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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대선주자 최후의 승자는? 2012년 대선의 노무현은 누구? 

 

수도권 공략 손학규 vs 비호남 경쟁력 유시민 vs 영남권 돌풍 문재인 등 후보경쟁 가열… 호남 후보로 대선 치른 DJ 모델보다 비호남 후보로 승리한 노무현 모델 여전히 매력적 4·27 재·보선은 야권 내 대선 경쟁 판도를 휘저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야권의 선두주자로 올라섰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망론이 꿈틀댄다. 치명상을 입었다지만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빠진 정권교체론도 시기상조다.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의 욕망과 대선주자들의 야망이 뒤엉킨 야권의 향후 대선 구도를 분석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낸 문희상 민주당 의원은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서도회’의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경선 출마자 9명 모두에게 격려성 한자 휘호를 건넸다.

그중 손학규 후보에게는 ‘尙有十二隻 微臣不死(상유십이척 미신불사,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고, 미천한 신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휘호를 선사했다. 이는 정유재란 당시 모함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끝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권될 당시 조선군에게 남은 전선 12척을 보고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담긴 말이다. 얼마 후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일본수군 133척을 격퇴하고 제해권을 재장악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이순신 장군처럼 손학규 후보도 10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됐다.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는데 필수적인 중간층·중산층의 지지를 이끌 가능성에서 손 대표가 가장 우위에 있다는 점이 많이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또 최근 4·27 재·보선에서도 주요 격전지에서 대부분 승리를 일궈냈다. 특히 한나라당이 한 번도 져본 일이 없는 경기 분당 을 국회의원 보선에 직접 출마해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첫 국회의원을 뽑기 시작한 분당은 2008년 18대 총선까지 보수정당이 의석을 놓쳐본 일이 없다. 손 대표의 분당 을 당선으로 민주당의 외연은 중산층 밀집지역으로 확장됐고,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는 게 생기가 도는 민주당 내부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오겠다”던 자신의 약속이 공수표가 아님을 입증하면서 당내 입지도 한결 탄탄해졌다.

야권 대선주자로서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4·27 재·보선 직후 실시된 한국리서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1.5%를 얻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35.8%)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늘 야권의 선두였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7.1%)는 3위로 밀렸다.

손 대표의 지지율 상승에는 호남이 큰 몫을 했다. 한국리서치의 3월과 4월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가 잘 말해준다. 3월 조사에서 9.6%에 그쳤던 호남의 손 대표 지지율이 4·27 재·보선 직후 이뤄진 4월 조사에서는 28.5%로 껑충 뛰었다.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분당 을 선거를 지원한 조정식 국회의원은 “여러 곳에 분산됐던 전통적 야권 지지층이 최근 손 대표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손 대표 측은 다소간의 굴곡이 있겠지만 이런 상승세가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 인사 누구보다 수도권과 중간층에 강한 소구력을 가졌다는 믿음을 줬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손 대표가 편 가르는 정치가 아닌 두루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에 강하다고 말한다. 측근인사로 분류되는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부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심화되는 지역·계층 간 분열현상에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느낀다”고 민심을 진단하면서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에 능한 손 대표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100일 민심대장정’ ‘춘천 칩거’ 등 강화된 현장 지도자 이미지도 중간층과 서민의 대변자로서 제격이라고 했다. “유력한 한나라당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귀족 이미지와 대비되는 서민적 풍모가 파괴력을 발휘한다”고 이남재 민주당 대표 비서실 차장은 말했다.

야권 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유시민 대표가 이끄는 국민참여당의 김해 을 선거 패배로 손 대표의 선전은 더 돋보였다. 3월 당 대표 취임 당시 4월 27일 국민참여당의 첫 국회의원을 보게 될 것이라는 유 대표의 약속도 물거품이 됐다. 향후 전개될 각종 야권연대와 연합 논의에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발언권이 더 강화될 게 자명하다. 그만큼 민주당 밖의 누군가가 야권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찰 가능성은 줄었다. 차기 야권 대선주자 경쟁에서도 손 대표가 유리한 고지에 다가섰다고 민주당은 자평한다.

손 대표 측은 야권의 대선 후보 경쟁이 기습전이나 게릴라전이 아닌 정규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리라 본다. 예컨대 낯선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바람몰이를 통해 기존 야권 후보들을 제압하고 대선 출전권을 따내는 일은 없어졌다는 예측이다. 이철희 부위원장은 “이번 재·보선의 양상으로 볼 때 야권의 대선 후보 경쟁은 주자별로 오랜 기간 쌓아온 내공과 자산을 바탕으로 승부를 거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지금 야권에서 대선주자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 중에서 최종 승자가 가려지며, 그 가능성에서 제1야당의 대표이자 분당 을 공략에 성공한 손 대표가 가장 앞섰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식의 돌풍은 불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분석이다. 민주당 식의 대세론이다.

호남을 둘러싼 손 대표 딜레마

그러나 호남과의 밀월이 조만간 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손 대표는 당장 당 쇄신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무당파나 중간층에서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불신도 크다. 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혁신하자면 당내 기득권부터 깨야 하는데 민주당에서는 호남이 기득권 세력이다. 결국 호남에 공격포인트를 두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고 그러면 호남 유권자들이 손 대표에게서 등을 돌릴 수도 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과 호남이 불편한 관계로 돌아섰듯 말이다. 그렇다고 손 대표가 당 쇄신작업을 미루면 당 밖의 중간층과 중도층의 지지율이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게 손 대표가 처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5월 9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대선예비 후보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는 14.1%를 기록, 12.5%를 얻은 유시민 대표에게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허용했다. 향후 여론의 동향을 더 살펴봐야겠지만 전문가들은 손 대표의 지지율이 오르다 다시 주춤하면서 빠지는 요요현상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전당대회 승리 직후에도 15%까지 지지율이 치솟았다가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면서 한 자릿수로 되돌아간 전례도 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정치학)는 “지난해 전당대회 직후가 지지율을 끌어올릴 찬스였는데 놓쳐버렸고, 이번이 두 번째 기회인데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테면 민주당은 4·27 재·보선 직후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깨고 한·유럽연합(EU) FTA 비준 국회를 보이콧했다. 손 대표가 정책 관련 당론을 일관성 있게 견인·관리하지 못함으로써 집중되던 지지세가 다시 분산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고 박사의 해석이다.

손 대표는 지지율을 20% 선까지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1등 주자에 필적할 만한 야권의 대안으로 우뚝 설 때, 야권연대·야권통합 논의도 손 전 대표를 중심으로 조기에 탄력이 붙기 때문이다. 올망졸망한 후보들에다 지지율마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는 야권 대선 후보 윤곽이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내년 대선 국면까지 질질 끌다가 막판 후보 단일화 타결로 여야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형식적으로 만드는 데서 끝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때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손 대표에게 유리하기는 하며, 야당 지지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단일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야권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고성국 박사는 “손 대표에다 유시민 대표, 정동영·정세균·천정배 최고위원 등등 고만고만한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해봤자 기껏 25~35% 선에 그치고, 결국 한나라당에게 밀리는 구도”라고 예상했다. 특정 주자가 우뚝 서서 20% 이상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나머지 주자의 표를 흡입해내는 그림이 야당에 유리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다.

야권 대선 후보가 갖춰야 할 자격 요건은 뭘까? 야권의 관계자들은 “여권의 유력 주자(지금의 경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이겨주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양대 지지기반은 영남권과 수도권이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충청과 강원도 중요하겠지만 영호남 인구격차를 고려하면 최대 유권자들이 몰린 수도권에서 표차를 최대한 벌려야 대선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손 대표 측은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손 대표의 이미지가 수도권에서 충분히 먹힌다고 본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게도 기회는 또 오겠지만 그 가능성은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에서 고배를 마시자 수도권 중간층 흡입력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에 김해 을 보궐선거에 국민참여당 후보가 지면서 유 대표의 득표력 전반에 의문이 제기됐다.

대신 주목받는 쪽이 이른바 친노(親盧) 진영의 PK(부산·경남) 출신 인사들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영남권의 텃밭이라던 PK지역에 이상기류가 조성됐다. 무소속이라지만 친노 진영의 핵심인사이기도 한 김두관 후보를 경남지사로 당선(53% 득표)시키고, 민주당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에게 44.5%의 표를 몰아줬다. 2007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PK지역 득표율은 13% 선이었다. 지방선거 결과를 받아본 야권의 전략가들은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TK와 PK의 여론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친노무현 정서가 PK지역에 스며들면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민심이 널리 퍼져갈 가능성도 엿보인다.

문재인 대망론=유시민 한계론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영남권을 쪼개놓기만 해도 내년 대선은 야권에 훨씬 유리해진다. 친노 진영의 좌장 격으로 부산을 실질적인 근거지로 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경남에 확고한 지지세를 가진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주자로 나서면 영남권 표심은 일대 요동을 칠지 모른다. 당초 정치에 뜻이 없다고 알려졌던 문 이사장이 요즘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한다. 4·27 재·보선 때 김해 을 선거 야권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5월 들어서는 노 대통령의 재임 시 숨결과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을 담은 400여 쪽 분량의 책을 펴내겠다고 예고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친노 진영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을 야권의 대선 후보로 밀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알려졌다. 본인은 현실참여 가능성을 딱 부러지게 밝히지 않았지만 현실정치에 훈수를 아끼지 않는다. 5월 1일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서거 2주기 기자간담회에서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두고 “이명박정부가 너무 심하다. 위기감이 큰 만큼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고 나도 압박을 받으리라 본다”고 여운을 남겼다. 또 5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2주기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도 했다.

‘문재인 대망론’이 불거진 건 최근의 일이지만 물밑논의는 지난해 하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노 진영의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지난해 6·2 선거 결과가 친노 진영에 화두를 던졌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부산 출신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후보로 나와 59만 표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때 노 대통령이 PK에서 얻은 표가 30%에 육박했다. 6·2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이 이보다 더 많은 득표율(경남 53%, 부산 44%)을 기록했다. 야권이 호남과 PK를 한데 묶는 연대작업에 성공한다면 내년 대선 전망은 한층 밝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유시민 대표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라는 애칭이 따를 정도로 참여정부의 적통을 자임하는 TK 출신의 영남권 인사다. 그러나 그는 지지율 15%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 오래고 특히 야권의 절대적 지지기반인 호남의 거부감이라는 숙제가 있다. 다시 말해 ‘확장성 부재’와 ‘호남 비토’라는 약점을 떨치지 못했다. ‘문재인 대망론’은 이처럼 ‘유시민 한계론’과 동전의 양면이다.

문 이사장의 정치적 파괴력을 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양분된다. 우선 문 이사장의 정치력은 한 번도 검증대에 선 일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구,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 그의 모든 정치행위는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동심원만 그렸다. 이제 독자적인 정치의 주체로 그 원 밖에 한발 내디딜 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 이사장이 설령 대선 행보에 나서더라도 그저 그런 제3후보의 하나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그 자체가 발광체고 드라마를 가져야 하는데 문 이사장에게는 그런 측면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DJ의 민주당 시절부터 야권에 몸담아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치는 굉장한 훈련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한두 방에 주저앉는다”고 말했다. 또 문 이사장이 유 대표만큼 20·30대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낼지도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문 이사장이 유 대표보다 파괴력이 강하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여론조사 전문가도 있다.

반면 문 이사장은 유 대표와 달리 호남지역의 거부감이 덜하다는 점에서 호남+PK 연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직접 대선에 나가든, 아니면 야권 통합과 후보 간 거중 조정 역할을 맡든지 간에 총선과 내년 대선 정국의 판도를 흔드는 변수임이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야권에서는 문 이사장의 요청을 단호하게 뿌리칠 이가 많지 않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만약 누군가가 대선에서 영남표를 가져온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갈 표를 빼앗아온다는 말인데 이는 아주 위력적인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유시민은 호남을 배신했나

여권 내부에서도 부산·경남지역 기반의 일부가 야권으로 넘어간다는 전제하에서 총선·대선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 후보자로 전격 지명한 배경에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떨어져나가려는 PK를 묶어두려는 여권의 고려가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도대체 어떤 큰 죄를 지었기에 야권의 몰매를 맞다시피 할까? 야권에서는 유 대표가 소수당 수장으로 제도 정치권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는 조바심에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많은 무리수를 뒀다고 핀잔을 준다. 원칙 준수보다는 국민참여당 실리를 챙기는 데 급급하다 보니 눈총도 샀다. 급기야 텃밭인 김해에서조차 민주당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더 근본적 원인으로는 민주당 지지층, 특히 호남 쪽이 참여정부와 국민참여당에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있다. 호남은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1등 공신이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이면을 파헤치는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는가 하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으로 딴살림을 차렸다는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다고 동아시아연구원(EAI) 정한울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적했다.

정치컨설팅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반대의견을 직설적으로 공박하는 유 대표 스타일 때문인지 몰라도 호남지역 유권자들은 유 대표가 반(反)DJ, 반(反)호남이라고 명시적으로 말은 안 해도 DJ와 호남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그런 기류가 일정하게 경기지사 선거 결과에도 반영됐다고 정치권 일반은 추론한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그러나 유 대표 측과 국민참여당에서는 호남 비토론이 왜곡된 사실에 근거했으며, 기성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반박한다.

우선 유 대표는 젊어서부터 호남의 정신적·정치적 지주인 DJ의 정치 노선과 미래 비전을 지지하고 흠모했었다고 유 대표의 누나이자 작가로 활동해온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밝혔다. 그 예가 유 대표가 작성하고 DJ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던 1987년 당시 비판적 지지론 보고서다. 다음은 유시춘 씨의 주장이다.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야권과 재야는 김영삼을 지지했던 후보단일화파(후단파), 김대중 총재를 지지했던 비판적 지지파(비지파), 백기완 독자 출마를 주장했던 독자후보파로 나뉘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을 지낸 김근태 씨가 옥중에서 ‘ DJ 비판적 지지’ 의사를 밝혔고, 민청련 회원이던 유시민 대표는 김대중 총재의 정책노선이 왜 옳은지, 왜 비판적 지지를 해야 하는지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보고서는 동교동 설훈 비서를 통해 김대중 총재에게도 전달됐다.”

당시 ‘김대중단일후보추진위원회’ 홍보위원장을 지낸 유시춘 씨는 “김대중 총재가 그 보고서를 읽고 비단 자신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정확한 분석이돋보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13대 국회 이해찬 의원을 보좌하면서 광주특위 청문회를 치렀다. 이를 소재로 1990년 5월 <광주민중항쟁>(돌베개)이라는 책도 공동집필했다. 유시춘 씨는 “유 대표는 청년시절부터 DJ 추종자”였다고 거듭 밝히면서 “요즘 민주당 쪽에서 유 대표를 비토한다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국민참여당에서는 민주당 내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위축될까 경계해 그런 인식을 유포했다고도 본다. 즉 호남과 참여정부 간 대립과 갈등을 획책하고 조장하려는 정치 기득권 세력의 발언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그런 감정들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고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근무했던 임찬규 전 국민참여당 전략기획위원장은 강변한다. “참여정부가 구체적인 정책과 행보에서 호남을 배제한 것도 아니고, 유 대표가 호남을 배신한 일도 없다.”

비행기가 뜨기에는 활주로가 짧아

역설적이게도 유 대표는 민주당 기반인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는 유일한 야권 정치인이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를 끌어안아야 한다. 유 대표 또한 두 번의 선거에서 절감했듯이 민주당의 지원 없이는 자신의 꿈에 날개를 못 단다. 국민참여당에서도 정당으로서의 정치 행위의 부족, 경험과 실력의 부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태흥 최고위원은 “힘이 모이지 않은 선거 과정의 연대·연합을 향후 깊이 있게 고찰하겠다”며 진단과 분석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뿌리가 같기 때문에 먼저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의 결단으로 통합해주어야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유 대표는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호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그는 같은 친노 진영의 이해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하차했다. 그때의 변이 “비행기를 띄우려고 했는데 활주로가 짧았다”였다. 당내 조직에서도 밀리고 친노 진영의 단일화 압력에 직면한 답답한 심경을 그렇게 표출했다고 풀이됐다. 지금의 민주당에 그가 들어가서 대선후보 경선에 승리할 가능성은 결코 2007년보다 더 커보이지 않는다. 이게 유 대표의 딜레마다.

물론 다음 대선을 통 크게 양보하고 성찰모드로 들어가야 한다는 일각의 권고도 그럴듯하다. “야권 내 앞서가는 이들이 낙마하면 유 대표에게도 뜻밖의 기회가 오겠지만 지금처럼 불리한 입지를 만회하고자 애를 쓸수록 처지가 더 어려워진다”고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내다봤다.

유 대표는 미래세대라 할 20·30대의 지지가 확고하다. 한국리서치의 3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20대와 30대로부터 각각 21%, 13.3%의 지지를 받았다. 손 대표는 0.7%(20대), 2.6%(30대) 지지에 그쳤다. 손 대표가 야권 1위 주자로 올라선 4·27 재·보선 직후의 4월 지지율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은 그대로 유지된다. 유 대표는 20대 13.8%, 30대 13.2%의 지지를 얻어 6.3%(20대), 11.2%(30대) 지지율에 그친 손 대표를 앞질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또래 세대보다는 다음 세대의 지원사격을 받아 권력을 쟁취했다. 그렇다면 20·30대라는 다음 세대의 견고한 지원을 받는 유 대표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하겠다.

반(反)한나라당 후보, 즉 야권의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는 그게 경선이든 여론조사든 호남(湖南)이다. 호남 정서를 공유하는 유권자들이 때로는 정동영 후보(2007년 대선)에게 마음을 줬다가 심지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갔다가, 지금은 손학규 대표가 뜨니까 그에게도 힘을 실어줬다. 앞으로 누구를 선택할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문재인 이사장을 비롯한 PK 친노 진영도 내년 대선에서 돌풍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유시민 대표도 지금은 신세가 처량하지만 야권의 대선전략의 상수다. 역설적이게도 그와 국민참여당은 비록 졌지만 김해 을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온전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데도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유 대표는 나를 믿고 찍어만 준다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항변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호남이 그를 믿어줄지 여부다.

야권은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을 통해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듯하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질수록 대선후보 자리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대선에 4번이나 출마한 DJ는 DJP(김대중+김종필)연대와 이인제 후보의 500만 표 분산이라는 하늘이 준 기회를 잡고서도 1.6%p라는 간발의 차이로 정권을 잡았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DJ처럼 남에게 권력의 절반을 내주지 않고서도 2.3%p차의 승리를 일궜다. 호남 후보로 대선을 치른 DJ모델보다는 비(非)호남 후보(노무현 후보)로 선거에 이기기가 더 쉽다는 사실이 야권 지지층 뇌리에 깊게 각인됐을 법하다.

201106호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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