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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 꽃은 하늘에, 열매는 땅에 맺는 땅콩 

꽃이 땅바닥에 내려 생긴다고 해서 ‘낙화생(落花生)’으로 불러… 항산화 성분과 탄수화물·지방·단백질·비타민 등 영양소의 보고 


땅콩에는 유해산소를 막아주는 항산화물질이 들어 있어 질병·노화 방지에 이롭다.
낙화생(落花生)이라고도 부르는 땅콩(Arachis hypogaea)은 장미목, 콩과의 한해살이풀로 꽃이 수정하여 땅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학명의 ‘Arachis’는 ‘땅콩’, ‘hypogaea’는 ‘땅 속(under the earth)’이란 뜻인데, ‘완두콩 닮은 꽃(pea-like flower)’을 피운다 하여 ‘peanut’이라 했다. 땅콩은 남미 원산으로 파라과이나 볼리비아 등지에는 아직도 가장 오래된 야생종(野生種)이 자라고 있다 한다.

짙은 녹색인 콩잎은 어긋나고, 길쭉한 잎자루(엽병, 葉柄)에 작은 잎(소엽, 小葉) 네 장이 잎자루 양편으로 나란히 줄지어 나는 것이, 깃털처럼 보이는 겹잎이라 하여 깃꼴겹잎(우상복엽, 羽狀複葉)이라 부른다. 땅콩처럼 소엽이 짝수이면서 맨 끝자리에 잎이 없는 것을 짝수깃꼴겹잎(우수우상복엽, 偶數羽狀複葉)이라 하고, 잎자루에 소엽이 좌우에 짝으로 나고(필자가 본 것 중에는 12쌍이 제일 많았음) 그 끝에 잎 하나가 붙는 것을 홀수깃꼴겹잎(기수우상복엽,奇數羽狀複葉)이라 한다.

가녀린 아까시나무(아카시아나무) 잎사귀 한 장을 따서, 입술 사이에 끼우고 ‘후후후’ 불면, 떨리는 잎이 입술을 간질이며 가볍게 파르르 소리를 내니 풀피리다. 또 하나 둘 셋…, 소엽의 개수를 서로 같이 맞추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소엽을 하나씩 딴다. 드디어 끝자리 잎까지 다 딴 사람이 진 사람 이마에 ‘호~~’ 하고 꿀밤을 먹였던 ‘잎 따기놀이’를 내남 할 것 없이 많이했었지.

땅콩 농사는 들짐승과의 전쟁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7∼9월에 나비꼴의 샛노란 꽃이 잎겨드랑이에 한 개씩 열리는데, 꽃받침통(악통, 萼筒)에 꽃받침·꽃잎·암술·수술이 함께 달린다. 자가수분(自家受粉, self-pollination)한 꽃이 이울고 나면 대번에 여기저기 암술대(꽃대, flower stalk)들이 앞다퉈 요란스럽게 허겁지겁 발버둥치며, 주렁주렁 아래로 굵은 줄을 내린다.

씨방이 든 꽃대 끝자락이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6㎝ 이상을 뻗으며, 땅바닥을 파고들면 씨방(자방, 子房)은 이미 휘듯 날카롭게 뾰족해진다. 씨방이 부풀어난 하얀 꼬마 콩꼬투리는 땅에 닿자마자 이윽고 거침없이 흙을 들쑤셔 뚫는다. 이는 희한하게도 꽃은 공중에 피우고, 열매는 흙 속에 매다는 신비로운 땅콩의 뜬금없는 태생적인 생식현상이다!

낙화생의 이런 점은 아주 특이한 형태로 다른 식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세상에 꽃은 하늘에, 열매는 땅에 맺다니! 땅속 암술대 끝에서 콩이 맺히니 ‘땅콩’이요, 꽃이 땅바닥에 내려 생긴다고 ‘낙화생(落花生)’이며, 흙 속에 열린다 하여 ‘groundnut’라고 부른다.

땅콩 재배에는 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며, 석회질이 풍부한 부식토가 많은 사질양토가 알맞다. 한마디로 모래 섞인 땅이 좋지만 사질토는 자칫 지력(地力)이 낮고, 하마터면 영양분 및 석회 부족 등을 초래하며, 가뭄에 가뭄피해를 받기 쉽다.

땅콩 밭두둑에 비닐 덮기(mulching)를 할 때는 포기 주변을 널찍하게 열어놔 주어야지, 만일 목을 조르다시피 비닐을 빈틈없이 빠듯이 덮으면 씨방이 비닐 탓에 땅에 내려앉지 못한다. 사실 필자도 땅콩 농사를 몇 해 꾀했으나 실패하였으니 들쥐·청설모·까치나부랭이들이 달려들어 다 파먹어버린다. 그 녀석들의 고얀 짓을 막자고 땅콩도 야물고 튼튼한 멋진 콩껍질로 종자를 똘똘 감싸지만 녀석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일찌감치 풋것을 파먹으니 이런 낭패가 없다. 하여 요새는 알이 찬다 싶으면 밭에다 그물을 덮는다.

땅콩은 고온성 여름작물로 파종 후 120~180일이면 수확한다. 3~7㎝의 질긴 꼬투리(땅콩 껍데기)는 흡사 누에고치를 닮았고, 속에 1∼3개의 종자가 들었으며(많은 경우 4개까지 듦), 씨앗 사이가 잘록잘록하다. 말쑥한 씨알은 길고 둥근 타원형으로 살이 쪄서 몸집이 크며, 두툼한 두 쪽의 떡잎 속의 배(胚, embryo)는 황백색이고, 얇은 종자껍질(종피, 種皮)은 적갈색이다.

땅콩은 세계적으로 70여 종이 있다 하며, 땅콩을 크게 두 무리로 나누니 줄기가 곧추서는 직립형(直立型, bunch)과 땅 표면을 내리뻗는 포복형(匍匐型, runner)이 있다. 또 종자의 크기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니, 종자가 큰 대립종(大粒種)은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씨알이 작은 소립종(小粒種)은 지방이 많다.

땅콩은 견과 아닌 협과로 분류

낙화생기름은 요리·샐러드 소스·마가린·마요네즈는 물론이고 비누나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고, 콩깍지는 종이 제조에, 줄기와 잎은 질소 함량이 많아서 동물사료나 녹비(綠肥)로 쓴다. 또 삶거나 노릇노릇 볶아 통째로 먹고, 땅콩가루는 샌드위치·빵·캔디·비스킷 등 여러 음식요리에 쓰며, 특히 땅콩버터(peanut butter)로 많이 먹는다.

중국이 세계 제1의 땅콩 생산국(41.5%)이고, 그 다음이 인도·미국이라 한다. 땅콩을 잘못 보관하면 곰팡이(균류) 일종인 ‘아스퍼질러스 플래브스(Aspergillus flavus)’에 오염되니, 이는 매우 독성이 강하며,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분비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또 생명까지 위협하는 땅콩알레르기 체질을 가진 사람이 미국에는 0.6%가 된다고 한다.

여기 땅콩의 영양소를 상세히 써보았다. 땅콩 100g에 570㎉를 내며, 탄수화물 21g(식이섬유 9g), 지방 48g, 단백질 25g(18종의 아미노산이 듦), 비타민 6종, 무기염류 6종 등이 골고루 들었다. 땅콩은 고작 기름기가 많은 군것질감으로 알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이토록 고른 영양소가 들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근래 땅콩에는 항산화물질(抗酸化 物質, antioxidants) 성분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산소(酸素)도 두 얼굴을 가진다. ‘활성산소(活性酸素, oxygen free radical)’란 세포 속 산소가 여러 대사(산화)과정에 쓰이면서 생성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산소를 이르며, 유해산소라고도 하는데, 이는 세포막·DNA·아미노산 등을 산화시켜 세포기능을 잃게 하거나 변질시킨다. 또 세포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하거나 각종 질병과 노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해로운 산소를 무력하게 하는 물질이 바로 항산화물질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품 중에 폴리페놀·비타민C·비타민E·β-카로틴 상태로 들었다.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를 땅콩 농사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땅콩 대통령’이라 불렀고, 땅콩 닮았다는 ‘땅콩보트’도 있다. 땅콩을 ‘peanut’이라 하지만 실은 견과(堅果, nut)가 아니고, 콩깍지(꼬투리)가 맺히는 협과(莢果, legume)다. 아련한 고릿적 일이다. 제대로 피죽도 못 먹고 살던 때, 어머니께서 자식 녀석 아프다고, 모처럼 쌀에 곱게 갈은 땅콩을 넣은 걸쭉한 땅콩죽을 쑤어 주셨으니, 달달하고 구수한 그 감칠맛을 도무지 잊지 못한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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