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물은 구토를 수복한다는 뜻으로 고구려의 국시이자 국가발전 목표
말갈 등 동만주 일대에 존속했던 퉁구스계는 우리와 친연성 깊어
만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민족의 시원지’에서 ‘독립투쟁의 근거지’까지,
만주는 우리라는 존재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만주를 다각도로 해부했다.
빼앗긴 땅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빼앗긴 역사까지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 역사에는 지금 우리라는 존재의 근본이 서려 있고, 앞으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만주는 우리가 처음으로 역사를 탄생시킨 터고, 그 태가 묻힌 곳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주가 어디며, 어떤 역사를 지녔으며, 만주는 한민족에게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성계는 1370년 11월 요동성이었던 요양을 공격해 점령했다. 하지만 1388년에는 압록강을 도하하던 중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개인과 소수의 야심, 그리고 그들의 오판이 역사의 방향을 잘못 돌려놓았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