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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비전까지 바꾼 월마트 사례그렇다면 현시점에서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비시장 전략 경영(Nonmarket Strategy Management)’에서 찾는다. 또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전략적 실무 기능을 지칭하는 ‘공공업무(Corporate Public Affairs, 이하 PA)’에서도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전통적인 경영 이론과 실무는 시장과 산업을 중심에 두고 기업 문제를 사고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시장 외부에 있는 다른 영역, 예를 들면 사회, 정치, 국가, 문화 등 비시장 외부 환경은 기존 시장의 범위와 제도적 조건 등을 결정하면서 기업과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런 요인에 따라 시장의 지형 자체가 규정되기도 한다.비시장 외부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국회나 시민단체, 미디어들은 기업의 지배구조(거버넌스), 노사관계, 갑질 논란, 소비자 보호, 환경 재해 등에 대한 감시와 견제, 사회적 비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시장을 넘어서 비시장 외부 환경에 관여하는 비시장 전략 경영 활동을 활성화해야만 한다. 기업에는 또 다른 부담이자 도전이지만 불가피한 현실이다.2000년대 들어 많은 기업이 PA 담당자를 두거나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있다. 이는 비시장 전략 경영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라는 점을 방증한다. 중요한 건 비시장 전략 경영을 추구하면서 기업 외부의 시선과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외부 환경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기업의 경쟁우위와 가치 창조에 활용할 수 있다.월마트 사례는 기업이 주도적으로 비시장 외부 환경의 변화를 수용한 경영의 좋은 모델이다.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의 성공 비결은 ‘언제나 낮은 가격, 언제나(Always Low prices, Always)’라는 슬로건이었다. 오직 소비자의 입장만 고려한 미션,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영방식을 함축한 표현이었다. 이런 방식은 기본적으로 낮은 임금, 경영 효율화를 통한 각 부문(구매, 관리, 배송 등)의 비용 절감, 대량 거래를 통한 원가절감(가격인하) 등을 경영에서 주요한 구성 요소로 삼는다. 그런데 월마트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자 기존 경영방식에 배치되는 각종 쟁점이 제기됐다. 이를테면 저임금과 낮은 의료보험 적용 등 뒤떨어진 복지제도, 불법이민자 고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조합 설립 등 내부 문제가 대두했다.게다가 외부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에 매장을 새로 여는 걸 반대했고 골목상권 보호, 쓰레기를 포함한 환경문제 등이 새롭게 제기됐다. 급기야 2008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그곳에서 쇼핑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을 정도다.
다양한 세력과의 연대가 필수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월마트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대신 여러 쟁점을 해소하는 비시장 전략 경영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경영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여러 이해관계자(정치인, 사회운동단체, 언론 등)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했고, 이들과 함께 제도적 관점의 변화를 이끌었다. 아울러 기존 슬로건을 ‘절약하여, 더 나은 삶(Save Money, Live Better)’으로 바꾸었다. 기업의 핵심 미션까지 전환한 것이다.월마트의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점포 운영, 폐기물 제로, 지속가능한 상품 판매 등 환경 이노베이션 목표를 세우고, 전 세계 10만 개에 이르는 거래처를 대상으로 포괄적인 지속가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월마트 사례는 비시장 전략 경영이 기업에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잘 보여준다.우리 기업도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총선으로 형성된 정치적·사회적 역학관계를 외부 환경으로 수용하고 이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크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새로운 정치 환경에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리라 생각된다.첫째, 여소야대 정국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정부와 주요 정치적·사회적 세력 사이에 경쟁과 대치 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특정한 상황이 이러한 대치 국면에 휘말리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기업 관련 상황이 합리적으로 논의되거나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비시장 환경에 대한 사전적 모니터링을 실시해 경영 리스크를 규명해야 한다. 이에 더해 리스크를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선제적 비시장 전략 경영활동을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둘째, 정치적 대치 국면은 사회에 잠재된 각종 이슈를 중심으로 양 진영의 결집을 이끌어내면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다. 대선 시기에 친일이나 친중 논란이 기업에 불똥을 튀었듯이 총선 후 여러 정쟁 상황에서는 여야의 진영 논리에 휘둘리기 쉽다. 이러한 대치 상황에서는 진영 간 비쟁점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도록 프레임을 조정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비시장 전략 경영활동에 나서야 한다.셋째, 기업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때, 가능한 범위 안에서 다양한 세력이 공감할 수 있는 입장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즉, 기업 입장이 특정 진영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익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조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스피커들(전문가 그룹, NGO 등)과 반드시 연대해야 한다. 이들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슈를 주도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입장이 진영 논리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이보형 - 리스크 진단과 대응 전략 개발, 이슈 및 위기관리 컨설팅, 퍼블릭 어페어즈 분야 전문가이자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지난 22년 동안 공공과 민간 영역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문성을 쌓아왔다. 2002년 국내 최초로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론칭해 수백 건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마콜과 옥스퍼드대학이 공동으로 개발한 비시장 전략 경영 컨설팅에 기반한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