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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기획] 프로야구 1년 농사 좌우하는 스프링캠프의 세계 

“세계적 관광지요?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죠!” 

이재국 스포츠동아 야구전문기자
10개 구단 1월 중순 일제히 출국, 미국 찍고 일본 넘어가는 게 ‘대세’… 두 달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활하지만 웃지 못할 사건·사고도 발생

▎프로야구단의 스프링캠프는 1년 농사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각 구단은 주전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한편 그들을 뒷받침할 ‘1.5군’들을 육성한다. 미국 괌의 레오팔레스 구장에서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삼성 선수들. / 사진·중앙포토
어느새 한 시즌이 끝나는가 싶더니 새로운 시즌이 다가온다.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프로야구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10개 구단이 일제히 해외 스프링캠프를 떠난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호주로….

3월 초까지 따뜻한 나라에서 담금질에 들어간다. 몸을 만들고, 기술을 연마하고, 전술을 익힌다. 세계적 관광명소에서 진행되는 해외 전지훈련이지만, 그곳의 절경과 풍광은 선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소리 없는 전쟁은 시작된다.

좁게는 팀내 주전 경쟁과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고, 넓게는 각 팀 전력의 틀이 완성된다. 물론 스프링캠프에는 훈련과 야구만 있는 게 아니다. 수십 명의 선수가 모여 두 달 가까이 함께 지내다 보니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도 발생한다. 프로야구의 스프링캠프의 세계를 꼼꼼히 들여다보자.

각 구단은 야구규약에 따라 1월 15일 이후 합동훈련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올해도 1월 15~17일 사이에 일제히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3월 초 대부분의 구단이 귀국한다. 장장 50일이 넘는 기간이다.

전지훈련지로 보면 ‘미국파’와 ‘일본파’로 나뉘지만, 최근엔 미국에서 1차 전지훈련을 한 뒤 2차로 일본을 거쳐오는 방식을 선호한다.

미국에서도 애리조나가 1차 전지훈련 장소로 각광받는다. 새해 전지훈련지로 애리조나에서 1차 캠프를 차리는 팀은 NC·넥센·KIA·롯데·LG·kt 등 6개 팀이다. SK는 플로리다에 둥지를 튼다. 삼성은 미국 자치령인 괌에서 1차 전지훈련을 예정하고 있다. 괌은 서태평양에 위치해 있어 예외로 치더라도, 미국 본토에만 무려 7개 팀이 1차 캠프를 차릴 예정이다.

한 해 농사 씨앗을 뿌려라


▎2015년 1~2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된 넥센의 스프링캠프. 운동장에 모인 선수들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 사진·뉴시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보통 2월 중순 시작된다. 따라서 국내 팀들은 이때까지는 메이저리그 캠프지를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설도 좋지만, 이용할 수 있는 야구장이 많아 선수들의 훈련을 너끈히 소화할 수 있다. 최근 국내 구단들이 미국 전지훈련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장거리 여행과 시차 적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지 도착 후 2~3일은 피로와 시차적응 관계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넘어가는 팀은 또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미국파 중에 넥센·KIA·LG는 애리조나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일본 오키나와(沖繩)로 이동하는 일정을 잡았다. SK 역시 플로리다 1차 훈련이 끝나면 오키나와로 넘어간다. 롯데는 애리조나에서 일본 가고시마(鹿兒島)로 간다. 삼성은 10여년 전부터 괌에서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스케줄을 반복하고 있다.

1차 전지훈련에서는 보통 체력훈련과 전술훈련 등 기본적 훈련을 실행하고, 2차 전지훈련부터는 연습경기 등 실전위주의 훈련을 진행하면서 시범경기 개막을 준비한다.


▎스프링캠프 동안 각 팀은 전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미국 하와이 오하우 리저널 구장에서 수비훈련을 하는 한화 선수들. / 사진·뉴시스
NC와 kt 역시 1차와 2차로 훈련 일정을 분리했지만, 미국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한다. 애리조나 투산에서 훈련을 진행한 뒤 LA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NC는 지난해 이런 스케줄로 상당히 알찬 훈련 효과를 거뒀다고 자체 평가를 내렸다.

kt는 지난해에 일본에서만 스프링캠프를 열었다. 1차 미야자키에 이어 2차 가고시마에서 모든 훈련을 소화했다. 그러나 올해는 NC와 비슷한 스케줄로 움직인다. 애리조나 투산에서 1차 캠프를 차리는데 NC 캠프와의 거리가 자동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있다. kt는 NC처럼 애리조나 훈련 후 LA로 이동할 예정이다.

kt가 이런 스케줄을 마련한 것은 지난해 일본에서 훈련을 진행한 결과 비가 많이 내리는 등 날씨가 변덕스럽고, 기온도 예상보다 낮아 훈련 스케줄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애리조나는 날씨도 좋은 데다 야구장이 많아 선수들이 한꺼번에 훈련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LA 3차 캠프에서는 NC는 물론 현지 대학팀 등과 연습경기를 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두산은 새해 1차 전지훈련 장소로 호주 시드니를 선택한 점이 눈에 띈다. 2차 캠프는 일본 미야자키에서 소화한다. 일본에서 모든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는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1차 캠프는 고치에서 2차 캠프는 오키나와로 예정돼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구단이 2차 캠프지로 선호하는 장소는 오키나와다. 삼성·넥센·SK·한화·KIA·LG 등 6개 구단이 선택했다. 그 첫째 이유는 연습경기 파트너를 찾기가 가장 수월한 까닭이다. 이곳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팀들도 대거 스프링캠프를 차리기 때문에 시범경기를 앞두고 실전 경험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구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인원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훈련보조요원, 구단 직원을 합치면 대략 70~80명에 이른다. 한화는 지난해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캠프 참가인원이 대폭 늘어났다. 훈련 욕심이 남다른 김 감독이기에 육성선수들까지 대거 참가하면서 90명 정도가 캠프지를 방문했다.

70~90명이 50일 이상 해외 전지훈련을 치르다 보니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구단마다 대략 15억원의 돈을 쓴다. 적게 쓰는 구단과 많이 쓰는 구단의 차이는 2억~3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환율이 하락해 비용절감 효과는 있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각 구단이 스프링캠프에서 사용하는 비용이 20억원에 육박할 수 있다.

비용 15억원 안팎, 숙식비가 70% 차지


▎2015년 1~2월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라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진행됐던 두산의 스프링캠프. 김현수를 비롯한 선수들이 러닝훈련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자면, 일본은 왕복 항공료가 미국보다 저렴한 대신 식비가 많이 든다. 반대로 미국은 식비는 일본보다 적게 지출되지만, 장거리 비행이라 왕복 항공료가 비싸다. 결국 항공료와 식비를 합치면 미국이나 일본이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A구단 관계자는 “오키나와는 특히 음식값이 비싼 편이다. 호텔에서 저녁 한끼만 하더라도 1인당 5천~6천 엔이 든다. 단체할인을 적용해도 1인당 5만~6만원이 든다”며 “게다가 호텔에서 훈련지로 점심을 배달시키면 간단하게 준비해도 3천~4천 엔이 들 정도다. 해외 전지훈련 전체 비용에서 숙식비가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훈련하는 팀들은 점심 때 바나나·오렌지 등 과일 종류와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만 준비하기 때문에 식비가 일본보다는 훨씬 적게 든다”고 덧붙였다.

해외 전지훈련의 역사는 프로야구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82년 6개 구단 체제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는데 이듬해인 1983년부터 국내 구단들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기 시작했다. 따뜻한 곳에서 훈련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였지만 선수들의 기분전환을 꾀하면서 사기를 끌어올리고, 해외 구단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야구를 습득하려는 숨은 목적도 있었다.

1983년 가장 먼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 팀은 OB였다. 1982년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었던 OB는 새롭게 개장한 이천구장의 실내훈련장과 그라운드에서 기초 체력훈련을 실시하다 1월 30일 대만의 가오슝(高雄)으로 떠났다.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와 미야자키(宮崎)에서 2차 훈련을 진행했다. 여기서 난카이 호스크(소프트뱅크 전신)와 연습경기를 치르며 실력을 배양했다.

해태는 1983년 김응용 감독을 새로 영입한 뒤 2월 4일부터 26일까지 일본 오사카(大阪)와 고치(高知)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일본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전신)와 친선경기까지 치르면서 그해 우승의 기틀을 만들었다.

삼성도 2월 10일부터 일본 히로시마로 떠나 3월 14일까지 한 달 넘게 전지훈련을 했고, 롯데는 2월 14일부터 2주 동안 일본 가고시마에서 자매구단인 롯데 오리온스와 합동훈련을 진행하면서 선진 기술을 익혔다.

1983년 해외 전지훈련 비용은 구단별로 6천만~1억2천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과 비교해보면 전지훈련 기간도 짧고, 참가 인원도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원화 가치가 다르고, 당시 책정된 구단 운영비 수준을 감안하면 그 금액도 만만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1983년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지 않은 팀은 삼미와 MBC 두 팀이었다. 삼미도 당초 해외 전지훈련 계획을 세웠지만, 나중에 이를 취소하고 인천에서 비닐하우스 캠프를 만들어 훈련을 진행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년 꼴찌팀이었던 삼미는 인천 야구의 대부인 김진영 감독을 맞이한 뒤 재일교포 장명부를 당시로는 파격적인 연봉 1억원에 영입했다. 게다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인 국가대표 출신 투수 임호균과 포수 김진우, 내야수 이선웅 등 13명의 선수를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스카우트 비용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결국 국내에서 동계훈련을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MBC는 진해에서 전지훈련을 치렀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 해외 전지훈련 장소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롯데가 괌에 스프링캠프를 차렸기 때문이다. 롯데는 이곳을 택한 것은 괌의 초청도 있었지만 일본 최고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는 그해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게 됐으니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었다.

미국의 첫 전지훈련에서 느낀 문화충격


▎두 달 가까이 진행되는 전지훈련의 유일한 ‘낙(樂)’은 4~5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휴식일이다. 롯데 선수들이 해변에서 배구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 사진·뉴시스
1985년에는 삼성이 해외 전지훈련의 새 지평을 열었다. 바로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1982년과 1984년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분루를 삼키는 등 프로야구 출범 후 3년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자 삼성은 이건희 구단주의 지시로 LA 다저스가 스프링캠프를 차리는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1982년 10월 LA 다저스 피터 오말리 구단주가 이건희 구단주를 만나 약속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당시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시즌을 진행했는데 그해 삼성은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없애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은 실업야구에서 막 벗어났기 때문에 프로리그라고 하기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선수들의 기량뿐만 아니라 훈련방식과 자기관리 면에서도 프로화가 덜 된 상태였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구단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 해외 전지훈련은 한국프로야구의 선수와 프런트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장이자 각성의 기회가 됐다.

아무래도 당시엔 가까운 일본야구가 한국야구의 교본이 됐다. 국내 프로 구단들로서는 전지훈련 과정에서 지켜본 일본 프로선수들의 훈련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훈련 시설도 신기했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지옥훈련이 인상 깊게 각인됐다.


▎하루 10시간 이상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식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단들은 고기·채소·빵·국수 등 뷔페식으로 식단을 꾸리되 하루에 최소 한끼는 김치·된장국·밥 등 한식을 준비한다. / 사진·중앙포토
일본 투수들의 정교한 제구와 정확한 타격, 완벽한 수비 능력 등은 국내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그래서 한국야구는 일본의 훈련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범이 됐다. 일본팀과 함께 훈련하고 친선경기를 하면서 한국 팀들은 일본의 선진야구를 많이 흡수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더 큰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삼성이 1985년 베로비치에서 처음 스프링캠프 차렸을 때였다. 우선 베로비치까지 가는 것이 힘들었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였다. 생소한 장거리 비행에 선수들은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녹초가 됐다.

베로비치에 도착한 다음에도 충격은 계속됐다. 둥근 케이크를 4등분해 놓은 것처럼 4개 면의 야구장이 한 곳에 펼쳐져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8개의 배팅훈련장과 웨이트트레이닝장이 갖춰져 있는 걸 보고 부러움과 주눅이 함께 들 수 밖에 없었다.

훈련 방식도 기가 막혔다. 당시만 해도 프로라면 응당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본식 스파르타식 훈련을 하면서 기술과 정신력을 함양하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오전에 모든 훈련을 끝냈다.

삼성 선수들은 다저스 코치들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는데 이 정도의 훈련이 성에 찰 턱이 없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친 김영덕 감독은 베로비치로 떠나기 전만 해도 미국의 선진야구를 제대로 배워오겠다며 들떠 있었지만 현지에 도착한 뒤 한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이 정도 훈련으로 선수들의 몸과 기량을 만들 수 있을까 안절부절이었다.

김 감독은 결국 조바심 때문에 야간에 조명을 켜놓고 선수들과 추가 훈련을 하기로 했다. 다저스의 토미 라소다 감독이 이를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러나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플로리다의 모기떼 때문에 야간훈련이 어렵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됐다.

지도 방식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다저스는 한국에서 처음 방문한 프로팀에게 ‘전설적 대도’ 출신의 모리 윌스 등 최고 코치들을 붙여줬다. 그러나 그들은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맹훈련을 시키기보다 기본 기술을 가르친 뒤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보다 ‘왜’를 더 앞세우고, 1분이 아까운데 선수가 이해할 때까지 토론을 계속하는 식이었다.

한자 못 읽어 벌어진 호세의 ‘여탕 침입사건’


당시만 해도 삼성 구단 직원들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솔직히 베로비치까지 날아간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정도였다. 2주 동안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기술을 습득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훈련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저타운의 방문은 오늘날 삼성이 명문구단으로 자리 잡는 데 초석이 됐다. 당시 입수한 ‘다저 웨이’는 지금까지 ‘삼성 야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타격, 투구, 수비, 주루 등 야구 전반에 걸친 전술과 전략이 모두 포함돼 있지만, 특히 수비에서 특화돼 있다.

류중일 감독이 늘 자랑하는 삼성만의 번트시프트, 릴레이,커트플레이, 런다운, 픽오프플레이 등의 기본전술과 수비 포메이션이 모두 그 안에 녹아들어 있다. 감독과 코치가 바뀌더라도 삼성 야구의 기본 틀은 이를 토대로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두 달 가까이 해외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갖가지 해프닝과 사건·사고도 그치지 않는다. 프로야구 스프링캠프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웃지 못할 해프닝도 숱하다.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성격이 가장 화끈했던 인물을 꼽으라면 롯데에서 뛴 펠릭스 호세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으로 한국 무대에 데뷔한 뒤 성적도 화끈했지만, 여러 가지 기행과 돌출행동으로 ‘악동’ 이미지를 남긴 인물이다.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호세는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 캠프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가고시마에는 여느 일본의 관광지처럼 온천이 발달돼 있다. 어느 날은 동료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을 마친 호세가 온천을 찾았다. 그런데 여탕을 ‘침입’하고 만 것이다. 태연스럽게 여탕에 들어섰는데, 오히려 탕에 있던 여자들보다 호세가 더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한자로 쓰여진 ‘女(여)’자와 ‘男(남)’자를 구별하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설날도 전지 훈련장에서 맞는다. 설날 아침 떡국을 먹고 윷놀이나 제기차기를 하면서 기분을 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설을 쇠는 기분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무료함을 달랠 겸 종종 이색 이벤트를 펼치기도 한다.

2004년 캠프에서 SK 이대수는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 예기치 않은 감전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SK는 보물찾기 행사를 마련했다. 숙소와 훈련장 주변 10곳에 보물을 숨겨놓고, 이를 찾아내는 선수들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대수가 숙소 복도에서 불이 나가 있는 전등 하나를 발견했다. 다른 전등은 멀쩡한데 그것만 꺼져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전구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는 것이다. 전등을 뒤적거리던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다.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한동안 손에 감전 후유증이 남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동행한 취재기자 덕분에 목숨 건진 권혁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해외 전지훈련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MBC 청룡이 청주에 훈련지를 차렸다. 앞줄 오른쪽이 백인천 감독 겸 선수. / 사진·중앙포토
2003년 삼성은 마우이 섬에서 스프링캠프를 열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1시간가량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휴식일이라도 마땅히 놀거리가 없을 정도로 조용한 섬이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이 선수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고 한다.

모처럼 맞은 휴식일이 돌아오자 젊은 선수들은 구단 버스를 이용해 폭포 관광을 다녀오자며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당시 수영을 못했던 2년생 투수 권혁(현 한화)이 익사할 뻔한 일이 발생했다. 동료들이 즐겁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는 물 속에 뛰어들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이 워낙 맑아 바닥이 보여 수심이 깊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권혁은 당황한 나머지 허우적거렸다. 먼저 배영수가 권혁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권혁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배영수가 가까스로 이를 뿌리친 채 혼자 빠져 나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권혁은 결국 물을 먹더니 물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미 힘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순간, 현장에 동행했던 취재기자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거구의 권혁이 수면 위로 힘겹게 올라오자 배영수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멀리서 권오원까지 합세해 권혁을 물 밖으로 끌어 낼 수 있었다. 바위에 눕혀 흉부 압박을 가한 끝에 물을 토해내면서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얘기다. 이 일을 치른 권혁은 결국 수영을 배웠다고 한다.


▎프로야구의 해외 전지훈련은 출범 2년째인 83년부터 시작됐다. 83년 2월 해태 선수들이 시코쿠(四國)은행 구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고치 시내를 달리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오랜 기간 해외 전지훈련을 하다 보니 술, 여자, 도박문제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엔 선수들이 자기관리에 철저해 술을 멀리 하지만, 과거엔 술로 인한 무수한 일이 벌어졌다. 술과 관련해 지금도 가장 크게 회자되고 있는 일은 1996년 해태의 ‘하와이 항명사건’일 듯하다. 당시 선수들이 밤늦게 술을 마시러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한 코칭스태프가 한밤중에 불심검문을 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결국 선수들이 코치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선수들은 모두 짐을 챙겨 귀국하겠다며 호놀룰루 공항으로 단체로 떠나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구단 직원들이 공항으로 달려가 눈물로 읍소하며 귀국을 만류했고, 결국 김응용 감독이 직접 나서 ‘자율훈련 조건’을 수락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음주 사건’을 얘기하자면 정수근을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두산의 하와이 전지훈련 때 현지 법정에까지 서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수근은 휴식일 밤에 술자리에서 현지 교민과 시비가 붙었는데, 정수근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교민을 폭행한 것이다. 긴급 출동한 현지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정수근은 결국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 혐의’로 하와이 법정에서 450달러의 벌금형을 받아야 했다. 두산은 그 이후로는 다시는 전지훈련 장소로 하와이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

롯데는 과거 호주 골드코스트로 전지훈련을 자주 갔다. 2001년 캠프 때 휴식일이 되면 몇몇 선수는 카지노로 향했다. 대부분 돈을 잃었다. 그런데 김민재는 수천만 원을 따는 잭팟을 터뜨렸다. 귀국길에 외화가 통관에 걸릴 것을 염려한 김민재는 비행기를 타기 전 후배들에게 돈을 나눠준 뒤, 공항을 빠져나오며 다시 돌려받는 ‘작전’을 동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는 ‘카지노 후유증’에 시달렸다. 합법적 카지노였고, 휴일에 심심풀이로 들렀지만 돈을 잃은 선수가 많다 보니 훈련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러자 롯데는 이후로는 호주에 스프링캠프를 차리지 않았다.

또한 20~30대 나이의 혈기왕성한 운동선수들이다 보니 곤란한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 한 팀의 감독은 이에 묘안을 짜냈다. 결혼한 선수는 아내를, 미혼의 선수는 여자친구를 해외 전지훈련에 4박5일 일정으로 초대했다. 현지에 머물면서 낮에는 훈련을 지켜보고, 밤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남자친구를 만나도록 시간을 허락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그해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밤이 문제가 아니라 낮이 더 문제였다. 한낮에 지옥훈련을 하면서 땅에 구르는 남편과 남자친구를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이재국 스포츠동아 야구전문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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