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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4) | 박원재 원앤제이 갤러리 대표 

예술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꿈꾸다 

정소나 기자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 갤러리를 시작하게 됐다는 원앤제이 갤러리의 박원재 대표. 이제는 한국 작가만으로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초청을 받는 몇 안 되는 국내 갤러리 중 하나로 성장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의 다음 목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미술 정보 유통으로 더욱 건전한 미술시장을 조성해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것이다.

2005년 종로구에 개관한 원앤제이 갤러리는 한국 현대미술을 국내외 미술계에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기적인 플랜에 따라 소속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원앤제이 플러스원이라는 공간을 열어 잠재력 있는 젊은 작가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개관 첫해부터 꾸준히 아트바젤, 프리즈, 더 아모리 쇼 등 주요 해외 아트페어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무대 진출을 도모해 글로벌 시장에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고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 5월의 주인공은 박원재 원앤제이 갤러리 대표다. 박 대표는 재능은 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신진 작가, 개념미술이나 설치미술 등 소위 ‘판매하기 어려운’ 작업을 주로 하는 젊은 작가들을 국제 무대에 소개해오며 한국 신진 작가 해외 진출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아티팩츠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아트파인더’라는 위치 기반 미술 정보 앱, 작품과 작가 이력을 알려주는 ‘아티팩츠’를 통해 기술적으로 보완될 수 있는 미술시장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전시 정보와 작가 이력을 알리는 서비스를 통해 미술 관람을 대중화하고, 작품 정보를 한데 모아 미술품 거래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해 건전한 미술시장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진 중인 박 대표를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오랜 경력의 갤러리스트이자 아트페어 전문가다. 아티팩츠라는 회사를 창업한 동기가 궁금하다.

2018년 아트바젤에서 강서경 작가를 선보여 매년 뛰어난 작가 2명을 선정하는 발루아즈 미술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원앤제이 갤러리도 한국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해외에 알려보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아트바젤 수상을 계기로 초심으로 돌아가 국내 시장에만 갇혀 있는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새롭고 재미있는 일에 대한 갈망과 맞물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위치 기반의 전시 정보, 작품과 작가 이력을 알려주는 플랫폼을 고안하게 됐다.

‘아트파인더’는 위치 기반 미술 정보 앱으로, 내가 있는 곳 주변에서 열리는 전시를 알려주고, 미술계 인플루언서의 추천 전시도 소개한다. 미술 관람을 대중화해 한국 작가들에게 세계로 나갈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포부에서 시작했다.

흔히 ‘미술품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지만 국제 미술시장을 보면 아주 정교하지는 않더라도 작가의 커리어에 따라 대략의 작품 가격대가 나온다. ‘아티팩츠’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그림을 찍으면 작가의 기본 프로필부터 개인전·단체전 개최 이력 등이 담긴 작가 활동 이력과 작품 금액, 경매 이력, 작품에 대한 평론 등이 함께 제공되는 디지털 아트 플랫폼이다. 현재 계속해서 데이터를 추가 확보하며 작품의 적정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관련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티팩츠를 통해 더욱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미술계가 질적으로 성장하고 좀 더 투명하고 건전한 시장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기존 플랫폼과의 차별점은.

현재 가장 강력한 플랫폼인 아트넷이나 아트시와 비교한다면 작품 위주의 거래를 유도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전시를 통한 판매를 지향한다. 또 대다수의 플랫폼이 키워드 서치 기반인 반면 아티팩츠에서 출시한 앱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지도 위에 표기되는 전시를 찾을 수 있고, 작품을 스캔해 쉽게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궁극적으로 예술이 대중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일 것이다. 아티팩츠 역시 일상에서 늘 새로운 작업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전자상거래를 통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아니라 기존 미술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서 디지털 익스텐션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른 플랫폼들과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아트바젤 발루아즈상 수상은 당시 큰 화제가 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발루아즈상은 강서경 작가가 받았다. 물론 원앤제이 갤러리의 이름으로 신청해 아트바젤 2018 스테이트먼트 섹터에 참가했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트바젤은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꼽히는 데다 스테이트먼트 섹터는 초기 지원 단계에서부터 운영위원들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갤러리와 작가의 역량을 기준으로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 갤러리 소속 작가의 발루아즈상 수상은 아시아 갤러리로서는 최초라고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갤러리스트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해외에 한국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보람과 고충이 교차했을 것 같다.

한국 작가들의 재능은 작품에서 쉽게 드러나는 것 같다. 해외 페어에 참여해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면 칭찬도 많이 해주고, 작품에 극진한 관심을 보여주어 늘 보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나 작품을 소개하는 영문 텍스트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실력 있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컬렉터나 미술관 측에서 작품을 보고 큰 관심을 보이다가도 작가나 작품을 리서치할 때 영어로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아 선뜻 구매를 결정하지 못하거나 미루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해외 페어에 참가하면서 작가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적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최근 눈여겨보는 한국 작가가 있나.

플랫폼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특정 작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해본다면 이안 리 작가와 최윤희 작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 두 분의 앞으로의 행보는 주목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해외에 비해 한국 시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대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다. 이를 극복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해외에 한국 작가들을 알리면서 느꼈던 고충과 비슷한 것 같다. 먼저 미술계에 계신 분들이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좋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성장하고,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글로벌 미술계와 연계성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방법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다음 주에 열리는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여하는데, 시카고에 갈 때마다 그곳의 아트신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직접 경험하며 경외심을 느끼곤 한다. 우선 컬렉터들끼리도 교류가 활발하고 대다수의 컬렉터가 시카고를 대표하는 미술관인 아트 인스티튜트와 현대미술관(MCA) 양쪽에서 활동하면서 두 미술관이 서로 경쟁이 아닌 보완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잘 잡아나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로컬 갤러리들의 관계를 늘 염두에 두면서 로컬 갤러리들이 지원하는 로컬 작가들이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이며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 미술계가 ‘고인 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컬렉터들이 가진 영향력을 통해 세계적으로 또는 미국 전역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을 초청해 로컬 프로그램과 연계해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의미를 확장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을 통해 예술의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가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원앤제이 갤러리를 거쳐 간 많은 분이 미술계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원앤제이 디렉터 출신 패트릭 리는 프리즈 서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이세현 작가, 이수경 작가, 이정 작가, 유승호 작가, 이동기 작가를 비롯한 우리 갤러리를 거쳐 간 수많은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대표로서 참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코로나 전과 지금의 아트마켓을 비교한다면.

일단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온라인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컬렉터는 컬렉터대로 갤러리는 갤러리대로 온라인의 편리성을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 미술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투명성이 강조돼야 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피터 트러커의 말처럼 측정할 수 있어야 가치평가가 가능하다. 미술계 역시 투명하게 공개된 더 많은 정보 유통으로 작품의 가치가 측정되어야 발전이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 팬데믹 시기는 온라인에 공개된 작품 정보를 통한 거래가 늘어나며 미술계 전반에서 투명성에 대한 니즈가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MZ세대들이 아트마켓의 주류로 급부상하면서 이런 니즈를 성공적으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프리즈와 키아프의 오픈일에 열린 ‘삼청 나이트’의 포장마차 파티가 인상적이었다.

삼청동의 몇몇 갤러리가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 개최를 기념하며 이벤트를 준비해 축제의 밤을 보냈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많은 해외 아트페어를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수많은 행사 중 어떤 행사부터 가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특히 미술계에 몸담고 있다면 언제 어떤 파티에 가느냐가 정치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기에 고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다른 파티들과 경쟁하기보다는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해외에서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경험을 제공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갤러리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분식 포장마차를 준비했다.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파티여서인지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해외 아트 컬렉터와 한국 컬렉터의 차이는 뭔가.

해외 아트페어에서 만난 컬렉터들은 작품의 투자 가치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덜한 편이다. 한국 컬렉터들이 유달리 투자 관점에서 작품들을 구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미술품 투자도 결국은 다른 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가치가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성공 확률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어차피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한 경우 일정 수익률이 나오면 매매를 원한다. 특정 작품 또는 작가가 매물로 나오기 시작하면 비슷한 기대심리로 앞다퉈 매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결국 거래 불능 상황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반면 정말 작품이나 작가를 아끼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컬렉팅하는 경우에는 웬만큼 작품 가격이 올라가지 않고서는 판매 의사가 없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시장 원리에 따라서도 결국 그런 작가들의 작품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해외 갤러리들이 작품 구입 시 주로 요구하는 ‘일정 기간(보통 5년) 동안 리세일 금지 특약’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갤러리에 소속된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겠다는 리세일 금지 특약의 의도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 법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온전히 소유한 것들에 대해 타인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은 보편 타당한 상식이다. 갤러리들은 계약 조건을 앞세워 시장을 컨트롤하려고 하기보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판매된 작품들이 2차 시장으로 활발하게 유입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한국화랑협회의 새 집행부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는데.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로 해외 미술계 경험이 풍부하다. 상대적으로 한국 미술계의 많은 분과 소통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에서 더 많은 분과 소통하며 지금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과 방식이 한국 시장과는 생각보다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랑협회 국제이사로서 한국 미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그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다.

신진 작가 발굴에 일가견이 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초창기부터 웬만한 미술대학의 졸업 전시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곳에서 잠재력을 갖춘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면 메모를 해두고 그들의 행적들을 계속 추적해왔다. 그 작가들이 전시를 하는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작품의 맥락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진정성을 찾는 거다. 이들이 작품을 매개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작가 자신에게서 나오는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에게서 나온 소재일 때만 지속가능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시류에 편승해 지금 핫한 토픽만 다루는 작가들은 유행이 지나고 나면 길을 잃더라. 그래서 작품 속에서 자기 얘기를 하는 진정성 있는 작가에게 주목한다.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작가는 결국 작업으로 승부해야 한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없으면 오랫동안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특정한 주제나 특정한 기법으로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그 스타일만 고수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보길 권한다. 일찍부터 특정한 이미지로 각광받은 작가들은 그 테마에 갇혀 새로운 작업을 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만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위대한 작가가 한국에서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 정승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사진 최기웅 기자

202305호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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