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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0) 방병선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K도자기의 첨병 

정소나 기자
대중예술뿐 아니라 K클래식, K미술을 비롯한 순수예술까지 K컬처의 글로벌 지평이 끊임없이 확장되며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한국 도자사의 최고 전문가로서 묵묵히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우리 문화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방병선 교수를 만났다.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아트페어가 한국에 진출하는 등 미술시장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복고 열풍, 예술 분야에서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것일수록 더 각광받는 추세가 맞물리며 우리 문화와 문화재, 더 나아가 고고 미술사까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오후, 유중아트센터에서 정승우 이사장이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방병선 교수를 만나 고고미술과 도자기, 문화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방 교수는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 학사와 석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3월부터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타이완예술대학 초빙교수, 한국학연구소 소장, 인문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문화유산융합학부 고고미술사학 전공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한국도자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 및 전문위원,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백자연구』,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중국도자사연구』, 『도자기로 보는 조선왕실문화』, 『한국도자사전』(공저) 등이 있고, 국내외에서 논문 60여 편을 발표했다.

때마침 유중아트센터 전시장에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레트로 문화에 주목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각종 희귀품과 사진 등을 전시해 고전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세대교감 레트로展: 놀러와]가 전시 중이었다. 전시장을 배경 삼아 진행된 인터뷰 전후에 정 이사장은 즉석에서 전시품들과 소장품들의 감정평가를 의뢰했다. 방 교수는 그중 몇 개를 꼽은 뒤 ‘일단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보라’고 기대 섞인 조언으로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일문일답.

얼마 전까지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1960년 김원룡, 진홍섭, 황수영, 전형필, 최순우 선생님 등이 동인회를 결성하여 동인지 ‘고고미술’을 창간한 것을 모태로 출범했다. 얼마 전에는 창립 60주년 행사를 치렀다. 국내 인문학 최장수 학회로 꼽히며, 한국 미술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서양 미술까지 폭넓은 연구 영역이 특징이다. 그간 수많은 문화계 인사를 배출했다. 코로나 기간 중 회장 임무를 수행했는데, 여러 회원의 성원으로 6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기부금 모금과 국제 교류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고고미술사학이란 무엇인가.

고고학과 미술사학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고고학과 미술사학은 엄연히 학문의 성격과 역사가 다르다. 쉽게 이야기하면 고고학이 소위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처럼 발굴과 분석, 역사 복원을 중심으로 한다면, 미술사학은 예술작품의 양식과 그 변천, 작가와 제작배경, 대외 교류와 비평 등을 주로 연구한다. 고고미술사학과는 1981년 서울대학교에서 처음으로 학과를 만들면서 아마도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벤치마킹해서 고고학과 미술사학을 합친 고고미술사학을 학과 이름으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결국 학과 이름이지 학문명은 아니다.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원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부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 끝에 제대 후 선친이 운영하시던 이천 도자기 공장으로 내려갔다. 당시 선친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을 재현하셨는데, 문학과 예술, 가업 계승 등에 관심이 있던 터라 과감히 이천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도자기 공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특히 도자기를 만드는 기능과 기술 등에서 기대 이하에 머물렀다. 또 다른 길을 생각해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선친의 지인이자 고고학자이셨던 서울대학교 김원룡 교수님께서 도자사 공부를 권유하셨다. 공부해보니 나와 잘 맞아 지금까지도 열심히 몰두 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과찬의 말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친 덕분에 도자기 작업 현장에서 15년을 보낸 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 또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한국 미술과 도자사, 한국사 등을 폭넓게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원 지도교수셨던 문명대 교수님, 도자사 연구를 이끌어주신 강경숙 선생님, 한국사에 눈뜨게 해주신 간송미술관 최완수 선생님 등에게 감사할 뿐이다. 또 국내 다른 연구자와 달리 과학적인 실험 분석을 도자기 연구에 응용한 것은 공과대학에서 수학한 이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도자기 차이가 궁금하다.

도자기는 역시 중국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국명 ‘China’가 곧 도자기일 만큼, 장식과 기술에서 세계 최고이자 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한 색상과 최고의 기교를 자랑하며 세계 최초로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각각 독자적인 특성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 생산에 성공하고, 12세기에는 중국 청자에 버금가는 최고의 비색 청자를 만들어낼 정도로 우수한 원료와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만들어 절제와 소박함뿐 아니라 강한 개성과 해학, 선비의 멋을 보여주었다.

일본 도자는 오랜 기간 지역 특성이 강한 도기의 시대를 보낸 후, 17세기 이후 한국과 중국의 기술을 수입해 빠른 기간에 백자와 오채 자기 생산에 성공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중국이 내란으로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유럽으로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수출했다.


▎정승우 이사장과 방병선 교수가 우리 도자기와 문화재, 고고 미술 등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과 일본 도자가 화려한 색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한국 도자, 특히 조선시대 백자는 한정된 색과 장식으로 절제미를 보여준다는 데 차이가 있다.

왜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유럽 도자기처럼 컬러풀한 장식을 하지 않았을까.

도자기는 주로 유약과 안료를 사용해 색을 낸다. 고려청자는 유약으로 비색을 내고 상감으로 흑백 색상을 표현했다. 조선시대에는 하얀 바탕에 코발트로 칠을 한 청화백자, 산화철로 색을 낸 철화백자, 산화동으로 적색을 내는 동화백자를 만들었다. 모두 유약을 씌우기 전에 안료로 색을 칠해 구운 백자이다.

15세기 후반 중국 명나라에서 완성된 백자에 다시 안료를 칠하고 구운 오채 자기가 탄생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은 온갖 화려한 색상의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도 17세기에 중국으로부터 오채 자기 기술을 수입하여 다채로운 색상의 백자를 생산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안료와 가마, 소성 방식 등인데 아쉽게도 조선에는 이런 기술 수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던 조선 왕실에서 화려한 그릇에 대한 관심 부족 때문인지, 기술 유입이 안 된 때문이지 논의의 여지는 있지만 후대의 기록이나 왕실 출토품 등으로 미루어보면 기술 수입 의지와 기회 부족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금 중국 문화재가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중국의 그림이나 도자기가 전 세계 옥션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게 된 데는 중국의 문화나 역사가 그만큼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중국에 호기심을 갖고,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됐다. 거기에 부응해서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문화재의 가치와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투자로 뒷받침한 결과 이제 나름대로의 결실을 거두게 됐다.

역으로 해외 시장에 현재 한국의 미술, 문화, 역사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제대로 된 영문 소개 책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문화에 대한 소개부터 부족한 현실에서 한국 문화와 예술이 제대로 평가받기가 환경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 문화와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학계의 관심, 우리 문화재를 알리기 위한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과 투자가 더해진다면 예술적 역량이 뛰어난 우리 문화재도 좀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시대별 도자기 종류도 다를 것 같다.

기본적으로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이다. 굽는 온도, 원료의 강도 등에서 자기가 훨씬 우수한 그릇이다. 선사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전부 도기의 시대다. 이후 고려시대부터 청자가 생산되면서 자기 시대가 도래했다.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왕실과 사대부 계층에서 사용되었다. 이보다 질이 떨어지는 흑유, 옹기, 철유 도기 등은 중인, 서민 등이 애용했다. 김장 단지 같은 그릇은 전부 옹기이다. 20세기 이후엔 훨씬 강도가 센 공업용 파인 세라믹이 생산되어 우주 비행선과 자동차 엔진의 일부에 사용되고 있다.

문화재란 정확히 무엇인가.

대개 문화재는 국가와 지방, 무형과 유형으로 나뉜다. 유형문화재는 역사적·기념비적·예술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즉, 제작된 시기가 적어도 50년 이상이어야 하고, 당시를 재현할 수 있는 편년이 가능하고, 상태와 특징이 우수하면 현행법상 문화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50년의 시기가 적절한가이다. 또 예술적 가치 부분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합의를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석굴암 불상을 국보로 지정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러나 1960년대 제작한 어느 작가의 그림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내년부터는 작품과 작가의 제작 배경까지 포함하는 문화유산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그럴수록 전문가 양성과 더욱 투명한 토의가 필요할 것 같다.

최근 강연차 런던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런던 한국문화원에서 ‘조선 백자의 멋’이란 주제로 영어 강연을 했다. 한국문화원에서 기획한 명사 초청 특강의 두 번째 순서였다. 영국 청중에게 조선 백자의 독특한 미감과 시대적 변천, 중국·일본 백자와의 차이점 등을 설명했는데 질의 응답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반응이 꽤좋았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 청중이 지적했듯이 영어로 쓰인 한국 미술, 한국 도자사 관련 전문 서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향후 국가 차원의 지원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미술사 교수가 된 이후 미술품을 감정할 기회가 많았고, 그러면서 세계적인 골동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고미술품 경매시장과 각 나라의 문화재 유통·제도가 우리와 많이 다르고 우리의 관련 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가 노정된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가 해외로 수출될 때 그에 대한 제약이 상당히 심하고, 심사 기준도 굉장히 모호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학회 회장 시절 문화재 국외반출제도 개선에 관련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최근에도 개선 방안 용역 과제를 수행 중이다. 얼마 전 이탈리아와 영국의 제도를 조사하고 전문가들과 인터뷰하기 위해 현지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토의와 합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개선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욱 합리적인 감정기관의 설립과 감정 전문가 양성에 힘쓰고, 현실적인 반출 불가 시기와 가격 등을 조정하면 문제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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