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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우리나라와 대한민국 잇는 다리 되고 싶어” 

사관학교의 외국인 생도들 

글·박성주 월간중앙 인턴기자, 사진·오상민·전민규 기자, 김성태 객원기자
한국의 엄격한 군인정신 배워 조국에서 더 강한 군대 만들겠다!

▎페루에서 온 여생도 에바가 육군사관학교 화랑의식에 참여해 사열하고 있다. 에바는 처음으로 한국 사관학교에 입학한 외국인 여성이다.



“해달같이 눈부신 기백과 정열… 동지들을 구하려고 제 몸 던졌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이동할 때, 정기의식을 위해 연병장으로 향할 때, 사관학교의 생도들은 언제나 군가를 부르며 행진했다. 군 특유의 위용과 청춘의 활기로 가득 찬 군열 속에서 색다른 얼굴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한국의 사관학교에서 유학하는 외국인 생도들이다. 한국말은 어눌할지라도 가장 한국군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을 직접 만났다.

2월 말,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입학식에서는 한 여성 생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페루에서 온 에바 훌카아나야(22)를 향해서였다. 육사에서 금녀(禁女)의 벽이 깨진 지 15년, 이제 외국인 여생도 또한 등장한 것이다. 에바의 출현이 화제가 됐지만 사관학교에서 외국인 생도의 존재는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외국인 생도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94년. 공군사관학교가 처음으로 태국 생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한국의 사관학교에 온 낫타차이 생도는 본국에서 이제 중령 직급이 됐다. 지금은 육·해·공군사관학교 모두 외국 생도를 교육하는 수탁교육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반 대학의 교환학생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양국의 군인을 양성하는 사관학교 간 교류라는 점에서 다르다.

현재 한국의 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생도는 총 34명. 공사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육사 11명, 해사 10명 순이다. 국적도 다양하다. 아시아 7개국(생도 인원 수로 베트남, 몽골, 태국, 카자흐스탄, 필리핀, 일본, 투르크메니스탄 순)뿐만 아니라 남미(페루), 중동(터키), 아프리카(알제리) 출신 생도도 있다. 세 사관학교를 찾아가 그들의 외국인 사관생도 생활을 엿보았다.


▎외국인 생도 13명과 김영민 공군사관학교장이 동심으로 돌아갔다. 항공기전시장의 C-461 수송기 앞에서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모습.



공군사관학교 - 외국인 생도들의 처녀비행

4월 초의 어느 날, 충북 청원군 근교의 제212 비행교육대대에서 공군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의 비행훈련이 한창이다. 입학 후 처음으로 비행훈련에 나서는 생도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잔뜩 묻어나는 듯했다. 차례로 훈련기에 오르는 생도들 가운데서 익숙지않은 얼굴이 끼어있다. 훤칠하게 큰 키에 하얗고 서구적인 얼굴, 알제리에서 온 테아미 함자(20) 생도였다. 다른 생도들과 똑같이 전투조종복을 입고 머리에 쓴 캡에는 기수(期數)를 나타내는 숫자 ‘65’가 쓰여있다.

현재 공사에 재학 중인 외국인 생도 13명 중 태국 출신이 네 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몽골(3명), 베트남(2명), 일본·필리핀·터키(각 1명) 순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의 생도들은 한국 생도들과 생김새도 비슷하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문화적 배경이 비슷해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최근에 일고 있는 한류의 영향으로 관심사도 비슷하다고 한다. 판 딘 호안(21) 생도는 자국인 베트남에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활이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과제가 많아 (한국) 방송을 볼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한다.

일본의 히라야마 신지(22) 생도는 국제무역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한국이 친숙하다고 말했다. 히라야마는 “아버지가 한국말을 잘하신다”며 “공사에 오기 전에 부산에도 두세 번 갔던 적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김치를 좋아한다”는 그는 주한 일본 대사관의 무관이 되길 꿈꾼다. 대사관에 근무하는 국방무관은 자국과 주재국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일본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그가 덧붙였다.


▎훈련기에 오른 외국인 생도들. 왼쪽부터 차례로 바트볼드(몽골), 송형식 비행 교관, 함자(알제리), 싸폰다나이(태국).
하지만 이들 아시아 출신 생도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익숙지 않은 한국어다. 언어장벽은 모든 외국인 생도의 공통된 난제다. 히라야마는 “일본어에는 받침이 없어 한국어 발음이 힘들다”고 말했다. 알제리 출신의 함자는 아랍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하지만 한국어는 처음 접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공사에선 이들 외국인 생도에게 각각 전담 교수를 배치해 어학 공부를 돕고 있다.

“학업과 체육활동 병행하는 사관학교 수업 좋아”

모든 외국인 생도는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 용산에 있는 합동군사대 국방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국방어학원은 외국인 생도와 외국군 장교를 대상으로 ‘한국어 과정’을 운영 중이다.

현재 3군의 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은 모두 4~5개월 간 이 과정을 거쳤지만 올해부터는 10개월로 한국어 과정이 확대돼 내년 입학 예정인 외국인 생도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외국인 생도들은 학업과 체육활동을 병행하는 한국의 사관학교 수업과정을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공사의 수업 일과 9교시 중 8~9교시는 체육활동 및 훈련으로 채워진다. 영국, 독일 등의 사관학교가 학기 중 공부에만 집중하는 데 반해 한국의 사관학교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것이다. 함자 생도는 “알제리에선 1학년 때만 훈련을 받고 그 다음(2~4학년)엔 일반 대학교처럼 공부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4년 내내) 오전에 수업을 받고 오후에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미래에 항공기 정비사가 되고 싶은 함자에게 한국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도약대다. 그는 “알제리 공군에는 항공 분야가 없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면서 “한국은 미국 비행기도 쓰지만 한국 (자체 제작) 비행기를 써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T-50 고등훈련기로 시작한 한국의 전투기 사업은 이제 현대적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FA-50 같은 경공격기로 진화됐다. 함자는 2학년에 올라갈 때 항공우주공학을 전공으로 택할 예정이다.

외국인 생도들의 처녀비행은 T-103 훈련기를 타는 것이었다. 이날 신입생 30명이 비행교관이 조종하는 훈련기에 한 명씩 동승해 약 1시간 동안 충남 일대를 비행했다. 공중에서 기내의 중력은 4G(중력의 4배 가속도) 상태로, 첫 비행을 하는 생도들에겐 다소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함자 생도는 “공중에서 (360도) 삼회전을 했다”며 “재미있다”는 말만 연발한다. 첫 비행의 흥분을 나누는 생도들 사이에서, 외국인 생도들은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었다.


▎올해 육사에 입학한 외국인 생도 4명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콩(베트남), 문트훌가(몽골), 라타품(태국), 에바(페루).




▎육군사관학교 기숙사 방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여생도들. 에바(페루)를 비롯해 현재 육사에서 공부하는 여생도는 모두 95명에 이른다.
육군사관학교 - 금녀의 벽 깬 여풍

4월의 어느 금요일, 화랑의식을 앞둔 육군사관학교의 기숙사 안은 분주하다. 화랑의식은 전교생이 예복을 입고 연병장에 모여 한 주 생활을 되돌아보는 의식이다. 여자 생도인 에바가 예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동기생들이 너나할것없이 “예쁘다”고 칭찬한다.

살짝 열린 침실 문 사이로 화장품이 가지런히 정돈된 화장대가 보였다. 의식을 기다리며 룸메이트와 수다를 떠는 에바의 모습은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현재 육사에 재학 중인 외국인 생도는 총 11명. 페루에서, 그것도 여생도가 온 것은 세 사관학교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태국의 라타품 꾸나응언(22)은 한국의 육사에서 경험한 “이상한 일”로 여생도의 존재를 꼽는다. 그는 “이곳에는 여자 생도가 있고 남자들과 똑같이 생활한다”며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이 훈련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다”고 말한다. 라타품이 공부하던 태국의 쭈라쩜끄라오 왕립사관학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태국의 사관학교에 진학하려면 그 전에 군사고등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여학생이 입학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라타품은 “(태국 육사에도) 여생도는 1명 있긴 했지만 신체적으로 힘든 각종 훈련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육사는 보수적인 군 내에서도 여풍(女風)이 가장 센 곳으로 꼽힌다. 1998년 처음으로 여생도의 입학을 허용하면서 금녀의 벽을 일찍이 깼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여생도가 수석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현재 육사에 재학 중인 여생도는 모두 95명이며, 올해 입학한 신입생도 29명에 이른다. 이런 배경 덕분에 에바의 한국 육사 입학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대외협력과 이영수 소령은 “여생도의 선발은 순수하게 페루 사관학교의 자체 시험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시험에서 에바가 다른 남학생들을 제치고 차석을 차지해 한국으로 올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윤정경 정훈공보실 대위는 “에바의 체력이 웬만한 남자 생도들보다 좋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특히 3km를 12분 대에 주파할 정도로 달리기 능력이 좋다. 하지만 에바는 지난 겨울에 실시한 첫 기초군사훈련은 꽤 힘든 과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초군사훈련은 육사 입학 전 가입교 시기에 신입생도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훈련이다.

추위 속에서 눈 쌓인 곳에 포복을 하는 등 각개전투가 포함돼 한국 생도들도 힘들어 하는 과정이다. 특히 추운 겨울을 나보지 않은 페루 출신의 에바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됐을 듯하다. 그는 “훈련할 때 너무 추워 핫팩 다섯 개를 배에 붙이고 팔에도 하나씩 붙였을 정도였다”며 “(핫팩이)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며 웃음을 지었다.

“가장 높은 군인이 되고 싶다”

더운 나라에서 온 생도들은 “한국에 와서 처음 눈(雪)을 봤다”고 입을 모은다. 태국에서 온 라타품 생도는 “처음엔 ‘우와~’ 하면서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타며 즐거웠는데, 눈이 너무 많이 오면 1학년에게 눈을 치우라고 해서 싫다”고 실토한다. 옆에서 그의 말을 듣던 다른 생도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그 말에 동의한다. 몽골 출신인 문트훌가(19) 생도가 고개를 저으며 “한국의 겨울은 별로 춥지 않다”며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나라는 가장 추울 때 영하 50도까지 떨어지거든요.” 문트훌가 생도는 익숙한 겨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더운 여름을 걱정하는 듯하다. 지난해 9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여름 무더위에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사 관계자들은 날씨 걱정만 빼면 몽골 생도들이 한국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다고 말한다. 같은 어족(語族)에 속했기 때문인지 한국어 습득이 빠르고 생김새도 가장 닮았다.

윤 대위는 “4학년 나란툴가(26) 생도는 한국말을 정말 잘한다”며 “몽골 생도들은 4학년쯤 되면 한국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적응이 빠르다”고 말했다. 한국의 음주문화까지 통달한 생도도 있다. 라타품 생도는 입학 전 서울 국방어학원에서 공부할 때 신촌에 자주 갔다고 한다. 그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맥주, 막걸리, 소주, 소맥을 마스터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술자리 게임을 통해 한국 생활을 배웠다”며 그가 활짝 웃었다.

육사의 신입생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힘겨운 때다. 1학년 1학기에는 일절 외출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과 일정이 너무 빡빡해 눈 떠서 잠 들 때까지 놀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다. 타국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 외국인 생도들에게는 동료 생도들이 버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출신의 콩(20) 생도는 학년별로 공부하는 베트남 사관학교와 달리 “한국에선 1학년부터 4학년이 모두 같이 생활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는 종종 학교를 방문한 동기생들의 부모님과 함께 식사할때면 가끔씩 고향 생각이 난다고 했다.

외국인 생도들에게 앞으로의 꿈을 묻자 비슷한 대답이 나온다. “가장 높은 군인이 되고 싶다”는 식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높은 군인이란 장군을 말한다. 에바가 대답을 고민하자 옆에 있던 육사 정훈공보실장 유순환 대령이 “페루 여자 대통령은 어떻느냐”고 거든다. 에바는 “페루에서는 여자 대통령이 한 번도 없었다”고 웃는다. 라타품은 “태국의 왕과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부푼 꿈을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충무의식을 위해 연병장으로 향하는 해사 생도들. 이들 뒤로 만개한 벚꽃이 아름답다.



해군사관학교 - 중앙아시아, 베트남 출신이 많아

해군사관학교에는 유독 중앙아시아 출신의 생도가 많다. 외국인 재학생 10명 중 절반이 카자흐스탄(4명)과 투르크메니스탄(1명)에서 왔다. 두 나라 모두 카스피해 일부에만 인접해 해군의 규모가 크지 않다. 해사 정훈공보실장 조영상 소령은 “국방력은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비슷하다”며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해군력을 다른 국가에서 배우려 한다”고 자평한다.

실제로 해군은 우리 영해를 지키다 퇴역한 고속정을 카자흐스탄 등의 우방국에 양도해주고 있다. 내륙국이라 육·공군만 뒀던 카자흐스탄은 2005년에야 유전보호 목적으로 해군을 창설했다. 그때 한국 해군이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08년 카자흐스탄 생도가 처음으로 해사에 입학하면서 인적 교류의 물꼬를 텄다. 방산협력과 인적 교류는 궤를 같이 한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아브디(23) 생도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해사 앞에 위치한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해군특수전전단)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들로부터 우리 선원들을 구출해낸 아덴만 여명작전의 주역인 UDT는 적의 해안에 침투해 수중 장애물을 제거하는 특수부대다.

해사 생도들은 2학년 함정운용실습의 일환으로 UDT를 비롯한 여러 부대에서 군사실습을 한다. 아브디 생도는 “당시 그들이 훈련 받는 모습을 보았는데 UDT 부대가 가장 멋있었다”며 “우리나라(카자흐스탄)에도 이 부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중앙아시아 생도들은 한국의 사관학교에서 예기치못한 ‘복병’을 만나기도 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에겐 한국인들의 일상화된 ‘돼지고기’ 요리가 충격적이었던 듯하다. 아브디 생도는 “(카자흐스탄) 식당에선 돼지고기를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다들 먹고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온 호자굴리(22)도 식당에서 풍기는 돼지고기의 냄새에 흠칫하곤 한다. 해사는 이런 회교도 생도들을 배려해 돼지고기가 들어간 반찬이 나올 때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음식을 준비한다.

해사의 사관생도들은 졸업할 때까지 다양한 군사실습을 받는다. 각 학년별로 해병대 훈련, 함정운용실습, 연안실습, 해외순항훈련 등을 체험한다. 필리핀에서 온 제이슨(21) 생도는 한국의 해병대 훈련이 “필리핀보다는 약한 편”이라며 “섬나라인 필리핀은 해군이 가장 중요한 터라 해병대 훈련의 강도가 더욱 세다”며 자랑하듯 말했다. 군사전략을 강의하는 임경한 소령은 제이슨 생도에 대해 “생활하는 자세가 한국 생도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며 “열정적인 친구”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이런 우수 생도에게도 사관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은 듯하다. 제이슨은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외국인 생도들이 연이은 한국어 수업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는 이런 ‘한국어 핸디캡’을 고려해 외국인 생도들에게 별도의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임 소령은 “외국인 생도들이 4년 전 과정을 잘 마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지금껏 단 한 명도 중도 탈락한 외국 생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업 내용을 놓치지 않도록 때로 별도의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군항제 기간에 맞춰 옥포만에 정박한 왕건함에 해사 외국인 생도들이 승선했다. 생도들이 함포 앞에서 힘찬 구령을 외치고 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고충도 적지 않은 듯하다. 하비엣 박(22) 생도는 처음에는 한국의 선후배 관계가 다소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선후배의 개념이 없어 선배가 후배에게 시키지 않는다”며 “훈련은 장교들만 지휘한다”고 그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위계질서에 완전히 적응해 한국 해군에 대한 동경이 커졌다. “베트남 해군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베트남 해군사관학교장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선후배 생도 관계가 당황스러웠죠”

베트남에서 온 생도들은 대개 기계조선을 전공하며 엔지니어의 삶을 꿈꾼다. 임 소령은 “베트남 생도들이 우리나라에서 학사 학위를 받는 건 우리가 흡사 외국의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것과 같은 효과”라고 말한다.

“졸업 후 베트남 해군으로 임관하거나 혹은 이후의 삶에서 엔지니어가 됐을 때 한국에서 기계조선을 공부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해사에서 공부하는 네 명의 베트남 생도 중 아직 전공 미정인 하비엣 박을 제외한 세 명이 모두 기계조선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했다.

해사를 방문한 4월 초, 왁자지껄한 군항제 분위기와 달리 군데군데 전투복 차림을 한 장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근무복이 평소 복장이지만, 최근의 군 지침에 따라 한 달째 전투복을 착용하며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하비엣 박 생도는 베트남의 부모님으로부터 걱정어린 전화를 받기도 한단다.

유사 시 외국인 생도들은 자국의 국방무관을 통해 안전하게 본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 땅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니만큼 한반도 안보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이슨 생도는 “한국이 늘 전시 상황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며 “필리핀으로 돌아가 이런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국인 생도들은 한국 사관학교에서 졸업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장교로 임관하게 된다. 대부분 4년 간의 전 교육과정을 밟지만 협정 내용이 상이한 일본 생도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육·해사 1학기, 공사 1년) 한국에 체류한다. 조영상 소령은 “사관생도 교류는 군사외교의 측면이 크다”면서 “교환교육은 양국 간 상호이해와 우호 증진을 도모하는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생도 시절 한국에서 동거동락한 이들은 미래 한국의 군사외교에 있어 든든한 카운터파트너가 될 재목들이다. 각국에서 임관한 외국인 생도들이 수십 년 후 그들이 꿈꾼 장군이 되어 한국의 모교에서 만나게 될 날을 그려본다.




201305호 (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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