병도 바위에 던져 깨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짐에게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의 아버지 장례식도 아마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짐은 아버지 장례식 장소도, 장례식에 쓰인 위스키도 모두 아드벡에서 내주었다고 했다. 아드벡에서 일했던 짐의 아버지에 대한 아드벡 나름의 예의를 갖춘 것이고 이 사실을 짐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스코틀랜드의 장례식은 잉글랜드의 결혼식보다 재미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 이렇게 잔까지 바위에 던져 깨버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례식은 꽤 쿨하다.
아드벡의 새로운 10년
▎외관에서부터 압도적인 아드벡 증류소 |
|
LVMH가 아드벡을 인수한 후에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드벡은 그 강렬한 풍미로 예전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추앙받는 위스키이긴 하지만, 대중성은 매우 떨어져 새롭게 인수한 LVMH로서는 아드벡의 대중성을 확보할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아드벡이나 LVMH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긴 하지만 대체로 사실이다. 아드벡을 인수할 무렵인 1998년, 새롭게 증류한 위스키 원액을 특별한 목적을 가진 캐스크에 담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8년 최초 원액을 증류한 후 6년이 지나서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 나왔다. Ardbeg Very Young(2004), 2년 후에는 Still Young(2006), 그리고 최초 증류한 지 9년이 지났을 무렵 Almost There(2007)이 나왔다. 마침내 대망의 10년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해인 2008년, 이름하여 Ardbeg Renaissance가 나왔다. 프리미엄 라인의 출시와 더불어 대중적인 라인인 Ardbeg 10이 동시에 나온 것이다. 이 아드벡 10에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서사를 부여하기 위하여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온 것이다. 아드벡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반드시 이 시리즈를 모으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컬렉션을 모으는 일이 짐작대로 상당히 험난하다. 10년 정도 쏟아부은 노력과 투자로 위의 시리즈 중에서 최초인 베리영을 제외하고는 현재는 모두 내 워드롭에 있다. 뭐 돈만 내면 베리영도 해외에서 구할 수 있겠지만 세금 문제 등 여러 가지 난제가 많아 내 마음속의 베리영으로만 기억하려고 한다. 원래 자동차도 최상위 라인을 먼저 출시한 이후에, 그로부터 확보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바탕으로 좀 더 대중적인 라인을 새롭게 출시하여, 대부분의 매출을 이곳에서 올리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다. 즉, 대중은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갖기를 원하지만 그만큼의 지갑을 열 의사는 없기에 비즈니스는 항상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름의 최적화를 하게 마련이고, LVMH는 영리하게 판단해서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위스키이기에 가능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이렇게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은 다른 산업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게 또 위스키만의 멋이고 스코틀랜드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LVMH가 프랑스 회사라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전 세계에서 위스키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프랑스이고, 프랑스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영국이라는 앵글로프렌치 패러독스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겠다.
아쉬운 이별과 뜻밖의 에피소드
▎아드벡 증류소장 Mackey Heads와 함께. |
|
꿈만 같았던 아일라에서의 4일을 보내고 다시 글래스고행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야 하는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다. 맘 같아서는 영원히 아일라에서 아드백을 비롯한 위스키와 함께하며 멋진 사람들과 삶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떠나야 할 때는 있는 것. 짐과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아일라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도 나는 지인들에게 아일라 여행을 추천했고, 그들 대부분은 짐의 택시와 B&B의 고객이 되었다. 아일라에 다녀온 지인이 가져온 짐의 선물도 받았고, 우리도 한두 번 짐과 그 가족에게 자그마한 선물들을 보내기도 했다. 짐의 주소는 늘 간단했다. 짐 맥켈만, 보모어, 아일라, UK! 주소도 번지수도 없는 것이 내 맘에 쏙 들었다. 한 지인이 위스키와 아일라에 대한 내 열정과 대화에 감동하여 신혼여행을 아일라로 가겠다고 했는데 불행히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짐의 B&B를 추천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나중에 귀국한 그 지인에게서 재밌는 말을 들었다. 아일라에서 택시를 불렀는데 우연히 짐의 택시였고, 짐은 그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코리안 친구가 PJ인데, 혹시 아는지 물었단다. 우연히 아일라섬에서 만난 코리안이 PJ를 아는 것을 보고 짐은 모든 코리안은 PJ를 잘 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누군가에게 나는 한국의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다.(웃음)
아드벡의 위트내가 아드벡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드벡의 위트다. 아드벡은 각 제품의 병이나 포장 박스에 자그마한 문구나 그림을 꼭 넣는다. 예를 들어 아드벡 코리브레칸은 아일라섬에서 발생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바다 소용돌이를 의미하는데, 상자 바깥쪽에 ‘No Swimming’ 표시와 수영 금지 그림이 있다. 2000년에 출시된 아드벡 갈릴레오에는 아드벡의 상징인 쇼티 개가 우주비행사로 분하여 우주로 날아가고 유영하는 그림이 있다. 오늘 밤도 나는 상자나 병에서 그 행간의 의미를 찾는 깨알 재미를 느끼며 아드벡 10 한 잔을 기울여본다.
※ 박병진(PJ Park)은… 1991년 IBM 신입사원으로 경력을 시작해 IBM, SAP, SK 등 글로벌기업의 임원으로서 지난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2022년부터 딥러닝 기반의 무인 교통단속장비를 생산하는 (주)토페스의 CEO로 부임해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의 유일하지만 집착적인 위스키 사랑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각종 증류주의 매력에 빠져 세계 각국의 증류소를 다니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Salon de PJ’라는 위스키 클래스로 기업체, 대학교, 단체 등에서 많은 사람에게 증류주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