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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추적] 국토부 ‘TAGO’사업 200억 헛돈 썼다 

 

장원석 월간중앙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김우석 월간중앙 인턴기자 [infiniteone@naver.com]
국토해양부가 2007년부터 전국의 주요 역사(驛舍)와 공항 등에 설치한 대중교통정보시스템 ‘타고(TAGO)’를 두고 뒷말이 많다. 단말기와 프로그램이 모두 엉터리여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5년 동안 이 사업에 매년 예산을 쏟았다. 한 시민은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 놔두고 누가 그걸 쓰느냐”며 조롱했다.

▎국토부가 만든 대중교통정보시스템. 사용자는 없고, 시민들이 짐을 올려놓는 공간으로 변했다.

7월 27일 서울역 대합실. 전날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는데도 역사 안은 휴가철을 맞아 여행지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승객들이 대합실의 대형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열차를 기다리는데 그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단말기가 눈에 들어왔다. 기기 위쪽에 TAGO(환승교통정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단말기 화면을 손가락을 눌러보니 버스나 지하철 등 환승정보를 알려주는 일종의 키오스크(KIOSK)다. 궁금증이 일어 여기저기 눌러보는데 시스템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드웨어 탓인지 메인 화면에서 첫 창을 여는 데도 10초가 넘게 걸렸다.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남산’을 검색했더니 엉뚱하게 ‘지하철 1호선 남산동역’이 화면에 떴다. 부산 지하철 1호선에 있는 역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하철을 타고 남산까지 갈 수 있겠거니 생각할 만했다. 이번엔 출발지를 용산역으로 바꿔보려 했더니 자꾸 서울역으로 돌아와버렸다. 다른 지역에서 출발하는 정보는 아예 찾을 수가 없다. 단말기 화면에는 ‘인쇄 가능’이라고 써 있지만 눌러봤더니 네 대의 키오스크 중 출력이 가능한 것은 단 한 대뿐이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아 보이는 곳에 설치됐는데도 한 시간이 넘도록 거들떠보는 사람 하나 없다.

국토해양부가 ‘대중교통정보시스템(TAGO)’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한 키오스크다. 시민들이 대중교통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려고 설치했다고 한다. 2007년에 서울역과 김포공항 등 네 곳에 처음 설치된 데 이어 2008년부터 부산역·남부터미널 등 전국 19곳의 역사와 버스터미널 등에 추가 설치됐다. 전국적으로 23곳이다. 국토해양부는 항공·철도·고속버스 등 지역 간 이동수단이나 시내버스·지하철 등 지역 내 이동수단 간의 환승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2006년에 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5차 구축사업이 진행됐고 올해부터는 6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총 200억원. 올해도 22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편성돼 있다고 한다. 현재는 오프라인 키오스크 외에도 웹사이트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스마트폰용 앱도 개발해 시범운영 중이다.

기자는 서울역의 키오스크 운영 실태가 너무 엉터리여서 부산역 등 다른 지역에 설치된 여섯 곳을 추가로 점검해보았다. 하지만 사정은 서울역과 판박이였다. 사용자는 없고 시스템은 엉터리였다.

인쇄는 누런 종이, 버스는 한강 ‘점프’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내려 대합실로 나오면 눈에 잘 띄는 곳에 키오스크 단말기가 한 대 보인다. 이 기계는 어디를 가봐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한 시간을 기다려봐도 이용자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서울역사의 것에 비해 속도가 빨랐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기차 이용객들을 붙들고 물어봤더니 “그런 기계가 있는 줄 몰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8월 27일부터 9일 동안 대구에서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혹시 몰라 ‘육상선수권대회’를 검색해봤더니 먹통이었다. ‘육상경기장’ ‘주경기장’ 등을 연달아 검색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터무니없게도 전남 목포시에 있는 경기장으로 안내됐다.

역 앞에 있는 인포메이션센터를 찾아 경기장 명칭을 물어봤더니 ‘대구 스타디움’이란다. 그 이름으로 다시 검색해보니 그제야 버스 노선이 떴다. 세계선수권대회 관람객이 ‘대구 스타디움’이라는 명칭을 정확히 모른다면 이 키오스크는 무용지물이다. 혹시 몰라 대구로 여행 왔다는 대학생 이영은(21) 씨에게 육상선수권대회를 관람하러 간다고 생각하고 검색해보라고 부탁했더니 그 역시 ‘육상’ ‘주경기장’ 등의 단어를 입력했다. 이씨는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이런 간단한 연관검색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면 관광객들에게 도움이 안 될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관검색 서비스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대구 역시 키오스크가 설치된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출력기능이 고장 났고, 시민들은 “여기서 이러고 있느니 역 앞 인포메이션센

터를 찾는 게 낫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역은 그나마 사정이 가장 나은 편이다. 서울역과 동대구역보다 속도가 훨씬 빠른 데다 음성안내 서비스도 지원됐다. 주변 관광안내 섹션을 따로 마련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키오스크에는 공항버스 요금이 7000원, 배차 간격이 8~12분으로 표시돼 있지만 인포메이션센터에 확인한 결과 잘못된 정보로 밝혀졌다. 실제 요금은 5000원, 배차 간격은 40분이었다. 부산역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버스 경로 표시를 선택했더니 지도가 뜨지 않을뿐더러 출력 서비스 역시 고장 났다. 국토해양부 신교통개발과 이종인 주무관은 “사업을 맡은 교통안전공단이 모니터링하고, 별도의 관리업체를 뒀지만 소프트웨어상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에 설치된 또 다른 키오스크를 찾아가 보았다. 김포공항 1층 출국장 왼쪽에 설치된 네 대의 키오스크는 인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쇄된 종이를 살펴보니 색깔이 누렇다. 사용자가 거의 없다는 증거로 보였다. 시스템 반응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번번이 오류 화면이 뜨는 것은 여느 기계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한 시간을 머물렀는데 역시 사용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이 국제공항인데도 외국어 지원 시스템도 없다. 공항 이용객인 김종성(26) 씨는 “외국인에게 더 필요한 서비스 같은데 영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다.

강남역은 되고 화곡역은 왜 안 돼?

도심에 있는 신용산역에 설치된 기계를 작동해보았다. 그곳에서 우장산역을 도착지로 검색했더니 6001번 지도에서 버스 경로가 한강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떴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버스다. 남부터미널에 설치된 두 대의 키오스크 중 하나는 전원이 켜져 있지만 시스템은 먹통이었다. 정상 작동되는 나머지 한 대에서 도착지를 용산으로 검색해보니 경남 김해 용산마을이 첫 화면에 표시된다. 지역 우선 검색 역시 간단한 기술이지만 200억원의 큰돈을 쏟아부어 만든 이 시스템은 시민에 대한 배려가 아예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웹사이트는 어떨까? 대중교통정보시스템의 홈페이지(www.tago.go.kr)를 살펴보니 오프라인 키오스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빠르고 편리한 대중교통 이용하기… 원하는 목적지까지 대중교통 정보 한 번에 이용하세요”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이 문구를 따라 들어가면 지도와 함께 출발지와 도착지를 써넣을 수 있다. 출발지는 서울역으로 하고 강남역을 도착지로 적어 경로를 검색하면 지하철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방법과 9401번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 등 강남역으로 가는 여러 가지 환승 정보가 떴다. 이번엔 화곡역을 넣어보았다. 그러자 “화곡역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란 메시지가 뜨고 경로 검색이 아예 되지 않았다.

우장산역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담당 주무관은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려고 베타사이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오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키오스크를 비롯한 TAGO 시스템 전체의 부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해명으로 들린다.

이처럼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지도나 노선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는데도 국토부는 사업 수행업체에 대한 아무런 제재 조치 없이 준공처리를 했고 매년 똑같은 업체와 재계약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교통 시스템 전문기업인 경봉이 사업을 수주했다.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은 경봉 측이 사업 운영이 종료될 때 제출한 시범운영 결과 보고서에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납품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국책사업을 수주하며 사업을 키워온 이 회사의 매출 규모는 2008년 204억원에서 지난해 49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7월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스마트폰 성장 예측 못하고 ‘예산 낭비’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부는 서울역의 키오스크를 교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용은 사업을 맡았던 경봉 측이 부담하기로 했단다. 이종인 주무관은 “서울역은 2007년 가장 먼저 키오스크를 설치한 곳인데 기기가 노후해 문제점이 드러났고 사후관리 차원에서 사업자가 기기를 교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기계 자체의 오류라기보다는 시스템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문제가 대부분이다. 지난 5년간 투입된 총 200억원의 예산 중 40%가 넘는 76억원가량을 소프트웨어의 구매와 개발에 사용한 결과가 이렇다.

시민들은 TAGO 시스템이 고등학생이 개발한 공짜 앱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용산역에서 만난 김선홍(26) 씨는 키오스크를 사용해본 뒤 “요즘은 대부분의 연령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정부가 많은 예산을 써서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기존의 앱과는 차별된 콘텐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포공항·대전역·동대구역의 키오스크 단말기도 2007년에 설치된 점을 고려하면 굳이 서울역의 키오스크만 교체하겠다는 발상도 납득하기 어렵다. 어찌 됐건 교체 계획을 밝히면서 사업을 허술하게 관리해왔음을 자인하는 꼴이 됐다.

2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대중교통정보시스템이 국민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부실한 시스템 탓만은 아니다. 애당초 수요 예측이 잘못됐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사업을 시작한 2006년 당시는 대중교통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시스템이나 웹사이트가 없었는데 각 포털 사이트가 지도와 길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난해부터는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서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부가 만든 대중교통정보시스템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기존의 포털 사이트나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서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의 길찾기는 더 빠르고 쉽게 환승 정보를 알려준다. 이런 마당에 누가 굳이 국토부의 대중교통정보시스템을 찾아가 교통 정보를 얻으려 할까? 주요 도로의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서비스하는 스마트폰 앱도 등장했다. 국토부는 이런 변화를 파악했지만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불필요한 시스템 구축에 예산을 낭비한다고 비난한다. 서울의 한 역사에 있는 판매점에서 일하는 김혜원(24) 씨는 “일하는 동안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역에서 만난 안종원(52) 씨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니 이런 시스템은 모든 연령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토부는 올해도 TAGO 사업을 계속한다. 6년 만에 사업자는 바뀌었다. 이 회사는 주로 시스템 오류를 시정하고 스마트폰용 앱 개발에 집중한다. 새로 내놓은 교통정보시스템은 그동안 지적받은 오류를 상당 부분 시정했고 8월에 출시한 앱도 제법 쓸 만하다. 200억원을 쏟아부어 만든 시스템을 20억원에 고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교통안전공단은 지난 4월 NHN과 ‘교통정보와 지도 제공에 관한 협약’도 체결했다. 네이버(Naver)는 대중교통정보시스템에 지도를 제공하고, 국토부 측은 버스·지하철 등 위치기반 대중교통정보를 네이버에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네이버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이 쉽게 대중교통정보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7월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Daum)과도 협약을 맺었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했어야 한다”면서 “굳이 직접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곳곳에 기기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국토부는 올해까지 시스템 구축 사업을 끝내고 내년부터는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 관리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종인 주무관은 “키오스크 형태의 오프라인 기기 설치와 같은 신규 사업은 더 이상 없다”면서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 정확한 대중교통 정보를 제공해 국민 편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늦게나마 국토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아 다행이지만 설치한 지 5년 만에 ‘고물기계’로 전락한 TAGO 시스템 개발에 200억원의 헛돈을 썼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마침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 등 여야 간 복지 논쟁이 뜨겁다. 정치권도 포퓰리즘 복지 논쟁에 앞서 정부 예산에서 더 아낄 수 있는 돈은 없는지, 제대로 쓰지 않은 돈은 없는지부터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201109호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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