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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창조의 본고장’ 바우하우스를 가다③] 세 번째 이야기 | 바이마르에서 바우하우스는 찬밥?! 

창조성은 자르고 붙이는 편집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사진 윤광준
피아노의 위대성은 청중 스스로 음정의 여백을 편집 가능케 한 것… 빈틈없는 완벽함은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창조성을 억압하는 요인
#1.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결혼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천주교의 신부나 불교의 승려 같은 종교인이 되는 것은 60대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그 정도 나이는 되어야 자신의 의지로 성적 욕구가 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섹슈얼리티에 관한 프로이트의 통찰을 높이 평가하는 심리학자로서의 내 생각이다. 종교적 계율과 생물학적 본능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엄청난 죄의식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젊은 사람은 정말 드물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신이 돌판에 불로 새겼겠느냐는 투덜거림도 있다. 아예 ‘11번째 계명’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절대 들키지 말라’.

젊어서 온갖 염문을 뿌렸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50대에 로마 가톨릭의 신부가 되었다. 오늘날의 평균수명과 비교하면, 당시 50대는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니다. 젊은 시절 신나게 잘 놀다가, 힘 떨어지자 우아한 종교인이 된 것이다. 아주 기막힌 삶의 전략이다. 젊은 시절 리스트가 사랑을 나눈 여자들을 보면 죄다 백작부인, 공작부인, 후작부인들이다. 당시 귀족들에게 결혼은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 애를 낳기 위한 것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원칙은 100여 년에 불과한 역사일 뿐이다. 19세기 유럽의 남자들은 주로 살롱이나 카페의 여인, 혹은 사창가의 여인들과 사랑을 했다. 남편의 관심을 받지 못한 귀족부인들은 바람둥이 음악가들의 아주 쉬운 표적이었다. 음악사를 살펴보라. 음악가의 연인은 죄다 남의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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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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