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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초능력 혹은 시 간을 되돌리는 능력 

<엣지 오브 투모로우> VS <어바웃 타임>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간절한 바람의 시간적 재현… 인생을 이루는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도록 하는 교훈적 메시지 담아 

강유정 영화평론가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타고난 능력을 철저히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시간여행을 하고, 그녀를 학습한다. / 사진·중앙포토



시간 여행은 SF영화의 단골 소재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처럼 매일 매일이 반복되어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이프 온리(If only, 2004)>에서와 같이시간을 되돌려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시간여행 기계를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 부모님의 연애에 끼어드는 <백 투 더 퓨처>는 시간여행 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여행은 영화라는 마술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초월적 경험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영화에서 말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삶의 일회성과 죽음의 필연성”을 말했다. 여기엔 우리가 인간의 삶이라고 부르는 운명의 한계가 모두 포함된다. 아무리 현명하고, 부유한 사람이라도 삶을 여러 번 살 수는 없다. 오늘 보낸 시간은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흘러내려갈 뿐이다. 이 일회성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누구나 한 번 죽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이란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상상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현실이나 과학적 사실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상상의 영역에서만큼은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영화는 시간의 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이라고 부르는 영화의 기본적 서사 방식은 시간의 순서를 뒤섞는 데서 출발한다.

영화는 삶의 순간 중 중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골라내고, 그 순서 역시 임의적으로 재현한다. 꼭 과거가 먼저 나오고 현재가 중간에 나올 필요가 없다. 매우 짧은 시간이 긴 시간처럼 슬로모션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주인공 빌 케이지(톰 크루즈·사진)는 타임루프 안에 갇혀 전장의 체험을 반복한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반복 학습을 통해 미션을 클리어하는 방식과 같다. / 사진·중앙포토
영화의 마술, 시간의 반복

가령,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실제 사고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슬로모션으로 1분가량으로 재생하는 경우도 있다. 왕가위 영화에 등장하는 슬로모션들도 그렇다. 때로, 이 슬로모션은 감정적 놀라움을 반영하는 정서적 기술로 쓰일 때가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목격했을 때, 시간이 천천히 흐르듯 그녀의 움직임을 느리게 묘사한다거나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남자의 동공이 커진 채 오래 멈춰 있는 장면은 이런 순간에 대한 영화적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해 재현하는 것, 문자를 기반으로 한 소설에서 이런 작업은 묘사를 통해 구현되지만 영화에서는 시각적으로 연출자가 의도하는 만큼 시간을 상대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순간은 교차 편집을 통해 압축된 시간으로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2009)>와 같은 영화에서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움직이는 전우치의 축지법 도술도 영화적으로는 매우 간단하다. 연극이었다면 마술쇼와 같은 무대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영화에서는 영상 편집술로 충분히 축지법이나 공간이동, 타임워프(time warp)를 재현할 수 있다.

영화에 있어 시간여행, 공간이동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로 자리 잡아왔다. 스페이스 오페라류의 SF에서도 역시 이런 류의 이동은 단골 소재였다. 여기에는 물리적 불가능성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하려는 인류의 오래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와 워킹 타이틀사의 심리적 SF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 공간이동 영화사에 독특한 흔적을 남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빌 케이지는 반복되는 전장의 경험을 통해 진짜 군인으로 거듭난다. 빌의 거듭되는 죽음과 재생은 삶과 죽음에 대한 무게감보다 유쾌함마저 느껴진다. / 사진·중앙포토
시간의 학습효과 <엣지 오브 투모로우>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난 이후 가장 간절한 바람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텐데, 라는 바람말이다. 이런 바람에서 출발한 영화가 바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올 유 니드 이스 킬(All you need is kill)>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세계는 ‘미믹’이라고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멸망 위기에 놓여 있다.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사람들에게 참전을 격려하는 공보장교이다. 사람들에게 참전을 종용하지만 한편 그가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말뿐이다. 실전에 참가해본 적 없는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설교가나 행정가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런 그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작스럽게 실제 전장에 배치를 받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빌은 전투에 참가하자마자 죽고 만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음부터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다시 눈을 떠보니, 전장에 도착했던 바로 그 순간의 ‘빌’로 되돌아와 있는 것이다. 다시 전쟁에 참여하고 또 죽고, 다시 태어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반복된다. 외계인과의 접촉으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살게 되는 타임 루프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타임루프 안에 갇힌 빌이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진짜 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있다. 같은 증상을 경험했던 여전사도 이야기에 보태진다. 이제 그들은 이 학습 효과를 토대로, 외계인의 약점을 찾아내 지구를 지켜내고자 한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 타임루프 영화이다. 하지만, <사랑의 블랙홀>이,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반복의 시간인 데 비해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반복이나 학습효과는 다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반복은 마치 게임의 리셋과 꼭 닮아 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사용해 미션을 클리어해가다가 캐릭터가 죽게 되면 다시 전 단계로 돌아가 학습한 대로 위기를 모면하는 과정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빌이 거듭해서 죽고 다시 태어나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없다. 심지어 그는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서 죽어버리기까지 한다.

덕 리만 감독의 전작인 <점퍼(Jumper,2008)>가 공간적 이동에 대한 욕망의 고백이었다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시간을 조율하고픈 욕망의 반영 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종이처럼 맘대로 접었다 펼 수 있다면, 아마 실수라고 부르는 인간적 행동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미션은 완수되고, 실패하는 일이나 후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 욕망을 발랄한 게임의 문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반면,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이동은 매우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바람의 변주로 보여진다. 성인이 된 어느 날, 아들 팀은 아버지로부터 놀라운 유전적 비밀을 듣게 된다.

집안의 남자들에게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듣게 된 것이다. 시간여행의 비법은 간단하다. 홀로 있을 수 있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 두 주먹을 꼭 쥐고 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일에 이 능력을 쓰게 될까? 영화 <어바웃 타임> 속의 주인공 팀은 철저하게 ‘가정’을 위해 이 능력을 쓴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그에게 제대로 된 남자로 자리잡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고 그녀를 학습한다. 여동생의 불행을 돌이키기 위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거나, 돌아가신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한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 두 주먹을 꼭 쥐고 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하면 된다. / 사진·중앙포토
실수하는 인간과 책임 있는 인간

즉 <어바웃 타임> 속에서 시간여행의 능력은 소중한 가족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만 쓰여진다. 그런 점에서, 빌 집안의 남자들에게만 이 능력이 유전된다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이 능력은 마치 가장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여자를 선택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기회가 남자에게 있지만 한편 그 가정을 지켜낼 가장 큰 책임 역시 그에게 있다.

능력을 쓸 때면 반드시 기회비용이 뒤따른다는 설정도 그렇다. 가령, 과거로 돌아가 여동생의 삶을 바꿔 좀 더 행복한 곳으로 옮겨두고 나면 현재 그가 누렸던 행복 하나가 달아나고 없다. 도미노처럼,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되돌아간다 해도 완벽하게 똑같은 미래로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다.

인생은 게임과 다르다. 하나의 돌을 두는 방향에 따라 다음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막상 다리를 건너야만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어바웃 타임>은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작은 실수를 다시 체험해서 약간의 발전을 갖는 것 정도가 시간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양 말한다.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는 이런 작은 실수들과 시행착오들이 쌓여서 만들어 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설정을 이용하고 있지만 좀 더 문학적인 인생론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고 해서 현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국 인생이란 한순간, 한순간의 모음이기에 어떤 결정적 순간만 변화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여행에 대한 갈망,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간절한 바람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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