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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 인류 최초 ‘꿈과 낭만’의 순례 그랑투어 

400년 전 영국·프랑스·독일 등 지식인사회에 불어닥친 그리스·로마 문명 체험 열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인 르네상스의 발현이자 근대 유럽 지성사의 출발점을 돌아보다 

베니스·나폴리=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넒은 광장은 그리스·이탈리아 정치제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열린 광장에서 토의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나폴리 플레비스시토 광장은 그리스·로마 광장을 원형으로 한다.
칼을 대는 순간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온다. 여름철에 사들인 수많은 수박 가운데 실패한 적이 있는가? 고르는 족족 전부 달고, 붉고, 맛있다. 덩그렇게 쌓여 있는 수박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도 백발백중이다. 수박 내부를 붉게 만드는 유전자 조작과 숙성도를 감지하는 첨단 IT장비 덕분이다.

과일 하나를 앞에 두고 말이 많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라면 수박에 관련된 묘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수박처럼 속을 알기 어려운 과일도 없다. 과일의 숙성도는 표면의 향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토마토·사과·딸기 같은 과일의 숙성도는 코로 확인할 수 있다. 깊고 달콤한 향이 날수록 잘 익었다. 수박은 다르다. 향을 맡으려 해도 굵은 껍질이 내부를 차단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등장한다. 두드려 보기다. ‘퉁퉁퉁’ 하는 맑은 소리가 날수록 잘 익었다. 씨앗 주변에 생긴 공기 때문이다. 번식을 위해 씨앗이 자기만의 방(房)을 만드는 과정에서 틈이 생긴다. 잘 익은 수박은 중간 부분이 아예 텅 비어 있다. 덜 익은 수박일수록 둔탁한 소리가 난다.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귀를 수박에 바짝 갖다 대고 투명도를 실험한다. 모든 수박을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손과 귀는 20세기까지 통용되던 수박 고르기의 출발점이다. 수박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인문학’이란 거창한 개념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다.

사실 리버럴 아츠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일반적인(General) 지식을 가르치고 사람들의 이성적인 사고와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 특정 분야에 주목하는 전문가적·직업적·기술적 교육과 다른, 문학·언어·철학·역사·수학·과학을 기반으로 한 종합학문’으로 집약될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교양이나 지식에 관한 교육’ 정도가 리버럴 아츠의 뼈대에 해당하는 듯하다. 나만의 편견이나 일방적인 이념이 아니다. 상식과 평정심에 기초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는 교육과 학문을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와의 만남은 그랑투어의 주된 목적 중 하나다. 역사학의 아버지 투키디데스 흉상.

리버럴 아츠가 동원되는 수박 고르기

리버럴 아츠의 개념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일반적(General)’이란 말의 의미다. ‘일반적인 지식, 일반적인 교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자적 의미로 보자면 ‘모두에게 통하는’이란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좋은 예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폰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감각 같은 것이 ‘일반적’이란 말 속에 투영돼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아이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의 헤자브나 부르카, 한국의 개고기, 티베트의 풍장(風葬)도 있다. 이들은 역내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다. 바깥에 나가는 순간 모두로부터 희귀동물 취급을 받지만, 안에서는 상식이자 심지어 정의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중국의 판다, NBA의 프로농구 같은 것이 글로벌 차원의 일반적 관심사로 정착되기까지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리버럴 아츠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버럴의 문자적 의미는 ‘자유로운 사람의가치(Worthy of a free person)’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로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학문으로 리버럴 아츠를 창조해낸다. 구체적으로 보면, 문학·역사학·수학·논리학·천문학·기하학·음악·언어학·철학·심리학 같은 것이다. 수학자라고 할 때, 수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군사·천문·음악·문학·철학 등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 오해하기 쉬운데, 학문이 오늘날처럼 세분화된 것은 17세기부터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결과다.

과학·철학·문학·정치 등에 눈을 뜨면서 학문이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제왕학으로 불리던, 극소수에게 독점되던 학문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각론화가 시작된다. 원래 인류는 종합학문, 즉 리버럴 아츠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에 익숙해 있다. 수박 한 통 고르는 데도 손의 감촉과 귀의 민감성, 나아가 눈과 코를 통해 확인, 재확인했다. 혀로 느끼는 입맛은 마지막 과정일 뿐이다.


1 그랑투어에 나선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묘사한 그림. 18세기 이후 유럽 작가들에게는 일생일대의 필수 여행코스가 그랑투어였다. 2 로마의 바티칸은 그랑투어의 정점이자, 중심이다. 당시 바티칸 교회 안은 부자들을 기다리는 유럽 전역의 거지들로 들끓었다.
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세계를 분석한 것이 계몽주의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인 르네상스의 연장선에서 탄생된 세계관이다. 관념이 아닌 현실, 형이상학이 아닌 형이하학이란 차원에서 출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꽃을 피운 리버럴 아츠가 중세의 암흑을 뚫고 세상에 재등장한다. 다빈치는 르네상스 최고 정점에 선 인물로 불린다. 다빈치의 삶과 생각 그리고 천재성은 리버럴 아츠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이다. 화가 이전에, 해부학·군사학·예술·음악·문학·미학(味學) 등 모든 차원에서 르네상스의 완결자다. 인간에 중심을 두는 르네상스 정신 그 자체가 67세 다빈치 인생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근본적인 우주의 원리를 알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 다빈치는 그 같은 평범한 진리를 세상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인다. 르네상스는 왕이나 왕 주변에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리버럴 아츠의 수혜자였다. 다빈치 역시 평생 교회나 권력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계몽주의는 다빈치형의 인간을 저변으로 확대해나간 시기다. 아메리카 신세계와 인도양이 개발되면서 일반 시민들까지 돈의 힘을 만끽하게 된다. 왕이나 귀족, 그 주변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리버럴 아츠의 수혜자로 등장한다.

‘그랑투어(Grand Tour)’는 계몽주의를 전후해 나타난 리버럴 아츠의 결정판에 해당된다.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그랑투어는 유럽인과 미국 나아가 남미인들에게도 귀에 익은 단어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에 기초한, 인류 최초의 ‘꿈과 낭만’이 바로 그랑투어다.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로마의 유산과 예술, 나아가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직접 경험하는, 현장체험이다. 가톨릭 사제들이 독점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자유의 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500년 만에 재림하다

그랑투어는 자유의 시간을 즐거움과 탐구의 시간으로 바꿔주는 일생일대의 최대 이벤트다. 고대 그리스 당시의 학문들이 부활하면서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 시민들에게 리버럴 아츠 교육의 문이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500년 만에 재등장하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다빈치가 인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추앙된다. 그랑투어는 그 같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확인하는 길바닥 교육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은 뒤, 직접 오감으로 인류의 어제를 경험해보자는 것이 그랑투어의 취지다.

400여 년 전인 17세기는 놀고 즐기고자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고 현지의 지식인을 만나 견문을 넓히기 위한, 지적(知的) 자극으로서의 여행이다. 수학여행(修學旅行), 즉 익히고 배우는 공부로서의 여행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은 그랑투어의 출발점에 선 나라다. 세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던 영국은 자국의 엘리트들을 ‘교양 있는 신사’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유럽문명과 역사와 무관했던 영국은 대륙의 문화와 세계관을 배우는 데 집중한다. 앞선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현재만이 아닌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영국의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역사서의 바이블에 해당되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흥망사>가 영국에서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랑투어의 출발점이 영국 엘리트에 있다는 사실은, 18세기 이후 200여 년간 계속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모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대영제국의 상징인 옥스퍼드 대학이 설립된 것이 1096년. 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한 것은 헨리 2세 때인 1167년이다. 파리대학에 유학 갔던 사람들이 들어와 영국식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갈라져 나온 분교와 같은 곳으로, 1209년 탄생된다. 대륙 따라잡기에 나서면서 영국 대학생들의 그랑투어가 가속화된다. 선박을 통해 파리에 들른 다음에 다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간다. 열악한 교통사정 때문에 보통 수개월, 많으면 수년 동안 이뤄지는 장기여행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영국 엘리트들은 당시 지배층의 상징인 프랑스어 학습과 상류문화인 펜싱·승마·예절에 관한 공부를 위해 파리에 들른다.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이탈리아행 그랑투어 준비에 들어간다. 운송수단인 마차를 준비하고 관련 장비와 음식·의류 등을 구입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바다를 통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간다. 알프스 산맥은 1년 내내 만년설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 주로 봄과 여름에 마차로 산을 타 넘는다. 알프스 산맥 내 39개 봉우리 가운데 31개가 영국인에 의해 첫 개발된 것은 바로 그랑투어 붐에서 비롯된 결과다.

경영에 강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랑투어도 꽉 짜인 스케줄로 이뤄진다. 통역은 물론, 역사에 정통한 튜터(Tutor)도 함께 동행한다. <국부론(國富論)>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도 젊었을 때 귀족 대학생들을 위한 역사 튜터로 그랑투어에 참가한다. 집단여행은 당시 이탈리아 곳곳에 출현한 산적(山賊)과도 관계가 있다.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동안 정치·예술·철학·고고학·역사에 관한 공부와 토론이 이뤄진다. 역사적 교훈에 주목하는 수학여행으로서의 그랑투어는 이후 프랑스·독일·러시아 심지어 남미까지 확대된다. 모차르트·괴테·스탕달·뒤마·톨스토이·차이콥스키·바그너 등사상가·음악가·작가·예술가 등 유럽의 지성인들이 인생의 한때를 그랑투어에 투자한다.

그랑투어는 크게 보면 다섯 개의 큰 도시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북(北)의 알프스로 넘어온 뒤, 서(西)의 밀라노와 동(東)의 베니스를 거쳐, 남(南)의 피렌체로 내려가서 로마를 거쳐 나폴리로 가는 코스다. 그랑투어의 대부분은 로마에서 종료됐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괴테처럼 나폴리까지 전부 끝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내 도시를 들라면 단연 이탈리아 베니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이 아니라,1년을 머물러도 결코 ‘질리지 않는’ 변화무쌍한 곳이다. 지적 자극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랑투어의 하이라이트 코스다. 로마는 성(聖)으로서의 아이콘에 해당한다. 리버럴 아츠의 결정판으로서의 여행지는 바로 베니스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명과 문화의 힘이 곳곳에 넘친다. 베니스는 이탈리아 전체를 통틀어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이 가장 약했던 지역 중 하나다. 베니스는 신의 입김을 배제한, 리버럴 아츠의 핵(核)이자 인간이 만든 속(俗)의 도시다' 가면을 쓴 채 ‘속’의 최후까지 탐닉한, 세기적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낳은 곳이 바로 베니스다. 그랑투어 당시 베니스는 오스트리아국경 도시인 인스부르크를 통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간 뒤 만날 수 있었다.

신의 입김 배제한, 리버럴 아츠의 핵 베니스

눈부신 베니스의 역사는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지식인이 앞다퉈 찾아온 가장 큰 동력이다. 지중해를 주름잡은 파워와 인구와의 역학관계에 관한 의문은 모두가 주목한 부분이다. 인구의 많고 적음이 파워와 문화의 수준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인구가 많다고 파워가 세지고 문화도 발전하고, 인구가 적다고 파워가 줄고 문화도 정체될까? 베니스는 주변 118개의 작은 섬(Lagoon)과 북서쪽 육지의 거주민 전부를 포함해, 인구 27만의 도시다(2009년 기준). 산 마르코(San Marco) 광장이 들어서 있는 중심 섬에 6만 명, 118개 작은 섬에 3만 3천 명, 그리고 섬에 붙은 육지에 17만 7천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한국의 중소도시 정도의 인구와 공간으로 구성된 곳이다. 30만 명에 이르는 베니스의 인구규모는 21세기는 물론, 그랑투어가 시작된 16세기에도 거의 비슷하다. 15세기 때 베니스 인구를 보면 10만 정도가 베니스 본토에 사는 자유시민, 바깥쪽 섬에는 용병과 노예 20만여 명이 거주한다.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은 그리스 원형의 대형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그랑투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모차르트와 괴테는 나폴리까지 가는 그랑투어에 참가했다.
베니스는 697년부터 1797년까지 이어진 1100년 공화국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화국으로 존재해온 곳이다. 평균 10만 수준을 유지해왔던 자유시민이 1100년 공화국의 주인공이다. ‘과연 어떻게해서 10만 명의 인구만으로 세계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개척해왔는지’가 그랑투어에 참가한 유럽 지식인 모두가 알고 싶었던 베니스만의 비밀이다.

그랑투어는 19세기 말에 출현한 철도와 함께 빛을 잃어간다. 지식인과 부자들에게 허용되던 여행의 진가가 철도를 통해 평범한 노동자에게까지 퍼져 나간다. 마차 여행을 대신해 독일제 자동차가 등장한다.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북엔 유럽의 맛집이 선을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밭에서 막 딴 채소보다 얼음에 절인 인스턴트 가공식품에 눈이 간다. 복잡한 이탈리아의 역사·예술·문화보다, 파리 근교의 공원이나 노르망디 해변가가 한층 더 인기를 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 러시아 발레가 예술계를 장악하면서 이탈리아 클래식 문화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간다.

그랑투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70년 파리에서 출간된 책을 통해서다. 영국인 가톨릭 사제인 리처드 라셀(Richard Lassels)이 펴낸 <이탈리아 기행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탈리아 전역을 다섯번이나 여행한 라셀은 정치·사회·경제·예술을 알기 위해서는 그랑투어를 반드시 경험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제국주의시대 유럽열강들이 혈안이 돼 수집했던 것들로 문화유물과 예술품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말 조선에 들른 영국과 독일은 유학가들의 무덤을 파헤쳐 역사적 유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상숭배가 최고 덕목 중 하나인 조선인 입장에서 볼 때 무덤을 파는 ‘미개인’들과 마주 앉기가 어려웠을 것이다.사실 해외 어디를 가든 문화 유물 약탈에 나선것은 그랑투어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전역을 오가는 동안 미적 감각을 갖추게 되고, 더불어 자신의 위상을 비교· 분석하는 안목이 생긴다. 여행을 통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모습을 찾고 개발해나간다. 현지 문화유물과 유적은 최고의 비교수단이다. 그 같은 경험이 없는 조선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베니스 산 마르코 광장을 묘사한 그림. 전 세계에 걸린 이탈리아 풍경화의 대부분은 당시 그려진 싸구려 기념품에서 온 것이다.

그랑투어의 그림자, 문화재 약탈

리버럴 아츠의 결정판인 그랑투어는 이후 유럽 내 박물관과 미술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랑투어가 탄생된 배경이기도 하지만, 유럽인이 믿는 파워의 조건 중 하나로 문화와 문명에 대한 체험이 중시된다. 돈과 권력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인문교양을 쌓는 것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위상을 결정하는 열쇠로 자리 잡는다.

지난해 한국인 1500만 명이 해외여행에 나섰다고한다. 모두가 뭔가 배우기 위해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랑투어 당시의 리버럴 아츠를 대할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디지털 카메라에 정신을 팔았을 뿐, 정작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무슨 그림을 봤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주변을 보면, ‘찍었노라 먹었노라 마셨노라!’가 해외여행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존 로크(John Locke)는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다. 그랑투어의 가치와 필요성을 일찍이 역설한 영국 신사이기도 하다. “지식이란 외부의 감각, 즉 다른 환경에 노출된 육체적인 자극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적 환경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기존의 환경이 주는 변화만이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바꾸면서 그 변화를 만들어나가야만 자극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여행은 세상에 대한 지성과 지식을 넓히는데 절대 필요한 존재다.”


마우리지오 토레산(Maurizio Torresan) 산 마르코 광장 사진사



마우리지오 토레산(Maurizio Torresan) - 산 마르코 광장 사진사

“평생 기억에 남는 사진을 원하는가?”

베니스의 심장인 산 마르코 광장에서 마우리지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동대문시장에서 뒷골목에서 본 라이터돌 판매상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간편하고 필름도 필요 없는 고성능 디지털 카메라는 남녀노소 모두의 여행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과연 찾는 손님이 있을지 궁금했다.(개인홈페이지: www.digitimagephoto.it)

여기서 일한 지 얼마 됐는가?

“13년부터 산 마르코 광장 중심부에서 일해왔다.”(2014년 3월기준)

손님은 있는가?

“오늘 오전에 손님 세 명이 다녀갔을 뿐이다. 그렇지만 베니스에서 태어나 베니스 중심을 지키면서 산 마르코 광장을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그 정도 손님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울 듯한데?

“유럽 전체가 어렵고, 이탈리아의 경제도 내리막길이다. 특히 나의 일은 더한층 불황이다. 그렇지만 매년 2월 카니발 축제를 전후해 바빠진다. 호텔이나 큰 파티장에 불려가 사진을 찍는다. 결혼이나 신혼여행 기념사진도 찍는다. 산 마르코 광장만이 아니라 베니스 전체가 나의 비즈니스 영역이다.”

요즘은 관광객 대부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올 텐데?

“내가 찍는 사진은 특별하다. 예술로서의 사진을 제공한다. 베니스를 평생 기억하도록 만드는 예술작품을 찍을 수 있다.”

사진사로서의 자부심이 있다면?

“나는 산 마르코 광장에서 디지털 즉석 사진관을 처음으로 열었다. 현재는 네 개로 늘었지만, 모두 나를 흉내 내 만든 짝퉁에 불과하다. 지금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10여 년 전에는 곧바로 현상한 사진을 보이면 모두가 기뻐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달라.

“지난해 베니스 지방정부가 채택한 나의 사진이다. 젊은 연인이 산 마르코 광장을 배경으로 키스하는 모습으로 <라스트키스(Last Kiss)>란 타이틀로 베니스 관광홍보 자료로 활용됐다. 페라리 자동차의 회장을 찍은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프란체스코 기발디(Francesco Gibaldi) - 전위음악가

“ 빈 술병, 버린 지팡이도 악기가 된다”

프란체스코와의 첫 만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 들를 때마다 묶는 호텔 주인의 아들이 프란체스코였다. 직업을 묻자, 아마추어 블로어(Blower)란 답이 돌아왔다. 블로어란 입으로 부는 악기 전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공기를 넣어 입으로 불 수 있는 모든 물건이 프란체스코의 악기에 해당한다.(개인 홈페이지: www.facebook.com/ilbol)

주로 어떤 악기를 다루나?

“트럼펫·플루트 같은 것이 기본이지만, 입으로 불어서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이 나의 영역이다. 길가에 세워둔 파이프나 먹다 남은 술병, 쓰다가 버린 지팡이 같은 것이 나의 악기다. 구멍을 뚫어 음정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소리를 내면서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현대 전위예술가라고 하겠다.

“맞다. 컨템퍼러리 음악의 영역이다. 현재 기타·전자오르간·드럼 연주자와 함께 그룹을 만들어 공연을 하고 있다.”

고전음악과 전위 음악의 차이는?

“CD냐 라이브(Live)냐의 차이가 아닐까? 원래, 음악가의 큰수입 중 하나는 음반이었다. 레코드나 CD판매를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고전음악가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현장감을 주는 라이브가 음악세계의 주류가 돼가고 있다.”

이탈리아 전위예술의 위상은?

“사실 이탈리아 거주 전위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없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도시는 밤 8시가 되면 올스톱이다.대도시인 로마나 밀라노는 예외겠지만, 대부분은 정적에 휩싸인다. 이탈리아의 건물은 최소한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소음과는 무관한 구조인 탓에 연주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이탈리아라고 하면 예술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

거의 대부분 예술가에게 이탈리아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작품을 발표할 무대나 장소도 넘친다. 어릴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면서 커간다. 음악은 물론,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끼리 누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잘 안다. 서로 경쟁 하기도 하지만, 힘을 합쳐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나갈 때 이탈리아가 갖는 근접성(Intimacy)은 큰 장점이 된다.




안드레아 모루치오(Andrea Morucchio) - 교회 설치예술가

“투혼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안드레아는 북부 파두아(Padua)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설치예술가로 살아간다.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영상·음향과 같은 멀티미디어로 표현하는 행동설치예술가다.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그가 만든 비디오 작품을 다수 볼 수 있다. 2002년 모세니고(Mocenigo) 뮤지엄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개인 홈페이지: www.morucchio.com)

취미나 꿈은?

“진짜 예술가라면 취미도 꿈도 있을 수 없다. 예술이 전부다.”

이탈리아에서 존경하는 사람은?

“작은 비영리 독립문화 조직에서 일하는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놀고 마시는 활동이 아니라, 예술적 목적을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이다.”

이탈리아의 장점을 꼽으라면?

“다른 나라나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는데 익숙한 곳이다. 지금도 그러한 역사와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만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물론 자랑스럽다. 그러나 21세기 이탈리아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뒤덮인 거대한 오락장으로 변해간다. 과거의 영혼과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전위 설치 예술가가 된 배경은?

“아버지를 따라가 사진전을 본 것이 동기일 듯하다. 8세 때 베니스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보고 감동했다. 예술에 대한 감각과 꿈은 15세 때부터 시작됐다.”

이탈리아 내 어떤 웹사이트를 가장 좋아하는가?

“내 웹사이트를 가장 사랑한다.”

이탈리아 정치를 어떻게 보는가?

“이탈리아 정치라고 하면 마피아(Mafi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탈리아 제1 야당의 ‘5 Stelle 운동’만이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

인터넷은 당신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무대나 공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수 없을 경우, 인터넷이 대신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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