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쓴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는 1934년 신년좌담회에서 “일본 최고의 여류 신진 (서양)무용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최승희”라고 답했다.
일본의 대문호가 조선의 스물네 살 무용가를 자국의 예술가들을 제치고 최고로 꼽은 까닭은 뭘까? 가와바타는 그 전해 일본 여류무용대회에서 그녀의 춤을 처음 보았다. 최승희는 를 추었는데, 여기에 필이 꽂혔다. 일본 무용이 아니라 조선 무용이었다. 한학자며 시인이던 아버지 최준현(崔濬鉉)이 술자리에서 여흥으로 추는 춤에서 창작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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