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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의 테넷 | 마블(Marvel)은 다나카에게 배워야 한다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로컬 식당은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특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소속감과 유대감의 원천이다.

▎엉성한 전개와 디테일로 마블 작품 중 최악으로 평가받은 [더 마블스]의 한 장면.
‘양자역학’은 이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상식적인 용어가 됐다. 물질과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인 양자의 행동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다.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 세계의 현상을 다루며, 고전 물리학에선 설명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 얽힘’ 같은 현상으로 설명한다.

다시 곱씹어봐도 어렵기만 한 이 학문적 용어는 마블(Marvel) 영화 [어벤져스(Avengers)] 시리즈를 통해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많은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10년간 빌드업해 타노스와의 극적 대결을 승리로 이끈 [어벤져스 4]는 히어로물 마니아뿐만 아니라, 평소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줄 정도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어벤져스 4]가 끝나고 난 이후 마블의 인기는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새로운 빌런 ‘캉(Kang)’이 등장했고, 훌륭한 캐릭터를 주연배우가 멋진 연기로 소화했지만 그것만으로 마블 시리즈의 새로운 페이스를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급격하게 늘어난 세계관이 너무 복잡하고, 개별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의 완성도를 마블이 컨트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양자 영역에 들어가거나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캐릭터 등이 새로운 세상을 열긴 했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하며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게 극을 전개하지 못했다. 그저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다 준비했어!’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열어버렸다. 이런 접근은 마블 팬과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제한 뷔페가 아닌 로컬 식당

요즘 오픈월드형 게임과 콘텐트가 아무리 인기라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와 흐름이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메인 캐릭터들이 구축되고, 심지어는 게임 안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은 NPC(Non-player character)들도 나름 존재 이유와 디테일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그런데 [어벤져스 4]까지 이룩해낸 하나의 대서사시가 끝남과 동시에, 밑도 끝도 없는 메타버스로 사람들을 밀어 넣은 것은 마치 고급 코스 요리를 배불리 먹고 나온 사람들을 강제로 싸구려 무제한 뷔페로 끌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대중은 여태 마블이 보여준 수준 높은 작품들과 전개 덕분에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다. 더군다나 영웅들의 대서사적 이야기에 질린 상태다. 이런 와중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크게 공감 가지 않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으니 전과 같은 호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전 시리즈를 이끌어오던 메인 캐릭터들의 인기만으로 극을 이끌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대형 식당이나 프랜차이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독특한 맛과 스토리를 지닌 로컬 식당을 선호하기도 한다. 특별히 유명 노포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로컬 식당은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특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소속감과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감정은 식당뿐 아니라 브랜드, 프로덕트, 콘텐트에도 모두 중요한 요소다. [스타워즈(Starwars)]는 마블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 가는 대서사다. 오죽하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의 건국신화로까지 미화되어 불리겠는가? 하지만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도 마블과 비슷하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개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시리즈가 소개됐다. 바로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이다. 이 시리즈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현상금 사냥꾼 만달로리안과 아기 요다 그루구의 모험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스타워즈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지만, 거대한 전투나 거창한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등장인물들의 스토리에 집중한다. 또 만달로리안이 뛰어난 전사로 그려지긴 하나, 적당한 수준일 뿐 세계관의 최강자급도 아니다. 만달로리안과 그루구에게는 하루하루가 그저 고난의 연속이다. 이런 여정 속에서 그 둘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친구도 만든다.

이런 접근은 기존 스타워즈의 대서사시에서 벗어나 스타워즈 세계관 자체를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또 스타워즈와 만달로리안 시리즈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사용자의 주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메가 플랫폼이 되어버린 페이스북은 크게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포스팅, 불필요한 소비를 강요하는 광고가 너무 많아 피로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거주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마켓플레이스, 사람들의 취미나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기능은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유용하다. 바로 로컬 식당의 역할이다. 이런 공간은 사람들에게 대로변에서 나와 숨을 고를 만한 골목을 마련해준다. 원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취하며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함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미시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메타버스적 접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디테일 없이 메타버스를 외치는 것은 악수(惡手)가 될 확률이 높다. 최근 마블 작품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더 마블스(The Marvels)]나 [쉬헐크(SheHulk)]는 모두 엉성한 극 전개와 부족한 디테일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계관 하나의 총량을 1이라고 하면, 그 총량은 여러 인물이나 세계관 수에 정비례해서 늘거나 세계관 사이의 시너지에 따라 몇 배 혹은 몇백 배 이상 확대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정말 챙겨야 할 디테일이 많은데, ‘나몰라패밀리’ 출신의 개그맨 김경욱은 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디테일에 신경 쓰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호스트 ‘다나카’, 50대 중반의 끼 많은 아저씨 ‘김홍남’, 패션디자이너 ‘김건욱’ 등 누가 저 캐릭터가 김경욱씨인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설정과 연기 디테일이 엄청나다. 패션부터 말투, 짧은 순간 나오는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등은 그가 캐릭터를 연기할 때 혼연일체가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조차 처음 나왔을 때는 대중이 바로 알아주거나 많은 팬을 쉽게 모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번 해보고 쉽게 관두는 게 아니라, 몇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캐릭터 완성도를 높이고 세계관을 확장했다. 그의 오랜 노력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이는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경욱은 다나카라는 캐릭터로 얻은 폭발적 관심 이후에도 기존의 노선을 바꾸지 않고 초심을 유지한 채 지금도 계속 그 캐릭터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가 만든 세계관에 한번 입덕하면 사람들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번 해봤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더라’ 같은 변명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마블이 초심을 되찾으려면 김경욱이라는 개그맨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이상인 - 이상인 디자이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미국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했다. 베스트셀러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리즈의 저자이다.

202405호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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