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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의 인사이드아웃(01) 박정현·박정은 아토믹스 대표 

뉴욕에서 꽃피운 한국의 맛 

신윤애 기자
포브스코리아는 10월호부터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와 함께 남다른 관점으로 업계에 센세이셔널을 일으킨 리더들을 만나 대담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박정현·박정은 아토믹스(Atomix) 대표다. 아토믹스는 미식의 도시 뉴욕에서 2018년 미슐랭 스타를 거머쥔 화제의 한식 레스토랑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두 대표가 아는 이 하나 없는 뉴욕에 건너가 별을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6년. 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레스토랑 네 개를 오픈했고, 코로나19까지 이겨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김지원 대표가 두 대표를 만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열정, 남다른 참신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봤다.

▎한류를 이끄는 의식업계 수장인 김지원 대표(오른쪽)와 박정현·박정은 아토믹스 대표가 만나 자신들의 철학과 경험을 나누었다.
“두 대표님과 친분이 없던 시절, 뉴욕에 소문난 한식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어요. 입구에서부터 화려하게 펼쳐지는 동양적인 분위기에 압도됐고 식기와 집기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세심함이 느껴져 감동받았어요. 특히 한국풍 엽서에 메뉴를 적어 나눠주는데 국(Guk), 생채(Saengchae)처럼 한국식 표기법을 그대로 따랐다는 데서 자신감과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수천 곳 넘게 가본 경험으로 1스타, 2스타의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고 자부하는데 이 레스토랑이 왜 2스타인지 명확히 알 수 있더군요. 맛, 분위기, 서비스 모두 완벽했던 그 레스토랑이 바로 아토믹스예요. 나아가 아토믹스는 2스타를 넘어 3스타로 승격할 자격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는 소문난 미식가다. 패션회사 수장답게 문화예술에 두루 조예가 깊은 그는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울 만큼 요리와 식문화에도 뜨거운 열정을 지녔다. 숙명여대 르 코르동 블루 요리과정에서 기초를 닦고 뉴욕의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에서 Pastry Arts 과정을 마쳤으며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과 츠지원에서 일본 요리를 공부했다. 2010년에는 뉴욕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저서 마이 스위트 뉴욕을 집필했다.

부부인 박정현·박정은 대표와의 인연은 3년 전 시작됐다. 지인 모임에서 처음 만난 세 사람은 몇 마디를 나누면서 ‘같은 과’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김 대표가 뉴욕에 방문할 때마다, 두 대표가 서울에 방문할 때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 김지원 대표는 “뉴욕의 의류 매장에서 우연히 마주칠 정도로 취향이 닮아 있고 두 대표의 뜨거운 열정, 녹슬지 않는 창의력, 진솔한 매력에 반해 더 깊이 알고 싶었다”고 칭찬했다. 첫 번째 인터뷰 이로 박정현·박정은 대표를 선택한 것도 “남다른 철학과 관점으로 업계에 뉴웨이브를 일으킨 이들을 조명하겠다는 시리즈의 취지에 최적화된 인물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뉴욕 맨해튼 이스트30번가에 자리한 아토믹스는 전 세계 미식가들의 입에 늘 오르내리는 화제의 한식당이다. 1인당 5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예약 시작 5분 만에 한 달 치 예약이 모두 마감된다. 맛과 서비스로 고객들을 매혹한 아토믹스는 2018년 오픈 첫해에 미슐랭 2스타를 받았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미슐랭뿐만 아니라 ‘미식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순위에서도 올해 6위, 미국 내 1위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이 리스트에 한식당이 포함된 건 아토믹스(2021년)가 처음이었다.

한류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 한류의 큰 축을 이루는 의(義), 식(食) 산업의 경영자가 자신들의 철학과 경험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세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서로에게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지원 대표, 박정현·박정은 대표의 인터뷰는 지난 9월 4일 청담에 있는 커먼에라에서 진행됐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악기 연주 소리가 인상적인데요”라며 김지원 대표가 말하자 “3층까지 올라오며 예술적인 감성을 끌어올리길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마련한 장치입니다”라고 박정은 대표가 대답했다. 미슐랭 레스토랑의 환대가 무엇인지 몸소 느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부가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함께 이뤄나간다는 것. 멋있게 느껴진다.

박정은: 처음부터 ‘함께 레스토랑을 차리고 성공한 오너가 되어보자’라는 꿈을 꾼 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며 저절로 꿈이 만들어졌다. 우리 둘의 성향은 굉장히 다르다. 박정현 대표는 명확한 꿈이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개척해나가는 반면 나는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으며 미래를 고민하는 성향이다. 각자 갖고 있던 꿈이 좋은 타이밍과 장소를 만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나아가 작은 성공들이 이어지며 책임감과 꿈이 더욱 커지고 있다.

두 분은 나이에 비해 성숙한 철학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예술적인 창의력도 대단해 보이는데 그 원천이 궁금하다.


▎2016년 뉴욕 맨해튼에 캐주얼 한식당 아토보이(ATOBOY) 오픈 2018년 뉴욕 맨해튼에 한식 파인 다이닝 아토믹스(ATOMIX) 오픈 2022년 뉴욕 록펠러센터에 한식 파인 다이닝 나로(Naro) 오픈 2023년 뉴욕 한인타운에 한국 술집 콘셉트 서울 살롱(Seoul salon) 오픈
박정은: 우린 동갑내기로 이제 막 마흔이 넘었다. 나이보다는 우리의 경험치를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행하고 음식을 먹어보며 경험을 쌓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우린 메뉴를 기획하거나 콘셉트를 잡을 때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키워드를 늘 중심에 둔다.

박정현: 월급으로 200만원을 받는다면 사람마다 다른 재정계획을 세울 것이다. 100만원씩 적금해 나중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거나, 100만원을 도전하고 경험하는데 사용하겠다는 계획이 있을 텐데,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100만원으로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전시회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시드머니를 넘어 더 좋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교양을 쌓고 멋있는 사람이 되면 나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고, 더 좋은 기회로 이어질 것이란 막연한 바람도 있었다. 계획한 대로 어린 시절부터 축적한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면 이것저것 리서치하기보단 가만히 앉아 내 안의 기억들을 꺼내 경쟁력과 차별점을 찾아내는 편이다.

어떤 경험들을 쌓았나.

박정현: 조리학과에 다니던 중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갔다. 핀란드에서 6개월간 공부하고 런던으로 건너가 레스토랑에서 6개월간 인턴을 했다. 이때 좋은 동료들을 만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앞으로 비싼 학비를 들여 공부를 더 하는 것보다 필드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함께 일했던 호주인 셰프가 호주 레스토랑을 추천해줘 졸업 이후 멜버른에서 3년간 일할 수 있었다. 몇 년 일해보니 앞으로 이곳에서 중간관리자는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이 아닌 만큼 한계가 있을 거란 고민이 들었다. 나도 내가 먹고 자란 한식으로 승부를 봐야겠단 결심이 섰고 이후 한국에 돌아와 임정식 셰프님이 운영하는 ‘뉴코리안’ 콘셉트의 정식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뉴욕에 건너간 것도 정식당의 셰프로 합류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박정현: 한국 정식당에 입사할 때 ‘뉴욕에서 정식당을 오픈하면 꼭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호주, 유럽에서 두루 일해봤지만 정작 미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인지 미국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다. 한국 정식당에서 헤드 셰프까지 승진해 일하다가 뉴욕에 정식당을 오픈한 지 1년 만에 합류하게 됐다. 그게 2012년 12월이었고 박정은 대표와 결혼한 지 이틀 만에 꿈을 좇아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정식당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레스토랑을 오픈해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뉴욕 시장의 규모와 생각보다 많은 한식에 대한 니즈를 경험한 이상 미국을 떠나기 아쉬웠다. 그래서 레스토랑을 열고 정착하게 됐다.

박정은: 나는 요리를 전공했지만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싶진 않았다.(웃음) 이력서를 준비해 다른 레스토랑에서 다른 시작을 했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두 분이 한곳에서 일했다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경험을 쌓았을 텐데 다른 관점으로 더 크게 볼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 쌓였으니 말이다.

박정은: 나아가 서로 잘하는 분야를 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박정현 대표는 아티스트이자 셰프이고 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소질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박정현 대표가 주방과 예술 분야를, 내가 서비스와 운영을 맡게 됐다.

사람, 그것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아토믹스는 ‘2022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즈’에서 환대 부문 1위를 수상했다.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 아토믹스 내부 모습과 시즌 메뉴. / 사진:아토믹스
박정은: 고객의 예약 정보를 받으면 어떤 사람일지 연구한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가 33으로 시작했다면, 프랑스에서 걸려온 전화란 뜻이다. 아토믹스는 콘서트 티켓 만큼 예약하기 어려운 곳인데, 외국에서 예약을 했다면 음식과 우리 레스토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이땐 음식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자세히 해주려 노력한다. 이 외에도 이메일 예약의 경우 주로 회사의 이메일이 많은데, 회사 이름과 예약자명을 검색해보면 그 사람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인스타그램 파운더가 방문하기 전에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인스타그램의 배경, 샌프란시스코의 지역 특징 등을 미리 공부해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대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명심할 점은 고객에게서 어떤 기회를 얻어내겠단 욕심이 아니라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응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에서 비롯된 단골은 결국 우리의 힘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가 팬데믹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단골손님들이었다.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지나가다가 혹은 이메일로 5000불짜리 체크를 써주는 단골들이 있었다. 레스토랑이 됐든 기업이 됐든, 사람이 됐든 사람 간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아토믹스 오픈 이후 이내 팬데믹이 발생했다. 이때 뉴욕에 음식배달문화가 자리 잡은 걸로 아는데 배달은 주로 저렴한 음식을 대상으로 하지 않나. 아토믹스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박정현: 아토보이는 셧다운 이후 곧바로 배달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한다는 데 착안해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을 패키지로 만들어서 배달해주었다.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해 배달을 다녔다. 아토믹스는 배달이 쉽지 않은 음식이어서 초기엔 시작하지 못했지만 고심 끝에 4가지 코스 요리를 도시락에 예쁘게 담아 내는 방식으로 배달을 시작했다. 5만~10만원으로 꽤 비싼 금액이기 때문에 가심비를 채우기 위해 메뉴를 매주 바꾸었다. 팬데믹은 그 어느 때보다 셰프로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챌린지하는 시기였다. 레스토랑 역사상 가장 힘든 사건이었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길러야 성장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음식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느낀다.

홀로서기의 시작은 아토보이였다. 파인 다이닝에서만 일했던 셰프가 캐주얼한 한식당으로 시작한 데는 전략적인 이유가 따로 있을 텐데.

박정현: 파인 다이닝, 캐주얼 다이닝 모두 계획에 있었고 오픈 순서가 고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파인 다이닝을 오픈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다음 캐주얼한 식당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뉴욕에 기반이 없어 파인 다이닝을 열어도 찾아올 지인이 없겠더라. 뉴욕에서 내세울 수 있는 점도 정식당 출신 셰프라는 것이 유일했다. 그래서 캐주얼한 콘셉트를 먼저 시작하게 됐다. 뉴욕에서는 여름과 겨울이면 음식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레스토랑 위크’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당시 음식 가격이 1인당 39달러라고 하면 우리는 좀 더 낮은 가격대로 형성해 방문율을 높이고 레스토랑을 알리기 시작했다.

뉴욕엔 이미 한식당이 많았다. 아토보이의 다른 한 끗은.

박정은: ‘모던 코리안 레스토랑입니다’ 하면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수많은 경쟁자와 부딪히고 미래 경쟁자들에겐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만 할수 있는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반찬’이다. 스페인 음식 ‘타파스’가 세계화되었듯 한국 반찬을 세계인에게 알리자는 것이다. 한국의 일상식은 밥, 국이 나오고 반찬을 나누어 먹는 문화이지 않나. 이것을 코스로 내보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나눔 문화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다만 반찬은 공짜로 나오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반찬의 가치를 좀 더 높여보겠단 욕심도 들었다. 그래서 직접 먹고 싶은 반찬을 선택해 주문하는 방식을 취했다. 10 가지가 넘는 반찬 중 1인당 3개씩 선택하도록 해서 서로 나누어 먹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당시에 미디어, 미식가들이 우리의 명확한 메시지를 좋아해줬던 것 같다.

브랜드를 만들면 지점을 늘리거나 확장에 나서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두 대표님은 아토보이, 아토믹스, 나로, 서울살롱까지 새로운 브랜드를 다른 콘셉트로 론칭했다.

박정은: 아토보이나 아토믹스는 장인의 성격이 강해 여러 개를 운영하기 힘든 콘셉트다. 그리고 우리에겐 모멘텀이 중요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 우리가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브랜드를 확장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성장 모멘텀에 발자국을 찍을 만한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네 개 브랜드와 팬데믹이 모두 우리의 모멘텀이었다. 사실 처음 계획엔 ‘아토’ 시리즈가 더 있었다. ‘아토네’인데 리테일숍이라고 보면 된다. 아토보이, 아토믹스에서 사용하는 식기류, 소스, 유니폼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레스토랑과 리테일 사업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더라. 어마어마한 재고관리 능력이 필요해 보였다. 일단 우리가 잘하는 업에 집중하자는 계획으로 아토네는 잠시 미뤄뒀다.

공감한다. 나 또한 레스토랑 비즈니스 관련 공부를 해보니 썩어버리는 재고, 비싼 원가 등 다른 차원의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고 두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두 분은 언젠가 아토네를 오픈하길 응원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난 뉴욕에서 공부하고 출장을 많이 다닌 만큼 뉴욕을 좋아하고 잘 알고 있다. 뉴욕은 ‘멜팅포트’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데 개방적인 반면 인종차별이 공존하는 곳이다. 두 사람에게 뉴욕은 어떤 곳인가.

박정은: 아토보이, 아토믹스는 뉴욕의 힘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서 아토보이를 ‘꼭 가봐야 할 핫 플레이스’라고 소개해줬고, 초기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더 좋아해줬다.

박정현: 시간이 지나며 아쉬운 점은 있다. 미국인이었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많은 역할과 책임을 소화할 텐데라는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어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일례로 팬데믹 시기에 록펠러센터를 운영하는 부동산 그룹에서 연락이 왔었다. 록펠러센터를 새롭게 리뉴얼 중인데 그곳에 레스토랑을 오픈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배달을 직접 뛰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눈여겨본 것 같았다. 당시 레스토랑 4~5개를 론칭하려는 계획이었을 텐데 아메리칸, 이탈리안, 프렌치, 오리엔탈로 콘셉트를 짜지 않았을까. 그중 하나로 한식을 생각한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식, 중식이 선택됐을 텐데 뉴욕의 랜드마크이자 역사적인 공간에 한식 레스토랑을 구상했다는 점이 감사했다. 그래서 인테리어부터 메뉴까지 한국적인 분위기를 마음껏 녹여냈다. 그 레스토랑이 ‘나로’이다.

브랜드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진 만큼 운영 철칙을 마련하고 통일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박정은: 지금 우리는 단순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서 나아가 아토보이, 아토믹스가 뉴욕에서 성공하고 한식의 세계화에 얼마나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이는 코리안 파인 다이닝을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지, 뉴욕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제너레이션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까지 연결된다. 이제 외국인들은 한국을 단순히 궁금해하는 정도를 넘어 직접 방문하고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이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 통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 회사가 지켜야 할 원칙, 역할, 마음가짐이다.

패션도 음식도 한국의 것이라고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외국에서 한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한식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박정현: 지금은 한식에 양파가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한국에 양파가 들어온 건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떡볶이와 부대찌개도 마찬가지다. 당연하게 한식으로 여기는 음식들도 처음엔 변종이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이라는 건 시대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식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맞았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많은 셰프, 식품회사 관계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한식이라는 틀에 얽매여 서로가 맞고 틀리다며 논쟁하기보다는 각자가 정답이라고 믿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남고, 그렇지 않은 음식은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커먼에라를 오픈했다.

커먼에라를 기반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무엇인가.

박정은: 약 15년 전부터 뉴코리안 장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한식 레스토랑들이 정식당을 필두로 생겨났다. 저마다 개성 있는 스타일로 한국 재료와 한식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을 이루었고 사랑받고 있다. 이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도약을 위해서는 연구가 주목적인 공간이 있어야 했고, 한국 재료에 대해서 연구하는 공간인 커먼에라를 만들었다. 뉴코리안을 정의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공간, 글로벌한 마케팅 전략으로 한식의 글로벌화의 가교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지금은 해외에서 특별식인 한식이 일상식이 되는 그 날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싶다.

박정현: 돌아보면 5년 전 아토믹스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앞으로 5년 후에는 더 많이 달라질 것이고. 레스토랑이, 한식이, 뉴욕 다이닝이 성장한 만큼 우리도 그 안에서 좋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 김지원 - 한세예스24홀딩스의 자회사인 한세엠케이를 이끌고 있는 김지원 대표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와 르 코르동 블루,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요리 아카데미 츠지원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이후 예스24에 입사하여 경영훈련을 받은뒤 2019년 한세엠케이 대표직에 올랐다. 한세엠케이는 현재 모이몰른, 나이키 키즈, 버커루, NBA 등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연령의 라이프웨어를 선보이며 패션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비즈니스로 나아가고 있다.

- 정리=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410호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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