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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19)] 제주 4·3 사건 다룬 5년 만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펴낸 한강 

“불과 70여 년 전 3만 명 민간인 학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묻고 또 물었다” 

5월 광주 소재 [소년이 온다] 쓴 뒤 악몽에 계속 시달려
다시 아픈 현대사 마주했지만 되레 회복, “날 구해준 소설”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소설가는 어떤 존재인가. 5년 만에 새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갖고 돌아온 한강은 그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70년 전 제주 4·3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 사진:전예슬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같다. 소설가 한강(51)의 새 소설 말이다. 대작은 아니다.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진다. 제목도 특별한 건 없다고 해야겠다. ‘작별하지 않는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소설책 앞표지만 마주한다면 견고한 유기체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43’이라는 숫자를 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확히는 ‘4·3’이다. 소설은 제주 4·3 사건을 다뤘다. 당연히 소설 제목의 의미를 4·3과 관련지어 헤아리게 된다.

그런데 알고 계신가? 한강과 현대사의 조합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4년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가 5월 광주를 다룬 작품이다. 중간에 [흰]이라는 소설이 있었지만 이번 소설에서 다시 현대사에 도전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이니 ‘현대사에 도전’ 대신 현대사와 마주했다고 표현하자.

한강은 2016년 맨부커 수상 이후 최대한 언론 접촉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잠행에 가까웠다. 대중의 환호와 은둔. 역사적 현실과 대면하는 소설 행보. 이런 것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뭉게뭉게 자극한다. 촌스럽다고 해도 할 수 없는데, 한국 문학의 쾌거로 기록될 미래의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한 건 눈높이를 한껏 높여도 이번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충분히 감당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해보자. 참혹한 한국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까다로운 소재 아닐까. 같은 사건을 이미 다룬 이전 작품들이 적지 않다. 자칫 재현의 최대치를 넘겨 한계에 처하거나(어떤 끔찍함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념적 잡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강은 그런 함정들을 노련하게 피해 나간다. [채식주의자]에서 느껴졌던 이해 불가의 어떤 영역도 이번 소설에서는 남김없이 정돈한 모습이다. 앵무새의 죽음과 부활, 죽은 자의 귀환, 친구의 공간을 건너뛴 있을 수 없는 현존. 이런 환상적인 장치들이 별 거부감 없이 읽히게 하는 연금술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언뜻 해독이 어려운 제주 방언의 노골적 구사도 언급해야겠다. 4·3 피해자의 구술은 당연히 사투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자가 사투리를 서울말로 해독해 내는 데 필요한 시간 지체가, 그렇지 않고 표준어로 썼을 때 있을 수 있는 독해의 가벼움을 막아내는 것 같다. 어떤 아픔은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작가가 그런 점을 의도한 거라면 이번 소설에 실린 그의 진심과 고민의 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는 9월 14일 현재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1~2위권에 올라 있다. 그만큼 한강의 새 소설을 기다려온 독자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강은 이번에도 노출을 아꼈다. 개별 인터뷰는 마다하고 언론사 전체를 대상으로 온라인 간담회만 한 차례 치렀다. 9월 7일의 일이다. 제약이 없었다면 이런 점들을 묻고 싶었다. 예술가는 어떤 존재인가. 소설가는. 최대의 효용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 소설의 쓸모는 어떤 것인가. ‘길티플레져’라고 할 만한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게 있나. 실제로 묻지 못했으나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의 행간에서 궁금증이 웬만큼 풀린 것 같다. 살펴보시길. 기자 간담회 답변, 서울국제도서전(9월 8~12일)을 위해 준비해둔 강지희 문학평론가와의 문답을 조합해 한강의 육성을 전한다. 먼저 한강의 간담회 모두 발언.

“5년 만에 책을 내다보니 이런 행사가 너무 오랜만이고 팬데믹 때문에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인사드리게 돼서 굉장히 어색하기도 하다. 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이 대목에서 작가는 작은 한숨과 함께 몇 초간 침묵했다) 첫 두 페이지를 2014년 6월 말에 썼다. 그해 5월에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다음 악몽을 계속 꾸었는데, 직접적인 폭력에 대한 그 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광주에 대한 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러다 6월 말에 이번 소설 맨 앞에 나오는 눈 내리는 벌판을 내가 걷는 꿈을 꿨다.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어떤 소설 시작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됐고, 그 상태에서 세월이 많이 흘러 나 자신도 이게 과연 완성될 수 있는 소설인가 의문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완성돼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지금 1시간 전에 이 책을 처음 받았는데 뭉클했다. 오랜 시간 썼기 때문에 지금 어떤 소설 쓰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어떨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어떨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얘기했고 또 어떤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모두가 진심으로 한 이야기였고, 그중 하나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다. 소설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 했다. 모든 소설을 쓸 때 소설이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그 상태에서 벗어날 때도 많지만 최대한 그 상태 근접하려고 노력한다. 이 소설이 나에게 언제나 요구했던 상태는 지극한 사랑의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환상성이 있는데 나는 환상성이라는 것 자체가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살아보게 하는 것이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여기 있지만 실은 동시에 그 사람 옆에 있게 되는 것이고, 간절히 그러기를 원하는 것이고, 그런 상태 자체가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불가능했지만 애써 봤던 그런 소설이다.”

이제부터 일문일답.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 고통 수반


▎제주4·3평화공원의 ‘비설(飛雪)’ 조형물. 1949년 1월 초토화 작전 당시 25세였던 변병옥 여인과 그의 두살난 딸이 거친오름 동쪽 기슭 눈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설의 초점이 소설 속 소설가인 경하에서 경하의 친구인 인선, 다시 인선의 엄마인 정심으로 옮겨간다. 어떤 의도였나.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도 소설가 화자를 등장시켰는데, 이 소설에서 경하라는 인물은 나처럼 광주에 대한 소설을 썼던 소설가로, 다리처럼 이 인물을 통해 과거 일들이 현재로 이어지는 그런 것을 생각했다. 경하와 인선이 연결된 실과 인선이 어머니와 연결된 실과 인선의 어머니와 죽은 사람들과 연결된 실이 다 하나로 이어져 그 실에 전류가 통하고 생명이 도는 것을 상상했다.”

인선은 예전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목가구 만드는 일을 하는데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손가락이 잘려나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가 마침 한 친구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잘린 신경을 연결하기 위해 손가락이 봉합된 자리에 계속해서 상처를 줘서 피가 흐르게 하고 전류가 흐르게 하고 생명이 흐르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으면 잘려나간 부분이 썩는 거다. 이 소설 전체와 이어지는 장면인데, 고통스럽지만 계속해서 환부에 바늘을 찔러 넣고 그래서 살아있게 되는 그런 과정, 우리가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을 때 물론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그런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과 새는 어떤 상징성이 있나.

“새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그런 대상이다. 그래서 경하는 눈보라 속의 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제주 중산간 인선의 집에 가게 된다.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인간의 빛과 어둠 사이에서 그 사이를 가득 채우며 내린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면서 그렇지만 무심하게, 신의 공백 위로,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뚫려 있는 그 텅빈 공간 위로 내리는 것이다.”

번역 염두? 소설 쓰는 에너지도 부족


▎[소년이 온다](2016년)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한강 작가가 소재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소재가 한강 작가를 선택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소설을 쓸 때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쓸 때도 있지만 어떤 모티프나 장면이 떠올라 이게 어떤 소설이 될지 알고 싶어지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그러다 문득 아 이런 거였구나, 이런 의미였구나, 내 소설은 여기로 가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되는 이상한 순간이 있다.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인데, 나는 제주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쓸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결국 쓰게 됐다. 그런 과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첫 두쪽을 쓴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중간에 다른 소설도 썼고, 1년 넘게 글이 잘 안 써지는 공백기도 있었다. 특히 소설 뒷부분에 많은 자료가 필요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참고한 자료는 대부분 2000년대에 출간된 책들이고 특히 2010년 이후 출간된 책이 많다. 70여 년 전 일들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오래된 역사적 사건은 선행 연구 자료들이 쌓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료가 정확해지고 풍부해진다. 주변에 많은 도움을 청했는데 자기 일처럼 힘써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분들이 다 생각난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여러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됐는데, 그런 과정을 겪은 이후 한글 문장을 쓸 때 번역을 전제로 주의하게 된 점이 있나.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은 [소년이 온다]를 한창 쓸 때여서 내가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오역이 많이 나왔다.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가 [소년이 온다]를 번역할 때는 좀 더 시간이 있어서 잘못된 맥락, 언어적인 부분들을 많이 얘기해줬는데 그렇게 교감이 깊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소설 쓸 때는 결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출간조차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저 완성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장면이 써지고 다음 장면으로 건너가고 마침내 완성돼서 처음에 막연히 떠올랐던 상태, 그 상태에 소설이 이르렀는지 그것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것에만 골몰해도 내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번역을 염두에 뒀다면 이렇게 제주 방언이 들어 있는 소설을 쓰지 못했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썼다.”

'소년이 온다'를 쓴 후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다시 현대사를 다룬 원동력 같은 게 있다면.

“소설에 나오는 경하의 모습이 다 내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소설이든 쓰는 사람을 변형시킨다. 나도 변형되었고 이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소설 쓰고 나서의 삶은 이전 삶과 다른 것이 되고, 거기서 비롯된 악몽이나 새로 갖게 된 고민, 질문들은 평생 갖고 가야 하는 어떤 것이 된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쓰면서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많이 회복됐다. 설명이 어려운데 [소년이 온다]를 씀으로써 악몽이나 죽음이 내 안에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번 소설과 함께 나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쓴 시간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기보다 아, 내가 간절했지,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지, 그런 마음이 든다.”

인선이 베트남의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뤘다는 대목이 나온다. 동아시아의 비극적 역사를 두루 건드린 이유가 있다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 특히 제노사이드 같은 일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일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묻는다. 우리가 인간인 한, 인간으로서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세계를 해석하고 앞날을 향해 발을 내딛는 한 그 일들은 언제나 무서운 질문으로서 우리의 현재와 이어져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질문을 더듬어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절멸’ 시도를 들여다본 것이다. 불과 70년 전에 10세 미만의 아이를 포함해 3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 절멸과 혐오의 메커니즘은 긴 역사에 걸쳐, 전 세계에 걸쳐 인간들이 반복해 경험해온 것이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며 언제나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끈질기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게 사랑


▎9월 7일 [작별하지 않는다] 기자간담회 장면. 한강은 식물처럼 초식동물처럼 가만가만 얘기했다. / 사진:문학동네
소설 후반부에 촛불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참혹한 역사를 애도하는 빛의 이미지로도 보이는데.

“죽음 속의 삶, 삶 속의 죽음에 언제나 관심이 있는데, 글을 쓰다 보면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내 안에 생명이 있기에 식물처럼 자연스럽게 빛으로 이끌리는 것 같다. 빛이 없으면 잠시 성냥불로 빛을 만들어서라도 나아가는 일이 글을 쓰는 행위라는 생각을 요즘 한다.”

소설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

“소설 중간에 경하와 인선이 소설 제목 문구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끝까지 껴안겠다는, 끌어안고 계속 걸어가고 나아가겠다는 그런 결의라고 생각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2018년 12월의 거의 마지막 주였다. 소설 후반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쓰게 됐는데,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야기가 소설에 나온다. 코로나 시국에 우리는 삶이 과연 이렇게 고립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특히 많이 하게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홀로 있어야 하고 함께 있어도 마스크를 쓰거나 악수·포옹을 하지 못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더욱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고독한 경험을 집단적으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이 고독과 고립으로 인해 오히려 연결되고 있다고도 생각되고, 우리가 자신의 삶에 갇히는 게 아니라 결국 밖으로 뻗어 나가 닿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두가 간절히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쓰는데 조금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지, 사랑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지 이즈음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마음을 매 순간 들여다보았고, 그 사랑과 함께 살았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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