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헝가리/부다페스트(Budapest) 

헝가리 역사를 담은 영웅광장 

‘영웅광장’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유목민이었던 마자르족의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이 고전풍 광장은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의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매우 신성한 장소다.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영웅광장. / 사진:정태남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를 ‘머져르오르사그(Magyarország)’라고 한다. 오르사그(ország)는 ‘나라’라는 뜻이고 머져르(Magyar)는 헝가리 민족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국내 출판물에서는 보통 ‘마자르’라고 표기한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 서쪽의 부다(Buda)와 부다의 북쪽 오부다(Óbuda), 강의 동쪽 페스트(Pest)가 1873년에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이며, 헝가리에서는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부다페스트가 탄생하기 전후에 페스트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도나우강 변에서 북동쪽으로 쭉 뻗어 있는 직선대로 언드라시 거리가 조성되었다. 이 거리를 다 지나면 숲이 우거진 광대한 시민공원을 배경으로 시야와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아주 널따란 광장이 펼쳐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을 연상하게 하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디자인된 이 광장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며, 관광객들에게는 사진을 찍기 위한 아주 멋진 배경이 되어준다. 또 이곳에서는 1년 내내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밀렌니움 광장


▎헝가리의 왕들. 왼쪽 첫 번째가 이슈트반 1세이다. / 사진:정태남
유서 깊은 유럽 도시에서 광장은 일반적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우가 많은데, 이 광장은 이탈리아 로마의 포폴로 광장이나 프랑스 파리의 방돔 광장처럼 가운데 세워진 높은 기둥을 중심으로 완전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기념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이 광장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하고 조성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념하고자 했을까?

이 광장의 중심점은 코린토스 양식 복고풍으로 만든 높이 36m 원기둥으로, ‘밀렌니움 기념 원기둥’이라고 한다. 사실 이 이름에서 광장을 만든 의도를 확실히 읽을 수 있다. 영어권에서 ‘밀레니엄’이라고 발음하는 라틴어 ‘밀렌니움(millennium)’은 ‘1000년’이란 뜻이다. 즉, 헝가리 사람들이 마자르족의 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광장을 계획했던 것이다. 1896년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1901년에 완공한 이 광장의 이름은 원래 ‘밀렌니움 광장’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헝가리 정착’은 무엇을 의미할까? 헝가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지만 아쉽게도 고고학적·역사적인 조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헝가리어는 우랄어족의 한 지류인 핀·우그리아어족에 속한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그들은 아시아와 유럽 동쪽에 걸쳐 광활한 평원에서 살았던 터키계 유목민족과 유사하다. 기원후 9세기 후반에 들어 그들은 유목생활에 적합하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아 떠나 896년 도나우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분지에 정착했다. 그해가 바로 마자르족의 헝가리 정착 원년이다.

밀렌니움 원기둥 아랫부분에 있는 마자르족 일곱 부족장의 기마상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중 최고지도자는 선두의 아르파드(Árpád)이다. 각 부족장들은 마자르족 이주 시기의 부족별 전통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일곱 부족장을 묘사한 역사적 기록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조각상의 얼굴이나 복장은 조각가의 상상에 따른 것이다.


▎아르파드를 선두로 한 마자르족 일곱 부족장의 기마상. / 사진:정태남
카르파티아 분지에 정착한 마자르족은 10세기에 들어서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유럽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지만 955년 남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았다. 힘을 잃은 그들은 서쪽의 신성 로마제국과 동쪽의 비잔티움 제국 사이에서 당시 서방의 기독교, 즉 로마 가톨릭을 수용했다. 아르파드의 후손인 버이크(Vajk, 997~1038)는 서기 1000년에 왕위에 올라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헝가리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의 세례명이 바로 이슈트반(István)이다. 나중에 그는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성 이슈트반’이라고 불린다.

밀렌니움 원기둥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오른손에는 황금빛 왕관, 왼손에는 황금빛 십자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왕관은 헝가리 왕국의 주권을 상징하고, 십자가는 헝가리의 초대 국왕 이슈트반의 공적을 인정하여 교황이 보낸 십자가 형태인데 기독교화된 헝가리를 상징한다.

헝가리 영웅들을 기념하여


▎헝가리의 르네상스 왕 후녀디 마탸슈. / 사진:정태남
밀렌니움 원기둥 뒤로는 열주와 동상으로 이루어진 콜로네이드 한 쌍이 좌우로 길게 수평으로 병풍처럼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헝가리의 흥망성쇠 역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 14명의 동상이 양쪽에 각각 7명씩 연대별로 100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헝가리의 역사를 증언하듯 세워져 있다.

그중에서 왼쪽 콜로네이드의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초대 국왕 이슈트반이다. 그가 헝가리 왕국의 기틀을 잡았다면 헝가리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은 오른쪽 콜로네이드의 두 번째 인물이다. 그의 독일식 이름은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이고 헝가리식 이름은 우리처럼 성(姓)을 이름 앞에 써서 후녀디 마탸슈(Hunyadi Mátyás)라고 한다. 1458년부터 1490년까지 헝가리를 통치한 그는 ‘헝가리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가 통치할 때 헝가리는 국력이 막강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이탈리아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헝가리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헝가리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아 150년 동안 점령되었으며, 그 후에는 오스만 세력을 물리친 합스부르크 왕조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헝가리는 1848~1849년에 독립전쟁을 일으켰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오스트리아 군대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후 오스트리아가 1866년에 프로이센과 치른 전쟁에서 패배하여 힘을 잃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타협해 1867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결성했다. 이를테면 오스트리아의 파트너로 승격된 헝가리는 이때부터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헝가리 사람들은 마자르족의 헝가리 정착 1000년을 당당하게 기념할 수 있었다. 1901년 이 광장이 완공되었을 때 헝가리는 아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에 완전히 해체되었다. 이어서 1920년 트리아농조약에 따라 헝가리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고 바다가 없는 작은 나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밀렌니움 원기둥과 그 앞에 놓인 헝가리영웅기념 제단. / 사진:정태남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29년, 밀렌니움 원기둥 바로 앞에는 커다란 석관 같은 제단이 놓여졌다. 낮은 철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언뜻 무명용사의 묘소처럼 보이지만, 유럽 다른 나라와 달리 헝가리에는 무명용사의 묘소가 없다. 이 돌 제단 정면에는 헝가리어로 ‘Höseink Emlékére(회세인크 엠레케레)’라고 새겨져 있는데, 번역하면 ‘우리의 영웅들을(Höseink) 기념하여(Emlékére)’이다. 즉, 헝가리 역사에서 헝가리를 지켜온 모든 영웅을 기념하는 제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이 광장은 헝가리어로 ‘회쇠크 테레(Hősök tere)’, 즉 ‘영웅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이 광장은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의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매우 신성한 장소이다.

※ 정태남은…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305호 (2023.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