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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렉 쿠틸로브스키 딥엘 대표-AI 창의성 살린 자연스러운 번역 

 

노유선 기자
독일의 언어 AI 스타트업 딥엘이 한국 AI 번역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번역기와 작문 툴, 기업용 AI 솔루션 등을 삼각편대로 삼았다. 딥엘의 번역 기술은 AI가 내용 전체를 파악하고 핵심만 요약한 뒤 텍스트를 새롭게 작성하는 방식이다. ‘AI 신경망’이라 불리는 이 기술로 딥엘은 언어 뉘앙스와 맥락이 반영된 번역 결과물을 제공한다.

▎야렉 쿠틸로브스키 딥엘 대표는 “전문 번역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딥엘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문학에는 그 지역의 문화가 담겨 있다. 또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은 문학으로 이어진다. K-컬처 붐이 일면서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 문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영국 부커상에 이어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고, 소설가 천명관과 황석영 등도 부커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문학은 비로소 전 세계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문학만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웹툰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늘면서 한국어를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수요도 급증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번역 기업 딥엘(DeepL)이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다. 2017년 독일 쾰른에서 설립된 딥엘은 165개국, 33개 언어를 번역한다.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된 건 지난해 1월. K-컬처 열풍을 눈여겨본 딥엘도 뒤늦게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번역기는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파파고다. 딥엘은 자사 번역기의 정확도가 경쟁사보다 3배 더 높다고 주장한다. 딥엘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세계 최고의 정확성으로 미묘한 뉘앙스까지 고려한 기계번역”이라며 “자체 신경망과 최신 AI 기술을 적용해 미세한 뉘앙스까지 포착함으로써 다른 번역 서비스에서는 볼 수 없는 고품질의 번역문을 제공한다”고 했다. 딥엘 관계자는 “전문 번역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딥엘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테스트 출처는 비공개”라고 말했다.

지난 9월 9일 서울 강남에 있는 사무실에서 야렉 쿠틸로브스키(Jarek Kutylowski) 딥엘 대표를 만났다. 폴란드 태생인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전공을 바꿔 컴퓨터공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원래 이름은 야로스와프(Jaroslaw) 쿠틸로브스키지만 그는 “전 세계인이 발음하기 편한 야렉 쿠틸로브스키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설립 8년 차 스타트업이 어떻게 빅테크 기업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지 물었다.

문맥에 어울리면서도 쉬운 언어로 번역


▎야렉 쿠틸로브스키 딥엘 대표는 언어 AI와 관련한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딥엘은 설립과 동시에 자사 번역기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야렉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2016년 프로젝트를 시작해 거의 매일 작업에만 열중했다”며 “개발 속도가 빠른 덕분에 아이디어를 몇 개월 내에 실현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사람이 번역하는 방식과 유사한 ‘AI 신경망(neural network)’ 기술을 개발하는 것.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딥엘의 AI 신경망 기술은 타사와 달리 번역 대상을 덩어리째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딥엘 AI는 한 단어, 한 문장을 개별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먼저 텍스트 전체 내용을 이해해요. 이후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합니다. 이를 토대로 AI는 텍스트를 새롭게 작성합니다. 단어를 하나씩 직역하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사실 신경망 기술은 오늘날 개발된 신기술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이 기술은 2010년대 AI와 접목되면서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오래된 기술이 AI 덕분에 상용화된 것을 두고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변혁적인 순간(transformational moment)”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AI의 창의성이 사실을 왜곡할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AI의 창의성과 사실의 정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딥엘의 임무”라고 단언했다. 그는 “글의 뉘앙스와 맥락의 연결성을 반영하는 딥엘 기술은 타사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별점”이라며 “이는 AI의 창의성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번역을 위해 기술 최적화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딥엘은 한국 번역 시장에 다소 늦게 진출했다.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한국 시장을 오랫동안 주시해왔지만 번역 품질 수준을 높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딥엘은 상당히 높은 기준으로 서비스 품질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활발한 한국은 잠재적인 시장성이 높은 국가”라고도 했다. 딥엘 AI는 어떤 자료로 어떻게 한국어를 학습했을까.

“인터넷에 공개된, 누구나 사용 가능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켰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언어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지 않나요? 기사처럼 매우 정제된 언어 자료와 법률·의료·제조 등 산업군별 전문 자료, 기업의 분기보고서·연간보고서, 일상적인 언어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함께 작업하는 번역가가 직접 AI에 교육할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어요. 데이터 큐레이팅에 직원 다수가 투입됐습니다.”

계속 배우고, 도전하고, 경쟁하라

딥엘은 지난해부터 연이어 새로운 언어 AI 제품군을 내놨다. 2023년 ‘딥엘 라이트(DeepL Write)’와 2024년 ‘딥엘 포엔터프라이즈(DeepL for Enterprise)’가 대표적이다. 딥엘 라이트는 AI 작문 보조 툴이다. 비문을 수정하고 단어나 문구 등을 제안하는 기능을 갖췄다. 유료 서비스인 ‘딥엘 라이트 프로’도 마련돼 있으며, 작문 가능한 언어는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등 세 가지다. 야렉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빠른 시일 안에 AI 음성 번역 솔루션 ‘딥엘 스피치(DeepL speech)’도 선보일 계획”이라며 “실시간 음성 통역 서비스까지 마련하면 딥엘은 언어 AI와 관련한 종합 솔루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딥엘의 또 다른 강점을 물어보자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강력한 데이터 보안 능력과 고객 데이터 보호 규정, 기업 커스터마이징 기능, 업무 흐름과 융합 등을 꼽았다. 그는 “개인이든 기업 고객이든 딥엘을 이용해 비밀스러운 정보를 번역할 수 있다”며 “특히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한 금융업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딥엘로 번역되는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강도 높은 보안 시스템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그는 딥엘 프로를 통한 고객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

기업 커스터마이징 기능은 딥엘 포 엔터프라이즈 서비스를 가리킨다. 그는 “포브스 매거진에도 스타일 가이드가 있듯이 기업에도 자사만의 스타일과 전문용어가 있다”며 “이를 반영한 맞춤형 AI는 어떤 상황에서든 회사의 ‘톤 앤드 매너’를 유지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일관된 기업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업무 흐름과 융합은 AI의 활용성과 직결된다. AI 기술이 업무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AI 접근성이 높을수록 사용자의 편의성이 커진다”며 “그래야 사용자가 딥엘 AI를 효율적인 툴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딥엘에 따르면 현재 비즈니스 고객사는 약 10만 곳에 달한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이 가장 큰 시장에 속한다.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대표적인 고객사로 미국의 젠데스크와 코세라, 독일의 도이치반, 일본의 닛케이 등을 들었다. 설립 7년 만에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딥엘은 독일의 유니콘,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통한다.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AI 기업 50’에도 이름을 올렸다. 쿠틸로브스키 대표에게 스타트업 운영상 고충을 물었다. 그는 조직 구성과 구성원 동기 부여, 비즈니스 모델의 세계화 등을 “극복해야 했던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회사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고용할 직원도 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딥엘 문화와 비즈니스에 적합한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죠. 또 조직 구성 이후 구성원의 동기부여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전 직원은 회사가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어떤 제품·서비스를 만들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동기부여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세계화하는 일도 쉽지 않았죠. 현지에 있는 팀원뿐 아니라 시장에서 나오는 피드백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무료 버전 외에 구독형 유료 버전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기업경영은 ‘산 넘어 산’이란 말이다. 이미 거대한 산을 넘은 쿠틸로브스키 대표에게 스타트업 종사자를 위한 조언을 구했다. 성장 노하우를 한 수 전해달라는 물음에 그는 ‘리더의 세 가지 기본 자세’를 언급했다. 그는 “리더는 세상의 수많은 변화에 개방적인 자세로 계속 공부해야 한다”며 “끊임없는 학습이 회사를 성장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디어나 도전 과제가 크고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대담하게 추진하길 바란다”며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용기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빅테크 같은 대형 경쟁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큰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제는 딥엘을 경쟁 상대로 삼고 추격해오는 기업도 적지 않다. 그들의 추격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묻자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기술력과 수익성, 고객 신뢰도, 지속적인 연구개발 등을 고루 갖춘 언어 AI 기업은 드물고 상당히 독특한 조합이다”라며 “게다가 기술 기반 기업인 딥엘은 수익성도 상당히 확보해 투자금 유치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즉답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AI 분야는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딥엘의 궁극적인 사명은 전 세계인의 언어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딥엘 솔루션을 이용해 원활하게 소통하길 꿈꾼다”며 “텍스트 측면에서는 딥엘 번역기와 딥엘 라이트가 의사소통을 돕고 있지만 음성 번역은 아직이다. 현재 후속 조치로서 딥엘 스피치를 부단히 개발하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쿠틸로브스키 대표 머릿속에는 딥엘 스피치 너머 또 다른 청사진도 있어 보였다. 그는 “일반적인 번역이 아니라 개인화된 번역을 지향한다”며 “사용자의 의도와 필요가 반영된 번역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뚝심 있게 말했다.

“끝나지 않은 여정”. 쿠틸로브스키 대표는 딥엘의 발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업의 여정을 기술적인 여정과 상업적인 여정으로 구분했다. 이어 “딥엘의 두 여정은 모두 끝나지 않았다”며 “지속적으로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상업성을 최적화하겠다”고 다짐의 말을 남겼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10호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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