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멜랑콜리아'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멜랑콜리아>(2011)는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1956~)가 제작한 영화다. ‘멜랑콜리아(melancholia)’는 이 영화 속에서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의 이름이자 ‘우울증’이라는 뜻이 있는 영어 일반명사다. <멜랑콜리아>에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이 매우 중요한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영화 [멜랑콜리아]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2011년에도 크게 흥행하지 못한 이 영화가 2025년 2월 13일 현재 서울 등 몇몇 대도시에서 재개봉되고 있다. 영화 1부에 나오는 여주인공 저스틴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그 맥락에서 결혼식을 진행한다. 그런데 그녀의 결혼식이 열리는 화려한 저택에서 하객들이 평범치 않게 처신한다. 그들은 주로 현세적 삶의 가치와 관련되어 행동한다. 예를 들어 그녀의 회사 사장은 그녀에게 자신이 맡긴 업무를 해결하려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녀를 압박한다! 결혼식 과정에서 그녀가 느끼는 다양한 차원의 스트레스를 영화는 절제된 방식으로 간략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의 깊어가는 우울증과 그에 따른 그녀의 돌출적 이상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 속 결혼식은 결국 파탄이 났다. 그녀는 이후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인다. 그런 그녀를 원망하는 그녀의 형부와 그녀를 이해하려 하며 그녀를 돕는 언니의 이야기가 영화의 2부에서 펼쳐지다가 엄청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구를 향해 거대한 행성이 날아온다! 이 상황에서 우울증 환자 저스틴은 상태가 좋아지고, 그녀의 형부와 언니는 몹시 불안해한다. 형부는 일상에서 과학을 믿고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서, 지구 종말 따위를 믿지 않는 합리주의자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예상치 못한 그의 이상행동을 보여준다. 영화는 거대한 행성과 지구가 충돌하며 끝나는데, 그 순간의 저스틴은 초연하며, 늘 예의 바르고 사회성이 있는 그녀의 언니는 미친 듯 울며 두려워한다.

8분쯤 되는 영화의 긴 도입부에서는 어떤 대사도 없는 매우 실험적 영상이 제시되는데, 이 부분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의 상당 부분이 들린다. 충돌이 있는 엔딩 장면에서도 그러하다. 클래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영화는 많지만, 연주 시간이 11분쯤 되는 단 한 곡을 거의 통째로, 뮤직비디오처럼 사용하는 영화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는 1865년 독일 뮌헨에서 초연된 바그너의 오페라다. 바그너는 직접 쓴 대본 위에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대본은 동명의 중세 소설과 이 소설이 따르고 있는 중세 신화에 기초했다. 이 신화는 영국의 ‘아서왕 이야기’, ‘성배 이야기’와 함께 중세 유럽에서 무척 인기 있는 이야기 중 하나였다.

기사 트리스탄은 자신이 충성하는 왕을 위해 타국에서 온 기사와 결투해 그를 죽이지만, 자신도 큰 상처를 입는다. 상처는 그 기사를 보낸 나라의 공주만이 치료할 수 있다. 트리스탄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공주를 찾아가 치료를 부탁한다. 공주는 트리스탄의 정체를 알고 죽이려다가 그의 눈을 보고 살의를 거둔다. 치료를 받은 트리스탄이 돌아가 자신이 모시는 왕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공주의 미모를 칭송한다. 왕이 트리스탄을 보내 공주에게 대신 청혼을 하고, 공주를 모셔 오는 배에 탄 트리스탄이 공주의 시녀에게 받은 사랑의 묘약을 먹게 된다. 공주도 같은 약을 먹고 둘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 공주는 왕과 결혼하지만, 트리스탄과 불륜을 이어간다. 두 사람의 불륜은 결국 들키고, 왕의 부하가 트리스탄을 찔러 중상을 입힌다. 상처 입은 트리스탄이 떠나고 그를 찾아 나선 공주도 그가 숨어 있는 곳에 와서 연인은 서로 포옹한 채 죽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음악적으로는 매우 어렵고 난해한 오페라다.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미망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은 막말을 해가며 이 오페라를 혹평했다. 초연을 담당했던 테너 루트비히 슈노르는 이 곡과 함께 바그너의 부담 가는 오페라들에서 열연했는데, 29살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후 저주받은 작품이라는 괴담이 생겼고, 연주를 흔쾌히 맡아줄 가수를 구하기가 어려워서인지, 공연이 잘 안되었다. 사실 바그너의 모든 작품은 성악가들을 육체적으로 혹사하는 4∼5시간의 대작이다. 특히 이 오페라에는 매우 진한 성애 장면과 그에 부합하는 직설적인 가사가 많아서 분노한 관객들이 중간에 나오기도 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은 실제 부부이거나 연인인 사람들만이 맡으려고 했다. 가수 섭외 과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는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여러 요인 중에서 바그너 스스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바그너는 마틸데 베젠동크라는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녀는 바그너를 후원했던 후원자의 아내였다. 바그너는 파렴치한 짓을 벌인 셈이지만, 마틸데의 남편은 훌륭한 사업가이자 매우 관용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예술가의 치기 어린 상태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186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 당시 이졸데 역할을 맡았던 소프라노 말비나 슈노르. 그녀는 트리스탄 역할을 맡았던 루트비히 슈노르의 아내였다. 말비나는 1865년 29살에 사망한 남편을 잊지 못해 1904년 사망할 때까지 주술사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던 1850년대 후반, 바그너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망명 중이었다. 1849년, 드레스덴에서 일어났던 봉기를 주모한 바그너는 11년 동안 조국인 독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런 정치적 패배 상태에서 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병적인 낭만주의 음악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흔히 감미롭고 달콤한 음악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한 이해도 아니다. 낭만주의는 매우 복합적 현상이다.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가 그러하다.

독일에서 낭만주의는 1814년 이후에 등장했다. 그해에 나폴레옹이 패했고 그가 유럽에 퍼트렸던 프랑스 계몽주의는 그와 함께 후퇴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공리주의, 세속화, 진보 등 프랑스적 계몽 이념과 어울리지 못했고 프랑스식 근대 유럽이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를 꿈꿨다. 이러한 반불 낭만주의는 친불 낭만주의와 달리 일종의 퇴행이기도 했다. 친불 낭만주의는 독일인임에도 프랑스인들, 특히 나폴레옹을 해방자로 여겼던 이들의 심리 상태였다.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에 있었던 군인들의 나폴레옹에 대한 열광을 노래했다. 이 가곡의 후반부에서 독일인인 슈만은 적대 국가인 프랑스의 국가를 인용했다. 슈만의 놀라운 행위 기저에는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지지 심리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대한 이런 향수를 노래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좀 있다. 젊은 바그너도 한때는 이 길을 갔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대접받지 못한 중년 이후의 바그너는 이런저런 이유와 함께 반불 낭만주의자가 되어갔다.

친불이든 반불이든 낭만주의자들에게 현실은 끔찍했다. 현실이 싫었던 그들 중 일부는 위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고, 다른 이들은 아예 현실에서 도피했다. 향수를 표현했던 이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공안 통치가 싫었다. 그들은 1848년 이전의 낭만주의자들이다.

상술했듯이 바그너는 1849년에 독일을 떴다. 1851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현실 정치에 신물을 느낀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죽음을 동경했고 현실을 작품에서 철저히 지웠다. 2막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사랑의 밤’ 2중창에서 바그너는 가수들에게 “우리를 덮어주오, 사랑의 밤이여, 내가 살아 있음을 잊게 해주오. 그러면 우리를 속게 했던 거짓된 세상이 사라지고 나 자신이 세계가 될지니”라고 노래하게 했다. <멜랑콜리아>의 감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런 염세주의적/낭만주의적 맥락을 알고 있었을까.

매년 50만 톤에 이르는 천체물들이 지구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중 대부분은 유성으로 변하면서 타서 없어지지만, 커다란 운석들은 다 타지 않고 지구로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은 ‘2024 YR4’라는 이름의 소행성을 발견했다. 이 소행성이 지금으로부터 7년 뒤인 2032년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1.3%인 것으로 계산되었다. 그런데 지난 2월 8일에는 그 확률이 2.2%가 되었다. 일주일 만에 2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지구 주위를 도는 소행성 전체와 지구의 충돌 확률이 평균 0.7% 수준에 머무는 것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높은 수치이긴 하다. ‘2024 YR4’의 지름은 40∼100m로 추정된다. 대형 건물과 크기가 비슷하다. 이 행성은 현재 지구에서 약 4500만㎞ 떨어져 있고, 지구 충돌 시 반경 수 킬로미터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충돌 확률의 값에는 변동성이 있다고 한다. 현재 2.2%인 값이 0%로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더 있다. 미국 배우들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출현했던 (2021)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임박한 파국에 서로 다르게 대응하는 세상 사람들의 난맥상을 잘 보여주었다. 인류는 당분간 소행성 충돌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위기가 혹시 있을까. 에 삽입된 노래 ‘Just Look Up’의 한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끝낸다. “빌어먹을 과학자들의 말 좀 들어요. 우리 진짜 망하게 되었다고요. … 지금 일어나는 일이 현실이에요.”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503호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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