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55) 술 - 마음의 위안과 그림자 그 사이 

 

뭐든 과하면 탈이 난다. 특히 술이 그렇다. 하지만 적당한 양의 술은 좋은 안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 그 시간이 그려진 작품을 음미해보자.

▎귀도 레니 〈술 마시는 바쿠스〉 1623
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참 다양하다. 누군가에게 술은 고된 하루 끝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축하의 자리에서 기쁨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누군가에게 술은 폭력적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삶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까지 만드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애주가 입장에서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긴장이 높은 사람들은 이완되는 느낌이 좋다고도 설명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먼저, 술은 가바(GABA) 수용체에 작용하여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을 촉진한다. GABA는 주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로, 신경세포 간의 신호전달을 억제하여 신경 활동을 줄인다. 이로 인해 신경계가 진정되고 긴장이 완화되었다고 느낀다. GABA가 활성화되면 불안과 긴장을 줄이는 역할도 하는데, 술을 마시면 GABA의 억제 효과가 강화되어 근육이 이완되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분이 좋다고 느껴지는 데는 도파민도 역할을 한다. 술은 쾌락과 보상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높여 기분이 좋아졌다고 느끼게 만든다. 도파민이 증가해 즐거움과 행복감이 증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먹으며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험도 동시에 하게 된다. 이는 술이 전두엽과 편도체의 기능을 억제하여 자제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계획, 판단, 감정 조절 등을 담당하는데, 술이 이 부위의 활동을 억제하면 긴장이 풀리고 억압된 감정이 해소된다고 느낄 수 있다. 또 편도체는 불안과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데, 이 기능이 억제됨으로써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이로 인해 잘못된 판단, 실수가 빚어진다.

인류가 만난 최초의 술


▎도소 도시 〈바쿠스〉 1524
최초의 술이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고고학적 증거와 인류학적 연구를 토대로 추론되었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술이 기원전 7000년경에 발명되었다는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960년대 고고학자들이 이란 자그로스산맥에 자리한 고대 유적지 하자르 펠레인에서 기원전 7000년경의 도자기 조각을 발견했다. 이 도자기 조각에서 발효된 음료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인류가 최초로 만든 과실주의 흔적이다.

기원전 6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는 맥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보리와 밀을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었고, 점토판에 이를 기록했다. 수메르 문명에서는 술을 신성한 음료로 여겼으며 니케시타라는 맥주의 여신에게 선정된 찬가가 발견되었다. 이 찬가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후 고대 이집트에서는 맥주와 와인을 모두 소비했는데, 맥주는 노동자에게, 와인은 귀족에게 지급되었다. 술은 이때에도 종교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와인이 주요 음료로 자리 잡으며 디오니소스 신이 와인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이후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렀고 오늘날 술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며,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따라 소비 형태와 방식이 다르게 자리 잡았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


▎〈맥주의 제조 과정이 기록된 이스라엘의 점토판〉 BC 6000
그리스 신화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로마어로는 바쿠스라 불린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녀 세멜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간이 낳은 유일한 신으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세멜레를 매우 질투했다. 인간인 세멜레는 제우스의 빛을 감당하지 못했는데, 헤라는 세멜레에게 제우스가 세멜레를 진정 사랑한다면 원래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이간질을 했다. 결국 세멜레는 제우스를 조르게 되고, 제우스의 빛을 보자마자 녹아 사라졌다. 제우스는 6개월 된 배 속의 아이를 자신의 허벅지를 열어 안에 넣고 꿰매어 열 달을 채우게 했고, 디오니소스는 두 번(Dyo) 태어난 자(nysos)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헤라는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미워하여 여러 차례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그때마다 도망쳐 산과 숲을 떠돌며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종교화와 신화를 주로 그린 이탈리아 출신의 바로크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는 어린 시절의 바쿠스를 묘사했다. 비록 아이의 모습이지만 술 마시는 순간의 기쁨과 환희를 강조했고, 술이 주는 일시적인 해방감과 기쁨을 담았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에서 발견한 포도를 따 먹고 달콤한 맛에 매료됐다. 그리고 포도씨를 잔뜩 심어 포도 농사를 짓고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디오니소스는 수확한 포도를 동굴에 넣어놓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기억이 났을 때 다시 동굴에 가보니 포도송이들이 향긋하고 달콤한 액체로 변해 있었다. 청년이 된 디오니소스는 여기저기를 방황하며 가는 곳마다 포도주 제조법을 전파하고 자신을 숭배하는 신비 의식을 가르쳤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 환희, 축제, 카타르시스(정화)의 신으로 숭배받게 됐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도소 도시(Dosso Dossi)의 작품 <바쿠스>에 묘사된 바쿠스는 자유롭고 환희에 찬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바쿠스의 신성한 속성과 함께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부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쿠스의 숭배는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특히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그에 대한 숭배가 절정을 이루었다. 디오니소스 제전은 술과 축제가 중심인 행사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춤추며 즐긴다. 디오니소스는 술을 통해 인간이 일상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술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인간과 신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쾌락, 그 뒤의 어둠

술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든다. 술을 마심으로써 얻는 쾌락은 다시 술을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술을 마신 후 뒤따라 오는 신체 반응이나 감정은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당부한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 쾌락 이후 우울감이 더 크게 증폭될 수 있고, 항우울제 약물을 복용할 경우, 약효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수면의 질을 저하하며, 숙취를 유발할 수 있고, 음주 후 따라오는 죄책감이나 후회감은 자기 비관적 생각을 강화할 수 있다.

에두아르트 폰 그리츠너가 그린 <굿 드링크>에는 와인을 사랑한 수도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급 샴페인의 대명사인 돔 페리뇽이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중세 유럽 수도원에서는 꾸준히 와인이 발달해왔다. 수도사는 와인잔에 담긴 와인의 빛깔과 향을 음미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술 마시기 전의 셀렘도 고스란히 담겼다.

술과의 균형


▎에두아르트 폰 그리츠너 〈굿 드링크〉 1897
술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음료로, 적절하게 즐기면 장점이 많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 적절한 음주는 유대감을 강화하고,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완화한다. 지인과 함께 즐기는 술은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고 좋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또 적당한 음주는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 간, 심혈관 등 신체 건강을 위협하고 의존성과 우울감 등 정신적 영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다음 날의 감정과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즐겁게 적정선에서 술을 즐기려면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신이 마시는 술의 양과 빈도를 조절하는 통제력을 지녀야 한다. 즉,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둘째, 술을 마시는 원인을 스트레스 해소나 문제 회피가 아니라, 사회적·개인적 즐거움을 위해서인지 확인해야 한다. 음주는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술을 온전히 ‘즐기기’를 추천한다. 술을 마시는 순간을 단순히 음주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여기며, 빠르게 삼키기보다는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좋다. 다양한 술을 경험하고 공부해보는 것, 좋은 안주와 함께하는 것, 술과 관련된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도 술을 삶의 즐거운 동반자로서 함께하기 위한 좋은 노력이 될 것이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9호 (2024.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