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9) 

불운 |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연의 일치일 것이고, 다양한 상황이 개입되어 벌어진 일이겠지만,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묶어 ‘운’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누구는 운이 좋고, 누구는 운이 나쁘다고 말한다.

▎루이스 웨인 [제의실의 회의] 1892
운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자리나 사주와 같은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여전히 운명의 여신이 내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노력한다 하더라도 운이 도와준다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운 대신 불운이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불운한 사건들을 피하려 조심하고 애쓰기도 하지만,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반복된다면 한 인간은 절망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영국 화가 루이스 웨인(Louis Wain)이 그린 작품들은 그 누구의 작품보다 밝고 재치 있지만, 그의 삶은 안타까운 불운의 연속이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


▎루이스 웨인 [고양이 결혼식] 1906
루이스 웨인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외아들이었던 웨인은 6살에 구순구개염을 앓아 10살까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영국에서 유명한 미술학교인 웨스트런던예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술교사로도 일했지만, 그의 나이 2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웨인에게 의지했고, 여자 형제 5명은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기에 웨인이 모두 책임져야 했다.

그림을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프리랜서 화가로 활동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스포팅 앤드드라마틱 뉴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등 매거진에 그림을 수록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그린 웨인의 작품에는 시골 풍경과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사람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웨인은 주로 동물을 그렸고, 동물을 의인화해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연출했다. ‘The Strand Magazine’에 실린 불독 그림은 인간의 모습을 불독으로 바꾸어 풍자한 재치있는 삽화였다. 초기에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지만 반려 고양이 피터를 만난 후 웨인의 작품에는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픔을 주고 떠나간 사랑


▎루이스 웨인 [버릇없는 냥이들] 1898
웨인은 23살 때 여동생들을 위해 집에 가정교사를 들였는데, 이 둘은 서로에게 반해 금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웨인보다 여성이 10살이나 많다는 점, 여동생의 가정교사였다는 이유로 이웃과 가족들은 두 사람을 손가락질했다. 결국 둘은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 런던 북부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이 이들에게도 찾아온 듯했다.

그러나 부인 에밀리는 젊은 나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고 3년간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웨인은 에밀리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계속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그림을 그렸고, 일을 줄여가며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렸지만, 시간은 두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에밀리가 남긴 건 비오는 날 울고 있던 새끼 고양이 피터였다. 둘은 자녀 없이 함께 피터를 키워왔고, 피터는 웨인의 작품 활동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불길한 동물을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 [And the Band plays on] 1900년대 초 추정
화가가 자신의 반려동물을 그림에 자주 등장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웨인 이전의 작가들은 주로 개를 그렸고,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혹은 그림의 주인공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 당시 사회 분위기였다. 그러나 웨인은 반려묘 피터를 계기로 고양이들을 자주 그렸다.

1800년대엔 고양이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흔히 고양이는 요물이고, 기분 나쁘고,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불길한 존재로 여겨졌다. 핼러윈 등의 행사에서는 검은 고양이가 마녀와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반려동물로 개를 선호했고,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집에 들이는 것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의 취향 정도라 생각했다. 그래서 웨인의 가족들은 ‘고양이를 키우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누가 보겠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웨인의 그림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웨인은 고양이만 가지고 있는 여유로움, 귀여움, 재치, 사랑스러움, 엉뚱함을 포착하여 사람처럼 옷을 입히고 역할을 주었다. 오히려 고양이 덕분에 상황을 더 잘 표현한 작품들도 등장했고, 사람들은 고양이의 새로운 면들을 보기 시작했다.

[버릇없는 냥이들]에서는 고양이가 두 발로 서 있긴 하지만 아직 고양이가 사람처럼 의복을 갖춰 입지는 않았다. 사람처럼 두 앞발을 팔로 사용하는 정도의 표현으로 고양이의 다양한 특징을 나타냈다.

웨인의 그림은 점차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고양이들을 담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낚시도 했다. [And the Band plays on]은 바이올린, 플루트, 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고양이들이 숲에 모여 음악회를 열고 있는 장면이다.

웨인은 공공장소를 다니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끊임없이 스케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으며, 작품은 연하장, 풍자 삽화, 잡지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랑을 받았다.

1898년부터 1911년까지는 국립 고양이 클럽 회장을 지냈고 캣쇼에서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웨인의 인지도도 올라갔다. 웨인이 고양이에 대한 경멸적 시선을 줄여 주었기에, 애묘인들 사이에서는 더욱더 큰 사랑을 받았다.

저작권을 모두 넘겨버리다


▎루이스 웨인. 병원에서 그린 작품. 1930년대
웨인은 상당히 손이 빠른 작가였고, 1년에 100권이 넘는 동화책에 삽화를 실었다. 『루이스 웨인 연감(Louis Wain Annual)』에는 1901년부터 1915년까지 그린 그림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웨인은 자신의 작품이 판매된 만큼의 부를 손에 거머쥐지 못했다. 웨인은 판매된 만큼 돈을 받는 형식이 아니라 헐값에 저작권을 넘겨버렸다. 그림을 한 번 그리는 것에 대한 노동의 대가만 받은 것이다. 복제되어 퍼져 나간 웨인의 그림만 유명해졌을 뿐 그는 늘 가난했다. 심지어 전기특허에 집착했던 그는 사업 감각도 없는 상황에서 가진 돈을 모두 투자했다가 잃어 빈털터리 화가가 되고 말았다.

가지고 태어난 유전병

부모의 재산이나 키를 포함한 외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유전병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DNA에 새겨져 한 사람을 평생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에게는 조현병이 유전되었다.

웨인의 여동생 마리가 조현병을 앓다가 46세에 세상을 떠났고, 웨인도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을 만나면서 점차 환각과 망상 증세를 보였다.

1924년, 웨인은 점차 폭력적으로 변했고, 그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한 가족들이 정신병원 빈민 병동에 입원을 시켰다. 그 후 과거 그가 유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를 포함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서더크의 베들렘 왕립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그는 입원해서도 고양이를 그렸는데, 조현병 발병 이후 웨인의 그림은 점차 추상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색채는 화려해졌으며, 고양이를 의인화하는 형식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인생에서 마지막 15년을 고양이가 많고 자연이 가까운 냅스버리병원에서 지냈고, 1939년 7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말 모든 것이 불행했을까

루이스 웨인의 삶을 훑어봤을 때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면 불행했던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웨인은 자신의 삶에서 부정이 아닌 긍정을 바라보려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여인 에밀리는 눈을 감을 때 웨인이 자신의 죽음 때문에 고통받지 말고 그 자신을 위해 살기를 소망했다. 또 웨인은 많은 사람이 쓸모없다고 이야기한 특허를 평생 동안 연구했다. 가족들은 이런 그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일부 팬들도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특허와 그림은 웨인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에밀리가 부탁했듯이 그는 행복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같은 삶도 흰색이 되기도,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사랑했던 에밀리와 결혼하는 과정도 고통스러웠고, 그녀의 죽음도 절망스러웠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웨인은 가장 행복했다.

저작권을 모두 넘겨 그림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돈을 벌 수 없었지만,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웨인은 삶의 고통을 잊을 만큼 몰입했고, 충분히 즐기려 했다. 인생의 불행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인생은 잿빛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인생을 충만하게 볼지 고민한다면 인생은 충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삶은 다양한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그 안에서 매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웨인은 죽기 전까지 고양이를 그렸고, 판매와 상관없이 집중하고 몰입했으며, 자연과 고양이에게서 마지막까지 위로를 받았다. 요즘 자꾸 안 좋은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불운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낙담하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몰입하고 즐기려 했던 루이스 웨인의 태도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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