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초, 아버지는 로봇공학이 미래 핵심기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학창 시절 내내 많은 시간을 수학과 영어 공부에 할애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지원해주셨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공과대학 중 하나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로봇공학 분야가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다.(아버지의 여러 지원 덕에) 영어는 원어민만큼 안 되더라도, 수학 하나만큼은 잘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컸다. 그런데 첫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큰 충격에 빠졌다. 내 수학 실력을 같은 과 동기들과 비교해보니 턱없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공대생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었다.이후 더욱 큰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는데, 3학년이 되어서야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은 것이다. 로봇공학 분야는 하드웨어 쪽에선 대다수 문제가 해결된 반면, 소프트웨어, 즉 로봇이 인간처럼 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술에 대한 미충족 수요(Unmet Needs)가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좇아 전공을 컴퓨터공학으로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에는 매년 사적으로, 또 공적으로 심각한 사건들이 연속해 발생했지만 다행히 낙심하거나 포기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의 점들이 연결돼 굵직한 깨달음의 지평선이 되었다고 본다.결국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며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결심했고, 지금도 이런 마음을 이어가고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 방향성을 일부 조정하되 끝까지 해내고자 더 노력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소신의 자양분이 됐다. 이는 기업경영에도 유용하게 활용됐다.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로봇 기술 회사를 창업할 당시, 업계에서는 ‘라이다(LiDAR: 레이저를 목표물에 비춰 사물과의 거리, 다양한 물성을 감지할 수 있는 기술)’ 센서의 필요성을 두고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라이다 센서 기반의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올인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물론 우리조차도 ‘이 선택이 실수인가’라는 의구심을 가졌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겠다).결과적으로 우리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율주행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의 독보적인 기술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수출하고 있다. 이미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안전요원이 없는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했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존하는 몇 안 되는 기업이 됐다.앞서 밝힌 나의 소신이 기업경영에서는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특정 업무가 마무리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의지로 자율주행 분야에서 그 누구도 넘지 못한 선을 제대로 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