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스토리텔링의 르네상스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큰 경사로 아직까지 국내외 미디어가 들썩이고 있다. 작가의 인터뷰를 찬찬히 훑어보면 문학이라는 플랫폼에서 글과 언어의 힘을 빌려 ‘연결’과 ‘감각’이라는 테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미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에서 진행한 로블락스 북토크 화면 캡처. / 사진:안선주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고 서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인류의 근본적인 갈망일지 모른다. 내가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메타버스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 현존하는 매체 중에 가장 많은 감각을 이용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더 파급력이 세고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고,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상태를 뜻한다. 언어는 한글, 알파벳 등 기호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같은 기호를 사용하여 글을 작성해도 읽는 사람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언어는 신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특히 동사(예: ‘말하다’) 같은 경우 그 단어가 작성된 기호를 읽는 동시에 그 동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체 부위(예: 입, 혀, 목)와 관련된 뇌파들이 작동한다고 한다. 가령, 아이들이 한글을 배울 때 관련 기호들이 체화되고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각자가 처한 맥락과 문화적 배경 등이 같이 저장되므로 언어는 결국 개인적인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강의를 들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이 때문에 한강 작가처럼 기호인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어 활자를 읽기만 해도 마치 실감 미디어인 것처럼 생생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활자를 통한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지 않거나 막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로만 소통하려 할 때 오해가 발생하기 쉬운 경험은 누구나 다 한 번쯤 느껴봤을 테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 서로 기준점을 맞추는 과정을 다지기(grounding)라고 한다. 즉,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이 서로 다름을 확인하고 중간 지점에서라도 만날 수 있도록 서로의 가치관과 태도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분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둘이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같이 나눈다면 이 다지기 과정을 훨씬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간단하게는 같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슬프거나 기쁜 감정선을 함께 느껴볼 수 있고, 여행을 같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처음 본 타인과 TV 프로그램을 갑자기 같이 시청한다거나 여행을 함께 가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른다. 메타버스가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공간에서 어떤 현상을 함께 보고, 듣고, 느끼며 공유한 경험은 제법 강렬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들을 증폭할 수 있다. 콘서트에 가서 많은 사람과 함께 가수의 라이브 공연을 즐기면 분명 집에서 듣던 음악보다 음질은 떨어질지 몰라도 훨씬 큰 감동을 느끼거나, 혼자 보는 영화보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보는 영화가 더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메타버스에서 많은 사람과 같은 가상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 사이의 기준점, 즉 공감을 통한 소통의 시작점이 발생한다. 물론, 이는 소통의 시작점일 뿐 대화 자체를 메타버스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시작조차 하지 못해 불발된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대화의 물꼬를 튼다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며 메타버스가 게임이나 유흥의 목적보다 많은 사람 사이의 소통과 연결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임을 이해할 수 있다.

문해력에 대한 시각의 차이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읽지 않아 문해력이 떨어지는 세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그 문해력을 측정하는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언어는 사람이 만든 기호이고 사람들이 이해하는 기호의 의미는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언어는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맞춤법도, 아예 사용되는 언어 자체도 변화를 피하기 힘들다. 분명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이제 남한과 북한은 서로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언어가 달라진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소통 방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어휘의 생성과 기존 어휘의 변형 등 한국어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는 결국 언어를 포함한 사람의 소통 방식을 여러 방면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는 과거에 비해 여러 형태로 변화해온 결과이고 그 변화는 우리 세대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어와 함께 소통 방식도 빠르게 진화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스웨덴에서 심사위원단이 직접 전화를 걸어 통보하는 것이 오래된 전통인데, 이 전통이 휴대폰과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를 만나 수난을 겪고 있다. 심사위원단인 줄도 모르고 계속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아 수상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다는 에피소드가 거의 매해 들려올 정도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는 번호는 거의 받지 않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스마트폰은 문자와 DM(direct messaging; 앱에서 사용자들끼리 주고받는 문자)을 위한 것이지 통화는 부수적 기능이 된 지 오래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 전통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기술의 발전으로 소통 방식이 변화한 것일까 변질된 것일까.

활자보다는 이미지를, 이미지보다는 영상을 선호하는 요즘 십 대 학생들을 보면 그 세대의 소통 언어는 정적인 활자의 기호보다 역동적인 실감형 미디어 콘텐트가 아닌가 싶다. 기성세대의 언어와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시대가, 그리고 그 시대에 적용되는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기성세대에게는 정신없고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메타버스 같은 실감형 매체들이 십 대들의 주요 소통 경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십 대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말한다면 역으로 실감형 매체를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은 실감형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들은 오디오북,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에서 책으로 전달되는 스토리텔링을 접한다. 최근에 CACHE 센터에서도 로블록스 매체를 통해 어린이들을 위한 북토크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참석한 아이들과 저자가 둘러앉아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이벤트였는데, 비디오게임과 영상에만 익숙한 줄 알았던 아이들이 북토크에 적극 참여하면서 책에서 소개된 내용을 주제로 활발한 토론을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스토리를 전달하는 매체만 진화했을 뿐, 사람이 스토리텔링으로 소통하고 서로 관계를 맺으려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반드시 활자로 전달되는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여러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다양한 매체로 전달되는 스토리텔링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11호 (2024.10.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