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찾기 힘든 이른 시기에 실리콘밸리에서 커리어를 쌓은 한기용 CTO는 “어떤 일이라도 일단 시작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호에 실린 1부에서 이어집니다.실리콘밸리,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창업의 메카에서 한국인 엔지니어 한기용의 여정은 특별하다. 23년 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글로벌 IT 회사의 디렉터로 성장하고, 창업과 실패, 성공을 경험했다.
이상인: 야후(Yahoo) 이후에는 어디를 갔나?
한기용: Haileo라는 스타트업에 조인해 CTO 역할을 했다. UCLA 교수 한 분과,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일했던 와이즈넛(Wisenut)이라는 회사의 CEO가 공동 창업자였다. 그런데 여러 커뮤니케이션이나 비즈니스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좀 있어, 회사가 시리즈A 펀딩에 실패해 9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이 기회에 좀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17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이참에 1년 정도 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 맘 놓고 놀아본 적이 없어서 처음 몇 달은 불안해하면서 지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 쉬면서 계속 여가를 즐겼나, 아니면 그동안에도 다른 일을 했나?
한: 쉰 지 석 달쯤 되니까 예전 야후 동료들이 “놀고 있다고 얘기 들었는데 우리 회사 와서 좀 도와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때 깨달은 것이 바로 평판이다. 평판이 정말 중요하구나 절실히 느꼈다. 맡은 일에선 결과를 내고, 팀플레이를 잘한다는 평판이 있었기에 이런 연락들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평판이 좋은 사람에게는 안식년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컨설팅을 3개나 동시에 진행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심신이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한: 사실 몸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심적으로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망해가는 회사에 계속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잃기 쉽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해도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잘하는 사람부터 회사를 탈출하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야후에 있던 마지막 3년은 나 스스로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갔던 시기였다. 자신감을 잃으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기회가 찾아와도 잡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과연 거기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드는 거다. 당시에는 그렇게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야후에서 타이틀도 디렉터이고 회사에서 받는 게 많으니까, 다른 곳을 가더라도 더 높은 직책에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며 스스로 기준을 높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안식년을 지내며 회고해보니, 내가 까다로웠던 게 아니라 자신감이 떨어진 게 현실이란 걸 깨달았다. 결국 자신에게 맞지 않은 환경에서 오래 버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기회비용만 날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름 돋을 정도로 공감된다. 안식년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유데미(Udemy) 근무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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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야후에서 합이 잘 맞았던 이스라엘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새롭게 조인하는 폴리보어(Polyvore)라는 스타트업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창업자 한 분과 얘기해보니 회사도 괜찮았고 지표상으로도 이미 수익을 내고 있었다. 내게 합류를 제안한 이스라엘 친구가 CTO 역할을 맡았던 터라 괜찮겠다 판단했다. 폴리보어에 입사해선 검색엔진과 추천 엔진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나중에 2억 달러에 야후에 팔렸다. 이 회사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초기 멤버들의 관계가 서로 너무 끈끈해 그들의 이너서클을 깨고 들어갈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누가 새로 들어오면 약간 적대시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다. 나도 돌이켜보면 와이즈넛에 다닐 때 딱 그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적대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폴리비어는 초기 멤버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그나마 그 가격에 팔릴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좀 더 오픈마인드를 가졌었다면 아마 뒤에 0이 하나 더 붙었을 거다. 결국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창업자 그룹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을 계속 뽑아야 한다.
이: 역사를 보면 나중에 개국공신들을 다 물갈이하는 것 같다.
한: 비슷할 수 있다. 회사가 성장하다 보면 결국 그 스테이지에 맞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게 바로 성장통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초기 멤버들이 자기들이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여기서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보다 더 경험 있는 사람을 뽑지 못한다.
이: 회사가 팔린 후 야후로 다시 돌아갔나?
한: 개인적으로 폴리보어 팀과 야후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야후에 팔리기 1년 전부터, 교육 플랫폼 유데미(Udemy)의 CTO로 갔던 지인에게서 컨설팅 의뢰가 계속 들어왔다. 유데미는 터키 사람이 창업한 회사라 초기 직원들이 다 터키 사람이었다. 엔지니어도 상당수가 터키에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20~24살 대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일주일에 2시간 정도 리모트 콘퍼런스콜로 Q&A를 하다 보니까 ‘이 회사 괜찮은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0개월 정도 컨설팅하고 내가 먼저 회사에 조인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라면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당시가 교육 플랫폼 활황이 시작되던 타이밍이 아니었나.
한: 그렇다. 여러 성공적인 교육 플랫폼이 나오며 파도가 한창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내가 조인했을 때는 유데미의 회사 규모가 20명 정도였는데, 4년 후 그만둘 때는 500명 정도까지 늘었고 2년 전에는 나스닥에 상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때 일한 4년이 제일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이 회사가 잘된 이유는 딱 하나다. 초기 멤버들보다 더 경험 있고 똑똑한 사람들을 계속 뽑아서 온보딩(onboarding)을 제대로 해줬기 때문이다.
이: 유데미에서 자리도 잘 잡고 재미있게 일했는데, 다른 회사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학교를 찾아 강연에 나선 한기용 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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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가 점점 커지니 옛날 대기업 다닐 때가 생각났다. 오피스가 집에서 멀어 하루 4시간을 출퇴근에 쓰다 보니 힘들었다. 회사가 그 정도까지 커졌으니 나름 물러날 때를 잘 파악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회사가 망하진 않을 거고 상장까지 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내 후임을 찾아주고 떠났다.
이: 그러면 유데미 이후에 두 번째 안식년을 맞은 건가?
한: 그렇다. 첫 안식년 때는 불안했지만 재밌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 안식년을 시작할 때는 굉장히 큰 기대감에 설렜다. 불안함은 전혀 없었다. 2년 정도 풀타임 없이 굉장히 많은 회사를 컨설팅했다. 사실 당시 컨설팅의 목표는 ‘다음에 어떤 회사를 갈까’ 알아보는 측면이 컸다. 레벨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그저 인터뷰 한 번 하고 입사하는 건 도박과 다름없다. 결국에 둘 중 하나다. 경영진에 친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내 스폰서가 되어주거나, 일해보니 내가
이: 회사와 정말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다. 두 번째 안식년의 목표는 다음 5년에서 10년 정도 일할 회사를 찾아보자는 거였다. 쉽지는 않았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7~8개 회사를 컨설팅했다. 그중엔 현대카드, SKT, SK아카데미 같은 한국 대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회사를 바로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20년 가을,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 후 뭔가 찾아야겠다는 생각과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날아가버렸고,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던 하모나이즈(Harmonize)라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2년 정도 있었다. 그 이후 대학 동기 2명이 하는 그랩(Grepp)에 조인했다.
이: 커리어를 통틀어 정말 다양한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스타트업을 경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 혹은 나이대는 언제일까?
한: 일단 나이를 명확하게 얘기하면 쉽지 않은데, 40대 초중반쯤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어느 정도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공방정식 혹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은 아무래도 어릴수록 덜할 거다. 그런 관점에서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스타트업을 하는 게 좋다. 그런데 또 너무 어리면 경험이 없어 어려울 수 있다. 적당한 밸런스를 고려한다면 40대 초중반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이: 개인적으로도 앞서 말한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느낌’이 부족해 힘들 때가 많다. 나뿐 아니라 많은 직장인의 고민이다. 이들을 위한 조언 부탁한다.
한: 개인적으로 생각을 별로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선 많이 강조한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어떤 결과도 안 생긴다. 또 시작할 때 생각해볼 게 하나 있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시작 자체를 하지 않으면 내게 어떤 가능성이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체를 모르게 된다. 무엇보다 나이들어 후회한다.
※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Google 본사에서 YouTube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하고 있다. Microsoft 본사, 클라우드 인공지능 그룹의 플루언트 디자인 스튜디오를 총괄했고, 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 멤버로 근무했다. 디지털 에이전시인 R/GA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외 세 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