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건 똑똑하고 잘난 자식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정작 물어보고 싶고, 이것저것 시키고 싶은 자식들은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나이 든 부모가 맘 편히 기댈 언덕은 없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똑똑한 비서 ‘똑비’가 탄생했다. 5060세대를 위한 개인 비서 앱을 만든 함동수 토끼와두꺼비 대표를 만나 사업 방향과 비전을 물었다.
“귀찮다고 자꾸 미루는 우리 아들보다 똑비가 낫네요.”시니어들을 위한 개인 비서 앱 ‘똑비’가 5060세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시니어 고객은 똑비 앱에서 장보기를 비롯해 항공권·영화 예매, 맛집이나 여행지 추천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채팅으로 요청할 수 있다.똑비를 만든 함동수 토끼와두꺼비 대표는 “우리 고객들은 은퇴 후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을 즐기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쿠팡 앱 정도는 이제 많이 사용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여행지 정보를 찾거나 맛집 선별, 비행기 예매 등은 어렵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대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똑비라는 사업 아이템은 개인적 경험에서 얻었다. 실제로 부모님에게서 다양한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함 대표는 “’즉석밥 좀 시켜라’, ‘베트남 커피 사다놓아라’하는 요청을 많이 하는데 제가 제때제때 들어드리지 못했다”며 “회의 중에 동료들도 부모님으로부터 ‘2시간 있으면 보령에 도착하는데 맛집 좀 찾아달라’는 등의 전화를 받는 것을 보고 시니어 비서 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회사명 토끼와두꺼비도 시니어 고객들이 자식처럼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 그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토끼 같은 딸이라는 표현에서 힌트를 얻어 사명을 지었다”며 “사명을 ‘토끼와 거북이’나 ‘토끼와 개구리’로 잘못 말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며 웃었다.함 대표는 미국 보스턴대 출신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을 공부하다 함께 연구하던 대학원 팀원들과 창업에 나섰다. 처음엔 비서 앱이 아닌 시니어 연구소를 차렸다.“대학원에서 데이터 역량에 대해 배우면서 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졸업 논문 주제를 ‘세대별 디지털 리터러시’로 정해 쓰면서 처음에는 시니어 데이터 연구소인 ‘아몬드에이지랩’을 창업했죠. 고령 세대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내고 컨설팅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시니어 관련 데이터가 적다 보니 설문조사나 인터뷰에 의존하게 됐고, 점차 한계에 부딪히게 됐어요. 마침 팬데믹까지 터졌는데, 한 카드사가 시니어 세대의 카드 이용 내역을 토대로 보고서를 낸 것을 봤어요. 보고서를 보니 우리 인사이트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죠.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부모님의 다양한 요청 전화를 꾸준히 받는 저나 동료들을 보면서 대행 서비스를 떠올렸습니다.”
5060 여성이 충성고객똑비의 주요 고객은 5060세대 여성이다. 함 대표는 “서비스 초반에 서울 강남 사모님들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났고, 실제 고객 다수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5060여성”이라며 “실제로 다른 시니어 헬스케어 기업들과 달리 액티브 시니어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70대 고객은 생각보다 서비스 이용 경험이 적다는 게 함 대표의 전언이다. 그는 “70대분들은 평소 잘 가는 특정 마트에서 정해진 물품을 사는 식으로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이 정형화돼 있어, 대행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별로 없는 편”이라고 부연했다.남성 고객은 극과 극인 상황이다. 여성 고객보다 수는 적지만, 앱을 잘 이용하면 헤비유저가 되는 식이다. 함 대표는 “남성 고객들에겐 ‘난 도움 필요 없어, 내가 할 수 있어’ 하는 식으로 자기효능감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반해 여성 고객들은 부탁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고 구분해 설명했다.실제로 똑비는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취향까지 반영했다. 함 대표는 “기본적으로 앱 글자 크기부터 시원시원하고, 최대한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려고 많이 고민했다”며 “채팅창은 고객들이 카카오톡에 익숙하다는 점을 반영하면서도 투박하지 않도록 미학적인 면까지 살렸다”고 전했다.링크를 두려워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맛집 추천 방식도 고전적이다. 그는 “젊은 사람이 대상이라면 네이버 예약이나 캐치테이블 링크를 보내면 간편한데, 시니어들은 링크 누르는 것을 피싱 범죄 등을 떠올리며 꺼린다”며 “우리는 식당 전화번호, 주소를 보내드린다”고 설명했다.똑비를 이용하려면 월 회비 또는 연회비를 내야 한다. 가장 많은 요청은 온라인쇼핑이다. 함 대표는 똑비 서비스에 대해 “투자 조언 등 안 되는 것 빼고 다 해드린다”면서도 “다만, 고객 리스트 정리나 파워포인트 작성 등 개인 업무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대행 서비스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장보기 서비스의 경우 결제는 무통장 입금이나 카드 결제 모두 가능하다. 함 대표는 “고객들이 초반에는 무통장 입금을 이용하다가 서비스를 몇 번 경험하고 나선 카드를 등록해놓고 편히 쓰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그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묻자, 함 대표는 회원이 입원해 있던 병원을 전원시켜 준 일을 꼽았다.“회원 한 분이 강남성모병원에서 대전 지역 병원으로 전원해야 했는데, 아들이 데리러 오다가 갑자기 쓰러진 거예요. 그런데 이미 퇴원 수속을 밟은 상황이라서 기존 병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지요. 아픈 분이 대전까지 혼자 가야 했으니, 갑자기 닥친 상황에 막막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다 ‘생각난 게 똑비밖에 없었다’며 우리에게 연락이 왔어요. 급히 병원 동행 서비스를 불러 안전하게 전원을 도와드렸습니다. 나중에 아들도 괜찮아졌다는 얘길 들었어요.”함 대표는 “똑비가 자식보다 낫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고 전했다. 때로는 회원 가족들로부터 ‘감사의 뜻으로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를 묻는 이메일을 받기도 한다.“일본 미야코지마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은데 여행 준비를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고객 취향대로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드렸죠. 그런데 얼마 후 그분 며느님이 ‘어떤 곳인 줄 알고 그런 걸 부탁하느냐’며 취소하라고 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며칠이 지나자 다시 연락이 왔어요. ‘아이들이 바쁜지 아직도 예약하지 않고 있는데, 그냥 다시 해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죠. 당연히 도와드렸어요. 여행 계획서까지 자녀분들께 보내드렸고, 여행 다녀온 후에는 며느님도 만족해하며 ‘젊은 직장인들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정말 뿌듯했습니다.”현재 똑비는 45세 미만 고객에게는 서비스하지 않는다. 함 대표는 “추천 데이터가 5060에 맞춰져 있다”며 “비행기 항공권의 경우, 어르신들은 최저가보다는 국적기를 선호하는 등 이분들의 취향이 서비스에 많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젠가 사업 규모가 더 확장되면 고객 연령대도 넓힐 수 있겠지만 당장은 시니어만을 위한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부연했다.똑비는 전형적인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대면 서비스다. 감정노동자들을 자극하는 소위 ‘불량고객’은 없을까. 함 대표는 “아무래도 회원들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품위 있는 분이 많다 보니 비매너 고객은 드물다”면서도 “가끔 채팅창에서 반말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도 실제 상담원이 아닌 인공지능(AI)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실제로 똑비 대화창에선 비서학과 출신의 상담원들이 회원들을 응대한다. AI 비서 같은 기술이 트렌드라지만, 시니어 고객들은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는 “내부적으로 AI를 활용한 툴도 있지만 회원들과 소통할 때는 최대한 사람이 응대한다라는 것을 일깨워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B2C 사업에 집중지난 2024년에는 메트라이프생명, 삼성화재 등 보험사와 협업하며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 집중했다. 함 대표는 “보험사에서 우리 서비스를 고객에게 부가서비스로 제공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고, 우리도 안정적인 매출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협업을 결정했다”며 “보험 가입자에게 똑비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하고, 그 비용을 보험사가 지불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본연의 B2C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똑비를 운영하는 토끼와두꺼비의 누적 투자금액은 현재 10억원을 조금 넘겼다. 함 대표는 “투자자들이 우리 서비스 니즈에 대해 공감해주신 게 컸다”며 “시니어 앱들의 타깃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데 똑비는 5060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또 시니어 관련 스타트업들이 아직도 헬스케어 분야를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플랫폼 중심이라는 점에서 확장 가능성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지난해에는 개방형 혁신 프로그램인 삼성금융 ‘C-Lab 아웃사이드’ 본선 진출사로도 선정됐다. 이에 따라 삼성금융 실무부서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그동안 ‘똑비가 효자’라는 입소문에 의존해왔다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케팅에도 힘쓸 예정이다. 함 대표는 “사업 검증은 이제 마쳤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확장에 나서야 할 단계다. 시니어 시장에 맞춘 고객 확보나 마케팅 해법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며 “일단 올해 어버이날을 기점으로 마케팅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다만, 경기침체 상황에서 시니어 사업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는 “시니어 관련 사업을 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마케팅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시니어들의 자산이 큰 것은 맞지만, 은퇴 후에 그동안 모아놓은 것을 쓰면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 데 굉장히 신중하다”고 털어놨다. 스타트업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배경이다.함 대표는 똑비의 비전을 ‘1000만 베이비부머가 다 쓰는 앱’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니어 고객들이 자녀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자녀들이 귀찮아하고, 그러다 보면 서운해하신다”며 “회원들이 좀 더 당당하게,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남은 삶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전했다.- 이정은 기자 lee.jeongeun2@joongang.co.kr _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