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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살롱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25) 아일라 위스키의 시작 보모어 

 

10년 전 처음 아일라에 갔을 때 만난 보모어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바닷바람과 갯내음 가득한 아일라 최초의 증류소 보모어를 다시 찾았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보모어 증류소.
아가일 공작과 캠벨타운

한때 스코틀랜드 서부 지역 전체를 소유했던 아가일(Argyll)이라는 귀족 가문이 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 서부 인버라레이(Inveraray) 성에서 자선 활동에 힘쓰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으로 남았지만, 영국 역사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스코틀랜드의 유력한 가문이다. 스코틀랜드는 클랜이라는 씨족 단위의 공동체로 사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아가일 공작은 그중 캠벨 씨족(Clan Campbell)의 수장 역할을 세습한다. 다양한 역경을 겪어온 이들은 청교도혁명 때 크롬웰의 반대편에 섰고, 명예혁명 때는 윌리엄 3세를 도왔다. 그 후 캠벨 가문은 충실히 영국을 도왔고, 명예혁명에서는 오렌지공 윌리엄의 편에 서서 가문을 부활했다. 이런 배경으로 캠벨 가문은 미국 드라마 [아웃랜더]의 시대적 배경인 자코바이트 반란에서 아예 잉글랜드 편에 서서 스코틀랜드 반란군을 진압했고 이 공으로 영국 최초의 원수 계급을 부여받은 큰 귀족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하에 있던 킨타이어반도의 지명도 캠벨타운(Campbelltown)이었고, 이곳에서 스프링뱅크를 포함한 수많은 위스키 증류소를 통해 캠벨타운 위스키 번영의 중심에 있었다. 그 후 이 캠벨 씨족으로부터 또 다른 위스키의 전설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바로 보모어(Bowmore)다!

아일라 위스키의 토대를 만든 다니엘 캠벨


▎절제된 피트 향과 스모키한 풍미가 어우러진 아일라를 대표하는 싱글 몰트위스키 보모어.
18세기 초반에 홀연 역사에 등장한 다니엘 캠벨은 아가일 공작 가문의 상속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문의 본거지인 인버라레이를 떠나 1726년 아일라와 주라섬을 매입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특히 아일라섬의 보모어에 애착을 가지고 이곳을 계획도시로 개발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황무지에 격자형 도로체계를 적용했고 학교와 관공서, 호텔과 상점 등 상업시설까지 갖춰 명실상부한 아일라의 가장 번화한 다운타운을 건설했다. 사실 서구 역사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귀족이라면 영지를 상속받지 못하는 귀족의 둘째 아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더 잃을 것이 없는 귀족의 둘째 아들로 구성된 전투 집단은 용맹했고, 신세계를 개척하는 십자군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혁신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고 이에 더하여 귀족의 차남이란 강력한 모티베이션이 있기에 새로운 영지를 갈망하는 십자군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자연발생적인 항구인 포트엘런이나 포트애스케이그에 의존했던 아일라섬은 바로 이런 다니엘 캠벨의 노력으로 섬의 중심부인 보모어가 개발되면서 차츰 제대로 된 도시의 면모를 갖춰나가게 되었다. 그의 사후 1779년 아일라 최초의 증류소가 이곳 보모어에 설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오늘의 보모어를 만들고 모든 아일라 위스키의 토대를 만들어준 다니엘 캠벨에게 영광의 헌사를 바치려 한다. 10년 전 처음 아일라에 갔을 때 만난 보모어 증류소의 직원은 위스키 이야기 이전에 다니엘 캠벨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그가 보모어라는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현재의 보모어, 아니 전체 아일라의 위스키 산업이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방문한 아일라의 여러 증류소에서는 위스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맛과 향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누구도 다니엘 캠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얄팍해진 세상인심에 조금은 서글펐지만,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서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이방인인 내가 그를 기억하고 있음을 안다면 다니엘도 뿌듯해하지 않을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파운드와 라운드 처치


▎바다를 서쪽으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언덕 아래에 자리한 보모어 다운타운의 풍경.
보모어 다운타운은 바다를 서쪽으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언덕 아래에 자리한다. 영국의 여느 작은 도시처럼 언덕 아래쪽에는 스쿨 스트리트가 있고, 중간에는 상업지구가 있다. 영주의 집이 자리할 만한 언덕 위는 하이스트리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 사이를 레인 몇 개가 수직으로 이 스트리트를 이어주고 있다. 보모어는 아일라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 메인 스트리트에는 무려 슈퍼마켓과 은행도 있다. 아일라를 떠나는 마지막 날, 택시비를 현금으로 정산하려고 10년 전에 왔을 때 쓰다 남은 파운드화를 사용하려 했더니 구권이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엘리자베스 여왕이 돌아가시고 아들인 찰스가 왕이 되어 화폐가 새로 발행된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한 나라에 여러 개의 은행권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돌아가신 여왕의 초상이 있는 구권은 받지 않는다니 영국은 정말 갈수록 이해하기 힘든 나라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이곳에서 우선적으로 다 쓰고 와야 한다. 런던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고 한국에 돌아와서 환전하려면 20% 이상의 수수료를 떼기 때문이다.

아무튼 바닷가의 작은 보모어 항 바로 앞에는 슈퍼마켓과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고, 그 옆엔 오늘의 목적지인 보모어 증류소가 있다. 아일라섬을 떠나는 날의 마지막 일정이 보모어 증류소인지라 내 기억 속에 아일라를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기 위해 보모어 다운타운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또다시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이 섬을 떠난다는 아쉬움으로 계속 걷다 보니 바닷가에서 언덕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더 보모어의 다운타운이 환하게 보였고, 그만큼 아쉬움도 더 깊어졌다. 한참을 올라가 맨 위쪽에 있는 하이 스트리트에 다다르니 조금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 하나 있다. 검색해보니 보모어의 유명한 둥근 교회, 즉 라운드 처치였다. 교회는 언덕 위에 우뚝 서 보모어 마을 전체를 내려다본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증류소에 줄지어 늘어선 오크통. 바닷바람과 짭조름한 공기가 위스키에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
원래 영국 도시에서 하이 스트리트는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방어가 쉬워 영주들의 성이 자리한다. 하지만 다니엘 캠벨은 이곳에 영주의 성 대신 교회를 세웠고, 이제는 보모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런 중세 교회의 라운드 건축은 구석진 곳에 악마가 숨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보모어의 라운드 처치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원형 구조를 가진 교회라 우주선처럼 보였다. 그래도 원형이라서 숨을 곳이 없다고 하니 내가 악마는 아니지만 왠지 답답했다. 어릴 적 유원지에서 보았던 물방개 뽑기 놀이가 생각났다. 동그란 양철대야의 가장자리가 칸칸이 나뉘어져 번호가 있고, 그 한 칸 한 칸이 다 물방개가 숨을 곳이던 뽑기 놀이, 어쩌다 물방개가 준 행운으로 캐러멜이라도 한 통 당첨되면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성악설을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원형이라도 어디엔가 숨을 곳을 만들어주는 교회가 있다면 나도 한 번 다녀보고 싶다. 다만 지금의 내게는 캐러멜보다는 영국식 캐러멜인 토피 맛이 나는 위스키 한 잔이 더 간절하다.

보모어에 다시 서다


▎언덕 위에 우뚝 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보모어의 랜드마크 라운드 처치.
유명한 보모어 호텔의 바로 앞에는 ‘Islay Registration Office’라는 관공서가 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아일라 면사무소쯤 되지 않을까? 관공서 근처에 맛집이 있다는 것은 한국만의 정서인 듯 이곳은 그저 조용한 동네이다. 위스키의 컬렉션이 대단하다고 소문난 보모어 호텔 앞까지 왔으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컬렉션이라도 구경하자 싶어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 한가해진 시각, 주인인 듯한 노부부는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준 커피 메뉴를 보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시키며, 위스키 메뉴를 보여달라고 하니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약 5cm 두께의 위스키 메뉴를 건네준다. 마음 같아서는 몇 잔 시켜서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전에 비해서 착한 가격도 아니고 곧 보모어 증류소 투어에 참가할 시간이라 참기로 했다. 아직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순수한 곳이지만 아일라섬 전반에서 아주 살짝 느껴진 상업적인 냄새는 10년 전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보모어 증류소로 들어섰다. 얼마 만인가. 특유의 바닷바람과 갯내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보모어 선착장으로 먼저 가서 바닷바람도 실컷 쐬고, 줄지어 늘어선 오크통 사이로 보이는 증류소의 외관을 열심히 사진으로 남겼다. 이 모습은 10년 전의 미장센과 완벽히 일치한다. 하지만 곧 떠나야 할 시간이라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오늘은 온전히 보모어를 즐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다니엘 캠벨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 조금 섭섭했지만, 오늘의 가이드인 롭은 무척 재미있는 친구였다. 마지막 날의 플렉스로 조금 비싼 숙성창고 투어를 신청했는데, 숙성 기간이 거의 20년 전후인 다양한 컬러의 원주를 시음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플로어 몰팅으로 만들고 이를 버번 캐스크에 19년 동안 숙성한 것인데, 헤븐힐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한 것이라 더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위스키를 시음하는데, 순위를 한번 매겨보라는 롭의 소리가 허공에 울리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까 느꼈던 아일라섬 전체의 상업화, 다니엘 캠벨의 생각, 보모어 앞의 갯내음만 반복해서 낡은 필름영화처럼 내 눈앞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은 위스키를 시음한 후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내가 위스키를 평가하는 기준은 합격과 불합격뿐이다. 내가 뭐라고 감히 위스키에 점수를 매기고 줄을 세운다는 말인가?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원액과 그것을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위스키에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그리고 내게는 당연하게도 불합격인 위스키란 없다. 이곳 아일라에선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알록달록한 장식이 인상적인 스코트랜드 은행 앞의 우체통.


마지막은 아일라섬에서 가장 유명한 보모어 바에 들렀다. 바닷가가 보이는 증류소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한 잔의 시음이 포함되었으나 편하게 마시라며 롭도 내 옆에 털썩 앉아버린다. 시계를 보니 비행기를 타려면 세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아일라 공항에는 30분 전에만 도착하면 수속과 보안 검사, 탑승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최근 인천공항의 수속 대란을 보니 아일라 공항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무튼 남은 두 시간여를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벽난로가 있는 보모어 바에서 그날 만난 묘한 일행들과 함께 위스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혼자서 아일라섬까지 온 독일 위스키 오타쿠와 레어템을 주제로 배틀을 했고, 주말을 맞아 자기 회사 소속 증류소에 견학을 왔다는 일본 아가씨 세 명을 만났다. 빔산토리의 파리·런던·마드리드 주재원인 그녀들의 일에 대한 열정에 또 놀랐다. 하지만 나도 열정으론 지지 않는 젊은이이고, 그들보다 더 험난한 여정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나도 마음만큼은 ‘스틸 영’이다. 마지막으로 나보다 더 험난했을 다니엘 캠벨의 생애를 위해서도 슬란지바! 건배!


▎증류소에서 만난 일행들과 위스키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벽난로가 있는 보모어 바.


※ 박병진 - 30여 년간 IBM, SAP, SK 등 국내 및 외국계 기업,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망라하여 임원 및 CEO로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위스키, 스틸 영>의 저자로 포브스와 동아일보에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 ‘박병진의 광화문살롱’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 살롱’의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현재 요리, 여행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내는 출판사 ‘북스 레브쿠헨’ 대표와 어린이 창의력 플랫폼인 ‘테일트리 코리아’의 대표이사로서 유쾌한 N잡러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

202503호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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