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교육계에서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최근 디자인 사고 (Design Thinking)를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디자인 사고란 학습, 협업, 문제해결에 대한 사고방식과 접근 방식이다. 실제로 디자인 프로세스는 과제 식별, 정보 수집, 잠재적 솔루션 생성, 아이디어 개선, 솔루션 테스트를 위한 구조화된 프레임워크이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과과정을 운영하는 제주 국제학교 브랭섬홀 아시아가 개교 이래 디자인·기술 수업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를 에이든 하몬드(Aidan Hammond) 디자인·기술 총괄교사에게 들었다.
▎에이든 하몬드 브랭섬홀 아시아의 디자인·기술 프로그램 총괄교사(왼쪽에서 세 번째)와 교사진. |
|
“디자인·기술 커리큘럼에서는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즉, 사용자의 행동에 공감하고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더 나은 상황을 만들지 궁리해가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식, 기술, 리서치, 아이디어, 공감능력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총동원해 실제 활용하고, 이타주의와 협업을 배워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디자인·기술 수업의 목적과 학생들이 실제 가져갈 수 있는 인생 스킬셋에 대해 헤먼드 교사는 이와 같이 답했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12학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학년 수준에 맞춘 과제를 부여한다. 6~9학년까지는 필수과목이며, 10학년이 되면 5가지 특화 디자인 과목(제품디자인, 컴퓨터과학, 창업과 디자인, 로봇공학과 디자인,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다.그리고 학교는 코딩, 전자, CAD/CAM 기술(3D 프린팅, CNC 라우터, 레이저커팅), 패션·직물 디자인, 가구 디자인, 게임 개발 등 아이디어를 실체로 만드는 기술을 지도한다. 과정별로 학생들의 연구, 아이디어 발상, 창작, 솔루션을 발전시킨다. 이 과목들은 디플로마 프로그램(예)에서 고급 연구를 위한 기반이 되고, 더 나아가 차세대 인재들이 숙련된 연구자, 혁신적인 사고자, 능숙한 기술자로 성장하도록 유도한다.
▎브랭섬홀 아시아 11학년 학생들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CAD 소프트웨어와 CNC 라우터를 사용해 설계한 의자를 조립하고 있다. [브랭섬홀 아시아] |
|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협업을 가장 강조해요. 때로는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비밀로 하고 혼자 궁리하려 하기도 하기 때문이죠.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 평가, 조언하며 배울 수 있는 가치가 훨씬 큽니다.”특히 어떤 연구와 아이디어가 실용적이고 임팩트가 있을지 파악해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과정의 핵심이다. 하몬드 교사는 “무엇을 프로젝트로 할지 고민한 후 유닛을 만들고, 토론을 거치고 역할 분담을 하며, 시장조사까지 한 후 제조에 들어간다”며 “이후 시제품을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비즈니스 제안까지가 일련의 흐름이다”라고 설명했다.그래서 브랭섬홀 아시아의 제작소 공간은 여느 실험실, 공장 등을 방불케 한다. 센서와 로보틱스 등 전자 장비부터 목공용 장비, 3D프린터까지 있기 때문이다. 작업 중인 다양한 형태의 제조물도 선반에 가득하다.“교사들은 장비 사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안전을 위해 감독하에서 장비를 이용하게 해요. 디자인 수업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신청해 이용할 수 있게 해 접근성도 높였죠. 방과 후에도 아이들이 장비를 이용하려 이곳을 찾을 만큼 그들에게 동기와 열정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고 교사들은 보고 있어요.”이어 그는 한 10학년 학생유닛의 2개월에 걸친 최근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사용자 편의에 따라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랩톱 스탠드 개발 건이었다. 학생들은 우선 주요 랩톱 이용자를 파악하고 관련 선행연구를 조사했다. 그리고 세대별 손과 팔의 길이를 측정하고 손목터널증후군 등 현존하는 문제를 파악했다. 학생들은 설정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장조적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하몬드 교사는 “아이디어 스케치는 정교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는 그리는 과정에서 비판적·창의적 아이디어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도안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3D프린터로 부품을 출력하고 조립해나가며 시행착오를 거친다.“이 프로젝트의 혁신성은 랩톱 스탠드의 각도 조절에 롤링 스위치를 적용한 것이었어요. 몇 가지 각도만 가능했던 기존 제품에 비해 훨씬 다양한 각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했죠. 롤링 스위치는 기술적으로도 정교한 디자인이 요구됐는데 결국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냈죠.”하몬드 교사는 메이커스 공간 벽면 칠판에 가득한 프로젝트 관리 일정을 보여줬다. 실제 프로젝트별로 과정, 일정, 담당 학생, 추진 현황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실제 산업에서 프로젝트 관리가 중요한 것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교사들이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창업·기업가정신과도 연계
▎브랭섬홀 아시아는 2023년 남녀공학으로 본격 전환했다. 중등 과정의 8학년 남학생들 모습. [브랭섬홀 아시아] |
|
디자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몬드 교사에 따르면 10학년 이상 학생들도 80% 이상이 디자인 수업을 선택한다. 그는 “고학년들은 입시 준비에 대한 중압감도 있지만 한 학기 8개 과목 중 디자인 수업을 2개 정도 선택한다”며 “수업 만족도도 꽤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설립 초기부터 오랜 기간 디자인·기술 과목을 운영해온 덕분에 노하우와 손에 쥘 만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축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최근 교사진은 창업까지 아우르는 기업가정신 코스도 설계하고 있다.“제품 개발을 넘어 혁신과 시장까지 아우르는 기업가정신 과목은 유명 기업가들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실제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시장에 도전하도록 돕고 있어요. 비즈니스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죠. 그리고 실제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트’에 프로젝트를 론칭하기도 해요. 정말 학생들에게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교육자로서의 철학을 묻는 질문에 하몬드 교사는 본인의 성장과정과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류애라는 점을 강조했다.“저는 학부에서 예술학, 석사과정에서 응용언어학을 전공한 이상한 조합이죠. 그리고 한국에서 도자기를 배우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섬유예술가여서 어릴 때부터 아트와 디자인에 대해 많이 보고 접할 수 있었어요. 가정환경과 전공을 통해 디자인과 기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불완전하더라도 사람들의 불편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강조해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협업하느냐에 따라 점점 아이디어가 다듬어지고 더욱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혼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팀워크를 발휘하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하죠.”
※ 에이든 하몬드 총괄교사는…캐나다 NSCAD대 시각예술학 전공, 토론토대 OISE 교육학 전공, 호주 서던퀸즐랜드대 응용언어학 석사. 브랭섬홀 아시아를 포함해 한국의 국제학교와 대학에서 20년간 디자인 기술 및 시각예술을 가르치고 있다.
바비 리드, 브랭섬홀 아시아 운동·활동 디렉터 '1%, 1시간의 법칙'캐나다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으로 스포츠에 열정적인 교사가 최근 브랭섬홀 아시아에 합류했다. 바비 리드(Bobby Reed) 디렉터는 학생들이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하며 얻는 경험과 성장 개발 기회는 학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포츠·액티비티를 통해 학생들이 어떤 가치를 배워나갈 수 있는가. 나의 성장 과정에서 스포츠는 창의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체력적 성장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교류하는 수단이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의 베스트프렌드는 대부분 캐나다에서 같이 활동한 팀 동료들이다. 스포츠와 액티비티의 가장 큰 효용은 학생들이 탐험할 기회를 얻고 다양한 스킬셋을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스킬셋은 단순히 운동기술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판단력, 실패를 이겨내는 법, 상황을 즐기는 법 등 인생에서 중요한 터득법을 포함한다. 또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할지, 규율을 어떻게 해석하고 따라야 할지, 어떻게 모범을 보여 무리를 이끌어야 할지 등 끝이 없다.
디렉터로서 프로그램에서 가장 강조하는 지침은 무엇인가. 협업과 우수성이다. 내가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였을 때 연마한 것 중 하나가 협업에 대한 마인드셋이다. ‘항상 게임을 사랑하라', ‘경기장에 미소를 지으며 입장하고 미소를 지으며 떠나라', ‘어떤 상황에서도 훌륭한 팀 동료가 되라’ 등이다. 이런 마음이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게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는 경쟁이기 때문에 우수성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우수성은 누구에게는 우승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매일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경쟁에서 우수성을 확보하려면 자신을 밀어붙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경쟁 수준을 이해하고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매일매일의 1%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 1%씩만 나아지도록 노력한다면 1년이면 365% 성장한다. 1% 성장을 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매우 합리적인 목표다.
감정 조절에 아직 미숙한 유소년들은 게임에서 졌을 때 의기소침하거나 평정심을 잃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승리에 대한 압박을 관리하고 어떻게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코칭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은 이기려는 의도로 경쟁에 임한다. 하지만 늘 이길 수는 없다. 어느 날은 이기고 어느 날은 필연적으로 진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게임에 임할 때 ‘1시간 규칙’이란 게 있다. 게임 후 1시간 동안 게임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결과를 번복할 수 없지만 다음 게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시간 동안 오늘 경기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 패배에 대해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감정을 열정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이봐, 네가 이렇게 슬프거나 화가 나는 건 네가 이 게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야. 그건 좋은 일이야. 열정이 있다는 증거니까”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럼 아이들은 오늘의 패배 감정을 떨쳐내고 다음 경기를 준비할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다. 모든 스포츠는 98%가 정신력이고 2%가 체력이다.
브랭섬홀 아시아의 스포츠·액티비티를 위한 인프라와 공간을 소개해달라. 여기는 아이스링크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스하키는 우리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고 많은 투자와 도전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매우 흥분된다. 그리고 국제 대회를 할 수 있는 50m 수영장이 있고, 골프 프로그램을 위해 캠퍼스 내 히팅 데크, 퍼팅 그린도 있다. 골프도 LPGA, PGA 출신 훌륭한 코치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 외 테니스장, 풋살 코트, 축구장 등도 팬데믹 이후 새롭게 꾸몄다. 더불어 훌륭한 공연예술센터와 우수한 프로그램도 자랑거리다.
- 제주=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