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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첫 항공기 띄울 때 하면 된다’ 그 초심 어디 갔나 

“형제싸움요? 있을 수도 없습니다” 말했던 그들
그때 그 결단 - 금호아시아나그룹 

글 이 호 월간중앙 객원기자·작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을 세상에 알렸다. 대한통운에 이어 대우건설까지 인수하며 승승장구하던 금호그룹이 자금난 풍문에 이어 골육 간의 싸움으로 국민에게 준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금호아시아나는 1984년 박인천 창업주 타계 이후 25년여 동안 어느 기업에서도 보기 드물 만큼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룹 균열이라는 비상시국에 처한 지금, 금호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 성장했는지 되짚어본다.
산업별 기업 구분이 아닌 지역별로 기업을 구분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영남기업·강원기업·충청기업이라는 사회적 용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호남기업’이라는 별칭은 여전히 흔하게 듣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회사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거나 창업주가 서울 태생이라고 해서 서울기업 또는 경기기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호남기업’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이는 것은 뭔가 특별하다.



정치적 피해의식이 많았던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 차별화 발언 이후 대기업 창업주가 호남 출신이면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대표적 호남기업으로 평가받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7월, 이른바 ‘형제의 난(亂)’이라는 충격파를 던지면서 경영권 분쟁을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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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호 (20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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