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버럴 아츠가 동원되는 수박 고르기리버럴 아츠의 개념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일반적(General)’이란 말의 의미다. ‘일반적인 지식, 일반적인 교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자적 의미로 보자면 ‘모두에게 통하는’이란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좋은 예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폰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감각 같은 것이 ‘일반적’이란 말 속에 투영돼 있을 듯하다.그렇지만 세상에는 아이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의 헤자브나 부르카, 한국의 개고기, 티베트의 풍장(風葬)도 있다. 이들은 역내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다. 바깥에 나가는 순간 모두로부터 희귀동물 취급을 받지만, 안에서는 상식이자 심지어 정의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중국의 판다, NBA의 프로농구 같은 것이 글로벌 차원의 일반적 관심사로 정착되기까지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리버럴 아츠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버럴의 문자적 의미는 ‘자유로운 사람의가치(Worthy of a free person)’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로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학문으로 리버럴 아츠를 창조해낸다. 구체적으로 보면, 문학·역사학·수학·논리학·천문학·기하학·음악·언어학·철학·심리학 같은 것이다. 수학자라고 할 때, 수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군사·천문·음악·문학·철학 등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 오해하기 쉬운데, 학문이 오늘날처럼 세분화된 것은 17세기부터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결과다.과학·철학·문학·정치 등에 눈을 뜨면서 학문이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제왕학으로 불리던, 극소수에게 독점되던 학문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각론화가 시작된다. 원래 인류는 종합학문, 즉 리버럴 아츠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에 익숙해 있다. 수박 한 통 고르는 데도 손의 감촉과 귀의 민감성, 나아가 눈과 코를 통해 확인, 재확인했다. 혀로 느끼는 입맛은 마지막 과정일 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2500년 만에 재림하다그랑투어는 자유의 시간을 즐거움과 탐구의 시간으로 바꿔주는 일생일대의 최대 이벤트다. 고대 그리스 당시의 학문들이 부활하면서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시민들에게 리버럴 아츠 교육의 문이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500년 만에 재등장하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다빈치가 인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추앙된다. 그랑투어는 그 같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확인하는 길바닥 교육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은 뒤, 직접 오감으로 인류의 어제를 경험해보자는 것이 그랑투어의 취지다.400여 년 전인 17세기는 놀고 즐기고자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고 현지의 지식인을 만나 견문을 넓히기 위한, 지적(知的) 자극으로서의 여행이다. 수학여행(修學旅行), 즉 익히고 배우는 공부로서의 여행이다.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은 그랑투어의 출발점에 선 나라다. 세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던 영국은 자국의 엘리트들을 ‘교양 있는 신사’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유럽문명과 역사와 무관했던 영국은 대륙의 문화와 세계관을 배우는 데 집중한다. 앞선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현재만이 아닌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영국의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역사서의 바이블에 해당되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흥망사>가 영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랑투어의 출발점이 영국 엘리트에 있다는 사실은, 18세기 이후 200여 년간 계속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모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대영제국의 상징인 옥스퍼드 대학이 설립된 것이 1096년. 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한 것은 헨리 2세 때인 1167년이다. 파리대학에 유학 갔던 사람들이 들어와 영국식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갈라져 나온 분교와 같은 곳으로, 1209년 탄생된다. 대륙 따라잡기에 나서면서 영국 대학생들의 그랑투어가 가속화된다. 선박을 통해 파리에 들른 다음에 다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간다. 열악한 교통사정 때문에 보통 수개월, 많으면 수년 동안 이뤄지는 장기여행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영국 엘리트들은 당시 지배층의 상징인 프랑스어 학습과 상류문화인 펜싱·승마·예절에 관한 공부를 위해 파리에 들른다.한 달 정도 머물면서 이탈리아행 그랑투어 준비에 들어간다. 운송수단인 마차를 준비하고 관련 장비와 음식·의류 등을 구입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바다를 통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간다. 알프스 산맥은 1년 내내 만년설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 주로 봄과 여름에 마차로 산을 타 넘는다. 알프스 산맥 내 39개 봉우리 가운데 31개가 영국인에 의해 첫 개발된 것은 바로 그랑투어 붐에서 비롯된 결과다.경영에 강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랑투어도 꽉 짜인 스케줄로 이뤄진다. 통역은 물론, 역사에 정통한 튜터(Tutor)도 함께 동행한다. <국부론(國富論)>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도 젊었을 때 귀족 대학생들을 위한 역사 튜터로 그랑투어에 참가한다. 집단여행은 당시 이탈리아 곳곳에 출현한 산적(山賊)과도 관계가 있다.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동안 정치·예술·철학·고고학·역사에 관한 공부와 토론이 이뤄진다. 역사적 교훈에 주목하는 수학여행으로서의 그랑투어는 이후 프랑스·독일·러시아 심지어 남미까지 확대된다. 모차르트·괴테·스탕달·뒤마·톨스토이·차이콥스키·바그너 등사상가·음악가·작가·예술가 등 유럽의 지성인들이 인생의 한때를 그랑투어에 투자한다.그랑투어는 크게 보면 다섯 개의 큰 도시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북(北)의 알프스로 넘어온 뒤, 서(西)의 밀라노와 동(東)의 베니스를 거쳐, 남(南)의 피렌체로 내려가서 로마를 거쳐 나폴리로 가는 코스다. 그랑투어의 대부분은 로마에서 종료됐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괴테처럼 나폴리까지 전부 끝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내 도시를 들라면 단연 이탈리아 베니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이 아니라,1년을 머물러도 결코 ‘질리지 않는’ 변화무쌍한 곳이다. 지적 자극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랑투어의 하이라이트 코스다. 로마는 성(聖)으로서의 아이콘에 해당한다. 리버럴 아츠의 결정판으로서의 여행지는 바로 베니스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명과 문화의 힘이 곳곳에 넘친다. 베니스는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이 가장 약했던 지역 중 하나다. 베니스는 신의 입김을 배제한, 리버럴 아츠의 핵(核)이자 인간이 만든 속(俗)의 도시다' 가면을 쓴 채 ‘속’의 최후까지 탐닉한, 세기적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낳은 곳이 바로 베니스다. 그랑투어 당시 베니스는 오스트리아국경 도시인 인스부르크를 통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간 뒤 만날 수 있었다.
신의 입김 배제한, 리버럴 아츠의 핵 베니스눈부신 베니스의 역사는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지식인이 앞다퉈 찾아온 가장 큰 동력이다. 지중해를 주름잡은 파워와 인구와의 역학관계에 관한 의문은 모두가 주목한 부분이다. 인구의 많고 적음이 파워와 문화의 수준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인구가 많다고 파워가 세지고 문화도 발전하고, 인구가 적다고 파워가 줄고 문화도 정체될까? 베니스는 주변 118개의 작은 섬(Lagoon)과 북서쪽 육지의 거주민 전부를 포함해, 인구 27만의 도시다(2009년 기준). 산 마르코(San Marco) 광장이 들어서 있는 중심 섬에 6만 명, 118개 작은 섬에 3만 3천 명, 그리고 섬에 붙은 육지에 17만 7천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한국의 중소도시 정도의 인구와 공간으로 구성된 곳이다. 30만 명에 이르는 베니스의 인구규모는 21세기는 물론, 그랑투어가 시작된 16세기에도 거의 비슷하다. 15세기 때 베니스 인구를 보면 10만 정도가 베니스 본토에 사는 자유시민, 바깥쪽 섬에는 용병과 노예 20만여 명이 거주한다.
|
|
그랑투어의 그림자, 문화재 약탈리버럴 아츠의 결정판인 그랑투어는 이후 유럽 내 박물관과 미술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랑투어가 탄생된 배경이기도 하지만, 유럽인이 믿는 파워의 조건 중 하나로 문화와 문명에 대한 체험이 중시된다. 돈과 권력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인문교양을 쌓는 것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위상을 결정하는 열쇠로 자리 잡는다.지난해 한국인 1500만 명이 해외여행에 나섰다고한다. 모두가 뭔가 배우기 위해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랑투어 당시의 리버럴 아츠를 대할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디지털 카메라에 정신을 팔았을 뿐, 정작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무슨 그림을 봤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주변을 보면, ‘찍었노라 먹었노라 마셨노라!’가 해외여행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존 로크(John Locke)는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다. 그랑투어의 가치와 필요성을 일찍이 역설한 영국 신사이기도 하다. “지식이란 외부의 감각, 즉 다른 환경에 노출된 육체적인 자극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적 환경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기존의 환경이 주는 변화만이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바꾸면서 그 변화를 만들어나가야만 자극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여행은 세상에 대한 지성과 지식을 넓히는데 절대 필요한 존재다.”
|
마우리지오 토레산(Maurizio Torresan) - 산 마르코 광장 사진사“평생 기억에 남는 사진을 원하는가?”베니스의 심장인 산 마르코 광장에서 마우리지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동대문시장에서 뒷골목에서 본 라이터돌 판매상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간편하고 필름도 필요 없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는 남녀노소 모두의 여행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과연 찾는 손님이 있을지 궁금했다.(개인홈페이지: www.digitimagephoto.it)
여기서 일한 지 얼마 됐는가?
“13년부터 산 마르코 광장 중심부에서 일해왔다.”(2014년 3월기준)
손님은 있는가?
“오늘 오전에 손님 세 명이 다녀갔을 뿐이다. 그렇지만 베니스에서 태어나 베니스 중심을 지키면서 산 마르코 광장을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그 정도 손님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울 듯한데?
“유럽 전체가 어렵고, 이탈리아의 경제도 내리막길이다. 특히 나의 일은 더한층 불황이다. 그렇지만 매년 2월 카니발 축제를 전후해 바빠진다. 호텔이나 큰 파티장에 불려가 사진을 찍는다. 결혼이나 신혼여행 기념사진도 찍는다. 산 마르코 광장만이 아니라 베니스 전체가 나의 비즈니스 영역이다.”
요즘은 관광객 대부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올 텐데?
“내가 찍는 사진은 특별하다. 예술로서의 사진을 제공한다. 베니스를 평생 기억하도록 만드는 예술작품을 찍을 수 있다.”
사진사로서의 자부심이 있다면?
“나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디지털 즉석 사진관을 처음으로 열었다. 현재는 네 개로 늘었지만, 모두 나를 흉내 내 만든 짝퉁에 불과하다. 지금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10여 년 전에는 곧바로 현상한 사진을 보이면 모두가 기뻐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달라.
“지난해 베니스 지방정부가 채택한 나의 사진이다. 젊은 연인이 산 마르코 광장을 배경으로 키스하는 모습으로 <라스트키스(Last Kiss)>란 타이틀로 베니스 관광홍보 자료로 활용됐다. 페라리 자동차의 회장을 찍은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프란체스코 기발디(Francesco Gibaldi) - 전위음악가“ 빈 술병, 버린 지팡이도 악기가 된다”프란체스코와의 첫 만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 들를 때마다 묶는 호텔 주인의 아들이 프란체스코였다. 직업을 묻자, 아마추어 블로어(Blower)란 답이 돌아왔다. 블로어란 입으로 부는 악기 전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공기를 넣어 입으로 불 수 있는 모든 물건이 프란체스코의 악기에 해당한다.(개인 홈페이지: www.facebook.com/ilbol)
주로 어떤 악기를 다루나?
“트럼펫·플루트 같은 것이 기본이지만, 입으로 불어서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이 나의 영역이다. 길가에 세워둔 파이프나 먹다 남은 술병, 쓰다가 버린 지팡이 같은 것이 나의 악기다. 구멍을 뚫어 음정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소리를 내면서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현대 전위예술가라고 하겠다.
“맞다. 컨템퍼러리 음악의 영역이다. 현재 기타·전자오르간·드럼 연주자와 함께 그룹을 만들어 공연을 하고 있다.”
고전음악과 전위 음악의 차이는?
“CD냐 라이브(Live)냐의 차이가 아닐까? 원래, 음악가의 큰수입 중 하나는 음반이었다. 레코드나 CD판매를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고전음악가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현장감을 주는 라이브가 음악세계의 주류가 돼가고 있다.”
이탈리아 전위예술의 위상은?
“사실 이탈리아 거주 전위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없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도시는 밤 8시가 되면 올스톱이다.대도시인 로마나 밀라노는 예외겠지만, 대부분은 정적에 휩싸인다. 이탈리아의 건물은 최소한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소음과는 무관한 구조인 탓에 연주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이탈리아라고 하면 예술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
거의 대부분 예술가에게 이탈리아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작품을 발표할 무대나 장소도 넘친다.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면서 커간다. 음악은 물론,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끼리 누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잘 안다. 서로 경쟁 하기도 하지만, 힘을 합쳐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나갈 때 이탈리아가 갖는 근접성(Intimacy)은 큰 장점이 된다.
안드레아 모루치오(Andrea Morucchio) - 교회 설치예술가“투혼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에게 박수를!”안드레아는 북부 파두아(Padua)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설치예술가로 살아간다.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영상·음향과 같은 멀티미디어로 표현하는 행동설치예술가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그가 만든 비디오 작품을 다수 볼 수 있다. 2002년 모세니고(Mocenigo) 뮤지엄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개인 홈페이지: www.morucchio.com)
취미나 꿈은?
“진짜 예술가라면 취미도 꿈도 있을 수 없다. 예술이 전부다.”
이탈리아에서 존경하는 사람은?
“작은 비영리 독립문화 조직에서 일하는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놀고 마시는 활동이 아니라, 예술적 목적을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이다.”
이탈리아의 장점을 꼽으라면?
“다른 나라나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는데 익숙한 곳이다. 지금도 그러한 역사와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만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물론 자랑스럽다. 그러나 21세기 이탈리아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뒤덮인 거대한 오락장으로 변해간다. 과거의 영혼과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전위 설치 예술가가 된 배경은?
“아버지를 따라가 사진전을 본 것이 동기일 듯하다. 8세 때 베니스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보고 감동했다. 예술에 대한 감각과 꿈은 15세 때부터 시작됐다.”
이탈리아 내 어떤 웹사이트를 가장 좋아하는가?
“내 웹사이트를 가장 사랑한다.”
이탈리아 정치를 어떻게 보는가?
“이탈리아 정치라고 하면 마피아(Mafi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탈리아 제1 야당의 ‘5 Stelle 운동’만이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
인터넷은 당신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무대나 공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수 없을 경우, 인터넷이 대신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