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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후보단일화 조율,역할 다하겠다” 

손학규 ‘저녁론’과 안철수 ‘정의·평화·복지’ 슬로건은 일맥상통… 시장자리를 나의 다음 정치행보에 활용하는 짓 절대 안 해 

한기홍



박원순 서울시장이 8월 26일로 취임 300일을 맞는다. 박 시장의 서울시정 개혁의 핵심은 ‘박원순식 소통’이다. 박 시장 역시 자신이 가져온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통의 변화’를 첫손에 꼽는다. 박 시장은 트위터 팔로워 50만 명과 페이스북 구독자 8만5000명을 거느린 ‘1인 미디어’다. 시민들도 서울시 홈페이지보다는 박 시장 트위터에 직접 건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박 시장이 24시간 트위터를 살피기 어려운 만큼 박 시장에게 들어오는 트위터 민원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뉴미디어 주무관도 따로 두었다. 뉴미디어 주무관이 건의사항을 취합해 담당 부서로 넘기면 담당 부서에서 처리한 뒤 그 결과를 민원인에게 알려준다. 박 시장 스스로 ‘트위터 행정’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박 시장의 이 같은 민원 처리방식이 갖는 한계도 있는듯하다. 서울시의 일부 공무원 중엔 “시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시청 직원과의 소통과 대화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접수된 민원의 성격에 따라서는 즉시 해결이 가능한것도 있지만 그간 해결이 불가능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많다. 시민의 욕구와 서울시의 민원 시스템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

위터 여론 역시 쌍방향성이 중요한데, 박 시장과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시민들이나 트위터 사용에 서투른 세대와의 소통에는 부족함이 없는지도 살펴야 할 대목이다.

강남순환고속도로, 은평새길, 서울제물포 터널 등 서울의 주요 SOC 사업이 무산되거나 연기된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공학 전문가들은 “부채를 줄이고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SOC투자에 소홀하면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SOC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시 재원과 주민 의사 등을 고려하며 꾸준하게 추진할 생각”이란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시장 이후의 행보에 신경 쓰지 않고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12월 대선 공간에서의 박 시장의 역할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민주통합당의 당원이면서, 동시에 시장 당선 과정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도움을 받은 것이 그의 미묘한 정치적 스탠스를 보여주고있다.

박 시장은 “시장의 직분을 넘지 않는 경계 안에서,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역할에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 박 시장은 7월 28일 1차 인터뷰에 이어 8월 13일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추가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취임 300일의 소회를 피력했다.

“시민은 정보를 갈망한다”

취임 후에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안다. 소통은 꼭 필요하지만 어떤 실효를 거두었는지 궁금하다.

“소통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한다. 그렇지만 소통 없이 어떤 좋은 정책도 입안되거나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풀뿌리민주주의의와 지방자치제의 핵심은 ‘참여’이기 때문이다. 작지만 상징적인 사례가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릴 때 자기 집 앞 눈 쓸고 인증샷 보내기 운동이다. 시민 1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공무원들이 뒷골목까지 다 쓸 수는 없다. 시민이 할 일과 지방정부가 할 일이 때로는 같고, 때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집 앞눈 쓸기가 상징하는 의미가 작지 않다. 서울시의 거버넌스 전체를 소통과 개방, 비판의 수용, 협의와 대화의 시스템으로 만들어가려 한다. 소셜미디어의 장점을 대폭 수용하고 과거 서울시 홍보에 썼던 각종 미디어를 시민의 광장으로 내주었다.”

시민들의 참여가 실질적인 시정 개선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나?

“주민 참여 예산제를 실현해서 연간 500억원 정도의 예산 집행을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했다. 시민들이 지표를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스스로 보고하도록 했다. 정보소통센터를 통해 서울시가 보유하는 모든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공개토록 했다. 나는 ‘인폼드-데모크라시(informeddemocracy)’라는 말을 쓴다. ‘숙의(熟議)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시민에게 정보를 주고 참여할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말이다. 그게 정보 공개의 진정한 의의다. 명예 부시장제, 1일 시장, 시민 고문 시스템 등을 그래서 도입했다. 시장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힘들고 서울시정 내의 정착된 시스템으로 작동되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원순씨에게 바란다’ 등의 통로를 통해 시민들의 생각이 올라오는데,우리 직원들이 일일이 분석해서 올린다. 어떻게 처리했는지 내가 금방 안다.”

시민들의 의사가 대폭,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 구축에는 SNS가 큰 역할을 했겠다.

“나는 ‘트위터 행정’이라고 했는데 리얼타임 행정이기도 하다. 시민의 의견이 제게 오면 담당 부서에 바로 내려보낸다. 당일로 해결되기도 하고 시간이 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우선 가능한지 여부를 빨리 판단해서 시민에게 그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다.”

취임 이후 소통과 관련된 업무가 늘어났을 텐데 조직의 개편이나 충원도 했나?

“특별히 눈에 띄는 충원이나 조직 확대는 없다. 물론 미세 조정은 했다. 기존 시민소통기획관실을 충분히 활용했다. 과거 그 부서가 시정을 홍보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오히려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실천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채용을 늘리진 않았다.”




후보 단일화 과정 역할 맡겠다”

7월 10일부터는 ‘라이브서울, 라이브원순’ 생방송을 시작했다. 시정의 논의 과정을 시민들에게 생중계한다는 개념인데 아직 설익은 시정을 시민에게 미리 공개한다는 위험 부담은 느끼지 않는가?

“미국에는 ‘회의록 공개법’이 있다. 나는 온라인 시대에 새로운 시민과의 소통법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통한 시 정책토론의 생중계 방식이다. 물론 숙성 중인 정책을 라이브로 알리기엔 다소 부적절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은 빼고 한다. 시민들이 알면 좋을 만한, 그리고 시민과 공유할 만한 서울시의 고민을 가감 없이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의미가 크다. 시민들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예컨대 사업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시장실의 24시간 라이브 공개를 원했는데, 너무 과격한 방식이라는 건의도 있었다. 시민들에게 바로 노출되므로 말조심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박 시장의 미묘한 정치적 입지에 주목한다. 민주통합당의 당원이면서, 동시에 시장 보궐선거 때 유력한 대선 잠재 후보인 안철수 원장에게 빚을 졌으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고민이다.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면 내 고민은 사라진다. 정당 기반 없이 대선 도전이 가능하겠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안 원장 입장에선 정당 기반을 탈피해야 표의 확장성이 더 커진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안 원장과 민주통합당(또는 민주통합당과 진보진영)후보 사이의 단일화 문제가 제기될 때 시장의 중재자의 역할에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거쳐야 할 단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먼저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결심해야 하고, 민주통합당의 후보 선출과 함께 진보 진영과의 야권 연대도 모색돼야 한다. 무엇이 먼저일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현재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 역동성 아닌가? 국내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 정세도 급변하며 출렁인다. 벼랑 끝에 몰린 일본 노다 요시히코 내각, 대선을 앞둔 미국… 위기를 맞은 세계 경제도 있다.

그럼에도 역사가 흐르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을 이루는 큰 줄기 중 하나가 시민의 뜻이다. 정치적으로 깨어 있고 경제적, 생태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사회, 결국 그 시민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번 대선에서 많은 국민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원한다.그 흐름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겠다. 성심성의껏 노력하겠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서울시장이라는본분에 어긋나는 일은 않겠다. 무리해서 정국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욕심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고, 그럴 만한 수단도 없다.”

최근 손학규 전 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정치철학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던데, 손 전 대표는 안 원장과의 정치적, 이념적 연대 가능성을 매우 적극적으로 보는 눈치다. 손 전 대표와 안 원장이 제기하는 시대적 소명은 교감하고 통합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가?

“저녁을 잃어버린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지쳐 있고 삶의 의욕은 물론, 정의도 평화도 복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의, 평화, 복지가 없는 사회에서 일상의 행복이 깃든 저녁,가족이나 친구간의 소박한 행복이 있는 저녁은 그리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손학규 전 대표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과 안철수 원장의 ‘정의·평화·복지’의 슬로건은 일맥상통한다. 두 경우 모두, 우리가 손끝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 이를테면 ‘행복’ 혹은 ‘행복추구권’과 같은 국민의 기본권과 존엄을 지키려는 신념이 잘 드러난 경우다.”

대권주자, 시대의 소명을 들어야

두 사람의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전제와 틀 안에서 이뤄지리라 보나?

“다르고도 같은 두 사람의 신념은 인류가 역사 전체를 통해 원해온 행복이다. 문제는 이를 향한 신실하다 할 정도의 신념과 행동력, 또 이를 뒷받침해줄 실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폭’이다. 괄호를 넣어보자. ‘(상위 1%만이 누리는) 저녁이 있는 삶’ 이나, ‘(특정 계층이나 지역 때문에 법치를 흔드는) 정의 평화 복지’는 폭력이다.왜곡된 사회 구조의 악순환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념들은 그 ‘폭’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공의’를 이루게 된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정의를 넘어선 ‘공의로운 사회가 주는 행복’을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갈망 앞에서 그것이 누구의 슬로건이나 철학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차기 대선에서는 ‘공의로운 사회가 주는 행복’을 얻으려고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나’를 버리고 ‘우리’를 선택하는 헌신을 할 수 있을까, ‘공과 사’의 구별을 넘어 ‘공공선’, ‘공공의 행복’과 같은 국익의 추구와 이를 통한 국격 회복 등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이뤄나가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만일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해 집권에 도전한다면 선거 과정또는 집권 후,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개혁 세력과 어떤 수준과 방식의 정치적 연대를 이뤄가야 할까?

“지금 구체적으로 연대 방식이나 수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시민, 국민의 뜻을 함부로 예측해서도 안 된다. 지난 시장 보궐선거 때 정말 열심히 임했지만 밑그림을 미리 그리거나 계산하지 않았다.나는 그때 ‘이렇게 하면 내가 손해, 저렇게 하면 그가 손해’ 이렇게 따지지를 못했다. 상황은 매 순간 급변했고 그때마다 ‘무엇이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을까’라는 솔직하고 직관적인 물음만이 유일한 나침반이 되었다. 서울시장 선거가 그럴진대 하물며 대선이다. 이 중차대한 역사의 바다 앞에서 ‘사적인 이익’에 맞춰 그린 지도를 들고 항해한다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안 원장을 포함해, 민주통합당이나 진보 개혁 세력 모두가 무엇보다 시대의 소명, 국민의 바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워낙 ‘이현령비현령’이라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역사의 급물살, 선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만히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면 시대의 부름을 모두, 오롯이들을 수 있다.”

지난 300일 간 소통하면서 박 시장을 감동시킨 시민도 꽤 많았을 텐데.

“ ‘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가 우선 떠오른다. 이 청년은 버스정류소의 노선도에 누락된 방향을 표시하려고 수백군데의 버스정류소에 빨간색 화살표를 붙이고 다녔다. 낯선 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방향을 몰라 버스를 탈 때 실수를 하기 쉽다. 시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대목을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시정한 사례다.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어린이도서관장 김소영 씨는 기후변화를 공부하는 작은 학습회부터 시작해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지금은 살고 있는 동네를 에너지 자립마을로 키워간다.

아줌마들이 모여 동네의 현안을 해결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그 밖에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25년간이나 목회를 이끌며 주민들은 돕는 임명희목사, 동대문에서 45년간 복덕방을 하며 기부자와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연계해온 이정주 씨 등이 생각난다. 이분들은 서울시 공무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시민공동체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진다. 이런 분들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주려 더욱 노력하겠다.”




서울, 하드웨어보다 소프트파워다

전임 오세훈 시장이 했던 사업을 승계하기도 했고, 궤도를 수정하기도 했는데 오 시장 시절의 서울 시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의 관료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안정화된 체계를 높이 평가한다. 선진화된 관료시스템덕분에 어떤 분이 시장으로 와도 기본은 굴러가게 돼 있다. 오 시장은 행정경험이나 매니지먼트의 측면에서 다소간의 약점을 드러냈고, 시장이란 자리를 대권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생각한 측면이 과도했다. 그러다 보니 초조하게 성과에 집착했고 부채도 고건 시장 시절 6조원이었으나 내가 들어올 땐 20조원까지 늘어났다.”

이미 예산을 많이 들여 추진했던 사업을 접기도 어려운 일아닌가?

전임 시장이 벌려 놓은 일을 마무리 안 할 수는 없다.상당히 진전된 사업 중엔 21세기 글로벌 도시로서 서울이 갖춰야 할 인프라나 도시 생태계 사업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 파워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100층짜리 건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북한산과 한강이다. 600년 도읍지라는 서울의 자연은 대단하다. 한성백제, 풍납토성을 깔고 있는 저자리엔 한 왕국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사대문 안은 파면 바로 ‘폼페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제대로 주목하고 관리하고 스토리텔링하고, 관광자원화 못했다. 서울시는18.6km의 한양도성을 2015년까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전문가들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따지고 보면 청계천도 잘 복구했다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왜냐하면 청계천에는 조선시대 토목지식이 집대성돼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 파헤쳐놓아서 원천적 복원이 불가능해졌다. 역사와 자연, 서울시민들이 가지는 창조적 정신이 서울의 아이덴티티고, 우리의 미래다.”

채무 감축, 복지 예산 증액 등 시장의 대표적인 공약으로 인해 강남순환로, 은평새길, 7개 경전철 등 핵심 기반시설이 줄줄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SOC 사업은 시민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도시 기반시설로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당연히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업을 진행하는 데 주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등 소통 과정이 필요하고, 지자체 간에 협의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강남순환도로, 은평새길, 서울제물포 터널 등의 사업이 미뤄진 것이다.”

개통이 연기된 강남순환도로는 서울 동서 간 교통체증을 해소해줄 도로로 기대를 모으던 민간투자사업이다. 주민의 실망감이 적지 않을 듯하다.

“강남순환도로의 경우, 과천시와 광명시 일부를 경유하기 때문에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그 배경에는 시의 재정문제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민이 꼭 필요로 하는 사업은 계속해서 추진한다. 강남순환도로는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2014년까지 연간 2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것을 1600억원으로 조정해 속도를 조정했다. 시민의 불편이 따르겠지만 서울시가 처한 입장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주셨으면 한다. 다른 사업도 그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 건설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본적으로 국력과 국부가 서울에 집중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의 인구가 조금씩 줄고, 세종시라는 행정도시가 건설됐지만 서울의 중심성이 사라지지 않는다.서울의 중심성은 인구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높은 토지 가격, 교통문제에 따른 비용과 스트레스는 서울의 창의적 발전을 가로막는다. 서울은 지금보다 작아져야 한다. 서울과 지방의 균형된 발전, 농촌과 도시가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뉴타운 문제의 해법은 어떻게 정리했나?

“현재 해제 진행 중인 정비사업구역은 뉴타운 지역을 포함해 18곳이다. 이거 정리하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앞으로 10년은 간다. 서울 시내 취약계층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보았는데 이분들은 뉴타운이 들어서면 살 곳을 잃어버린다. 뉴타운이 들어서면 도시가 굉장히 발전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소외된다.누구를 위한 개발이냐, 이런 의문이 든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봐도 반듯반듯하지만은 않다. 어디나 허름한 동네가 있기 마련이다. 홍콩을 가보니 임대주택을 도시의 중심에 배치했다. 부자들만으로는 도시를 운영하지 못한다. 뉴타운 전역에 투기자본이 들어오고, 돈은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벌어간다. 주민들이 뉴타운 건설을 심하게 반대하는 곳부터 가급적 합리적인 방식으로 조금씩 정리해간다.”

이미 사업이 시작돼 비용이 투자된 곳의 출구전략은 어떻게 마련했나?

“50억, 100억원씩 사업비가 투자된 곳은 중앙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출구전략을 추진한다. 여야 정치권도 이 같은 출구전략에 동의했다. 투입된 비용을 변제해주려면 엄정한 심사가 필요한데 그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간이재판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심사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낀다.”

“자치단체에 과감하게 권한 이양해야”

강남 주민들은 박 시장의 정책이 강북 중심, 지나치게 서민중심으로 간다는 불만이 없지 않다.

“강에는 메기만 살지 않는다. 붕어나 송사리, 작은 플랑크톤에 이르기까지 전체 생태계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서울시라는 거대 공동체도 그런 원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99대1 사회는 언젠가 폭발한다. 강남과 강북을 뛰어넘는 사고를 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미래 비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 선진국을 보면 삶의 휴식, 성찰, 복지, 창조를 강조한다. 휴식과 창조는 바로 연결되는 인간의 활동이다.

고도성장, 투기, 경제발전, 무휴식, 노동강도, 스트레스, 자살과 같은 사이클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지만 손학규 전 대표의 ‘저녁이있는 삶’의 정치적 비전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정부와는 협력이 잘 되나?

“잘 안 된다. 예컨대 국회와 정부는 지난해 12월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0~2세 보상보육’을 전면 확대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지방정부가 빚을 내어 혼자 해결하라는 식의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해왔다. 임대주택 예산도 5조원이 넘는 서울시의 부담이 가장 커졌다.무상 보육은 3세부터 해야 한다. 이제 중앙정부는 외교국방 등 큰 틀의 국가정책을 책임지고 나머지 권한은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 예산이나 조직 등의 권한을 중앙정부가 쥐었기 때문에 자치단체가 어떤 비전을 갖고 창조적으로 일하기가 불가능하다. 전문적인 능력이 출중한 부시장을 더 두고 일하고 싶지만 자치단체 차원에서 이 같은 조직개편도 못한다. 베이징은 8명, 도쿄는 6명의 부시장을 두고 시를 운영한다.”

시장직에 재도전할 계획인가?

“아직 임기가 2년 남아 있고, 내가 재선을 고려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보궐선거로 당선돼 3년 정도에 불과한 임기는 다소 짧다. 임기 중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가 후임이 되든 연속성을 유지하는 정책이 좋다. 각종 공사도 임기 안에 끝내려는 욕심에 사고가 생기고 날림이 된다. 무엇보다 시장 자리를 다음 정치 행보에 활용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

201209호 (201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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