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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日常반추’] 키스가 말하는 모든 것 

설렘과 호기심, 신비로움, 낭만성을 갖고 있는 사랑과 정념의 키스들… 사랑의 실루엣, 행위의 망설임, 욕망의 그림자로 비친 키스의 숭고함 

장석주 전업작가
키스는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인류의 불행을 경감시키고, 망망대해 같은 고독에서 우리를 건져낸다. 키스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며 작품으로 탄생하는 이유다. 키스는 사랑의 불꽃을 일으키는 기적인 셈이다. 젊은이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첫 키스의 달콤함, 청춘의 특권을 누려라!
입술은 말하고 사랑하며 먹는 일들을 수행한다. 세계를 빨아들이는 수렁이고, 말이라는 배를 세계로 띄우는 발코니! 입술은 리비도의 기원이다. 미소 짓고 “나는 널 사랑해”라고 말하며, 타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먹는다. 말하고 먹으며 키스하고 사랑하는 것, 그중 하나라도 없다면 삶은 균형과 조화를 잃고 비틀거릴 것이다. 말하고 먹고 빨며 자양분과 쾌락을 취하는 입술! 이것은 인생이 필요로 하는 충일과 즐김의 입구다. 입술은 미소 짓고 “나는 널 사랑해”라고 말하고, 그리고 키스를 한다. 사랑스러운 입술은 키스를 부른다. 키스는 불안과 슬픔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주문, 쾌락의 꽃다발이다. 이것의 슬하에서 사랑은 싹트고 자라난다. 하지만 키스는 신체적 친밀감을 쌓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생물학적 이익이 없는 텅 빈, 상상임신 같은 행위다.

키스의 전제 조건은 “나는 널 사랑해”라는 문형이다. 입술을 거쳐나간 이 말은 상대의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방적 통고다. 일방적 통고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 말로 다해질 수 없는 복잡성이라는 점에서 그냥 내던져진 말이다. 내면에서 불쑥 솟구쳤다는 점에서 ‘충동’이고 사전에 의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측 불허의 것’이다. 그 문형은 특별한 전언을 실어 나르지 않는다. 그냥 말해지는 것, 해석이 필요없는 말이다. 차라리 시선이거나 한숨과 닮은 그 무엇이다. 이 발화는 능동도 수동도 아니라 단지 어떤 행동의 개시를 위한 몸짓이다. 능동[행동]은 이 발화 다음에 온다. 바로 키스다. 상대가 이 발화에 응답하기 전 신속하게 그 발화를 막으려고 상대 입술을 입술로 덮는 행위가 키스다. “‘난 널 사랑해’란 말에는 뉘앙스가 없다. 그것은 설명이나 조정, 단계, 조심성을 폐지한다.”[롤랑 바르트, , 216쪽] 문득 발화된 “나는 널 사랑해”라는 말에서 의미는 배제된다. “나는 널 사랑해”라는 말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실체적 선언이 아니다. 선언이 아니니까 그 누구도 구속하지 않는다. 의미를 전달하는 목적이 없는, 두 사람 사이로 흐르는 기류이고 징후다. 따라서 그것은 씨앗같이 여기저기 흩뿌려지는 것, 즉 아무 구속력 없는 말-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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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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