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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이름 팔아요”… ‘을지로3가’에 ‘신한카드’ 붙는 사연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 8억7400만원에 낙찰, 서울교통공사 “재정난 타개 위한 자구 노력”
■ “공공시설인데 시민 불편 초래할 수 있단 점 감안 안 했다” 비판도


▎서울교통공사는 누적된 적자에 코로나19로 승객까지 줄어들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역명병기 사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오는 3월부터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은 ‘을지로3가 신한카드역’, 4호선 신용산역은 ‘신용산 아모레퍼시픽역’으로 불리게 됐다. 이는 서울 지하철을 운영 중인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의 역명병기 계약 체결에 따른 것으로, 을지로3가역은 8억7400만원에, 신용산역은 3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역명병기 사업은 지하철역 이름에 인근 기관·기업·학교 등을 함께 표기하고 사용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땅값이 비싸거나 유동 인구가 많을수록 계약 금액도 높아진다. 역사(驛舍)당 역명병기 가격은 3년 계약 기준으로 수억 원 수준이다. 현재 역명병기 사업을 진행한 역은 33개에 이르며, 최근 판매된 을지로3가역이 약 9억원에 달해 현재까지 계약 중 가장 높은 금액이다.

공사에 따르면 역명병기 사업은 2016년 처음 시작됐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합쳐져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한 이후로는 추가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나, 누적된 적자에 코로나19로 승객까지 줄어들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역명병기 사업을 다시 추진하게 됐다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공사는 지난해 7월 역명병기 사업을 재추진해 2·5호선 ‘을지로4가 BC카드역’, 2호선 ‘역삼 센터필드역’, 7호선 ‘내방 유중아트센터역’ 3개 역에 사업자를 선정해 역명병기를 시행했다. 역명병기 계약이 체결되면 출입구와 승강장, 노선도를 비롯해 열차 내 안내방송에도 변경 내용이 반영된다. 바뀐 역명은 3년 동안 쓸 수 있고, 1회 연장 가능하다. 공사는 역명병기 사업을 통해 연평균 약 25억원(2021년 12월 기준, 30개역 27개 기관 사용료) 정도 수익을 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하철 역명병기 사업은 스포츠계의 ‘네이밍 라이트(Naming Rights)’와 비슷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네이밍 라이트란 프로구단이나 경기장 이름에 일정한 비용을 내고 스폰서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권리를 말하며, 국외 스포츠계에선 일상적인 스포츠 마케팅으로 통한다.

국내에서는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가 대표적이다. 키움증권은 서울 히어로즈와의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500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서울 히어로즈의 네이밍 라이트를 획득한 바 있다.


▎실제 부역명(副驛名)이 병기된 구로디지털단지역사 안내판 사진. / 사진:서울교통공사
공사 “역명병기 사업은 정부 지원 필요하다는 역설”

공사의 역명병기 사업을 두고 시민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역명병기 사업을 다룬 기사에는 “좋은 생각이다. (적자를 메꾸는 데) 세금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며 옹호하는 댓글도 있지만 “역명은 공공재 아닌가”, “돈이면 다 되나, 상식적으로 이건 아니다”라며 비판하는 댓글도 많다. 한편 “(고령층) 무임승차부터 해결하라”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평소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20대 직장인 최모씨는 “고령층이나 외국인들의 경우 역 이름을 곡해해서 듣거나 혼돈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지하철은) 공공시설인데 시민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시민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광고에 노출되는 상황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 의문도 든다”고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역명병기를 신청한 모든 기관에 허가를 내주는 것은 아니다”며 공공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에 따르면 입찰 대상은 역에서 반경 1km 이내에 있으면서 인지도가 높아야 하고, 공사 이미지를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다수 기관 입찰 시 응찰금액이 같을 경우엔 공익기관·학교·의료기관·기업체·다중이용시설 순으로 결정되며, 의료기관은 종합·전문·상급병원이면서 150병상 이상이어야 하고, 기업도 중견기업 이상이어야 한다.

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역명병기 사업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공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당기 순손실은 1조1000억원인데, 이 중 무임 수송 손실만 2643억원에 달한다.

이어 “재정 정상화를 위한 자구 노력 수단으로 해당 사업을 다시 재추진한 것”이라며 “현재 무임 수송 손실에 대한 비용 보전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 전동차를 새로 바꾼다든지 안전에 자금을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역명병기 사업과 같은 자구책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역설”이라고 말했다.

-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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