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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고 두번 보고 ‘각설이 대폭발’ 

전화선으로 가야금 만들던 ‘꼬마’, 한국 록의 대부가 되다
기획연재 | 한국이 낳은 불후의 대중가요 뮤지션 12인 - ⑧ 신중현 

글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국내에 록음악이 태동한 1960년대 초의 키워드는 4·19혁명, 5·16쿠데타, 경제개발이었다. 정치·사회적 변혁을 통해 마련되기 시작한 국가 재건이 최대 화두였던 당시 미군의 여흥을 위해 국내에 유입된 서구의 대중문화는 사회 각 분야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그때 이 땅에도 록 밴드가 탄생했다. 이후 한국 록 음악사를 수놓은 밴드들은 모래알처럼 무수하지만, 그 중 신중현의 ‘에드훠’와 ‘키보이스’는 한국 록의 뿌리로 평가받는 양대 산맥이다. 한국 록의 역사는 이들로부터 가지를 치며 개체를 늘려 현재에 이르렀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은 미8군 무대에서 ‘히키 신’이라는 애칭으로 활동했다. 비틀스가 첫 싱글 음반을 낸 1962년 그는 테너색소폰 신지철, 드러머 김대환, 기록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2명과 함께 미8군 4인조 패키지쇼 그룹 ‘클럽데이트’를 결성했다.



왜소한 체격의 신중현은 장대같이 키가 컸던 멤버 신지철의 가랑이 사이를 오가며 연주하는 기타 실력으로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쇼맨십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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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호 (200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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