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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의 새로운 흐름]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 회장 

우리는 콘텐덕트를 판다 

노유선 기자
색조화장품 브랜드 ‘롬앤’을 필두로 글로벌 시장의 떠오르는 강자 아이패밀리에스씨는 지난해 매출 신장률 74.3%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괄목할 만한 실적을 이끈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 회장은 “제품이 아닌 콘텐덕트를 판매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 회장은 “가수일 때나 지금이나 ‘하모니’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 사진:아이패밀리에스씨
일명 ‘탕후루 립’이라 불리며 광택감 있는 입술을 연출하는 립틴트는 요즘 뷰티 덕후의 파우치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다. 여러 브랜드에서 비슷한 립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색조 브랜드 ‘롬앤(rom&)’이 시장을 선점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2021년 출시된 롬앤의 ‘듀이풀 워터틴트’는 브랜드 실적을 견인하는 효자상품 중 하나다. 롬앤을 운영하는 기업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서비스 생산기업 ‘아이패밀리에스씨(iFamilySC)’다. 2000년 2월 설립된 아이패밀리에스씨는 제2의 K-뷰티 전성기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에 아이패밀리에스씨의 주인공을 둘러싼 대중의 호기심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뷰티, 웨딩, 가구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을 영위하는 아이패밀리에스씨 그룹을 이끄는 수장은 김태욱(55) 회장이다. 가수로 널리 알려진 그가 창업 24년 만에 기업인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난해 아이패밀리에스씨의 매출액은 1487억원으로 전년 대비 74.3% 급증했다. 뷰티 부문 매출은 1442억원으로, 아이패밀리에스씨 전체 매출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뷰티 부문 매출의 34%는 국내 매출이고 35%는 일본발(發)이며 나머지는 유럽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2016년 론칭한 롬앤이 초반부터 대중을 사로잡은 건 아니었다. 2019년 빨강머리앤 등 인기 캐릭터와 협업해 본격적인 매출 상승세에 올랐지만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를 맞았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14일 포브스코리아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소비자 참여를 극대화해 이른바 콘텐덕트(contents+product)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FGI(포커스그룹인터뷰), 설문조사, 제품 테스트 등 제품 기획·개발·홍보 단계 전반에 소비자를 참여시켜 롬앤 팬덤을 구축해나갔다”고 설명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기업인 변신에 성공한 김 회장에게 뷰티업체 경영 노하우와 K-뷰티 생태계의 변화, 아이패밀리에스씨의 미래 전략 등을 물었다.

제2의 전성기? ‘세 번째 파도’라 본다

콘텐덕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롬앤 론칭 이후 예상보다 실적이 저조해 고민이 깊었다. 문제를 도통 알 수 없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피드백을 살펴보니 전략부터 잘못돼 있었다. 제품 포지셔닝이 어긋났고 아이템도 타깃 고객인 19~24세 소비자층에 적합하지 못했다. 어떤 사업이든 소비자 니즈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화장품 부문은 세분화된 소비자 니즈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절절히 체감했다. 오늘날 롬앤은 상당한 리브랜딩을 거친 결과로, 2016년 무렵 롬앤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리브랜딩 과정에서 떠올린 개념이 바로 콘텐덕트다. 요즘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지 않는다. 온라인 검색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트를 보고 브랜드 스토리를 파악한 뒤 신뢰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뷰티 브랜드에도 이른바 ‘팬덤’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아이패밀리에스씨는 소비자가 스스로 롬앤의 팬이자 파트너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소비자 참여 공간을 대폭 넓혔다. 롬앤은 아이패밀리에스씨의 독창적인 기획이 아닌 소비자와의 쌍방향 소통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이패밀리에스씨의 저력은 소비자의 시선에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데 있다.

K-뷰티 판세가 달라졌다. 무엇을 원인이라 보는가.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대기업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10년 초중반만 해도 85%를 웃돌던 시장점유율이 절반 넘게 떨어진 것이다. 전통적인 경영방식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 발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뷰티업계는 트렌드 변화를 가장 먼저 읽어내는 기업이 살아남는 영역이다. 그런데 과거와 비교해 뷰티 생태계 참여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는 공급자가 무수히 많아진 것이다. 소비자의 변화무쌍한 니즈에 재빠르게 부합하려면 기업의 의사결정도 신속해야 한다. 그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소수 기업은 대규모 자본을 갖춘 만큼 움직임이 가뿐하지 못하다. 이러한 시대적 호재를 중소기업이 톡톡히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온라인마케팅 전략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 엔데믹 시대가 오자 소비자들이 H&B(Health&Beauty) 스토어에서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여러 브랜드를 비교하면서 중소 브랜드의 시장 진출이 가속화됐다.

제2의 K-뷰티 전성기라고 한다. 실감하는가.

난 세 번째 전성기라고 본다. 2000년대 초반 연이어 등장한 오프라인 로드숍(원브랜드)은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큰 인기였다. 다음 파도는 2010년대 초중반 K-뷰티를 휩쓸었다. 당시 K-드라마 열풍으로 한류 붐이 일면서 K-뷰티는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파도가 국지적 현상에 그쳤고 두 번째 파도가 짧게 끝난 것과 달리, 이번 파도는 더 깊고 넓게 퍼질 것으로 전망한다. 2021년 무렵 시작된 세 번째 파도는 이전보다 단단한 기반 아래 밀려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품력과 고도화된 온라인마케팅전략, K-컬처의 파급력 등이 삼박자를 이뤄 K-뷰티가 부상했다. 덕분에 K-뷰티는 중국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미국, 베트남, 태국, 유럽 등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예전의 전성기와는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도 다르다.

전성기를 지속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8년간 뷰티업체를 운영하면서 ‘한국 소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감각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절감한다.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리 없다. 단, 국가마다 문화적·경제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현지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K-뷰티의 당면 과제는 ‘미투 제품’과 카피 콘텐트가 성행하는 행태를 방지하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 인기를 끌면 이와 비슷한 미투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쏟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K-뷰티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 타 브랜드를 카피하지 않고 브랜드 정체성을 살린 독창적인 콘텐덕트가 지속적으로 생산되어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색조화장품으로 국내외에서 고른 선택을 받고 있다. 향후 성장전략은.

소비자 연령대를 넓히기 위해 지난해 28세 이상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 ‘누즈(nuse)’를 론칭했다. 건강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타깃층의 성향을 반영해 스킨케어 기능과 색조 메이크업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화장품 브랜드다. 기초화장품 분야 진출도 긍정적으로 고려 중이다. 현재 스킨케어 성분을 연구하는 여러 전문가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의 참여 기회도 다각도로 늘릴 계획이다. 코덕(코스메틱 덕후)이 펀딩을 통해 자기만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커머스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어느덧 25년 차 CEO다. 가수와 경영인은 어떻게 다르던가.

가수 활동에서 배운 건 ‘조화와 융합의 중요성’이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밴드 멤버들과 하모니를 이루는 것도 중요했지만 각기 다른 악기들과의 하모니도 필수적이었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할 땐 관객과의 하모니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기업경영도 똑같더라. 직원과의 하모니, 협력사와의 하모니, 고객과의 하모니가 잘 형성될 때 성과도 좋고 자부심도 높아졌다. 이제는 가수가 아닌 기업가이지만, 아이패밀리에스씨라는 또 다른 무대에서 직원 160여 명과 록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패밀리에스씨가 파열음 없이 하모니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

- 노유선 noh.yousun@joongang.co.kr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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