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복수와 사회적 폭력에 대한 오페라들 

지난 3월 10일 파트 2가 공개되어 한때 42개국 넷플릭스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드라마 <더 글로리>는 복수 이야기이자, 복수를 낳은 가혹한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오페라에도 복수 이야기가 있을까?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가 있을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의 공연 커튼콜 장면 / 사진:로얄 스웨디시 오페라 공연(2009)
복수(復讐) 또는 보복(報復)은 본인 혹은 가족이나 지인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으로부터 모종의 피해를 실제로 받았거나 받았다고 느꼈을 때 받은 만큼, 혹은 받았다고 느끼는 만큼의 피해를 상대에게 돌려주는 행위다.

복수는 매우 오래된 정의 실현 방식이다.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많은 영장류 생물학자는 고릴라와 침팬지 등의 사회에서 개체 단위와 집단 단위를 통해 복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했다. 기린이나 코끼리, 들소 등 채식 동물들도 먹으려는 의도 없이 사자 새끼들을 죽이는, 복수라고 할 만한 행위를 한다는 보고가 있다.

현대 법치국가에서도, 비록 법적 문제가 있음에도, 복수 특히 사적 복수는 여전히 우리에게 강력한 감정적 자극을 준다. 그리하여 복수는 많은 예술 작품 속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오페라는 고대 그리스의 음악 딸린 연극을 근대에 와서 - 르네상스 후기에 - 재생한 것으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중에는 복수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고, 같은 소재를 현대에 와서 오페라화한 작품이 있었다. [엘렉트라(Ēlektra)]다.

『엘렉트라』는 에우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라는 두 시인이 쓴, 같은 신화를 소재로 한 서로 다른 두 편의 비극이다. 기원전 5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이 비극들은 아버지 아가멤논을 잃은 딸 엘렉트라가 아버지를 살해한 친모와 그녀의 새 남편을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190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공연된 오페라 [엘렉트라]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상술한 내용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두 시간 동안 연주되는 이 오페라는 매우 긴박하고 격렬하며 표현주의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더불어 강력한 오케스트라를 뚫고 포효해야 하는 성악가들의 압도적 성량을 요구함으로써,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공연되지 않았다(서유럽과 북미에서는 종종 공연된다.)

‘엘렉트라’ 신화에서 아가멤논은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온 영웅이었지만, 아내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 복수의 출발점인 이 사건에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엘렉트라 신화와 『엘렉트라』비극, [엘렉트라] 오페라에는 정치적인 느낌이 없다. 사적인 사건에서 시작된 복수의 집행자 중 한 사람인 엘렉트라는 어떠한 시대적·계급적 전형성도 없어 보인다. 즉, 엘렉트라는 어떤 집단이나 계급, 민족 등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엘렉트라처럼 개인적인 동기로 복수에 나선 인물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다.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의 동명의 오페라에서 루치아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별을 당하고, 원치 않는 남자와의 결혼을 강요받자 복수심을 키웠다. 복수의 대상은 정략결혼을 주도한 그녀의 오빠다. 루치아는 결혼식 날 밤에 남편을 죽임으로써 복수를 완성한 후에 자결했다. 루치아가 부르는 유명한 노래로 [광란의 아리아(Mad scene)]가 있다. 무척 화려하고 기교적인 이 노래는 여주인공의 불안정한 상태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개인적 동기의 복수지만, 모종의 정치적 맥락이 개입됨으로써 복수가 일종의 정치적 정의 실현 이야기가 된 오페라도 있다. 귀족의 황혼 시대에 활동했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던 왕과 귀족을 소재로 한 18세기 후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귀족에게 복수는 하되, 코믹한 ‘고양이와 쥐 게임’ 방식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순화된 내용의 복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양이와 쥐 게임’ 방식에서는 1960년대에 방송되었던 [톰과 제리] 만화를 보는 듯한 ‘계속되는 추적, 금방 성공할 듯한 포획, 반복적 탈출 등’이 보인다. 하인 피가로와 하녀 수잔나가 사랑해 결혼할 예정인데, 생뚱맞게 수잔나와의 초야권을 주장하며 어떻게 해보려는 알마비바 백작이 복수의 대상이 된다. 상술한 대로 코믹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복수라서 화끈하고 처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배계급을 조롱하는 내용이라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원작이었던 연극 [피가로의 결혼]은 여러 나라에서 상연이 금지되었는데,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특이하게도 성공적인 공연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경쾌한 음악이 안 그래도 처절하지 않은 복수를 더 순화했던 걸까?

사회적 폭력과 복수의 오페라 '보체크', 드라마 '더 글로리'


▎로얄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의 [보체크] 공연(2023년 5월 19일~6월 7일) 포스터. 로열 오페라는 런던에 있는 오페라단이다. / 사진:로얄 오페라 하우스 공연 사이트(2023)
1837년, 애인 살해 혐의로 공개 처형되었던 독일 청년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uchner)가 희곡 『보이체크(Woyzeck)』를 썼다. 작가가 24세에 요절해 완성되지 못했던 이 희곡을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반 베르크(Alban Berg)가 고친 후 그에 기초해 현대적 오페라 [보체크(Wozzeck)]를 작곡했다. 1925년에 베를린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는 한국에서는 2007년에야 초연되었다.

[보체크]에서 주인공 보체크는 사회적 약자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천대받으며, 의사의 실험 대상까지 된다. 이런 대우가 보체크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듯하다. 보체크의 부정적 감정이 결정적으로 증폭·폭발한 계기는 그의 여자가 저지른 부정한 행위다. 군악대장에게 몸을 허락한 그녀의 부정을 인지한 보체크는 그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복수의 계기는 부정한 행위이고, 복수의 대상은 자신보다 더 약한 여인이며, 복수에 이르는 과정과 맥락과 관련해서는 그녀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받은 부당한 대우가 중요하게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더 글로리]와 접점이 있어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사회적 폭력과 그에 따른 복수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그렸는데, 가해자들은 사회적 강자들의 자식들이고,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다. [더 글로리] 속 주인공 문동은은 거듭되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라고 질문한다. 가해자인 박연진의 대답이 기가 막힌다. “아, 지겨워 진짜. 니들은 왜 그런 걸 묻니?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지금도 봐. 니가 경찰서까지 가서 그 지랄을 떨어도 넌 여기 또 와 있고. 뭐가 달라졌니?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아. 경찰도, 학교도, 니 부모조차도.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 약자.”

[더 글로리]는 사회적 약자의 자식을 사회적 강자의 자식들이 구타하고, 언어폭력을 일삼고, 따돌리는 등 육체적·정신적 손해를 끼치는데, 경찰도, 학교도, 아무도 가해자들을 제지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기막힌 상황을 그렸다. 피해자 문동은은 집이 없어 달방이라 불리는 초라한 여관에서 자고, 그녀의 어머니는 돈, 모성애, 도덕이 없는 밑바닥 삶을 산다. 문동은의 복수 대상에는 이런 모친도 포함된다. 돈과 모성애, 도덕이 없는 광란의 연기를 보여준 그녀의 모친을 보면서 필자는 [보체크] 1막의 대화를 떠올렸다. 보체크를 교묘하게 언어적으로 조롱하는 대위가 말한다. “자넨 도덕이 없어!” 그러자 보체크가 말한다.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없는 놈은 도덕이고 뭐고 없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대위에게 보체크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하급 군인이기 때문이다. 희한한 생체실험을 강요하는 의사 앞에서도 보체크는 무력하다. 의사는 알량한 돈을 보체크에게 주고, 그는 그 돈이 아쉽기 때문이다. 보체크는 계급적 상위에 있는 대위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의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문제이지, 인성이 나쁜 개인이 저지르는 사사로운 학대의 문제가 아니다. 궁핍한 보체크는 아내를 죽이려고 결정할 때, 돈이 없어 권총 대신 싼 칼을 산다. 적나라한 가난이 오페라 무대에 꼼꼼하게 올려진 드문 사례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송혜교가 분한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이 과거의 피해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장면을 보며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 사진:[더 글로리]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이 오페라에서 아쉬운 것은 복수의 대상이 대위나 의사가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보체크의 여인이라는 점이다. [더 글로리]와 달리 그 어떤 통쾌한 복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오페라가 [더 글로리]보다 더 사실적이지 아닐까 싶다. 김은희 작가는 [더 글로리]에서 시청자를 통쾌하게 만든 성공적 복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체크] 속 기구함은 거의 구질구질한 수준이다. 보체크가 좋아하는 여인은 보체크의 법적 아내인지 불분명하다. 불분명한 이유로 기막힌 사정이 암시된다. 경제적 이유로 그들이 결혼하지 못했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그리하여 어린 그들의 아이는 교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생아이며, 그 사실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조롱을 받는다. 그러니까 보체크만큼이나, 그의 아이도 이미 사회적 약자이다. 보체크의 여인이 바람을 피운 사정에도 경제적 이유가 있다고 암시된다.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마지막 부분이다. 보체크와 그의 여인이 모두 죽은 다음 날, 아이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이봐, 카티! 마리 아줌마 소식 들었어?” “무슨 일 있어?” “너도 모르니? 사람들이 다 나가버렸어.” “이봐! 너의 엄마가 죽었대!”

마리 아줌마가 죽은 여인이며, 마리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장난감 말을 타며 외치고 있다. “달려라, 달려!” 다른 아이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마리 아줌마는 어디 간 거야?” “아줌마는 연못가 오솔길 가까이에 누워 있어.” “가서 구경하자!”

죽은 마리가 연못가에 누워 있다며, 구경 가자는 아이들. 우르르 신이 나서 달려 나가는 그들에게는 왠지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의 이런 대화를 매우 음산하면서도 매정하게 들리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반주하며 오페라를 끝내고 있다.

※ 김진호는…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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