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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33)] 예능서도 고공비행 ‘독수리’ 최용수 

“내 안에 잠자던 끼 꿈틀, 도전이 재밌다”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대표팀 공격수·프로팀 감독 등 성공한 축구인, 방송서도 재능 발산
“FC서울, 간절함 없어 부진… ‘골때녀’ 선수들 열정 배워야” 질타도


▎성공한 축구인에서 해설가, 예능인으로 활짝 날개를 편 최용수 감독을 표현하기 위해 중앙일보 포토 스튜디오에서 특별한 기법으로 촬영했다.
'독수리’ 최용수(50)는 성공한 축구인이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에서 빠지지 않는 그는 A매치 69경기에서 27골을 넣었다. 프로축구 LG 치타스(현 FC서울) 입단 첫 해 K리그 신인왕에 올랐고, 이 팀에서만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일찌감치 강남 부동산에 투자해 수백억대 재산을 갖고 있는 ‘건물주’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축구 해설과 예능에서도 훨훨 날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막걸리 해설’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SBS의 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는 최약체였던 구척장신(모델 팀)을 조련해 첫 승과 4강 진출이라는 수확을 얻었다. 가족이 모두 나와 좌충우돌하는 예능 프로는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최 감독을 월간중앙 ‘레전드를 찾아서’에 모셨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나와의 오랜 인연을 잊지 않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시종 진지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투리 교정 학원 있다면 다녔을 것”


▎SBS 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감독을 맡은 2002 월드컵 멤버들. 왼쪽부터 최용수·황선홍· 이천수·이영표· 김병지·최진철.
요즘 예능인이 다 된 것 같은데요.

“예능인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고 축구인이 좋은 거 같아요. 방송을 해 보니 축구랑 비슷한 게 많아요. 스태프진과 출연진이 혼연일체가 되고 좋은 분위기가 이뤄져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잖아요. 결국 팀워크가 맞아야 한다는 얘기죠. 저는 뭘 해도 뿌리를 뽑는 스타일이라 방송도 책임감을 갖고 하는데 축구만큼 쉬운 건 없는 것 같아요. 축구는 정말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함께 출연하는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요?

“방송을 하기 전에 가족이나 집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식구들과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집을 공개하고 가족이 모두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제안을 받고는 커 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뭘까 생각해 봤어요. 조심스럽게 의사를 물었더니 의외로 아이들이 ‘재밌겠다’며 흔쾌히 허락했죠. 집사람만 반대했는데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요즘은 출연 분량에 은근히 욕심을 내고 있어요. 하하.”

중1 따님이 ‘아빠 해설은 전문적인 분석이 부족하다’며 똑 부러지게 말하던데요.

“딸 얘기가 100% 맞습니다. 제가 뜨끔뜨끔할 정도로 팩트 폭격을 하니 대역을 쓸까도 생각 중입니다(웃음). ‘막걸리 해설이지만 짚어줄 건 짚어준다’는 분들도 있지만 언제 어떤 멘트를 해야 할지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워요. 감독을 해 왔던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축구에 대해 전문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해설 할 때 사투리가 거슬리기보다는 구수하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투리 고칠 수 있는 학원이 있으면 당연히 갔을 겁니다. 또 제 목소리도 해설하기 썩 좋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같이 SBS에서 방송하는 배성재 캐스터나 장지현 해설위원은 정말 목소리가 꿀 보이스죠. 기가 막혀요. 제가 목소리까지 좋으면 가수를 했죠. 심지어 한국어가 딸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진정한 조선 사람인데’ 하면서도 뜨끔하더라고요. 하하.”

달변이 된 계기가 있나요.

“선수 때 인터뷰 한 걸 돌려보면 거의 단답형이고 재미없는 선수였던 거 같아요. 살아오면서 제 몸속에 잠재돼 있던 끼라고 할까, 그런 게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건조한 삶을 살아왔지만 재미난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FC서울 단장님과 사장님들이 나를 일깨워 주시고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자극을 주셨어요. 나도 언젠가는 FC서울 감독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했죠.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신문 기사와 사설을 정독하고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죠.”

‘워드(프로세서)’를 ‘월드컵’으로 알아들을 정도로 컴맹이었다면서요?

“10여 년 전까지는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했어요. 감독이 되려면 컴퓨터도 익숙하게 다뤄야 되겠다 싶어서 독수리 타법으로 ‘청산에 살으리랏다’ 탁탁탁 치면서 타자 공부부터 했는데 참 재미있더라고요. ‘워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뭐, 월드컵?’이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웬만한 파워포인트도 만들 수 있을 정돕니다.”

생소한 일에 겁 없이 뛰어드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방송도 그렇고 해설도 마찬가지죠. 그냥 평생 축구만 하고 마칠 줄 알았는데, 부족한 제가 이런 기회를 받은 거 자체가 너무 고맙죠. 저 말고 잠재된 본능을 가진 선수도 많고 지도자도 많아요. 저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책을 잘 못 보고 있어요. 방송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해서요. 이거 너무 방송용 멘트인가? 크하하.”

최용수 감독의 자상하면서도 예리한 면모를 보여준 예능프로그램이 SBS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다. 여성 연예인·스포츠인 등이 팀을 이뤄 미니축구(5대5) 대회를 하는 포맷이다. 올해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됐는데 뜻밖에 큰 호응을 얻어 정규 프로로 편성됐다.

파일럿 프로 당시 모델 팀인 구척장신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꼴찌를 했다. 정규시즌을 앞두고 최진철 감독이 경질(?)되고 최용수 감독이 부임했다. 최 감독은 ‘왜 저런 약체팀을 맡아야 하나. 현장(지도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칫 잘 못되면 내 이미지나 커리어에 상처가 되는데’ 하는 생각에 제작진과 트러블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제가 좀 예민했죠”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었던 ‘구척장신’팀


▎K리그 안양 LG(현 FC서울)에서 뛸 당시의 최용수. 안양은 2000년 최용수의 활약에 힘입어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구척장신은 어떤 팀인가요.

“파일럿 때 경기를 보니 형편없는 팀이었어요. 전부 키만 크니 다양한 선수 조합이 안 되고, 힘들게 노력하고 경쟁을 통해서 그 분야 톱이 된 분들이라 쉽게 말하면 개인종목 선수들이었죠. 근데 축구는 단체 종목이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돼야 하는데 축구라는 걸 이해를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만나서 연습을 하다 보니 선수들이 저랑 참 비슷했어요. 첫 골을 넣고 싶고, 첫 승을 하고 싶고,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강렬했죠.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여자들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어요.”

어떻게 팀을 바꿔놨나요.


▎1996년 4월 잠실 주 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 올림픽팀 최용수가 홍명보를 뚫고 돌파하고 있다.
“축구공을 어떻게 차고 위치를 어떻게 잡는지 기본부터 가르쳤죠. 협동심·희생· 헌신을 강조했고요. 많은 시간 훈련을 하지 못했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지하게 임하고, 개인훈련도 열심히 했어요. 최약체로 평가받던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 골을 넣고 첫 승을 하고 조별예선을 통과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는 걸 보면서 저도 뿌듯했죠.”

가장 눈에 띄었던 선수는?

“두 골을 넣은 주장 한혜진이죠. 왜 자신의 분야에서도 톱에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근성과 끈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훈련과 자기관리, 팀을 이끄는 리더십, 그리고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남달랐어요. 토너먼트(준결승) 앞두고 한혜진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선수들이 격리돼 연습을 제대로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죠.”

축구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도 많죠.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봤어요. 나는 안 되겠지, 내가 언제 축구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공을 접하고 상대 골대를 향해 골을 넣어보고, 이런 게 기분이 남다른 거예요. 동료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상대를 이긴다는 것.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 어머니들 보는 것 같았어요. 전혀 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는 열정과 에너지가 옆에서 보면 안쓰러울 정도였죠. 그게 시청자에게 희열과 감동으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우리 K리그나 학원 스포츠 선수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정말 그런 간절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지 본인들한테 묻고 싶었어요.”

최 감독은 FC서울 사령탑에 오른 첫해인 2012년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16년 중국 팀으로 떠났던 그는 2018년 말 2부 강등 위기에 빠진 FC서울에 복귀해 극적인 잔류를 이뤄낸다. 지난해 7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최 감독을 경질한 서울은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져 한때 리그 최하위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FC서울 팬들은 지략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최용수 감독을 그리워하며 그의 재복귀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선수’들도 좋아해


▎“K리그에서 우승하면 말을 타고 강남스타일 춤을 추겠다”고 약속했던 최용수 감독이 2012 우승 행사에서 말을 타고 입장하고 있다.
“지도자는 나를 관리하고 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감독은 자기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지만 절대 티를 내면 안 됩니다. 선수들은 감독 표정·말투를 보고 어떤 심리상태인지 꿰뚫어 보고 있어요.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태도를 싹 바꿔버리는 선수도 많아요. 많은 지식을 쌓고 내공을 단련해 면담할 때 답변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감독은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지켜주는 테두리 역할도 잘해야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는 팀의 입장에서 거침없이 질책도 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선수한테 끌려가면 되겠습니까. 공정과 형평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걸 잘해야죠.”

“선수 인성 잡으려고 하지 마라. 실력만 가져다 써라”는 말도 하셨네요.


▎2012년 7월 5일 열린 K리그 올스타전에서 최용수가 골을 넣은 뒤 웃통을 벗고 당시 유행하던 발로텔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착한 선수 11명 나가 봤자 경기가 재미없어요. 음식도 소금·후추·간장·된장 같은 양념이 어우러지듯 축구도 키 큰 선수가 있으면 작고 단단한 선수, 빠른 선수가 있으면 느리되 판단 속도가 빠른 선수가 있어야 조합을 이룰 수 있죠. ‘쟤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소리 듣는 친구들도 저는 좋아했어요. 그 선수의 실력만 갖다 쓰면 되니까. 괜히 감정이 들어가면 선수도, 감독도, 팀도 망가지고 결국 팀을 떠나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FC서울에서도 데얀 같은 선수는 정말 프로페셔널이었지만 자기주장이 강했어요. 고요한·박주영 같은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끌고 갔죠.”

김학범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이 도쿄 올림픽 8강에서 멕시코에 참패했는데요.

“주관적 판단입니다만, 선수 구성에서 실패했어요. 축구대표팀은 결과만큼 흥행도 중요해요. 국민의 애정과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그리고 팀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서라도 와일드카드 손흥민이 필요했어요. 조별예선 2,3차전 대승에 도취해 수비 조직력을 점검할 기회를 놓쳤고, 개인 능력이 좋은 멕시코를 상대로 맞불을 놓은 전략도 결과적으로 실패였죠. (8강, 4강 등) 토너먼트에서는 우선 수비를 단단히 하고, 좀 지저분한 축구도 하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려야 하거든요.”

2012년 K리그 우승 세리머니로 말을 탔다가 떨어질 뻔 했죠?

“당시 우리 팀 흐름이 정말 좋았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박 난 해였는데, 선수들한테 ‘우리가 우승하면 말을 타고 강남스타일에 맞춰 해보고 싶다’고 약속했죠.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해서 그런 말을 했는데 덜컥 우승을 해 버린 겁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을 탔는데 높이가 2m밖에 안 되는데도 떨어지면 밟혀서 죽겠더라고요. 지은 죄가 많아서. 하하하. 일종의 쇼인데 프로니까 팬서비스 차원에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 감독은 FC서울에 대해 깊고도 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FC서울은 어떤 존재인지 묻자 표정이 미묘해졌다. “논밭? 내 삶의 터전? 곡식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안다고 하잖아요. 처음 프로 와서 선수·코치·감독을 했고 지금도 영원한 팬이지만…. 좋은 가르침 받았고 좋은 선수들 만났고, 좋은 가정을 이루게 해 줬어요. 부족하지만 내 능력 이상의 명예를 가져오게끔 한 데가 서울이죠.”

애정이 큰 만큼 구단에 대한 상처와 배신감도 컸던 모양이다. 다시 감독으로 와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허리 수술을 그렇게 심하게 했는데 그런 저를 꾀병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하고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뢰 속에서 서로 끈끈해져야 큰 목표를 향해 같이 갈 수 있는 거지 믿지 못하는 사람과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최 감독은 FC서울 선수들이 명문 구단으로서 자부심과 명예를 지켜주기를 바랐다. 최 감독의 안타까움이 전달됐을까. 서울은 박진섭 감독이 물러나고 안익수 감독이 부임한 이후 강팀의 면모를 되찾고 있다.

‘홈런볼’ 쏴 욕먹은 “2002년 월드컵 미국전이 영광”


▎2012년 K리그 챔피언에 오른 FC서울 선수단이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최 감독은 “모든 게 순리대로 풀린 해였다”고 말했다.
FC서울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주변에서 물어보는 분이 많은데 저는 말을 아껴야죠. 제가 청춘을 바친 팀이니까. 시즌 전에 프런트와 현장이 진정한 소통이 되어서 한마음이 되어서 선수단이 구성됐느냐? 100%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왜 결과가 안 좋으면 현장 지도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직접적으로 뒤에서 움직였던 프런트 책임자들은 뒷짐을 지고 있나요. 서로 책임을 나눠야죠. 구단 운영도 노하우와 전문성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수들은 어떤가요.

“선수들도 정신 차려야 해요. 저따위로 하면서 어떻게 FC서울 엠블럼을 달고 뜁니까. 수많은 선배들이 키워왔고 K리그 선구자 역할을 해 왔는데, 아까 얘기한 구척장신보다 못한 멘탈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가니…. ‘나는 다음 경기가 있으니까’ ‘나는 국가대표 출신이니까’ 그런 개소리는 하지 말라 그래요. 그런 멘탈 자체가 틀려 처먹은 거예요. 한 경기에 목숨을 걸어야죠. 정말 그런 간절함이 사라진 것 같아요. 그냥 개인종목 같아요, 팀이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프런트는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FC서울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설마 우리가 강등되겠어? 하는데 설마가 현실로 올 수도 있는 거예요. 전북-울산-서울, 이렇게 우리가 흥행의 큰 주인공이었는데 지금 서울은 뭐 하고 있습니까. 선수들 뛰는 자세부터 틀린 거지요. 당장 사흘 뒤 경기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다리가 끊어지더라도 죽기 살기로 뛰어야죠. 그게 진정한 프로죠.”

얼마 전 방송에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 주는 모습을 봤습니다.

“프로 입단 초기에 경기를 많이 했던 동대문운동장 근처 용품사에서 축구화를 사 주면서 왠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선수 때는 축구화를 발에 꽉 끼게 신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러면 공이 발등에 맞는 느낌이 좋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발톱도 자주 빠지고 발가락이 흉하게 변형되는 경우도 많았죠. 요즘은 넉넉한 사이즈를 신더라고요.”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 주면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겠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축구를 하는 걸 너무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유니폼을 불에 태워버린 적도 있었거든요.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축구를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당시 우리집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아버지는 제가 축구로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 같아요. 말로 표현은 잘 안 하셨지만요.”

아버지와 슬픈 이별을 한 뒷얘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까지 경기를 잘 못 뛰다가 운 좋게 프로드래프트를 통해 LG 치타스에 입단했어요. 데뷔 두 번째 경기인 걸로 기억하는데 한식날(4월 5일) 평택에서 유공(현 제주 유나이티드)과 경기에서 골을 넣었어요. 스포츠 신문에 대서특필이 됐는데 아버지가 그 신문을 들고 거의 15년 만에 벌초를 가셨답니다. 조상님 덕분에 아들이 성공했다면서요. 산소 옆에 어른 키만 한 나무가 있었는데 그걸 베다가 전기톱이 허벅지를 스친 겁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던 때도 아니고, 외딴곳에서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으신 거죠. 그때 참 슬펐죠. 정말 아쉬운 건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한 겁니다. 우리 아이들 보면 참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인터뷰 말미에 ‘즉문즉답’을 했다. 질문을 보여주면 3초 안에 답을 해야 하는 방식이다. ‘나에게 2002 월드컵 미국전은 OO이다’라는 질문에 최 감독은 “영광이다”고 답했다. 의외였다. 후반 유상철과 교체 투입돼 막판 결정적인 찬스에서 ‘홈런볼’을 쏘아 두고두고 욕먹은 경기 아닌가.

“‘미국전’ 치면 최용수란 이름도 회자되지요. 좋은 것만 가질 수는 없잖아요. 우리같이 광고판에 올라가다 넘어지고, 찬스에서 하늘로 뻥 쏘고….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임팩트가 있으니까. 저만 그랬나요? 선홍이 형은 저보다 몇 배 더 했죠.”

최 감독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황선홍 감독을 끌어들였다. “다음 생에는 선홍이 형이랑 저랑 미국에서 만날 것 같아요. 미식축구 선수로. 거기서 득점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을 겁니다. 크하하하.”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202111호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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