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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최치현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시 보는 일본(2)] 선민주의 우월감에 사로잡힌 그들 

노멘(能面)(일본 전통 인형극의 가면) 봉인 풀리자 ‘침략 본색’ 드러내 

패전 후 숨겨왔던 군국의 광기, 시대 변하자 꿈틀
“전쟁 등 유사시 미국과 함께 한반도 상륙” 예상도


▎반한(反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일본의 극우 단체. 재일 한국인의 강제 퇴거 등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의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호방하고 자유스러운 성품으로 천하를 표박하며 시문을 지었고, 많은 일화를 남긴 풍류 남아다.

임제는 기질이 분방해 붕당의 구속에서 벗어나 있었다. 스승인 성운은 규범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에게 [중용(中庸)] 1000독을 권한다. 임제는 [중용]을 800번 읽었다고 한다. 시대가 주입한 가치를 초월한 단독자가 됐다. 그의 최고의 문장은 ‘물곡사’(勿哭辭)라는 사세구(辭世句)다. 39년의 짧은 생을 마치며 자식들에게 울지 말라고 부탁하는 말본새가 웅대하다.

“뭇 오랑캐가 황제라 일컬었는데 유독 조선만 중국을 섬긴다. 내 살아서 무엇하리. 내 죽어도 무슨 한이 되리. 곡하지 말아라.”(四夷八蠻 皆爲稱帝 獨朝鮮入主中國 我生何爲 我死何恨 勿哭)([나주임씨세승(羅州林氏世乘)])

좁은 땅에서 편협한 세계관으로 당리당략에 권력만을 탐한 옹졸한 세태를 맘껏 비웃는 자유인의 일갈이다. 세월은 흘러 1902년 매천(梅川) 황현(1855~1910)은 임제의 고향 나주를 찾아가 이제 황제국이 됐으니 한을 푸시라며 시를 한 수 바친다. “영웅이시어 구천에서 한스러워하지 마소서. 오늘날 조정에서는 황제의 의자 높나니.”(九原莫抱英雄恨今日朝廷帝座高)[황현, [매천집(梅泉集)].

조선은 늦게나마 고종이 황제를 칭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8년 뒤 나라를 잃는다. 소중화를 자처하며 중화의 그늘에 스스로 안주하며 문명국의 허세를 떨치던 황제국은 일본이라는 야심 국가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리 만만한 적이 없었던 이웃 나라


▎전남 나주에 있는 백호 임제의 시비.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며 인류학적으로도 근친이며 오랜 교류의 역사가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세오녀’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된 2세기 부부의 이야기며, 박제상(363~419)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출하다 죽은 충신의 이야기다.

우연히 바다를 건너간 부부는 신라에 돌아오기를 꺼린다. 웬일인지 신라가 일본에 볼모로 왕자를 보냈다는 기록은 있어도 일본 볼모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에 가야를 포함해 일본 열도까지 5개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절에도 일본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 땅의 ‘애국자들’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서구의 문명을 우리보다 먼저 학습해 앞서기 시작했으며, 조선을 병탄하고 치욕스러운 역사가 이어졌다고 믿고 있다. 한·일 관계는 이제는 상호 혐오의 단계에까지 와 있다. 성숙한 이성을 가진 문명국 간의 관계인지 심히 우려된다.

우리 주변에 강대국들이 있다 보니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어떻게 하면 서로 이익이 되는지 따져서 선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서로의 약점만 잡고 늘어지며 비방만 일삼는 것은 유치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방 후 한국인이 펼친 일본론에 대해 살펴보자.

“내 어머니는 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김소운(1908~1981)은 해방 후 [목근통신(木槿通信)]이란 일본론을 수필의 형식으로 쓴 작가다. 그는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이세이 중학교 야간부를 중퇴하고 제국통신(교도통신의 전신) 기자로 근무한다. 1927년 잡지 [지상의 낙원]에 ‘조선농민가요’를 연재해 일본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1928년 이후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와 이와나미시게오(岩波茂雄)의 후원으로 [조선민요집] [조선동요선] [조선시집] 등을 간행함으로써 조선 문화에 거의 무관심하던 일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는 해방 직전 귀국했다.

그는 1951년 전쟁 중인 한국을 지옥이라 칭하고, 패전국 일본을 천국이라 부른 [선데이 마이니치] 좌담회 기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일본에 보내는 공개서한인 ‘목근통신’을 [대한일보]에 연재한다. 부제목은 ‘일본에 보내는 편지’다. 소제목은 ‘미움과 친애의 두 진실에서’ ‘선데이 매일지의 기사’ ‘구린내 나는 나라의 출토품’ ‘제 욕을 제가 하는 바보’ ‘어느 쪽이 더 교활’ ‘자유혼이란 그 한 마디’ ‘일본의 악’ ‘받는 민족에서 주는 민족으로’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병자)일지도 모릅니다’로 돼 있다.

이 수필은 김소운이 34년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13세 때부터 몸소 겪은 일본의 생리를 편지 형식으로 쓴 수필이며, 그곳 지성인들의 양심에 충격을 안겨준 글이다. 김소운 스스로 문필생활의 큰 보람을 안겨다 줬다고 말했다. 내용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모멸과 학대에 대한 항의다. 일본인의 습성 속에 배어 있는 허위와 약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도 그렸다. ‘목근통신’은 우리나라에서 두루 회자하는 명문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UP통신] 특파원과 [뉴스위크] 부주필의 대담에 [선데이 마이니치] 신문사 기자가 끼어 정담(鼎談)을 나눈 내용이 기사화된다. 그 내용이 참으로 민족적 수치감을 느낄 만하다. 한창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전하는 내용이다. 도시나 촌락이나 모든 곳이 구린내의 천지라는 이야기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그 냄새 때문에 통행이 불가할 정도이며, 길거리에는 거지와 부랑아 천지라는 이야기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나라를 위해 전쟁까지 해줘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내용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과 초라함뿐인 나라의 작가는 35년간 다스려진 나라의 탓은 없는지 반문한다. ‘一視同仁’(일시동인, 누구나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함)이라는 일본의 정치가 마침내 한국을 이런 빈곤에 빠뜨렸다고 지적한다. 1930년대 일본 교과서의 문장도 끄집어낸다.

“센징(선인, 鮮人)의 주택은 더럽다‘고 쓰는 것보다 ‘센징의 집은 도야지 우리 같다’라고 쓰는 편이 문장 표현으로 더 효과적이다.” 김소운은 제 욕을 제가 하는 바보로 돌려세운다. 그는 3·1운동 학살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하고 일본의 서비스 정신이나 소소한 인정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기도 한다.

1925년에 발표된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대작이라던 [벤허]를 거론하며 자유혼을 이야기한다. 왜 우리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돼야 하는지 알려주는 날카로운 외침이다. “저놈을 쇠사슬에서 풀어줘라. 저놈은 노예가 아니다. ‘자유혼’을 가진 놈이다.”

함께 붙어 있어야만 할 ‘숙명’


▎이어령의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의 일본어판 표지.
김소운은 이 대목에서 절규하듯 토로한다. “나 자신을 [벤허]의 위치에 두고 몇백 번 몇천 번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던 그 한마디, 온 세계를 다 잃어도 그 한마디만은 잃지 않으려던 ‘자유혼’.” 쇠사슬이 풀리고 자유가 돌아와서 치부해뒀던 미움과 원한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겠다고 외친다. 자유를 구속받아보지 못한 요즘 세대는 느끼기 어려운 심정이리라. 인간은 자유가 없으면 동물이다.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주선으로 김소운의 번역문이 [중앙공론]에 실린다. 1952년 도쿄의 인터뷰 기사가 오해에서 비롯된 설화 사건으로 비화해 주일 한국대표부에 여권을 몰수당한 뒤 13년간 일본에 체류하는 아픔도 겪는다.

반일을 국시로 삼은 대한민국 이승만 정권은 김소운을 친일 분자로 추방했다. 그는 그 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57세 때 한국에 돌아올 때는 다시는 일본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한일사전] [한국미술전집] 15권 [현대한국문학전집] 5권 등을 간행한다.

1950~1970년대에 걸쳐 대한민국이 일본에 느꼈던 심정이 이러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자유를 찾은 기쁨, 전쟁으로 허무하게 날아간 평화, ‘가난과 초라함’을 딛고 일어서며 느꼈을 일본에 대한 분노 등이다. 수필은 일본과의 숙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개인의 이웃이 아닌 국가의 이웃으로 만난다. 이사를 떠날 수도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영원히 옆에 붙어 있어야 할 이웃 나라를 ‘구원의 숙명’이라 칭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역경에 강한 나라였다고 힘줘 말한다. 조국은 자신의 종교이며 “문둥이의 조국! 그러나 내게는 어느 극락정토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입니다”라며 애절한 조국 사랑을 말하며 끝을 맺는다. 강한 반일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보내는 강렬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 마쓰오카 세이고(松岡正剛)는 출판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이시스(ISIS)라는 비주얼 북 시티라는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인터넷상에 매일 밤 한 권씩 독서 감상문을 올리는 ‘센야센사쓰(千夜千冊)’라는 기획을 하고 출판까지 했다. 같은 저자의 책을 한 권 이상 다루지 않고도 2021년 현재 1767번째 서평이 올라와 있다.

그는 일본을 편집 문명으로 정의하고 일본이란 섬에 새롭게 도달한 새로운 문물이나 사상을 페리 제독의 구로후네(黑船)에 비유했다. 고대의 불교 전래, 백촌강 전투, 중세의 몽골 습래, 최근에는 IT 혁명, 5G 기술 등을 일본의 ‘재팬 필터(Japan Filter)’로 걸러서 고유한 문명을 이룩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식 문명의 취득과 발전 방식인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 좋은 점 취하기)가 창조의 힘이며 ‘일본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그가 본 첫 번째 일격으로 3개의 흑선은 ‘벼·철·한자’였다. 한반도와 대륙을 통한 문명의 도래다.

그런 그가 주목한 한국인의 일본론은 이어령과 김양기(1933~2018)다. [김치와 오싱코]는 김양기의 대표작이다. 여러 한국 국적 작가로는 가장 먼저 리뷰가 올라간다. 이 책은 한·일 문명비평서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한·일 문화의 광범위한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이 책을 반드시 읽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어령 교수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의 원형이 이 책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배추라는 공통의 소재로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는 한일 양국의 문화를 절묘하게 비유하고 있다. 고춧가루의 유무와 색깔이라는 피상적인 관찰로만 차이를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싱코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일본식 절임 배추다. “김치는 배추에 생기가 살 수 있게 고안돼 있고, 오싱코는 생기를 부드럽게 중화시킨 점에 있다”고 말한다. 강렬한 개성을 언제나 중성화시키는 면에서 일본인의 특성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전통 인형극인 노(能)의 가면에서 일본 문화의 특징을 도출해내고 있다. “일본인은 노멘(能面)과 같다.” 절대로 표면에 나타나는 가면의 표정으로는 본의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노멘은 그 자체가 무성격인데 역설적으로 무한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본다.

일본인과 상대하는 외국인은 가면 뒤의 표정을 읽어야 하는 지난(至難)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 이해가 걸린 문제가 대두되면 자기주장을 억누르며 더 자기주장을 하는 모순된 행위가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속마음 드러내지 않아 더 무서운 그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의 의지를 억누르는 것이 상대에 대한 최선의 예의나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적 사고라면, 그 반대로 속마음(심중)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도 일본적 사고다. 이 두 개는 완전히 모순돼 있고 외측에서 보면 상대적인 대응관계에 있지만 완전히 모순된 두 개의 사고를 모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또 일본인이다.”

한국인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미덕으로 하고 일본인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한다. 주거의 핵심인 난방에 대해서도 비교한다, 전체의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한국의 온돌과 중앙에 불을 두는 일본의 이로리(囲炉裏)는 그 작동의 원리가 사뭇 다르다. 한편 생사관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다. ‘사는 보람’을 추구하는 한국의 무인과 ‘죽는 보람’을 중시하는 일본의 무사가 등장한다.

이 책을 통해 김양기는 사물을 직접 보는 한국인, 사물을 마음에 기탁해 간접적으로 보는 일본인이라는 대비를 즐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면 한국인은 실리에 강하고 구체적인데 반해 일본은 쓸데없는 행동이 많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모호함이 있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읽고 알아서 거기에 알맞은 대처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생 위치에 있어야 할 한국이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공격에 날카로운 반격을 해대니 노멘의 얼굴로 표정 관리는 하고 있지만 폭발 일보 직전인 셈이다.

일본 문명을 축소지향이라는 문화 현상으로 설명한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외국인이 쓴 일본론 명저](中公新書)에 한국인 작가로서는 김소운과 이어령이 한 단락씩을 장식한다. 한국 최고의 수재 교수가 ‘축소지향’이라는 착안점으로 [만엽집]과 바쇼부터 마쓰시타 전기와 파친코까지 일본 문화를 분석한 책이라 평가했다.

이어령은 일본의 축소지향성을 6개의 유형으로 나눴다. 그는 축소지향을 마치고 외부로 확장을 시도할 때 일본은 파탄을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외부에의 시선을 자제하고 자신들의 특기인 깊이에 전념할 때 일본답다는 이론이다.

①이레코형(入籠型): 커다란 상자 속에 작은 상자를 차례로 담아 수납하는 공간 절약의 지혜.

②쥘 부채형: 접고 쥐고 붙는다. 뭔가를 접는 발상. 소형으로 만들면서도, 한층 기능을 높이는 것. 일본 상품의 세계시장 진출 돌파구를 마련한 트랜지스터 제품이 대표.

③아네사마 인형형: 색종이 인형을 뜻한다. 손과 발을 생략함으로 둥근 머리와 몸통의 직선을 강조한다. 복잡한 사물을 단순화하고 간소화함으로 아름다움과 기능을 돋보이게 한다.

④문장(紋章): 국가나 단체, 집안 같은 큰 집단을 하나의 이미지화해서 축약한다.

⑤노멘형(能面型): 슬픔이나 기쁨, 노여움이나 즐거움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중간 표정을 짓고 있다.

⑥도시락: 밥상 수준의 도시락은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만큼 공간을 활용한다. 담는다. 집단의 틀에 갇혀 힘을 발휘하는 일본 특유의 단결력.

이런 일본의 축소지향은 내부적으로 향할 땐 크나큰 장점을 가져오지만, 외부로 향할 땐 전혀 다른 양상을 가져왔다. 일본 특유의 우치(內)와 소토(外)를 구별하는 관념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 경험하는 축소의 공간인 ‘내(안)’에서는 강점을 보였으나 추상적이고 넓은 확대 공간인 ‘외(바깥)’에서는 무지를 드러냈다.

대국이 되려면 작아져야 하는 나라


▎태평양전쟁 패전 58주년을 맞은 2003년 8월 15일 일본 퇴역병들이 욱일승천기(태양기)를 앞세워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행진하고 있다.
“일본은 확대 지향적이었을 때 언제나 패배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나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은 ‘확대 지향성’을 가슴속에 방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들의 축소 지향성이 확대 지향으로 변할 때 주변 국가에도 위험을 줬다. 그들의 뛰어난 문화는 모두 ‘축소 지향’에서 비롯된다. ‘확대 지향’이 될 때 그들의 섬세한 성품은 변질되고 만다. 참다운 대국이 되고 싶으면 더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니(도깨비)가 되지 말고 잇슨보시(난쟁이)가 돼야 일본은 더욱 빛날 것이다.”

21세기 도쿄 도심에서는 “조선인을 죽여라!”라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재특회’라는 단체가 있다. 약자인 재일교포가 오히려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특권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교토에 있는 조선 학교는 이 단체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재일교포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재일교포 작가 서경식은 동력을 상실하고 존재감이 미약해진 일본의 진보세력이나 퇴행적인 발걸음을 지속하는 우익은 근대 일본이 아시아에서 종주국으로 있을 때 형성된 ‘식민주의 심성’의 유산을 공유한다고 한다. 그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선민주의적 우월감에 포박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과거의 향수와 광기로 회귀하려고 하는 일본 사회의 본 모습이 노멘 속에 숨겨져 있다가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배·전쟁 책임 부인하는 극우단체


▎2005년 당시 아키히토 일왕 부처가 사이판의 ‘만세 절벽’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은 일본인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1944년 미국에 밀린 일본군과 민간인 1000여 명이 미군의 항복 권유에도 불구하고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져 자살한 곳이다.
재특회 등의 주장은 단지 인권 침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며, 그 밑바탕에는 식민지배 책임과 전쟁 책임을 부인하려는 일본인 대다수의 욕망이 깔렸다는 것이다. 전후 한때 그 욕망은 부분적이고 형식적으로 가면 속에 봉인돼 있었지만, 시대가 변해 일단 봉인이 풀리자 ‘본심’이 풀려 나왔다. 한반도가 유사시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은 미국과 함께 상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 현상은 미성숙한 측면이 많다. 서로가 상대방의 잘못된 교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서로 역사를 똑바로 보라고 이야기하지만 공염불이다. 해석하는 기준이 다른 데 교집합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균형 잡힌 연구와 합리적 사고는 늘 이해관계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제대로 황제를 칭해보지 못한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무서운 존재들이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산적한 모순이 상존하지만 그래도 민주와 자유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나?

우려되는 것은 일본이란 나라 전체가 과거와는 다르게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의 자존심이었던 무표정의 노멘을 벗어 던지고 뱃속 깊이 품고 있던, 주변국이 다 생각하는 진짜 속마음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교포 1.5세 작가인 이민진이 2017년 발표한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일제 강점기 오사카로 건너간 재일교포 4대에 걸친 이야기다. 나라가 망해서 당했을 그들의 고난에 찬 인생과 대비되는 저 낙천적 진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조선을 사랑했다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조선 백자의 백(白)에 끌려 ‘애수의 미’라고 표현했을 때 김용기는 그 백색을 태양의 밝음을 상징하는 낙천적인 색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색을 보고 비애와 낙천의 평가가 갈린다. 우리는 낙천을 보자.

■참고·인용 도서
1. [나주임씨세승(羅州林氏世乘)]
2. [매천집(梅泉集)]
3. [목근 통신(외)] 김소운(1974년)
4. 김양기[김치와 오싱코] 한국어역 [문화로 본 이런 한국 저런 일본](1996년)
5. [축소 지향의 일본인 ] 2판 이어령 지음(2008년)
6. [파친코. 1 ] 이민진 장편소설(2018년)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했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스페인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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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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