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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50주년 국정원의 인재 충원법 

지식도 애국심도… ‘열혈청년’ 찾아라 

매년 8~9월 공채 시작… 특수 전공자 수시로 발굴해 “뛰어난 스파이 한 명이 전쟁의 방향도 바꾼다.” 어떤 사람을 선발해 ‘정예요원’으로 육성하느냐에 따라 정보기관의 전체 역량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창설 50주년을 맞은 국가정보원은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발탁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봤다.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사격을 하고 있다.

아주 긴 영화 한 편이 막을 내렸다. 오사마 빈 라덴 얘기다. 2001년 9·11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한 무시무시한 사나이였지만 제대로 저항도 못 한 채 결국 사살됐다. 백악관 상황실로 전파된 이 실시간 영화의 카우보이는 미 해군 실(SEAL) 6팀이었다. 그들은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집중 조명받았다.

하지만 지난 10년 빈 라덴을 집요하게 추적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 그들이 건넨 핵심 정보가 없었다면 ‘빈 라덴의 죽음’이라는 엔딩 크레딧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CIA 창설 이후 이처럼 중요한 군사작전에는 ‘CIA맨’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물론 정보기관의 특성상 자세한 내막은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1월 21일 아덴만에서 우리 해군이 펼친 ‘여명작전’ 때도 그랬다.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대원들의 물샐틈없는 인질 구출작전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 뒷얘기가 심심찮게 들리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건 아직 없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안보상황에 따라 정보기관이 맡아야 할 업무의 범위는 점점 더 커져간다. 산업스파이를 쫓고, 사이버테러를 막고, 심지어 국민을 위협하는 신종바이러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광범위하고 첨단화되는 위협 속에서 정보기관의 가장 큰 자산은 그런 업무를 명쾌하게 풀어낼 인재뿐이다. 잘 뽑고, 제대로 가르쳐, 야전에서 잘 뛰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정원은 이런 핵심 역량을 어떻게 관리할까? 그 첫 실을 꿰는 인재 발탁 과정을 자세히 살폈다.

학습량 만만찮은 ‘필기시험’

“‘중동의 마타하리’로 불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소속의 여성 첩보원은 다음 중 누구인가?”

국가정보원 직원 공채 필기시험 과목 중 국가정보학 기출문제다. 정답은 ‘슐라 코헨’. 1948년 모사드에 채용돼 활약한 코헨은 레바논 당국에 체포돼 갖은 고문 속에 7년간 옥살이까지 한 전설적인 스파이다. 국정원에 들어가려면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

국정원은 매년 8~9월께 정기적으로 7급 신입직원 공채를 실시한다. 서류전형을 시작으로 필기시험·면접시험 등을 거쳐 최종 선발하는 과정은 여느 입사시험과 다르지 않다. 예외라면 체력검사 정도랄까. 물론 업무가 업무니만큼 신원조회를 철저히 하고, 전체 전형이 6개월여로 매우 길다.

만사가 ‘비밀’에 부쳐지는 기관이기에 정확한 선발 인원은 모르나, 지금까지 한 기수에 대략 50~100명으로 알려졌다. 경쟁률은 보통 100 대 1을 훌쩍 뛰어넘는다. 모집 분야(직렬)는 크게 정보(국내·해외·북한 정보)·안보수사·보안방첩(대테러 포함)·전산·통신 등이다.

공개정보(OSINT)를 주로 다루는 전산, 기술정보(TECHINT)를 맡는 통신의 경우 관련 전공자로 지원 자격을 제한한다. 교육기획·조직관리·기록물관리·예산회계·경영 등 기획조정실이 담당하는 주요 업무를 수행할 직원도 뽑는다. 이 경우 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 채용 인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첫 관문인 서류심사에서는 단연 자기소개서가 중요하다. 지난해에는 성장과정, 입사목적, 살면서 힘들었던 경험 3가지와 그중 1가지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학교·단체생활에서 겪은 일과 기억에 남는 3가지, 지원 분야에 필요한 지식·기술 3가지와 보유 수준 등을 묻는 5가지 항목으로 구성됐다.


▎나침반 모양의 국정원 마크를 가슴에 단 신입요원들이 태권도 수업을 받고 있다.

필기시험의 과목은 모집 분야와 상관 없이 거의 동일하다. 공통적으로 영어(TOEIC·TOEFL·TEPS·FLEX 성적으로 대체)·종합교양(인문사회·이공·한국사·한자 등)·국가정보학·논술을 치른다.

단 과거 대공수사에 해당하는 안보수사 지원자에게는 종합교양 대신 형법·형사소송법을 묻는다. 국정원은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형법 중 내란죄·외환죄, 군형법 중 반란죄·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의 수사권을 보유한다. 또 직원의 직무와 관련해서도 자체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

필기시험은 논술을 제외하면 모두 객관식이다. 학습 요구량이 많다. 특히 총 80문항의 종합교양은 개론 수준이긴 하나 워낙 범위가 넓어 공부하기 만만치 않다. 가령 자연과학만 봐도 ‘지구 속도를 구하는 공식’ ‘195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처 마틴과 리처드 싱이 발명한 물질 분리 방법’ 등 비전공자에게는 까다로운 문제를 내왔다.

다른 정부기관과 달리 공채가 생긴 이래 한국사시험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과목이다. 한 전직 직원은 “우리 과거를 제대로 아는 인재라야 국가가 나아갈 방향까지 앞서 제시하는 정보업무에 종사할 자격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근현대사 문항이 많아졌다고 한다.

형법·형사소송법 문제는 경찰간부후보생시험 수준의 난이도다. 그 때문인지 안보수사직 지원자 중에는 법학 전공자나 사법시험 준비생이 많고, 실제 합격률도 높은 편이다. 다른 분야 역시 각종 고시생의 곁눈질 대상이라고 한다.

필기시험 과목 중 논술 비중도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기존 출제 경향상 자료제시형으로 지문이 꽤 길다. 논술 채점관은 베테랑 분석관 또는 국정원 내 교육기관인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들이라고 한다. 한 채점관의 경험담을 빌리면, “국정원 직원은 최고정책결정자(대통령)를 보좌해야 하는 만큼 문제해결 방법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글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면접 계속 돌리며 검증해

필기시험 합격자는 ‘체력 테스트’를 받는다. 오래달리기·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서전트점프 등으로 기초체력을 시험하는데, 체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국정원에 지원하지만 ‘오버페이스(over pace)’ 때문에 가끔 탈락자가 생기기도 한단다.

체력 검정 직후 실시되는 면접은 몇 단계로 나뉜다. 다각도로 검증하겠다는 뜻이다. 먼저 간부-실무자-간부-실무자 순으로 면접관 3~4명이 돌아가며 ‘일대일 면접’을 한다. 주로 인성을 보는 단계다. 이후 지원 분야의 자질을 보려고 프레젠테이션을 시킨다. 문제 제시 후 15분간 준비시간을 준 뒤 20분가량 발표시키고 질의·응답하는 식이다.

다음 단계는 45분간의 집단토론. 수험자 7~8명으로 이뤄진 1개 그룹을 면접관 4명이 지켜보며 진행 과정과 태도를 확인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험자 상호 간 지원 분야와 관련한 ‘1 대 4 토론’을 거쳐 면접관들이 1명씩 차례대로 불러 토론의 문제점 등을 공격적으로 지적한다. 스트레스를 얼마나 잘 견디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사람을 대상으로 신원조회를 한다. 이 기간만 3~4달 정도란다. 한 관계자는 “신원조회를 할 때 과거에는 ‘사돈에 팔촌’까지 수험자와 연결된 친인척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요즘은 직계(친·외가) 3대까지만 알아본다”고 귀띔했다. 최종 임용자 중 여성 비율은 30% 정도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내 ‘정보인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면 해당 분야 인력 충원 시 연락을 준다.

정기 공채뿐만이 아니라 각 해당 부문 인원 필요 시 수시채용도 진행한다. 실제로 국정원은 2월 말에 시작해 안보수사요원(7급)을 선발하는 중이다. 부정기적으로 9급 신입직원도 모집한다. 어학·전산·통신 등의 지원 분야가 있다. 그리고 9급에 한해 여수사관 등과 같은 여성 요원을 특별히 뽑기도 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매년 8~9월에 정기적으로 모집하는 7급 입사는 ‘정규과정’으로, 기타 부정기적으로 모집하는 7급과 9급 입사를 ‘기본과정’으로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과정이란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규과정의 역사는 길다. 1961년 6월 10일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창설되면서부터 공채제도를 마련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부정기적으로 세 차례 부정기 공채를 했고, 해마다 정기 공채를 시작하기는 1965년부터다.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 등이 공채 1기다.

당시에도 전형과정은 현재와 비슷했다고 한다. 영어와 상식(지금의 종합교양에 해당), 그리고 논문(논술에 해당) 위주로 필기시험을 진행하고 면접을 통해 선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부적절한 채용 방식을 너무 오랫동안 되풀이하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한 정보 전문가는 “정보 요원으로서 기본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명목으로 지식 확인 위주의 필기시험(특히 종합교양)을 치른다니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공채 전형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CIA가 어떻게 인재를 발탁하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IA는 연중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분석(analysis)·비밀활동(clandestine service)·사이버보안(cyber security)·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등 20개 분야에 걸쳐 사람을 끌어모은다. CIA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지원하고, 지원 분야에 따라 채용까지 최소 2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

‘어린 선수들’ 미리 키우는 CIA

지원은 모두 4개 분야까지 가능하다. 지원자의 해당 분야 능력을 검토한 모집관(recruiter)이 적합한 자리가 있다고 판단 시 접촉을 시작한다. 이후 자신을 낱낱이 고백해야 하는 ‘지원서 패키지(신원조회 동의 항목, 약 500단어의 에세이 등 포함)’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정밀검증을 하는데, 나중에는 거짓말탐지기(polygraph)까지 동원해 진실 여부를 가린다고 한다.

‘영건(young gun)’을 일찌감치 입도선매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장학 연계 프로그램으로 만 18세 이상의 고등학생과 대학 1~2학년생 중 성적(SAT 또는 ACT) 우수자가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전공과 관련해 고도의 전문성을 함양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가령 정보기술(IT)을 전공하는 학생은 재학 기간 내 복잡한 컴퓨터 시스템을 응용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수준까지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실제로 평점 3.0~4.0의 고학점 유지를 요구한다.

대신 이들은 장학 혜택(서적 구입 등 부대비용 포함)은 물론이고 연봉과 건강보험·생명보험 등을 지원받는다. 전폭적으로 응원하는 대신 장학 기간의 1.5배에 해당하는 동안 CIA에 근무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상당하는 장학금을 뱉어내야만 한다.

아울러 CIA는 특수 전문 분야 요원을 확보하려고 ‘대졸자 협동 프로그램(Undergraduate Co-Op Program)’을 1961년부터 시행 중이다. 선발된 인원은 대학 또는 민간기업 연구소에 재직하면서 CIA가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다. 해당 전문 분야는 기계공학·컴퓨터과학·수학·경제학·물리학·어학·지역학·국제관계학 등이다.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겨울·봄·가을)도 운영한다. 평점 3.0 이상의 학력 우수자, 외국어 구사자, 해외 체류 경험자, 군 경력 소지자 등을 우대한다. 선발자에게는 일정 장학금을 지급하고, 근무 시 급여 등의 처우는 정규직과 같다. 이들은 졸업 후 CIA나 미국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 소속 여러 정보기관에 추천되기도 한다.

공개·비공개 형태로 모집관이 예비 대졸자를 물색하기도 한다. 특히 ‘비밀공작(Covert Action)’을 맡는 공작관(Case Officer) 선발 과정은 상당히 치열하다.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알 파치노가 모집관으로 분한 영화 <더 리크루트(The Recruit)>(2003년작)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적성검사와 심리·체력검사 등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버지니아 주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교육시설인 일명 ‘농장(The Farm)’으로 간다. 여기서 공작원(Agent) 포섭, 모의 침투 등 시나리오화된 강도 높은 테스트를 다시 진행한다. 이런 모든 과정은 과거 CIA 공작국(Directorate of Operations)에서 주도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진행된 정보개혁 과정에서 2005년 신설한 국가비밀활동부(NCS)의 소관이 됐다.

이렇듯 CIA는 다양한 채널과 평가를 통해 인재를 발탁하고 관리한다. 정밀하고 체계화된 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국정원 역시 공채 위주의 입사 경로를 다변화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 들어서는 심리분석·대테러 등 특별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채용을 늘렸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 홈페이지 내 정보인재 데이터베이스(DB)에 관심 분야를 등록하면 해당 분야 채용이 있을 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준다”고 한다.

국정원도 직접 발굴 늘려

중남미·동유럽·중동·서남아시아·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특수어 전문인력은 자신도 모르는 새 ‘주목 대상’이 된다. 정보 관계자는 “해외파병이나 우리 국민의 해외활동이 늘어나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려면 여러 지역의 어학 자원이 필요하다”면서 “가령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쓰는 파슈토어나 파키스탄에서 쓰는 우르두어 등을 익힌 사람은 극히 소수이기 때문에 중요한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직원 중에서 따로 인원을 선발해 특수어를 교육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모집관이 특수 전문 분야 인재를 직접 발굴하는 특채 사례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자연히 공채 인원은 줄어드는 추세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정도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러 정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정규과정 공채를 이어갈 경우, 현재 외무고시와 행정고시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응용해 도입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2004년 도입된 PSAT는 언어논리·자료해석·상황판단, 세 영역에 걸쳐 공무 수행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소양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다. 이미 일본·영국 등 외국 정부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재 선발에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 역시 임시 방편에 불과한 듯하다. 시중에는 ‘국정원시험 대비 전문반’을 상품으로 내건 학원들이 있다. PSAT 시험 대비 학원은 더 많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연한 지원자들은 이런 학원 문을 두드린다. 북한 정보관(Intelligence Officer)이 되고 싶다는 이지윤(가명, 25·여) 씨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당장 필기시험이 걱정이다. 여느 공무원시험 응시생처럼 학원 수업을 듣고, 함께 준비하는 학생들과 스터디 모임을 한다. 가산점을 얻으려고 컴퓨터와 한자자격증도 준비한다. 이외에 다른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다수 국정원 지망생의 현실이 그렇다. 현재의 필기시험은 또 다른 문제도 낳은 듯하다. 한 전문가는 “지금처럼

단계별로 전형을 치르다 보면 필기시험에서 떨어진 ‘숨은 인재’를 놓치는 구조”라면서 “종합적으로 우수한 요원을 선발하려면 지금의 공채제도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국정원 정규과정은 ‘5급 공무원’ 또는 ‘신이 내린 회사원’에 버금가는 ‘아주 특별한 7급’으로 통한다. 공기업과 국정원 입사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는 김형우(가명, 28) 씨도 “처우가 좋다고 알려져 나처럼 둘 다 준비하는 사람이 상당하다”면서 “어디든 붙으면 가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른 시험을 함께 준비하다 국정원에 합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물론 이들은 ‘스펙(SPEC)’이 좋고, 필기시험 능력도 상대적으로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정보요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그것뿐일까? 또 과연 이런 인력이 국정원의 진정한 인재상에 부합할까? 한 전직 직원은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게 정보요원”이라면서 “국정원을 ‘안정된 직장’쯤으로 여기고 들어온다면 분명 불만에 가득 찬 인생을 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무가 매우 고되고 일생을 거의 휴일도 없이 지내야 하기 때문이란다.

“선술집 주먹싸움도 이겨야”

CIA 출신의 제임스 릴리 전 주한·주중 미국 대사는 회고록 <아시아 비망록>에 CIA 창설 초기의 이상형을 이렇게 소개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선술집 주먹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는 인물.”

그만큼 정보기관은 ‘시험만 잘 치는 샌님’이 아니라 모험심이 강한 인재를 원한다는 뜻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보면 선뜻 믿기 어려운 기발한 정보요원 선발 에피소드도 있다.

“예전에 CIA에서는 첩보요원이 될 사람들을 선발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중에는 아주 간단한 방법도 하나 있었다. 먼저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이 광고에는 시험을 본다거나 이러저러한 서류를 제출하라는 얘기가 없다. 개별적으로 추천서를 받아오라거나 이력서를 내라는 요구조차 없다. 누구든 관심이 있으면 모일 아침 7시에 모처의 사무실로 오라고 돼 있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100여 명의 후보자들이 찾아와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린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들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 다시 한 시간이 흐른다. 참을성이 없는 후보자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사람을 오라 해놓고 이게 뭐 하는 거냐고 투덜대면서 자리를 뜬다. 오후 1시쯤 되면 반수 이상이 문을 쾅 닫으며 가버린다. 오후 5시쯤이면 4분의 1 정도만 남는다. 마침내 자정이 된다. 그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고용된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진짜 인재’를 발굴하려면, 정보기관의 특성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채용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직렬별로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하고, 이를 가려낼 정교한 측정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선발된 요원들의 근무실적을 참고하면서 필요한 자질과 측정도구를 지속적으로 수정해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필요한 인재를 장시간 동안 제대로 숙성시켜 요원으로 활용하는 CIA 사례처럼 말이다.

201106호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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