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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가치 담은 클래식 복식의 연장 

초보자에게는 편하게 입는 밸머칸 권장… 브랜드 도드라지면 어색해
Fashion & Passion 겨울 정장의 완성, 오버코트 A to Z  

글■남훈 패션칼럼니스트
추위 속에 빛을 발하는 멋쟁이가 있다. 겨울 남성복을 대표하는 오버코트를 제대로 갖춰 입었기 때문이다. 오버코트라고 다 같은 오버코트는 아니다. 내게 꼭 맞는 오버코트를 찾기 위한 전문가의 조언.

소재와 색상에 따라 오버코트의 느낌은 무척 달라진다.

역사적 의미에서 품위 있는 신사의 옷차림이란 장인의 기예로 만든 슈트 혹은 재킷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클래식 복식을 의미했다.

하지만 남성복이라는 우주 속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이 두 아이템도 계절을 대처하는 방식에서는 어느 정도 유연한 변화를 주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여름에는 통풍성이 좋은 리넨이나 모헤어를 함유한 가벼운 슈트를 입어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반대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캐시미어 재질의 블레이저나 오버코트를 통해 보온성을 높인다. 전통적으로 겨울 거리를 뒤덮는 신사들의 옷차림은 갖가지 소재와 색상의 코트가 더해져 추운 날씨와 대조되는 넉넉한 감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의 겨울 풍경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어느 건물이든 충분히 구비한 히터,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보유한 자동차 등 산업문명의 발전은 겨울에 대처하는 남성들의 옷차림마저 변화시켰다. 비유하자면 슈트나 재킷 위에 남성이 걸치는 이 시대의 코트는 여성의 모피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아름다운 드레스 위에 입는 여성의 모피가 자신만의 스타일 감각을 완성해주는 아이템으로 진화했듯, 이제 남성의 코트도 단지 슈트나 재킷을 보호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실용적 목적만을 위해 복무하지는 않는다.

한 남성이 입은 의상 전체를 가려버리는 것이 코트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코트의 이미지는 더욱 단일하면서 강력한 상징을 발산하기도 한다. 특히 클래식 슈트만큼 유서 깊은 클래식 코트의 올바른 디테일이나 아름다운 실루엣을 제대로 표현하는 신사라면 비록 겉으로는 그 내부가 드러나지 않지만 충분히 클래식 아이템을 조화롭게 배치한 내면의 풍경까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버코트의 역사
- “19세기 이후 무릎 길이 정도로 일반화”


원래 ‘코트(Coat)’라고 하면 남성이나 여성이 입는 상의를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단어로, 흔히 재킷이라고 부르는 아이템도 사실 정확한 명칭은 ‘스포츠코트(Sportcoat)’가 옳다. 그 어원은 겉옷을 뜻하는 게르만어 ‘코초(Kozzo)’라고 하며, 중세 사람들이 몸을 감싸듯 입었던 로마식 튜닉형 의복을 ‘Cote 혹은 Cotte’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외투의 개념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소재는 시대에 따라 항상 업그레이드됐다. 길이도 처음에는 허리 정도에 이르는 상의였지만, 19세기 이후에는 슈트나 재킷과 독립적인 오버코트로서의 개념이 정립되면서 무릎길이 정도로 일반화했다. 물론 턱시도나 슈트 같은 남성복의 대표적 아이템이 영국 귀족들의 군복에서 진화한 것이 실존하는 역사이듯, 이 오버코트의 디테일 역시 군대적 상징으로부터 수용됐다.

체스터필드(Chesterfield)처럼 매우 고상해 보이는 오버코트는 19세기 프록코트(Frock coat: 현대적 의미의 슈트 이전의 정장 개념을 가졌던 복식으로, 무릎 길이의 검정 혹은 회색 상의에 그것과 다른 색상의 회색이나 검정 스트라이프 또는 체크무늬 바지를 입는다)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캐주얼한 오버코트와 레인코트는 어깨장식, 벨트, 끝이 뾰족한 옷깃, 더블 브레스티드 같은 세심하고도 예민한 장식을 포함한다. 이러한 장식들은 군인용 코트에서 유래했음을 알리는 선명한 흔적이다. 또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오버코트의 길이는 무릎부터 바지 끝부분에 이르는 등 그야말로 다양해졌고, 실루엣 또한 몸에 딱 맞는 것부터 담요나 텐트처럼 몸을 풍성하게 덮는 스타일까지 다양해졌다.

그러나 슈트 깃을 방불케 하는 옷깃, 싱글 또는 더블 브레스티드, 그리고 가운데만 뒷트임을 주는 센터벤트 같은 디테일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스타일을 혼합한 코트도 많이 나왔지만, 클래식 스타일에 가장 가까운 코트가 역시 오래가기 때문이다.

클래식 오버코트 스타일
- “우아한 채스터필드에서 자유분방한 트렌치코트까지 다양”



오버코트는 겨울 남자의 몸을 감싸는 또 하나의 피부다.
남성을 위한 코트의 옵션 역시 수백 년 전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한 클래식한 스타일부터 클래식 스타일을 어느 정도 변형한 현대적인 오버코트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오버코트는 클래식 스타일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나치게 빠른 유행이나 브랜드보다 정말 좋은 품질의 옷에 관심을 기울이는 남성이라면 다음과 같은 클래식 코트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체스터필드(Chesterfield) = 빅토리안 시대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귀족 체스터필드 백작의 이름을 딴 드레시한 코트로 일반적인 슈트나 재킷 차림은 물론이고 턱시도 같은 예복에도 입을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스타일이다.

체스터필드는 짧은 라펠이 특징인데, 전통적으로 옅은 색상의 코트와 대비되게 깃 상단은 검정이나 갈색 벨벳으로 만든다. 이 벨벳 장식은 프랑스혁명 때 희생당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뜻에서 달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체스터필드는 신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코트로 여겨지기도 한다.

소재는 일반적으로 헤링본(herringbone: 안정하게 균형 잡힌 무늬의 직물), 차콜그레이·네이비블루의 코버트울(covert wool: 능직으로 짠 양모)을 쓰며, 더블 브레스티드 체스터필드에는 단추가 밖으로 드러나 있다.

▶밸머칸(Balmacaan) = 이 코트를 보고 형사 콜롬보를 연상하는 코트 초보자에게 특히 권할 만한 스타일이다. 슈트와 재킷 차림 모두 잘 어울리며 특별한 규칙 없이도 마음 편하게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밸머칸 코트는 트렌치코트와 더불어 레인코트의 대명사였으나 요즘에는 가장 대중적 코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둥근 어깨의 래글런 소매, 커프스 장식, 이중여밈은 밸머칸 코트를 식별하는 결정적 힌트다.

▶폴로(Polo) = 그야말로 고전적인 대학생용 코트로 1910년 브룩스 브러더스가 영국에서 들여와 미국에 소개한 후 대중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폴로 경기를 위해 미국에 온 영국 선수들이 휴식시간에 입던 코트를 본 미국 아이비리그 선수들이 따라 입기 시작했다고 한다.

폴로 코트는 무릎 바로 밑까지 재단되는데, 보통 허리 부분에 주머니 덮개가, 뒷면에는 하프 벨트가 있다. 폴로 코트는 하프 벨트가 보여주는 스포티한 장식과 고매한 재단 때문에 캐주얼웨어는 물론 정장용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트렌치(Trench) = 런던의 버버리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인들을 위해 만든 레인코트다. 원래는 면 개버딘으로 만든 더블 브레스티드로 출발했기 때문에 드레시하기보다 군인 같은 강직한 느낌을 준다. 고전적 형태의 트렌치코트는 크기가 넉넉하고 라펠이 넓으며, 어깨장식·손목끈·헐렁한 벨트 같은 밀리터리룩 요소도 함께 섞여 있다.

말하자면 트렌치코트는 처음에는 방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레인코트로만 여겨졌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형태가 자유분방해진 것이다. 싱글이든 더블이든 모두 사계절용으로 입을 수 있게 단추가 밖에 달려 있고, 안감에는 지퍼가 달려 있다.

욕심내야 할 당신만의 코트
- “남성 의상을 마무리하는 품위의 상징”



오버코트는 자신의 신체가 가진 실루엣이 잘 드러나도록 입어야 한다.
순수하게 기능적인 면만 생각한다면 먼저 봄부터 겨울까지 입을 수 있는, 안감에 지퍼나 단추가 달린 레인코트는 분명 필요하다. 레인코트는 추운 날씨에도, 따뜻한 날씨에도 입을 수 있는 실용성이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슈트나 재킷을 기본적인 드레스코드로 적용하는 사람에게 가장 다용도로 활용되는 코트는 모 혹은 캐시미어 소재의 싱글 브레스티드 오버코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버코트라고 해서 마치 바게트 빵을 담은 종이봉지처럼 펑퍼짐하게 입어서는 안 되고, 우리 몸을 가장 아름답게 반영한 실루엣을 지녀야 한다. 이 스타일은 정통 클래식 슈트를 입은 후 그 위에 입으면 완벽한 이미지를 창출할 것이고, 때로는 재킷 없이 셔츠나 니트 위에 스포츠코트 개념으로 입을 수도 있다.

또 파티를 위한 턱시도 위에 입어도 된다. 이와 같은 오버코트는 전통적으로 낙타털로 만든 브라운 색상이 일반적이지만, 네이비와 그레이도 훌륭한 선택이다. 블랙 코트를 사고 싶은 유혹이 분명 있을 터이지만, 블랙은 근본적으로 엄숙한 장례식이나 이브닝파티용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시대의 변천은 코트의 기능을 단지 보온성에 묶어두지 않고 남자의 의상 전체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해주는 품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했다. 가령 어느 겨울 날 혼자 거리를 걷고 있을 때나 회사 로비 또는 <미슐랭 가이드>가 점 찍을 만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동안 머무를 때 멋진 코트 한 벌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결정해버릴 수도 있다.

물론 백화점과 전문점에서 보는 많고 많은 브랜드와 상품 속에서 마음에 쏙 드는 코트를 찾기란 이상적인 배필을 만나는 것만큼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최고의 상품만 취급한다고 자부하는 브랜드는 많다. 하지만 남성들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역사적 가치를 현명하게 담은 코트는 흔하지 않다.

어떤 코트는 어리석게도 브랜드를 크게 새긴 단추를 커다랗게 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코트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불멸의 가치를 획득하는 클래식 복식의 연장이다. 남자의 몸을 감싸는 또 하나의 피부처럼 좋은 품질의 상품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몸에 맞게 입어야 하는 이유다. 입는 순간 우리 몸의 일부가 돼버리는데, 남자의 품위를 책임지기 위한 호사를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요컨대 신사는 추워서 코트를 입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의 완성을 위해 코트를 입는다.

200902호 (200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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