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는 다양한 음악이 쓰였다. 그 대부분이 프랑스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 음악가들이 작곡한 곡들이거나 프랑스 가수들이 불렀던 노래들,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을 표현한 외국 작곡가들의 곡들이었다.
▎파리 센강 강가에서 진행되었던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몽 트뤽 앙 플륌”(Mon truc en plumes: 깃털로 된 내 물건) 공연. 가슴 윗부분을 드러낸 중앙의 여인이 레이디 가가다. 댄서가 들고 있는 분홍색과 흰색의 날개들은 칠면조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 사진: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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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42세 연극연출가 토마 졸리(Thomas Jolly)가 연출한 개회식이 센강 일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주제가 ‘센강’이었다는데, 선곡(選曲)만 놓고 보면 고유의 주제가 따로 있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대중음악의 장르가 무척 다양하다는 점 과시하기? 한때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대중음악가들에 대한 오마주? 대중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현대 프랑스 문화사의 증언? 대중음악이라도 1960~70년대의 곡들이라면 이제 노년층이나 장년층, 그것도 프랑스인들이나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 곡들을 과감하게 소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찬란했던 순수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20세기 중후반에도 끊임없이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역사를 잘 알려준 개회식이었다.개회식은 타이틀이 붙은 몇 개 단락으로 구분되었는데, 그 첫 부분은 ‘축제의 시작’이었다. ‘축제의 시작’은 영상 부분으로, 얼핏 들리는 프랑스 국가와 함께 시작했다. 유명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 성화를 들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를 태운 지하철이 멈췄다. 파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지단이 아이들에게 성화를 전달하고 아이들은 배를 타고 파리의 지하 호수를 건넌다. 이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전주곡’이 비장하게 깔린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토대로 제작된 뮤지컬로, 영국 작곡가 로이드 웨버가 그 음악을 작곡했다. <오페라의 유령>속 ‘오페라’는 파리의 유명한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을 가리킨다. 유서 깊은 이 극장의 지하에 호수가 있다고 한다. 성화를 운반하는 아이들이 배를 타고 이 호수를 지나가는 개회식 속 영상은 <오페라의 유령>의 한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이 뮤지컬에서는 주인공이 그가 사랑하는 가수를 배에 태우고 어두운 호수를 지나간다.개회식의 두 번째 단락인 ‘모든 게 잘될 거야’(Ça ira)에서는 영상 속 아이들이 센강으로 나온다.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듯이 1790년에 처음으로 불렸던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혁명가를 프랑스의 메탈밴드 고지라와 프랑스 오페라가수 마리나 비오티가 불렀다. 이 노래에는 “아! 잘되리라, 이날 사람들은 끊임없이 반복하네. 아! 잘되리라, 잘되리라. 그들은 폭도지만 성공할지니! 우리의 혼란스러운 적들은 가만히 있도다” 등 과격한 가사가 있다. 목이 잘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등장과 함께 프랑스는 정녕 230년 전의 대혁명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세상에 홍보하고 있다.에디트 피아프가 불렀던 ‘군중’(La Foule, 1957)의 발랄한 - 피아노와 아코디언에 의한 - 기악 부분이 계속해 반복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나는 축제에 열광적이었던 그 도시를 생각해요. 태양과 즐거움에 질식할 것만 같았던 함성, 그리고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음악이 들려요.” 파리 올림픽이 축제임을 알리는 선곡일 것이다.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세르주 갱스부르가 부른 ‘이니셜 B.B.’는 1968년 6월에 발매된 동명의 음반 속 첫째 곡이다. 여기서 ‘B.B’는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의 이름과 성의 첫 알파벳들이다. 갱스부르는 이 노래로 바르도에게 관심을 표했다. 이 노래의 가사에도 올림픽과 관련된 듯한 내용이 있다. “이니셜 B, 황제의 메달을 따는 동안 그의 허리를 빛나게 해줘요, 청동과 금, 은은 그를 백금으로 입힌다.” 이 노래는 그리스 선수단이 입장할 때 울려 퍼졌다. 곡 중간에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1악장의 주제가 인용되어 있다. 올림픽이 신세계를 연다는 메시지의 선곡이었을까.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 <라붐>의 주제곡 ‘현실’(Reality)의 선곡은 선수들의 투지를 꿈으로 본 것 같다. “꿈은 내 현실이야, 다른 현실, 난 밤중에 사랑하는 꿈을 꿔.” 메달을 못 따도 그것을 따기 위해 가졌던 꿈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가 영상 속에서 불렀던 ‘몽 트뤽 앙 플륌’(Mon truc en plumes: 깃털로 된 내 물건)은 프랑스의 발레리나 겸 가수였던 지지 장메르의 노래다. 장난스럽게 음탕한 상황을 암시하는 가사를 공식 석상에 올리는 프랑스인들의 자유분방함이 놀랍다. “내 깃털로 된 물건이 당신을 애무하는군요. 난 펜으로, 깃털로 살아요. 만지지 마세요. 어서 와요, 나의 도둑, 그 안에서 자요. 난 마녀가 아니에요.” 이 노래는 필립 카트린느(Philippe Katerine)의 이상야릇한 공연과 함께 프랑스인들의 특이한 감성을 잘보여주는 것 같았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인 그는 누드 상태에서 노래 ‘누드’(Nu)를 불렀고, 현재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 공연 관련 장면을 아무런 설명 없이 삭제하고 있다. 이런저런 반발이 있어서일 것이다.
프랑스의 디스코 드러머 마르크 세로네의 얼터너티브록 ‘내게 사랑을 줘’(Give Me Love, 1977), 1981년 파리에서 결성된 프랑스 팝 듀오였으며 종종 프랑스 최초의 힙합 앨범을 녹음한 그룹으로 알려진 샤그랭 다무르(Chagrin d’amour: 사랑의 고통)의 ‘각자 좋은 걸한다’(Chacun fait c’qui lui plait) 등 오래된 힙합도 눈길을 끌었다. ‘각자 좋은 걸 한다’는 프랑스인들이 중시하는 삶의 신조처럼 들린다. 북미에서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그룹 레 리타 미츠코의 ‘마르시아 바일라’(Marcia Baïla) 같은 팝록도 역사의 증언이었다. 지면에 전부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1960~80년대 가수들의 노래가 있었다. 우아한 예술의 나라는 랩,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 EDM), 디스코, 디제잉(DJing) 같은 영역에서도 그간 숱한 예술가를 배출했다.
▎필립 카트린느(Philippe Katerine)의 이상야릇한 공연. 프랑스식 유머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특정 종교를 조롱했다는 비판과 그에 따른 반발도 있다. / 사진: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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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프랑스는 다국적 사회다. 외국에서 태어나 귀화했거나 프랑스에서 외국인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들이 프랑스인으로 대접받는다. 미스 이집트였던 달리다의 ‘월요일, 화요일…, 날 춤추게 해줘’(Monday, Tuesday…. Laissez-moi danser, 1979) 같은 디스코도 눈에 띄었고, 프랑스에서 스페인 아버지와 이탈리아/호주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던 패트릭 에르난데스의 ‘본투 비 얼라이브’(Born to be Alive, 1979)는 미국 빌보드 댄스 차트 1위를 찍었던 추억의 노래다.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나카무라 아야는 현재 활동 중인 프랑스 가수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그녀의 대표곡 ‘쟈쟈’(Djadja)는 2024년 8월 기준으로 유튜브에서 조회수 9억700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Djadja’는 말리어로 삼촌이라는 뜻인데, 아재와 같은 부정적 의미가 있다. 이 곡은 말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늙고 이해심 없는 아저씨들에게 대항하는 여성들의 자기 존중감 등을 노래한다. 나카무라 아야는 센강의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 위에서 ‘쟈쟈’ 등을 불렀다. 개회식의 여러 공연 중 이 노래 공연이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세계 많은 젊은이가 파리의 예술의 다리나 자국의 다른 다리 위에서 ‘쟈쟈’ 공연을 흉내 내며 자신들의 SNS에 올렸다. 밈이 된 이 공연을 두고 어떤 이들은 “더는 예술의 다리가 아니다. 그 다리는 이제 아야의 다리”라고도 주장한다.프랑스는 고전음악 강국이기도 하다.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 중 ‘지옥의 무도회’는 사람들에게 ‘캉캉’으로 알려진 흥겨운 춤곡으로, 개회식에서 사용되었다. 캉캉(Can-can)은 1830년경부터 파리의 댄스홀에서 유행한 사교춤이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아리아 ‘사랑은 반항하는 새’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바네라’라고도 알려진 이 유혹적인 노래는 그 생기(生氣) 때문에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와 대조를 이루었는데, 후자는 공교롭게도 한국 대표팀이 등장할 때 연주되었다. 에릭 사티의 감미롭지만, 초연한 느낌의 ‘짐노페디 1번’도 프랑스가 자랑할 명곡이다. 23살 프랑스인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를 비를 맞으며 연주했다. 그의 피아노에 내린 빗방울들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뮤지컬도 프랑스를 벗어날 수 없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위대한 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 1832년 파리에서 발생했던 봉기를 소재로 했던 이 소설 기반 뮤지컬에는 유명한 노래가 많다.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도 그중 하나로, 개회식에서 울려 퍼졌다.여러 실수 때문에 깔끔하지 못했던 개회식이라는 평이 있다. 프랑스라는 나라에는 원래 그렇게 덤벙대는 이가 많다. 깔끔하도록 사람들을 다그치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곧 망할 듯 기강이 매우 해이한 분위기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인권, 다양성 등 가치를 존중해왔고 지금도 그러려고 애쓰는 관용(tolérance)의 나라. 그런 나라가 산출한 혁신적 문화유산의 압도적인 분량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개회식이었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