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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명이야기 - 독특한 향, 달착지근한 맛 입안을 휘감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한국인이 유독 즐겨 먹는 멍게… 노화 예방하는 타우린(taurine), 숙취 해소에 좋은 신티올, 인슐린 분비 촉진

▎출수공으로 물을 내뿜는 멍게.



멍게(Halocynthia roretzi)는 해초강(海鞘綱) 멍게과(Pyuridae)의 원삭동물(原索動物)이다. 멍게는 척삭동물(脊索動物·척추동물과 원색동물의 총칭)로 비록 척추가 없는 무척추동물이지만 다같이 척삭(notochord·배시기와 유생 때 있는 몸을 지지하는 기관으로 나중에 연골 또는 경골로 치환됨)이 생긴다는 점에서 사람과 꽤나 가까운, 상당히 고등한 동물에 해당한다. 멍게도 유생의 꼬리에는 척삭이 있지만 변태하여 성체가 되면서 그것이 흡수되어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인애플과 몹시 비슷하다 하여 ‘sea pineapple’이라 한다. 또 멍게를 영어로 ‘sea squirt’ 또는 ‘tunicate’라 하는데 ‘squirt’란 액체를 찍 짠다거나 물총처럼 물줄기를 쏜다는 뜻이며, ‘tunicate’란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에 싸여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해초류(海硝類)로 불린다[여기서 ‘硝’란 ‘칼집(sheath)’을 의미한다]. 그리고 몸 겉에는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오막조막, 더덕더덕 나있고, ‘멍게’와 ‘우렁쉥이’가 다같이 널리 쓰이므로 둘 다 표준어로 삼는다. 어릴 적에 친구를 놀릴 때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멍게 말미잘’이라고도 했었지!

멍게는 세계적으로 2500여 종이, 우리나라에는 7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바다에서는 동해와 남해안의 수심 6~20m에 주로 서식한다. 천해의 암석·해초·조개 등에 붙어살며, 몸 크기에 따라 독립된 개체(단체·單體)로 살거나 혹은 서로 이어져 무리로 엉켜 군체(群體·colony)를 이룬다. 15~20㎝인 몸체는 바위 같은 곳에 찰싹 달라붙어 평생 한자리에 살고, 몸 위편에 입수공(入水孔)과 출수공(出水孔)이 있다.

물이 드나드는 구멍(siphon)인 출수공은 입수공보다 아래에 위치하니 이는 출수공에서 나온 배설물이 입수공으로 흘러듦을 막기 위함이다. 연신 입수공으로 물을 빨아들이고 출수공으로 내뿜으면서 호흡하며, 함께 들어온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먹이로 먹는다. 또한 수많은 아가미 구멍에 섬모가 나있어서 먹이를 걸러 먹으니 이를 여과섭식(濾過攝食·filter feeder)라고 한다.

그런데 대관절 어느 것이 입수공이며 출수공이란 말인가. 그렇다. 다시 말하면 자루가 좀 기름하면서 넓적한 구멍이 ‘+’자 모양으로 크게 벌린 것이 입수공이고, 짤따랗고 작으면서 ‘-’자로 열린 것이 출수공이다. 물이 구멍이 큰 입수공으로 천천히 들어와 좁은 출수공으로 재빨리 나가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멍게의 몸을 툭 쳐보면 물을 쭉 뿜어 게워내니 그건 싱싱한 것이며 그때 물이 찍 나오는 틈이 출수공이다. 겉으로 때깔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렇게 자극을 줘서 신선도를 가늠한다.

멍게는 대부분이 한 개체에 정소와 난소 모두를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雌雄同體)로 유성생식하고, 일부는 어미의 몸에서 새로운 개체가 불룩 솟아나는 출아법(出芽法)으로 무성생식한다. 이때 새 개체는 어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기에 여러 개체가 이어져(뒤엉켜) 큰 덩이 집단을 이룬다.

유성생식은 출수공을 통해 알과 정자를 내뿜어내 수정하며, 알의 지름은 0.3㎜며 2주에 걸쳐서 하루에 1만2000여 개씩을 낳는다. 수정 후 이틀이 지나면 올챙이 모양의 작은 유생이 깨어나 수중을 떠다니다가 3일째엔 머리가 다른 물체에 달라붙으며, 변태하여 성체가 된다. 내처 죽죽 자라 1년 후에 약 10㎜, 2년째에 10㎝ 정도로 산란을 시작하고, 마침내 3년째는 약 18㎝가 되니 이때 보통 잡아먹는다.

글리코겐 함량 많은 여름에 먹어야 제철

문명은 필요의 산물이라 했다. 수요가 많다 보니 멍게 바다양식을 1982년에 성공하였고, 그 또한 우리나라가 독보적이라 한다. 양식은 인공적으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켜 종묘(種苗)를 얻거나 천연에서 어린 것을 채묘(採苗)하여 깊은 바닷속에서 키우는 수하식(垂下式)이다.

멍게는 살을 들어내 맑은 물에 가시고는 날로 초고추장에 날름날름 찍어 먹는다. 정갈하고 독특한 향과 상큼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지니고 있어 먹고 난 후에도 그 뒷맛이 입 안에 한참 감돈다. 어쩌지, 침이 입 안에 한가득 고이는 것을! 멍게의 특유한 맛은 불포화알코올인 신티올(cynthiol)이나 장미향을 내는 n-옥탄올(n-octanol) 때문이며, 글리코겐의 함량이 11.6%로 다른 동물에 비해 많은 편이다.

홍콩·일본 등지에서도 식용한다지만 유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는 물론이고 멍게비빔밥, 멍게젓 따위를 아주 즐기는 것으로 외국 기록에 소개되고 있다. 횟집에 가보면 접시에 멍게 살(위·아가미·심장·창자·생식소) 말고 껍데기채 놓인 것이 있으니 이가 좋은 사람들은 그것을 잘근잘근 꼭꼭 씹어 안에 든 살을 말끔히 빼서 먹는다. 그런데 우렁쉥이의 껍데기에는 도드라진 돌기가 많고, 가죽처럼 매우 질긴데, 동물이면서 식물이 갖는 섬유소(cellulose)가 껍질세포에 든 탓이라고 하니 별종(別種)임에 틀림없다.

멍게는 입맛을 돋우는 쌉싸래한 맛과 은은한 향기가 입맛을 달군다. 노화를 예방하는 타우린(taurine), 숙취해소에 좋은 신티올이 많고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기에 당뇨에도 좋다고 한다. 사시사철 잡아먹지만 바다수온이 높은 여름철에 맛이 으뜸이다. 글리코겐의 함량이 많은 까닭이며, 특히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멍게를 쏙 빼닮은 미더덕(Styela clava, stalked sea squirt)이 있는데, 이는 미더덕과로, 비록 겉은 멍게와 닮았지만 알고 보면 서로 과(科)가 다르다. 멍게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세계적으로 흩어져 살며,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된장국을 끓일 때나 각종 탕이나 찌개를 끓일 때 쓴다. 바다에 살면서 뿌리식물인 더덕을 닮았다 하여 미더덕이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서 ‘미’는 ‘물(水)’의 옛말이다.

갸름한 타원형으로 손가락만한 줄기자루(stalk)로 몸을 바닥에 붙이며, 역시 입수공과 출수공이 몸 끝에 있으며, 입수공은 배 쪽으로 삐뚜름하게 살짝 굽었고 출수공은 앞쪽을 향했으며, 몸의 빛깔은 황갈색에서 회갈색 등이다. 외국자료에 이 또한 이례적으로 한국인이 제일 즐겨 먹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이 원산지다. 이들 미더덕이 큰 배의 바닥짐으로 싣는 물(ballast water)에 묻어가 온 세계에 퍼져 한때 태평양의 북미 연안에 ‘침입’해 미국 바다를 마구 휘저어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경기고등학교 선생 때 멍게 수업을 열심히 하고 났더니만, 그 반의 어느 학생 별명이 단방에 ‘멍게’가 되고 말았다.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때문이었다. 환갑이 코앞에 왔을 그 학생의 이름은 까먹었지만 얼굴은 생생히 기억난다. 모두 건강들 하시게나.

201312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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