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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엔씨소프트 NLP센터장 

AI 전쟁에 뛰어든 게임 회사 

신윤애 기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일으킨 AI 전쟁. 올 하반기부터 한국 기업들도 속속 참전 소식을 전한 가운데, 지난 8월 엔씨소프트도 직접 개발한 중소형 언어 모델을 들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국내 게임 회사 중에선 최초의 사례다.

▎2015년부터 엔씨소프트의 AI기술을 고도화하고 비즈니스에 적용해온 이연수 NLP센터장. / 사진:엔씨소프트
챗GPT가 등장하자 전 세계는 인류의 삶을 바꿀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에는 씁쓸한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입력하면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 세계 인터넷상에는 한국어로 된 데이터가 1%도 채 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한국어 전용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 언어 모델)의 필요성을 일깨운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국내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LLM을 개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올 하반기부터 하나둘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LG와 네이버가 7~8월에 LLM을 공개한 데 이어 카카오는 연내, 쏘카는 내년 상반기에 출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더불어 지난 8월 16일엔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가 업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 ‘바르코(VARCO) LLM’을 대중에게 소개해 화제가 됐다.

‘바르코’는 게임 시나리오와 이미지, 가상 인간 형성 등 게임 개발에 특화된 중소형 LLM이다. 이미지 생성툴인 ‘바르코 아트(VARCO Art)’, 텍스트 생성ㆍ관리툴 ‘바르코 텍스트(VARCO Text)’, 디지털휴먼 생성 및 편집ㆍ운영 툴 ‘바르코 휴먼(VARCO Human)’까지 총 3종을 ‘바르코 스튜디오(VARCO Studio)’로 통칭한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엔씨소프트가 직접 선별한 고품질 데이터 위주로 학습시켜 누구든지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세대 MMORPG 게임인 리니지를 서비스하고 야구단 NC다이노스를 이끄는 국내 대표 게임사 엔씨소프트가 LLM을 출시했다는 소식에 업계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시장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곧장 출사표를 던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엔씨소프트는 꽤 오랫동안 기술을 갈고닦았다. AI 기술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절감한 윤송이 최고전략책임자(CSO)의 선구안과 김택진 창업자 겸 대표의 과감한 투자로 2011년부터 AI 조직을 따로 꾸려 기술 연구를 시작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떠들썩한 승부가 벌어진 2016년보다도 5년이나 앞선 시기였다. 2015년부터는 AI랩 산하에 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 자연어 처리) 팀을 구성해 한국어 문장을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AI도 개발해왔다.

엔씨소프트의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엔씨소프트의 NLP R&D를 이끄는 이연수 NLP 센터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센터장은 고려대에서 컴퓨터학과 학사, 컴퓨터학과(자연어처리)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2014년 엔씨소프트 ‘AI랩(AI Lab)’에 합류한 AI 전문가다. 입사 후 NLP랩 랭귀지 팀장, NLP센터 랭귀지 AI랩 실장을 거쳤고, 현재는 NLP센터장 자리에서 번역, 검색 등 주요 기술 개발과 디지털 휴먼 프로젝트를 위한 NLP 분야별 AI 연구에 힘 쏟고 있다. 지난 9월 11일 경기도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그는 “기술적인 준비는 모두 마쳤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엔씨소프트가 보유한 AI 기술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자연어 처리라고 불리는 NLP 기술은 사람의 말을 분석해서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나아가 사람이 사고하는 과정을 연구해 말을 생성하기도 한다. 우린 이 기술을 야구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앱인 ‘페이지(PAIGE)’에 적용하고 있다. 경기를 리뷰하고 요약해 뉴스 피드를 생성하는가 하면, 구단의 채팅창에서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AI 챗봇을 운영한다. 또 2020년부터 AI와 기자가 협업해 기사를 쓰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연합뉴스와 공동연구를 통해 날씨 기사 작성, 연표 자동 생성, 사진 검색 등 업무를 AI가 대신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사례다. 최근에는 번역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채팅방에서 사용하는 서로 다른 언어 15개를 실시간으로 번역하는 엔진을 개발한 것이다. 전문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게임 유저들이 사용하는 구어체로 번역해야 한다는 점에서 난도가 높는 영역이다. 결과적으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플레이하는 리니지W 같은 게임에서 유저들이 언어장벽을 느끼지 않고 게임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NLP 학회 등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게임 회사가 AI 기술과 NLP 기술 개발에 공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AI와 NLP팀은 4명으로 구성된 작은 원팀으로 출발했다. 초기 목표는 엔씨소프트의 본업인 게임 제작에서 기술 고도화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한 목표지만 초기엔 게임 제작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했던 것 같다. 당시의 발표 자료를 보면 ‘AI는 도구다’라는 메시지가 있다. AI로 신사업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보다는 게임 제작의 프로세스를 단축하거나 자동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음성합성 기술, 음성명령 기술, 애니메이션 기술, 데이터 가공 기술 등의 영역이다. 초기엔 각 부서들의 문제해결을 돕는 기초 단계부터 시작했고 차근차근 규모와 역할을 키워 게임 이외의 신사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제 AI와 NLP 팀을 분리해 운영하며 수백 명 규모의 조직으로 덩치도 커졌다. 또 알파고와 챗GPT의 등장으로 비즈니스 기회도 활짝 열렸다. 기술적인 준비는 마쳤으니 이 기회를 잘 활용해보려고 한다.

관심 있는 비즈니스 분야는 무엇인가.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사업 분야에는 제한이 없다고 본다. 이미 패션, 바이오, 자동차, 로봇, 교육, 금융 산업과 연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차량 관련 서비스를 소개하면 최근 연합뉴스, 드림에이스와 ‘차량용 인공지능(AI) 뉴스 솔루션’ 개발을 위한 MOU를 맺었다. 운전자가 관심 있는 뉴스를 요약해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서비스다. AI 큐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운전자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뉴스를 선별하고, 거대 모델이 구어체로 요약한 뒤 음성합성 기술로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테크기업으로 가는 수순인가.

우선은 게임유저들의 경험을 다채롭게 만드는 게 목표이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AI 번역이 가장 직접적으로 게임 유저들의 경험을 확장했는데, 다른 나라 유저들과 말과 감정을 공유하는 덕분에 새로운 협력 구도 혹은 새로운 대결 구도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전에 없던 다이내믹스가 일어난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직원들에게 ‘MS, 구글 같은 기업이 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오래전부터 AI 기술을 개발해왔고, 이제 비즈니스 기회가 활짝 열린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8월 출시한 바르코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해달라.

아무리 좋은 LLM이어도 사용자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애를 먹기 마련이다. LLM을 사용해 챗봇을 만든다고 가정해보겠다. LLM에서는 지원하지 않는 도메인 놀리지(domain knowledge)를 투입해 독창적인 답변을 제공하려고 한다면 해결 방법을 몰라 난처해질 것이다. 이처럼 바르코 스튜디오는 바르코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텍스트, 이미지를 생성하고 챗봇을 만들 때 해결책을 찾고, LLM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툴이자 지원자 역할을 할 것이다.

바르코는 AWS가 제공하는 아마존 세이지메이커 점프스타트를 통해 배포된다. AWS를 택한 이유가 뭔가.

LLM 사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고객들이 우리를 얼마나 필요로 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초기부터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아마존 세이지메이커 점프스타트는 기초 모델, 기본 제공 알고리즘과 사전 구축된 머신러닝 솔루션이 포함된 머신러닝 허브이기 때문에 AWS의 탄탄한 인프라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서비스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 모델을 서비스하기 위해 고객사와 우리가 각자의 데이터를 모두 공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AWS가 그 걱정을 덜어줬다.

오는 10월 11일 열리는 ‘AWS 인더스트리 위크‘에서 ‘Generative AI on Conversations with Leaders’를 주제로 열리는 패널 토의에 참여해 엔씨소프트가 AI 기술을 어떻게 고도화했고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는지 실제 사례와 전략적 인사이트를 공유할 예정이다. 본 패널 토의는 각 산업의 대표 기술 리더로부터 AI 비즈니스 사용 사례, 전략적 인사이트, 기술 리더가 다가올 일에 대해 조직을 가장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소개하는 장이라고 들었다.


▎사진:엔씨소프트
디지털 휴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디지털 휴먼은 엔씨소프트가 자신하는 분야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AI 기술이 필요한 데다 기술 하나하나가 상당한 수준을 요구한다. 디지털 휴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의 ‘인터랙션’, 즉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유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말투에서 상황과 감정을 파악하고 주변 환경까지 고려해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시각, 청각, 언어 지능을 결합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유저의 감정과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 어색하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이모셔널 익스프레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어떤 수준까지 개발됐나.

일반적인 상황, 자주 발생하는 상황은 모두 인식할 수 있는 상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쳐다본다면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야 하고, 전화 통화를 시작하면 잠시 대화를 멈추는 ‘리액션’이 필요하다. 이런 일반적인 상황에는 잘 대처하는 편이다. 다만 워낙 변수가 많아서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언어 모델은 디지털 휴먼의 브레인 역할, 즉 상황을 판단하고 정확하게 대처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손을 흔든다고 해서 모두 인사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표정, 목소리, 손짓 등을 전부 고려해서 맥락을 읽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거나 상대방의 행동에 상응하는 대응을 동작으로 보여야 한다. 이 부분이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영역이다.

윤리적인 문제나 편향된 정보 제공 등 AI에서 비롯되는 우려 사항들이 있다.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했나.

유저의 질문 중에서 꼭 사실에 기반해 대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최신 정보, 규칙에 대한 정보가 그렇다. 그땐 무조건 다시 검색해 정보를 끌어오도록 하는 기술을 결합하고 있다. 사내 검색 기술실이라는 곳에서 그 역할을 한다. 디지털 휴먼에도 당연히 적용할 계획이다. 이는 대부분의 AI 회사들이 취하는 검증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는 정보를 끌어오고 다시 만들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들도 예방하고자 이중, 삼중으로 검증을 실시할 것이다. 다만 유저와 소통하고 게임하고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는 디지털 휴먼의 경우 검색엔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윤리적이고 매너 좋은 친구가 되어줄 디지털 휴먼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AI 기술을 활용해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사내 챗봇이다. 아무리 IT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도 업무를 볼 때 혹은 정보가 궁금할 때 다른 임직원에게 물어야 알 수 있는 일이 많다. 물론 소통이 나쁜 건 아니지만 효율적이지 못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출산휴가는 언제부터 쓸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보통은 사내 휴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메신저상에서 물어본다. 담당자는 이런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받을 것이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을 해줘야 한다. 지원부서, 공통부서의 경우 직원들의 민원을 처리하느라 6시 이후에나 일할 시간이 난다는 토로도 여러 번 들었다. 업무상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 정보는 챗봇에게 묻고 답할 수 있도록 했다. 사규, 회사의 최신 소식, 업무 프로세스 등은 이미 사내 위키에 많이 축적돼 있어서 이 정보들을 연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현재까지 공통 부서들의 업무 대부분을 결합했다. 나아가 우리의 LLM을 기반으로 외부 지식까지 연결해 자연스럽게 질의응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하려고 한다. 게임 개발 분야에도 적용할 생각이다. 임직원들의 반응이 뜨거울뿐더러 외부에도 소문이 났는지 다른 회사들에서 사내 챗봇을 만들어줄 수 있겠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이를 범용화해 사업화해보려고 한다.

엔씨소프트의 중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회사의 목표보다는 우리 센터의 목표를 말씀드리겠다. 우선 AI 솔루션을 많은 비즈니스 영역에 접목해 기술의 활용 영역을 넓히고 싶고, 디지털 휴먼 영역에서 기술적으로 인정받고 싶다. 디지털 휴먼에는 엔씨소프트의 독자적인 기술이 많이 접목돼 있다. ‘디지털 휴먼은 엔씨소프트가 가장 독보적이다’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202310호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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