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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4) 백주영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 

공감과 위로를 담은 선율 

정소나 기자
자유롭지만 고독하고, 투명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사운드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바이올린 여제, 백주영 교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차분히 정제된 언어와 따뜻한 선율로 공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바이올린의 여제”라고 불리는 백주영 교수는 연주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바이올린은 피아노와 함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악기이다. 하지만 현악기의 특성상 줄을 손으로 누르고, 떨고, 활을 비벼서 소리를 내야 하다 보니 연주 방식에 숙련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반복 연습이 필수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이달에 만난 주인공은 20대 나이에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어 화제가 되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교수다.

현존하는 최고의 작곡가이자 마에스트로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안네 소피 무터의 뒤를 이을 바이올린 여제”라고 극찬한 그녀는 2007년 세계 최초로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12곡 전곡을 하루에 완주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음악원 재학 시절이던 1995년부터 시벨리우스, 파가니니, 롱티보 등 유명 국제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고, 1997년 제2회 서울 국제 콩쿠르(구 동아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세계적 권위의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특별상 4개와 함께 동메달을 거머쥐었고, 그 후 2001년에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입상하는 등 메이저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 밖에도 런던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뉴욕의 카네기홀·링컨센터, 워싱턴의 케네디센터, 도쿄 산토리홀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협연과 독주회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국내에서도 수많은 협연과 독주회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 유중아트센터에서 정승우 이사장이 백주영 교수를 만났다. 산뜻한 단발머리에 바이올린을 들고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백 교수가 연주를 시작하자, 차가웠던 공간이 어느새 화창한 봄처럼 마음을 녹이는 선율로 따스하게 채워졌다.

클래식계에서 잘 알려진 음악 가족이다.

어머니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셨다. 여동생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재학 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음대와 예일대 대학원, 뉴욕주립대 박사과정을 마친 첼리스트 백나영이다. 또 사촌 언니와 조카 세 명도 모두 첼로를 전공한 첼리스트다.

교수님올 소개할 때 항상 ‘천재’나 ‘여제’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는데.

들을 때마다 내게 과분한 수식어인 것 같다. 하늘에서 좋은 재능을 주셨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제’라는 수식어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바이올린이 다른 현악기와 차별화되는 매력이 뭔가.

현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과 화려한 음색을 가진 솔리스트적인 악기다. 성악가로 치면 소프라노나 디바라고 할까? 다른 현악기에 비해 기량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현란한 테크닉도 독보적으로 많다.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돋보일 수 있는 악기이기도 하다. 또 연주자의 기교가 더해지면 관능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다채로운 매력의 악기이다.

언제 바이올린을 시작했나. 또 조기교육에 대한 의견도 궁금하다.

4살 때 피아노를 먼저 배웠다. 약간 싫증을 느끼던 차에 바이올린을 하는 사촌 언니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악기의 경우 조기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악기 연주도 근육과 신경을 비롯한 신체를 사용하는 피지컬한 영역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연습해 악기 연주에 필요한 근육을 잘 단련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정승우 이사장이 백주영 교수를 만나 바이올린의 매력과 그녀의 음악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이 정말 명언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99%의 노력이 있어야 재능이 발휘되는 것 같다. 특히 현악기, 그중에서도 바이올린은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악기이기에 어릴 때 시작해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협연과 독주회 무대를 가졌다.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곡 12곡 전곡을 하루에 완주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바이올린 연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자 행복한 일이다. 연주할 때 도리어 더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이 생긴다. 작은 무대이든 큰 무대이든 연주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클래식 음악의 특성상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음악적 발견을 하고 끝없이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바이올린은 독주부터 소규모 합주인 실내악,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구성되는 관현악까지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는 데, 어떤 형태를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독주나 독주 협연이 가장 적성에 맞고 익숙하다. 음악가로서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솔리스트의 생활이 외롭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완벽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실내악도 내가 아주 사랑하는 분야이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연주가들과 친밀하게 호흡하며 실내 연주를 할 때 음악가로서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행복하다.

관현악은 가장 자신 없는 분야인데 독주나 실내악에 비하면 연주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독주와 실내악에서는 비교적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관현악곡은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 소속이었던 적이 없어 연주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관현악곡 감상은 너무 좋아한다.

만약 연주 중 줄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

독주라면 관객들께 양해를 구하고 무대 뒤로 잠깐 퇴장해서 줄을 갈아 끼우고 다시 나가서 연주를 마친다. 오케스트라 독주 협연을 하다 줄이 끊어지면 보통 오케스트라 악장의 바이올린을 빌려서 나머지 연주를 한다.

오래된 악기일수록 더 비싸고 소리가 좋다고들 한다. 일반상식으로는 새로 만든 악기가 더 좋을 것 같은데.

현악기는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악기가 가장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당시 악기 장인들만의 비법과 기술, 악기 제작에 쓰였던 나무 재질이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길들여지며 소리가 깊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옛날 악기가 훨씬 더 고가에 거래된다. 무엇보다 고악기 소리를 모던 악기로 재현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활도 마찬가지다.

현악기는 악기 소리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나무 여러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악기인 만큼 날씨가 습하면 습한 대로, 건조하면 건조한 대로 영향을 받는다. 또 줄도 온도에 따라서 음정이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다. 직사광선이나 뜨거운 조명에 노출되어도 좋지 않아 악기 보관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페이지터너가 악보를 넘겨주는데, 현악기 연주자는 스스로 악보를 넘기면서 연주한다. 연주에 지장이 없나.

아무래도 현악기는 단선율인 만큼, 피아노보다는 악보를 덜 넘기는 편이어서 큰 지장은 없다. 다만 악보를 넘길 틈이 없을 때도 가끔 있다. 그럴 때는 전자 태블릿 악보와 페달을 사용하면 한결 편리하다.

관객들이 악장 간 박수를 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이 나의 연주에 공감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콩쿠르 심사 시 시간 관계상 초반에 끊고 바로 카덴차로 넘어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한 부분만 들어도 연주자의 기량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늘 전곡을 다 들어보고 싶지만, 행정적인 제한이나 주최 측의 사정 등으로 시간 제한을 두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하지만 일부만 들어봐도 물론 평가는 가능하다. 심사위원들이 우스갯소리로 연주는 무대에 걸어 나오는 순간 시작된다고 할 만큼 연주자들이 걸어 나오는 것만 봐도 대충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악기를 튜닝하는 모습만으로도 악기를 얼마나 잘 아는지 알아 챌 수 있고, 몇 분만 연주를 들으면 음정의 정확성이나 악기를 다루는 능숙함이 금세 드러난다. 물론 지나치게 긴장해서 처음 부분에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 조절 능력도 실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소위 ‘악기발’로 실력을 포장할 수 있을까.

실력이 비슷한 경우라면 좋은 악기의 소리가 더 좋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력이 없는 경우라면 스트라디 바리우스 같은 최고의 악기를 갖다 줘도 잘못된 방식으로 연주해 오히려 악기 소리가 나빠지기도 한다.

차가우면서 날카로운 연주로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를 받은,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야샤 하이페츠의 일화가 생각난다. 연주가 끝나고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았다’는 관객들의 칭찬에 본인의 바이올린을 귀에 대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며 ‘내가 연주해서 좋은 소리가 난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인 만큼 연주자의 실력만이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젊은 연주자가 있나.

얼굴도 예쁘지만 바이올린 실력은 더 뛰어난, 유럽에서 활동 중인 김봄소리와 바이올린 신동으로 시작해 비올라까지,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이유라를 꼽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악장을 맡아 연주하게 되는 서울 챔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를 비롯해 수많은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오는 4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계획하고 있다. 여느 해처럼 연주와 강의로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낼 것 같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03호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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