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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의 새로운 흐름] K-뷰티 되살리는 강소 기업들 

 

노유선 기자
한국 화장품산업을 이끌어온 쌍두마차였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K-뷰티산업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고품질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선보인 중소·중견기업 덕분이다. K-뷰티의 화장품 수출 실적은 어느덧 전 세계 4위에 이르렀다. K-뷰티 생태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주도권을 거머쥔 중소 뷰티업체의 활약을 살펴본다.

▎국내 H&B (헬스앤드뷰티) 매장에서 한국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는 외국인들. / 사진:CJ올리브영
코로나19 팬데믹(이하 코로나)을 기점으로 대기업 위주였던 K-뷰티 지형도가 재편되고 있다. 화장품을 온라인 시장에서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중국의 자국 화장품 선호 추세가 강해진 것이 주된 배경이다.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K-뷰티산업의 특성상, 이 같은 대외 여건 변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희비를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중국 시장에 의존하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실적이 대폭 악화된 반면,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수출국을 다변화한 중소 뷰티 업체는 호실적에 웃고 있다. K-뷰티산업의 주도권이 이동하는 모양새다.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부동의 매출액 1·2위를 차지해온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뷰티 부문은 지난해 10%대 매출 감소율을 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3조6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1% 줄었고 LG생활건강 뷰티 부문 매출(2조8157억원)은 같은 기간에 12.3% 감소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수출 비중은 2013년 89.2%로 정점을 찍은 뒤 등락을 반복하다 2022년 35.7%로 떨어졌다. 고가 화장품을 필두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았던 양사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과 소비 둔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 코로나 기간 자체 상품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중국 화장품업체가 늘어나면서 중국 내 자국 화장품의 질적 수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프랑스와 일본 화장품업체가 중저가·고품질 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한 것도 국내 두 대기업에는 큰 타격이었다. 한국무역협회 ‘K-뷰티 수출 현황 및 신규 유망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2018년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다. 1위를 공고히 유지하던 한국 화장품 브랜드는 2020년 프랑스(1위)와 일본(2위)에 자리를 내어준 뒤 좀처럼 제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K-뷰티산업 전반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약 6.4% 늘어 84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22년 국가별 화장품 수출 실적에서 한국이 프랑스, 미국, 독일에 이어 전 세계 4위를 차지한 것을 고려하면 2023년에도 큰 순위 변동은 없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2010년대 화장품 수출이 대기업 중심이었다면 오늘날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K-뷰티산업은 중소 브랜드사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2022년 중소 뷰티업체의 수출 비중은 64.3%, 수출국은 170여 개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기, 높은 제품력 앞세워 수출국 다변화


이처럼 K-뷰티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건 중소 뷰티업체의 약진 덕분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2023년 중소기업 수출 동향’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수출 1위 품목은 화장품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수출액(약 53억 달러)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20.2% 늘어난 수치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국의 소비 둔화와 애국 소비문화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화장품 수출국이 미국·일본·베트남 등으로 다변화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도 “한류 열풍에 힘입어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로 화장품 수출이 증가해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 양사와 달리 중소 뷰티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원인으로 국내시장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꼽는다. 국내 쟁쟁한 업체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때문에 타국에 비해 화장품 브랜드의 질적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를 전후로 국내 화장품업체 수는 큰 폭으로 늘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화장품업체는 크게 제조업체, 책임판매업체, 맞춤형판매업체 등으로 나뉘는데, 2019년 2911개에 불과했던 화장품 제조업체는 2022년 4548개로 급증했다. 책임판매업체도 같은 기간 1만5707개에서 2만8015개로 늘었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시장은 브랜드, 유통, 생산이 모두 분리된 형태인 데다 OEM(주문자위탁생산)·ODM(제조업자개발생산) 시장이 탄탄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경쟁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VT코스메틱 관계자도 “과거 브랜드와 유통이 결합된 원브랜드숍이 시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OEM·ODM 업체를 이용해 신규 브랜드를 내놓기가 쉬워지면서 시장 내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소비문화도 중소 뷰티업체의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오프라인 점포 진입 비용이 줄어들면서 고품질 제품을 중저가에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온라인 유통 채널과 SNS(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 마케팅에 집중한 중소 뷰티업체는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뷰티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업체 디밀의 이헌주 대표는 “유튜브나 SNS가 단순 광고 노출 채널이 아니라 잠재적 소비자의 니즈와 피드백을 파악하는 양방향 소통 창구로 활용되면서 중소업체가 소비자의 세분화된 니즈를 반영해 제품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며 “소비자와 친밀한 인플루언서가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어나면서 중소 업체의 판로가 더욱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장 상황 변화에 수혜를 본 화장품 제조업체로는 한국콜마, 코스맥스, 코스메카코리아, 씨앤씨인터내셔널 등이 있다. 특히 중소 업체인 씨앤씨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매출액 2203억원으로, 매출 성장률 68.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유통업체 실리콘투는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매출액(3429억원)을 달성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김성운 실리콘투 대표는 “미국과 유럽,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한국 화장품을 직접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인기가 국내시장에 녹아든 경우도 있다. 스킨케어 제품으로 일본 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토대로 국내시장에 진입한 VT코스메틱은 지난해 매출 성장률 35.8%를 달성했다. VT코스메틱의 국가별 매출 비중은 일본 77%, 한국 13%, 중국 8% 순이다. VT코스메틱은 일본에서 제품력을 인정받자 지난해 10월 국내 유통업체 다이소와 협업해 앰플형 기초화장품 ‘VT 리들샷’을 선보였다. VT 리들샷은 다이소 판매 2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되는 ‘품절 대란’을 일으켜 ‘리들샷 오픈런’ 현상까지 발생했다. 일본 시장에서 색조화장품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랜드 롬앤도 국내 업체의 제품이다. 2016년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아이패밀리에스씨는 색조 브랜드 롬앤 덕분에 지난해 화장품 부문 매출 1442억원을 거뒀다. 전년 대비 78.45% 급증한 수치다. 화장품 부문 매출액 중 34%는 국내에서, 35%는 일본에서 나왔다.

국내 중소 뷰티업체의 활황은 코로나 엔데믹으로 정점을 찍는 모양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덕분이다. 이들은 ‘외국인 특화매장’이 마련된 H&B(Health&Beauty) 스토어 올리브영에서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지난해 올리브영 운영사 CJ올리브영이 기록한 매출은 3조8612억원, 영업이익은 4607억원이다. CJ올리브영이 매출액으로 아모레퍼시픽(3조6740억원)과 LG생활건강 뷰티 부문(2조8157억원)을 제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명동 상권 매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40% 늘었다.

포브스코리아는 K-뷰티 제2의 전성기를 주도하는 중소 뷰티업체를 만나 국내외 소비자의 신뢰를 얻은 비결과 높은 수준의 고객충성도 유지를 위한 전략, K-뷰티산업에 대한 향후 전망 등을 물었다.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 회장과 김성운 실리콘투 대표, 정철 VT코스메틱 대표가 경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했다.

- 노유선 noh.yousun@joongang.co.kr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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