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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아츠의 심연을 찾아서] 침묵의 신을 상대로 한 고독한 맹세 

 

토리노=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예수의 성의, 부처의 사리, 마호메트의 칼만이 믿음을 연출하는 보증수표인가? 보이지 않아도, 손에 잡히지 않아도 바보 같은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스페인 발렌시아 교회에 있는 성배 맞은편 십자가 제단. 상단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장식돼 있다. 전체적으로 작고 단출한 분위기의 교회다.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을 찌르는 듯,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흑백영화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땀과 대지의 냄새가 머릿속으로 파고 든다.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세상 모두에게 선언하는 신념의 독백이다. 실종된 지 16년째나 된 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송길용(62) 씨의 다짐이자, 가훈(家訓)이다. 1999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혜희가 실종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되새겨온 삶의 나침반이다. 송씨는 메르스와 관련해 최근에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양성 반응으로 격리치료를 받았다. 딸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이다. 그러나 병을 이겨냈다. 기자들이 회복소감을 물어봤다. “제 딸 송혜희를 찾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습니다.”

실종된 딸을 찾으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이나 정 만이 아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격(格)이 60만원 기초수급자 송길용 씨에게서 느껴진다. 스스로는 물론, 저 세상으로 떠난 부인과 하늘의 신을 상대로 한 영원한 약속이다.

6월 28일, 대통령의 노래를 들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사우스캐롤로라이나주 찰스톤 교회의 비극과 관련된 것이다. 9명의 흑인이 예배 도중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살해된다. 오바마는 추도식 연설에 나섰다. 공영 텔레비전 을 통해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숨진 흑인들에게 신의 은총이 있을 것이란 얘기를 하다가,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이란 말을 독백처럼 읊조렸다. 10초 정도 적막이 흐른다. 이어 나지막이 오바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은총이여(Amazing grace!), 신의 은총을 통해 나 같은 불행한 자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한때 나는 방황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신의 은총으로 제자리를 찾았다.(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찬란한 가짜와 허름한 진짜의 구별


▎로마군이 예수의 머리 위에 씌운 가시 면류관. 프랑스 남부 막달라 마리아 교회에서 발견한 것으로 진위 여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바마의 가는 노랫가락에 맞춰 교회 안 모든 사람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르간 연주가 뒤따르고 오바마의 목소리도, 참가자들의 음성도 올라갔다. 노래가 끝날 때쯤 오바마는 큰 소리로 절규했다. 죽은 9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그들의 이름과 함께 “신의 은총이 함께한다”라고 세상에 선포한다. 오르간 반주 속의 메시지가 마치 신의 음성처럼 느껴진다. 세상 그 어떤 정치인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눈물과 감동의 시간이다.

송길용 씨와 오바마는 확신범이다. 세상은 물론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신념의 인간이다. 세상사람들은 나름대로 스스로를 믿으면서 적당히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세파에 찌드는 과정에서 변해간다. 때로는 반대쪽으로 가는 경우도 하고, 어불성설 변명도 하면서 살아간다. 16년 동안 딸을 찾아 헤맨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2~3년 찾다가 포기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계속된 인종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확신하는 척, 신념을 가진 척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송길용 씨와 오바마는 세상사적 기준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신을 상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신과 직접 만난 대화를 나눈 뒤, 초지일관 죽을 때까지 밀고 나간다. 대답 한 번 없는, 침묵의 신을 상대로 한 고독한 맹세지만 죽는 그날까지 변치 않는다. 그들의 약속과 맹세에 귀를 기울인다면 감동이 밀려올 것이다. 그들의 확신과 신념에 주목한다면, 가슴 저 밑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막장 세상사에 찌든 인생이라고 하지만, 삶은 숭고한 것이라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소리칠 만한 ‘진한 감동’이 우러날 것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를 포함한 99.99%의 보통사람들은 송길용 씨와 오바마의 메시지를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척박하고도 잔인한 일상에 찌들어가면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할 능력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딸이 이미 저세상에 갔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의 노래가 추도식 이전에 철저히 계획된, 정치적 쇼라고 비하하는 사람도 많다. 백인을 적으로 하는 흑인 대통령의 음모라는 것이다. 역설적일지 모르겠지만, 신의 역할은 찬란한 가짜에 매달리며 허름한 진짜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있을지 모르겠다. 가슴속에 숨어 있는 뜨거운 감동을 멀리하고, 영리한 머리로 세파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존재가 신일 듯하다. 현세의 모든 것을 불신하고 실망하기에, 상상 속의 신에게서 답을 구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하듯, 신은 결코 가까이서 찾아보기 어렵다. 신을 세상에 소개하는 사원이나 사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신으로 연결되는 중간자들이다. 그러나, 막장 삶에서 산전수전 다 겪는 동안 중간자에 대해서도 불신을 갖게 된다. 목사나 승려의 사기 행각이 고정 뉴스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결국 사제들의 애절한 설교보다,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찬란한 픽션에 감동한다. 드라마 속 연기자의 말에 감동할 뿐, 웬만한 설교나 설법은 귀에도 안 찬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 군림하는 신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영리한 보통 인간들은 죽음에 앞선 보험으로 신을 찾는다. 상상 속의 신이 아니라,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신이다. 암과 같은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은 좋은 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돈을 퍼부어도 풀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하면서 ‘마침내’ 신을 갈구한다. 인생 중반에 찾아오는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신에게 눈을 돌린다. 노년의 정치인, 문학가나 대학교수의 종교 귀의에 관한 뉴스는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기사다. 똑똑한 머리 하나로 오랫동안 버텼지만, 역시 똑같은 인간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박식하든 유명하든 관계없이, 인간 모두가 죽음이란 절대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100만 명 몰린 토리노 성의 공개


▎예수의 성의를 X-레이로 특수 촬영한 모습. X-레이 촬영 결과 예수가 고통을 받으면서 숨질 당시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신은 결코 그 같은 보통 인간들을 욕하거나 벌주지 않는다. 일찍 왔다고 찬미하고, 늦게 찾아왔다고 꾸짖지 않는다. 99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 신이 존재한다. 99.99%의 인간은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양과 같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99마리 양이라 자신할지 몰라도, 언젠가 반드시 길을 잃게 된다. 그것이 바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이다. 신의 가치와 의미는 그러한 상황 아래서 접하게 된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란 말은, 너무도 인간적인 발상이다. 오감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못 믿겠다는 의미다. 가슴속의 신앙이 아니라 눈으로 믿는 신이다. 바이블이나 불경 속의 가르침이 아니라, 신이 남긴 구체적인 흔적을 통해 신을 이해하는 식이다. 예수·부처·마호메트와 관련된 유품·유물·유적들이 주인공이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까지 들고 갔다는 십자가의 파편, 부처가 평소에 사용한 밥그릇, 마호메트의 신발 같은 것들이다. 신이 남긴 흔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신을 믿는 식이다. 신만이 아니라, 성인들의 흔적도 중시된다. 성 프란체스코가 입었던 다 떨어진 옷 같은 것들이다.

아프리카 코뿔소가 거의 멸종 단계라고 한다. 중국인들의 코뿔소 뿔에 대한 신념이 그 이유다. 뿔 하나 가격이 아프리카 현지에서도 1만 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코뿔소의 뿔이 암과 불치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이라 믿는다. 인간의 손톱 같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코뿔소 뿔에 대한 신앙은 남다르다. 오바마가 말한 것과 다른 의미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가 신었다는 신발을 한 번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신의 은총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송혜희 아버지의 가훈과 오바마의 노래보다 성인의 뼛조각 하나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절대적이다.

해외토픽처럼 소개됐지만, 지난봄 이탈리아 토리노(Torino: 프랑스어로는 Turin)에서는 신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4월 19일부터 6월 24일까지 열린 ‘사크라 신도네(Sacra Sindone)’의 일반 공개다. 영어로 Holy Shroud, 즉 성스러운 수의(壽衣)다. 줄여서 토리노의 성의(聖衣)라 불리는, 예수의 유품이다. 사크라 신도네의 공개는 청소년 수호성인에 해당되는 요한 보스코(John Bosco) 신부의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 즈음한 이벤트다. 성의는 지금까지 두 번, 2000년과 2010년 일반에 공개됐다. 수의는 사자(死者)를 감싸는 천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뒤 동굴에 보관된다. 사흘 뒤 부활하기 전까지 예수를 감싸고 있던 천이 사크라 신도네, 즉 성의다. 길이 4.37m, 넓이 1.11m 크기의 흰색 세마포(細麻布)다.

예수를 감싼 성의는 예수의 모습과 신체가 이미지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신의 흔적이 세마포에 배어 있다. 5년 만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 기독교 신자가 성의를 보관하고 있는 성 요한 대성당(Cathedral of Saint John the Baptist)으로 몰려들었다. 시대 흐름에 맞게 인터넷을 통해 관람 예약을 받았다.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6월 20일, 교황 프란체스코도 직접 들러 미사를 집전하고 성의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피 흘리는 예수, 자신의 관과 마주하다


▎마호메트의 족적과 수염, 칼이 보관된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내 전시관. 선지자의 모습을 담은 성스러운 공간은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는다.
필자는 올 초 토리노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성(聖)과 속(俗)을 동시에 느끼기 위한 여정이다. 성은 대성당 내 성의다. 속은 토리노의 행정구역인 피에몬테(Piemonte) 지방의 명물인 화이트 트러플(white truffle, 백송로버섯)이다. 예수의 유품을 접하면서 어떻게 감히 세속적 행복을 희구하는가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자체가 성과 속의 카오스이자, 코스모스에 속하는 나라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성과 속을 애써 구별해 성의 반대편에 속을, 속의 반대편에 성을 두는 사람은 종교 원리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극단적으로 보면 탈레반이나 이스라엘의 울트라 유대교도에 비견될 수 있다.

이탈리아 어린이들은 대략 열 살 때 처음으로 와인을 마신다. 교회 성찬식이 이뤄지는 동안 예수의 살과 피로서의 빵과 와인을 접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술에 취한 사람이나 알코올 중독자를 발견하기 어렵다. 와인은 성인 동시에 속이다. 열 살 때부터 와인을 익히면서 성을 통한 속, 속을 통한 성에 익숙해진다. 무엇이든지 극단으로 갈 때 문제가 생긴다. 아마도 화이트 트러플은 예수가 피에몬테 지방으로 재림할 경우, 현지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먼저 대접할 음식일 듯하다.

토리노의 성의는 대성당 중앙제단 왼쪽에 위치해 있다. 성 요한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5세기 초에 건립됐다. 크기는 초대형은 아니고, 많아야 300명가량이 들어갈 정도의 규모다. 대형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성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가 극히 드물다. 전 세계 기독교 신자에게 알려진 유명한 교회치고는 지극히 단출하다. 성의 제단 바로 위는 붉은 장막을 배경으로 한 검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필자의 일방적 판단이지만, 이탈리아 교회 내 장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예수가 인간에게 ‘베푸는’ 행적을 중시하는 교회와, 세상의 원죄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부터 ‘당하는’ 최후의 모습에 주목하는 교회다. 대부분의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통해 두 가지 측면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나눠볼 때 토리노 대성당은 예수의 ‘당하는’ 행적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병자를 고치는 기적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외치는 광야의 메시지는 없다. 탄생과 부활에 관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죽음만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 같은 유대인에 의해 살해된 예수의 흔적이 교회 안을 메우고 있다.

중앙제단은 보수 중이라 큰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초대형 촛불과 함께, 높이 10m 정도 높이의 제단이다. 제단 바로 위는 돔형 지붕이 드리워져 있다. 중앙제단 좌우 양측은 특별한 그림 없이, 로마 스타일의 기둥과 창문만이 들어서 있다. 소박하고 단순하다. 성의가 들어선 제단 주변은 크게 붐비지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 서너 명과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엄숙하고 조용하다. 성의 제단은 대형 유리로 보호되고 있다. 흰 천으로 뒤덮인 4m 길이의 긴관(棺)이 옆으로 누워 있다.

예수의 전신 이미지가 담긴 성의가 관 안에 있다고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살을 파고드는 듯한 날카로운 가시면류관이 관 위에 장식돼 있다. 십자가가 그려진 붉은 휘장이 ‘도미네(Domine)’란 라틴어와 함께 관 한가운데를 감싸고 있다. 도미네는 ‘주님(Lord)’을 의미한다. 관 위에는 예수의 이미지가 큰 천에 담겨 걸려 있다.

예수 유품 1호 ‘베로니카의 손수건


▎발렌시아 교회 성배가 안치된 제단. 위에 걸린 예수의 이미지는 성의에 남겨진 예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그러하듯, 생명을 일깨우는 작품이나 역사물은 주변 환경과 더불어 종합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대칭점, 즉 반대편에 들어선 물건이나 구조에 주목한다. 모나리자 반대편에 걸린, 베로네세(Veronese)의 초대형 작품 <카나의 결혼(The Wedding at Cana)>에 주목하는 식이다. 자세히 보면, 카나의 결혼에 초대받은 예수가 맞은편 모나리자의 눈을 응시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성의의 반대편 제단은 십자가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피를 흘리는 예수가 자신의 관과 마주하는 구조다. 십자가 예수의 크기는 1m 정도로, 작은 편이다. 십자가 위로는 황금빛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들어서 있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악을 통해 관 속의 예수를 기리려는 듯하다.

성 요한의 성의는 전 세계 기독교 신자에게 알려진 예수 유품 2호에 해당된다. 1호가 아니라, 2호라 지칭하는 이유는 토리노 성의 이전에 또 다른 ‘특별한’ 유품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수다리움(Sudarium), 즉 ‘땀에 젖은 천’이 예수 유품 1호에 해당된다. ‘베로니카의 손수건(The Veil of Veronica)’으로 한층 더 유명한 예수의 흔적이다.

성의라는 존재가 역사상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353년이다. 프랑스의 샤르니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우연히 예수의 성의로 밝혀진다. 이런저런 경로로 프랑스를 떠돌다가 1578년 토리노에 정착한다. 당시 토리노는 프랑스계의 사보이 왕조 지배 아래 있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국경을 넘어 파리에 전시돼 있듯이, 프랑스에서 발견된 예수의 성의는 이탈리아에 보관돼 있다.

수다리움에 관한 스토리는 바이블에 등장한다. 예수가 십자가를 진 채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던 중 쓰러진다. 그때 예수를 따르던 여신자인 베로니카가 자신의 손수건으로 예수의 땀과 피를 닦아준다. 예수의 얼굴 이미지가 손수건에 그대로 남게 된다. 베로니카에 관한 얘기는 바이블에도 등장한다. 일찍부터 손수건 찾기가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베로니카 손수건으로 알려진 유품이 10여 개 존재한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증거와 역사를 근거로 수다리움을 전시하고 있다.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4개가 유명하다. 로마 바티칸, 스페인 남부의 알리칸테(Alicante)와 하엔(Jaén),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버그 성(城)에 보관된 것이다.

예수에 관한 모든 흔적이 그러하듯 진위에 대한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 4개나 되는 베로니카의 천에서 보듯, 하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는 것도 많다. 성의는 복수가 아닌, 단 하나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예수 성의를 둘러싼 진위 공방


▎발렌시아 성배로 성찬식을 올리는 교황 베네딕트. 성배를 차지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식의 얘기는 중세 이래 지속돼온 신화이기도 하다.
먼저 성의를 진짜 예수의 유품이라고 말하는 근거를 살펴보자. 첫째, 성의에 드러난 3차원의 흔적이다. 사람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면 2차원에 그치지만, 첨단 과학장비를 통해 연구한 결과 누군가의 수의로 사용된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둘째, 성의의 주인에게서 나타난 신체적 특징이다. 3차원 흔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 예수가 숨지기 직전의 상황이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손과 발에 못의 흔적이 있고, 심하게 부어 오른 코와 찢어진 오른쪽 눈 45㎏ 무게의 십자가를 들고 가면서 입게 된 어깨의 타박상, 채찍질 자국으로 엉망이 된 상반신 같은 요소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기 전까지 당했던 신체적 고난이 성의 속에 역력히 남아 있다. 셋째, 1973년 스위스 경찰 범죄연구소가 밝힌 조사결과다. 성의 속에 묻어있는 꽃가루(花粉)를 분석해본 결과, 모두 49개 종류의 꽃가루 분자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 가운데 예루살렘과 예수의 활동지에 서식하는 식물은 13종류라고 한다.

성의를 예수의 유품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가장 핵심이 되는 이견은 1988년 옥스퍼드 대학, 애리조나 대학, 스위스 연방공과 대학의 합동조사 결과에서 나왔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의한 제조 시기 확인이다. 대략 1260년에서 1390년에 만들어진 세마포란 사실이 과학적으로 검증된다. 그러나 세 개 대학의 연구결과는 다른 조사기관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의해 뒤집어진다.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세마포란 결과가 나온다. 헤어진 수의가 수차례 복구되는 과정에서 다른 시대의 천 조각이 첨가되면서 연대 측정도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세한 바이러스가 붙어있기 때문에 수의의 위치에 따라 연대 측정이 달리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토리노 성의의 진위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는 미완의 유품으로 지금까지 논란 중이다.

터키 톱카프 궁전의 마호메트 전시관


▎성 요한 대성당은 기적이나 설교 같은 부분보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예수의 마지막 행적에 주목한다.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희구하는 ‘보는 것이야 말로 믿는 것’이란 신념은 성의만이 아닌, 다른 예수의 흔적에도 적용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에도 등장한 성배(聖杯)는 그 같은 흔적 중 하나다. 성배는 라틴어로는 칼리스(Chalice), 영어로는 Holy Grail로 불려진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와인 잔이다. 예수의 피를 담은 성스러운 잔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예수 사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에서처럼, ‘성배를 갖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이 서방 기독교 신자 사이에 퍼진다. 결국 여기저기서 예수의 성배가 등장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탈리아 제노바(Genoa), 스페인 중동부의 발렌시아(Valencia)와 북서부 성지순례 길의 레온(Leon)이 성배 보관소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발렌시아 지방의 성배다. 바티칸이 진짜라고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교황 바오로2세와 베네딕트도 발렌시아 성배로 성찬식을 거행했다.

필자는 3년 전에 발렌시아의 성배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발렌시아에 간 김에 교회에 들렀다가 우연히 성배의 존재를 알게 됐다. 성배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구석 제단 한 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성배를 찾는 신자를 위해 별도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크기는 높이 17㎝, 폭 14.5㎝에 달한다. 그러나 예수가 사용했다는 성배는 전시품의 윗부분, 즉 짙은 주황색의 돌잔에 국한된다. 금과 에메랄드, 수정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돌잔의 아랫부분은 후대의 기독교 신자가 덧붙여 만든 것이다. 따라서 실제 성배의 크기는 높이 7㎝, 폭 9.5㎝에 그친다. 한국의 전통 찻잔 크기 정도다. 15세기 이전 발레시아를 점령했던 이슬람 왕국이 모스크로 사용했던 곳이 발렌시아 교회다. 스페인 중부, 남부 교회의 대부분은 한때 무슬림 모스크로 활용된 건물들이다.

성의나 성배 같은 오감에 의존하는 신앙은 불교나 무슬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화장(火葬) 후 남는 부처의 사리(舍利)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 여기는 열반의 증거다. 부처나 성인이 남긴 사리의 유무는 법당의 권위와 역사를 가늠하는 기준에 해당된다. 이슬람의 경우는 어떨까?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슬람은 알라 외 모든 인위적 가치를 부정한다. 모스크에 가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내부를 장식하는 예술적·심미적 가치가 전무하다. 그림이나 조각상은 물론, 제단도 따로 없다. 선지자 마호메트의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중심으로 하면서, 알라가 남긴 코란 구절만이 모스크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마호메트가 알라 외 모든 것을 부정했다 하더라도, 한 마리 양으로서의 인간이 갖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알라를 대신한 선지자 마호메트에 대한 무슬림들의 열망과 기대다. 예수의 성의와 성배처럼 마호메트에 관한 유품·유물·유적이 신성시된다.

터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박물관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은 그 같은 보통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주는 성지다. 터키어로 ‘힐카이 세리프 오다시(Hirkai Serif Odasi)’로 불리는 전시관이 주인공이다. 영어로 ‘Chamber of the Holy Mantle’, 즉 성스러운 망토(등 뒤에 길게 드리워진 외투) 전시관이다.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들은 보통 망토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선지자 마호메트 전시관이란 의미다. 무슬림들이 이스탄불을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톱카프 궁전의 마호메트 전시관에 들르기 위함이다. 마호메트의 유품 3개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마호메트의 좌족적(左足跡)이다. 인도 델리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진위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둘째는 수염의 털이다. 무슬림들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는 마호메트를 닮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자 역시 예수와 비슷해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셋째, 마호메트 유품으로 ‘알 마툴(Al-Ma’thur)’이라는 이름의 칼이 있다. 이슬람 전파를 위해 마호메트가 출정할 때 사용했다는 칼이다.

마호메트의 칼이 의미하는 것

선지자의 중요한 유품으로 칼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슬림의 세계관을 알려주는 증거일 듯하다. 칼을 통한 정복과 전쟁의 역사다. 예수 박물관이 있다고 가정하면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 칼이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기독교 신자가 평화를, 무슬림이 전쟁의 의미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예수가 탄생했을 당시, 기독교의 정반대에 선 종교는 없었다. 유대교가 있었지만, 기독교와 적대관계로 가지는 않았다. 유대교는 처음부터 유대인에 한정된 민족종교다. 이슬람은 6세기 말 탄생된, 세계로 향한 일신 신흥종교다. 이미 일신교로 뿌리를 내린 기독교와 적대관계에 들어간다. 만약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먼저 탄생했다면 아마도 예수의 칼이 바티칸 어디에 전시되고 있을 듯하다. 이슬람은 탄생 자체가 칼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됐다.

‘겨자씨가 태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바이블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의 설교다. 간질에 걸린 어린이가 오지만 제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예수는 곧바로 치유한다. 기적이다.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어린이 간질병을 못 고치는가라고 묻는 과정에서 겨자씨 비유가 나온다. 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어린이 병만이 아니라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세상의 상식이다. 예수의 성의와 성배, 부처의 사리, 마호메트의 수염과 칼이 확실한 믿음을 연출하는 보증수표에 해당된다.

예수·부처·마호메트는 그 같은 인간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보지 않아도 되고, 보는 것과 무관한 믿음은 어떨까? 딸 송혜희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 살해된 9명의 흑인이 신의 은총 하에 있으리라는 오바마의 믿음과 같은 것이다. 눈에 드러나지 않고, 손에도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동이 있는 한 믿음은 영원할 것이다. 보지 않아도 믿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나라. 바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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