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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인터뷰 | 정남식 연세의료원장 - “한국 최고 후학양성기관으로 키운다” 

“세브란스는 단순히 한 대학병원이 아니라 ‘국민의 병원’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pognee@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최근 미국 마크 리퍼트 대사가 피습당한 후 연세세브란스병원을 찾아 화제가 됐다. 당시 외교적으로 한미관계에 미묘한 흐름이 있던 가운데 세브란스는 ‘민간외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를 진두지휘한 정남식 연세의료원장은 “제중원의 가치에 따라 진심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지난해 8월 제 16대 신임 의료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대한심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심장내과 전문의다. 1976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 의대학장 및 심혈관 연구소장,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한국심초음파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브란스의 ‘전신’ 제중원이 올해로 130주년을 맞이했다.

“제중원은 우리 연세세브란스의 ‘진(Gene)’, 유전자다. ‘진’은 변하지 않는 정신이기도 하다. 그동안 세브란스는 제중원의 가치를 계승해 실천해왔다.”

연세세브란스가 실천해온 제중원의 가치는 무엇인가?

“과거 우리가 역사적인 상황 때문에 헐벗고 굶주렸을 당시 선교사들이 희생정신을 갖고 세운 병원이다. 그들은 우리와 인종도 국적도 달랐지만 한국 사람을 치료했고 의료인을 양성하도록 도왔다. 애초부터 의사 돼서 돈 벌고 잘살려고 만들어준 병원이 아니었다. 이처럼 세브란스가 설립된 목적은 분명하다. 책임감을 가지고 후학 양성을 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만들자는 거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우린 대학병원이 아닌 ‘국민의 병원’이다”

특별한 설립배경이 세브란스만의 ‘주인의식’을 만든 것 같다.

“대학병원으로서 후학양성에 충실하자는 모토(motto)가 있다. 앞으로도 이것을 더욱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토에 공감하고 함께 노력하는 분들이 현재 세브란스병원의 구성원이다. 자신을 고용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곳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성심껏 일하고 있다. 이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근간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대의적 기능은 국립병원에서 해오지 않았나?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흔히 국립이 모든 걸 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일례로 인재양성의 산실로 평가받는 미국 하버드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경우 대표적인 사립기관이지 않나? 마찬가지로 세브란스는 사회에 기여하고 인본 가치를 향상시키는 대학병원이다. 그동안 좋은 연구, 좋은 교육, 좋은 시설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세브란스병원의) 역사가 깊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이름을 뺏겨서 ‘아사히 의학전문학교’가 된 아픈 역사도 있고, 6.25전쟁을 거치며 병원 건물이 다 무너져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시 도움을 받아 일어섰다. 한 개인이나 기업의 도움만 받았다면 개인의 병원이 되었겠지만, 국민과 우리 병원 구성원 전체의 노력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세브란스는 국내의료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례로 국내 최초로 암센터를 세웠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오지 않는다. 제중원이 그러했듯 세브란스도 개척정신을 실천해왔다. 암센터도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도전이었다. 타 병원처럼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지은 게 아니라 국민의 기부를 통해서 만들어져 더 의미 있었다. 이렇듯 국민께서 주신 애정을 가슴에 새기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이 아니라 ‘국민의 병원’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최근 세브란스가 미국 리퍼트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료해 민간외교 역할을 했다. 대사를 수송해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 원장의 신속한 판단이 있었다고 들었다.

“조찬기도회를 하는 목요일 아침이었다. 그날 평소답지 않게 늦잠을 자서 뒤에 앉았다. 우연치곤 너무 우연 같았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휴대폰에 속보로 ‘마크 리퍼트 대사 피습’ 뉴스를 속보가 떴다. 평소처럼 맨 앞자리에 앉았으면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크 리퍼트 대사를 정 원장의 지시로 직접 모셔왔다는데.

“그 분 입장에선 타국에서 봉변을 당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나. 그래서 가능하면 최고의 의술과 시설에서 치료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타국에서 동포를 만나면 심리적 위안을 느끼지 않나. 그 점을 고려해 속보를 접한 즉시 같은 미국인인 인요한 교수에게 전화했다. 그때 인 교수가 “I am on my way.(가고 있다)”라고 답하더라.”(웃음)

당시 세브란스의 신속한 조치에 미 대사가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한다.

“감사한 일이다. 단지 그분을 우리의 소중한 손님이자 환자로 보고 치료한 것뿐이다. 오히려 국민들께서 이번 일을 두고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시니까 그게 더 기쁘고 감사했다.”

지난해 세브란스가 해외환자 유치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노하우가 궁금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덕분일 것이다. 세브란스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의학이 시작된 곳이다. 무엇보다도 세브란스를 믿고 찾아와주시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직원들한테 말한다. ‘환자가 많은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해외환자 유치분야에서도 1위 독주

사회적 기여 차원에서 여러 계획을 세웠다고 들었다. 설명해달라.

“사회기여는 개척정신과 함께 세브란스의 정체성이자 임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어떤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했나? 아픈 사람 도와주고 치료하고 의사 만들었다. 이런 가치의 연장선상에서 재난의료시스템, 제중원 힐링캠프(가칭) 등을 기획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학이기 때문에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우선 남들이 선뜻하지 않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주로 연구하고 싶다. 그래서 최근 산학기반 선도형 융복합 의료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연구자, 산업체간의 환자에 대한 융합연구가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사무실에 본관변동 환경개선공사 설계도가 있다. 병원 내 모든 공사를 직접 검토하나?

“그렇다. 인테리어 색깔은 어떤지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직접 본다. 환자가 이 방에서 누울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생각해봐야 한다. 입원비가 호텔보다 비싼데 그보다 더 좋은 느낌을 줘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암센터를 둘러보며 얼마나 청결도가 유지됐는지 검토했다. 정말 청결해서 수고 많았다고 칭찬했다. 병실을 모두 다녀 봐도 반질반질하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 때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어떻겠나. 그래서 주말에도 화장실청소를 깨끗하게 한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다. 힐링캠프와 재난 방지시스템처럼 멀리 보는 망원경이 있다면 화장실, 수술실 청소처럼 디테일을 보는 현미경도 있어야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기자님이 처음 나와 통화했을 때 저의 태도가 어땠나?”

좋았다.(웃음)

“그럼 됐다. ‘응대’가 가장 중요하다. 의료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아우르는 응대를 해야 한다.”

정 원장은 “대학병원 본연의 역할인 암이나 심혈관·뇌혈관 질환, 중증 난치성 희귀질환 치료와 연구에 주력하겠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다졌다.

-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pognee@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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