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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리 포티파이 대표 

현대인 정신건강의 한 줄기 빛 

노유선 기자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는 ‘재난 후 심리 안정화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사고 발생 5일 만의 일이었다. 타인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는 그의 헌신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받은 화려한 수상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출신인 문 대표는 자신의 전문성에 IT(정보기술)를 접목해 디지털 정신건강 관리 솔루션 앱을 개발했다.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는 “개개인의 평소 생각과 습관을 긍정적으로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사명에 담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 시상식 연단에 올랐다. 까르띠에는 2006년부터 매년 전 세계에서 여성 창업가 33명을 선정해 ‘까르띠에 여성 창업이니셔티브’라는 상을 수여한다. 다양성, 공정성·포용성, 기술혁신성 등 11개 부문에서 3명씩 선정하는데, 한국의 문우리(39) 포티파이 대표가 당당히 1등 수상자로 연단에 오른 것이다.

2020년 설립된 포티파이는 디지털 멘털헬스케어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서울대 의학과 졸업 후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와 MBA 과정을 마친 문 대표의 첫 창업 도전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포티파이의 대표작인 멘털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앱) ‘마인들링’은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 소프트웨어·모바일앱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마인들링은 사용자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헬스케어가 각광받는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이 두 번이나 글로벌 무대에 오른 건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문 대표는 “평소 많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이 깊었다”며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결과가 창업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문 대표는 지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 5일 만에 ‘대국민 재난 후 심리 안정화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문 대표가 MBA 과정을 마친 뒤 곧바로 창업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3년간 맥킨지앤드컴퍼니(이하 맥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7년 동안 서울대학교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전문의로 일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대학병원 의사로서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의욕만큼 많은 환자를 도울 수가 없었다”며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정치적 역량이 필요한 터라 창업을 택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3명과 임상심리 전문가 3명, 기술개발자 등이 의기투합해 마침내 2020년 7월 포티파이가 문을 열었다. 포티파이(40FY)의 함의에 대해 문 대표는 “인간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약 40%는 당사자의 평소 생각과 습관”이라며 “개개인의 40%를 긍정적으로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사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9일 문 대표를 만나 현대인의 정신건강 현주소와 5년 차 스타트업 대표의 분투기를 들었다.

정신과 환자는 날로 늘지만 의사는 턱없이 부족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015년 289만 명에서 2022년 459만 명으로 60%가량 늘었다. 이 중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자살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자살 인구는 1만3352명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문제는 환자 증가 속도에 비해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0.08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0.18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국내에서 디지털 멘털헬스케어 산업이 각광받는 배경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면 부족한 의사 수를 보완하고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문 대표는 “가뜩이나 정신질환은 다른 질병에 비해 치료가 어렵다”며 “가령 고혈압에 걸렸을 경우, 혈압 수준과 인종, 몸무게, 체형 등을 종합·분석하면 어떤 약이 이 환자에게 적합한지 알 수 있지만 정신질환은 정형화된 통계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울증 환자 100명을 살펴보면 100명 모두 제각각이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다양하다”며 “이러한 다양성에 어떻게 시의적절하게 대처하는지가 정신과 치료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개인 맞춤형 치료가 특히 중요한 분야가 정신과예요. 환자의 증상과 심리학적 특성, 환자가 처한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합니다. 국내에 존재하는 유관 서비스는 증상을 완화하거나 심리적 특성만 전문으로 다룰 뿐,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은 미비해요. 환자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명상을 권하거나 이완 요법을 알려주는 건 사실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가져오기 힘들어요.”

포티파이의 첫 번째 앱 마인들링은 개인화에 방점을 뒀다. 의사가 현장에서 활용하는 치료 기법인 심리도식치료, 인지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등이 적용된 구독형 서비스다. 사용자는 앱을 이용해 심리 상태를 진단받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심리케어 콘텐트를 제공받는다. 포티파이는 질환의 유형별·상황별로 1000여 개 모듈(솔루션)을 만들었으며, 이 모듈을 조합해 개개인에게 적합한 심리케어 콘텐트를 제공한다. 심리케어 콘텐트는 사용자 혼자서 밟는 코스 프로그램으로, 완벽주의나 불안장애, 사회적 소외, 감정조절장애, 미루는 습관, 회복탄력성 증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심리 전문가의 코칭 서비스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앱으로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서비스는 동종업계에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마인들링이 CES 혁신상을 수상한 이유는 사용자가 자기 주관에 따라 심리 상태를 체크하는 정보와 함께 스마트폰 카메라로 수집되는 바이오 시그널을 활용해 사용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심리케어 솔루션도 효과적이란 평이다. 문 대표는 “지난해 서울대병원 임상시험 결과 마인들링 이용 10주 차에 접어들면 우울감이 36%가량 낮아지고 스트레스도 3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항우울제 복용 시 6주 차에 나타나는 호전 효과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주 사용층은 2030세대 여성이다. 이들이 정신질환에 취약하냐는 질문에 문 대표는 “정신질환은 우울, 불안, 조현병, ADHD, 중독 등 다양한데 포티파이가 우울, 정서장애, 불안에 특화돼 있어 2030 여성이 많이 찾는 것 같다”며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누적 유료 사용자는 2만2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30세대가 자신의 멘털헬스케어에 적극적인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B2C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문 대표는 지난해 2월 직장인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둔 웨이마크(waymark)를 새롭게 선보였다. 문 대표는 “마인들링이 질병(illness)에 한정됐다면 웨이마크는 심리적 강점 강화(performance)에 집중한다”며 “예상과 달리 취업준비생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웨이마크 진단 기법을 활용하면 직장인은 자신의 직무 건강 상태(몰입, 만족, 효능감, 번아웃)를 알 수 있고 자신의 강점과 직무 유사도를 파악할 수 있다. 취업준비생은 자신의 핵심 강점과 잠재력을 파악해 자기 이해도를 높이고 어떤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예측해볼 수 있다.

모두가 내 마음의 전문가가 되는 그 날까지

어렵다는 의대 입시를 뚫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마친 문 대표에게 스타트업 창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문 대표는 “뭐든 확실하고 숫자에 따라 논리적으로 입증하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기업 경영에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런데 스타트업 운영은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는 것과 또 다른 영역이었다”고 털어놨다.

“맥킨지에서 3년간 일했던 경험도 있기에 창업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마 의사만 했었더라면 환자를 아픈 사람으로만 대하지 고객으로 바라볼 줄 몰랐을 거예요. 맥킨지에서 고객의 니즈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이를 파악·분석하는 방법도 익혔고요. 그런데 막상 창업을 해보니 또 다른 역량이 필요한 거예요. 바로 ‘리더십’입니다. 예전에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게 리더십인 줄 알았어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더군요.”

리더십을 새롭게 정의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문 대표는 “팀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에 대한 믿음을 주고, 비전을 향해 팀원을 힘겹게 이끌어가는 통솔력”이라고 답했다. 이어 “경영 컨설턴트에서 의사로, 창업가로 역할이 바뀌면서 스스로 많이 깨지고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서도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즐거운 면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느끼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매력적이란 설명이다.

포티파이는 B2B 시장에도 진출했다. 2022년 11월 모티브(Mental Oriented Team and Individual Examination: MOTIVE)로 직장 내 건강한 조직문화 관리에 힘쓰고 있다. 모티브는 현재 업피플(UpPeople)로 업그레이드돼 국내 굵직한 기업에서 활용된 바 있다. 삼성전자와 루이비통, 현대백화점, 맥킨지 등에서 포티파이 솔루션을 이용했다. 업피플은 직원 성향에 맞는 직무 배치를 제안하고 조직 리더를 대상으로 구성원 동기부여를 위한 역량 강화 코칭을 맡고 있다. 심리 검사와 코칭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단체 워크숍 등에서도 업피플이 활용될 예정이다.

문 대표는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의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며 포티파이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며 “자기 자신도 잘 모르면서 타인에게 수용받기를 원하니 불행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타인과의 교류에 앞서 나다움을 찾아야 하고 이를 건강하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다움을 지켜내려면 타인과의 차이도 인정해야 해요. 모두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지지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라는 말이 있죠? 다름을 수용할 때 연속된 불행도 멈추리라 봅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드는데 전문적으로, 실질적으로 일조하는 포티파이로 거듭나겠습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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