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혁명 근거지를 구축하기 위해 쭌이로 진군…어수정심(魚水情深)으로 주민과 교감한 홍군, 민심과 유리된 장제스 군대를 넘어서
1935년 1월 8일 중앙홍군이 쭌이에 입성했다. 곧 만인대회를 열고 쭌이혁명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잇따라 소집했다. 중국 현대사에서 ‘쭌이회의’는 마오쩌둥 부활의 결정판이었다. ‘왕따’에서 ‘보스’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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